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68)화 (68/235)

68화 

고요한은 두 손, 두 발이 결박당한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헉……! 끄, 흑……!”

차라리 정신을 잃으면 좋으련만, 의식이 멀어지는가 싶으면 다시금 끌어 올려졌다.

“우와, 신기하네요! 요한이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이 멋대로 요한을 치료하고 있어요!”

제 치유 능력에 의해서 말이다.

에델라이어 주교가 고요한의 앞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있잖아요, 요한. 한 번 더 마력을 주입시켜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고요한은 내장이 비틀리는 고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겨우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에델라이어 주교라니까요, 요한? 정말, 왜 자꾸 물어보시는지 모르겠네?”

거짓말.

고요한이 힘주어 에델라이어 주교를 노려보았다. 그 날 선 시선에 에델라이어 주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요, 요한. 제가 졌어요. 귀중한 실험체가 될 테니 원하는 걸 들어줘야겠죠?”

에델라이어 주교가 손을 들어 웃는 낯을 뜯어냈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얼굴에 붙어있는 살가죽을 뜯어냈다는 거였다.

뜯기는 얼굴에 고요한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여자가 에델라이어 주교의 얼굴 가죽을 손에 든 채로 히죽거렸다.

“제 이름은 사토 하루나. 만물의 위대하신 마법사인 그레이시 아서 님의 제자랍니다?”

“만물……?”

만물이라면, 오광 중 한 곳.

34층에서 만났던 마법사들이 속해있던 곳이 아닌가.

고요한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만물의 마법사가 왜 에델라이어 주교님처럼 행사하고 있었던 겁니까……!”

내뱉은 목소리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그만큼 고요한은 한계에 다다른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를 괴롭게 만든 주범, 사토 하루나는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야, 에델라이어 주교님의 몸을 제가 빼앗았으니까요? 실험체를 구하는 것도 편하고요.”

실험체.

눈앞의 여자는 이곳, 43층의 태양교의 신전에서 다시 맞닥뜨렸을 때부터 줄곧 ‘실험’을 운운했었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아, 그 실험을 행했다.

도대체 무슨 실험인지 모르나,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끊임없이 가해지고 있었다.

분명, 순수한 목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실험이 아닐 게 분명했다.

‘애초에 사람을 상대로 행해지고 있는 실험이라니.’

고요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우선은 눈앞의 여자한테서 달아나는 것이 먼저였다. 고요한은 사토 하루나 몰래 단검을 이용하여 결박을 풀어버렸다.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인벤토리를 이용할 수 없어 계속 결박당했으리라.

“그럼, 요한! 궁금한 건 모두 해소되셨을 것 같으니 한 번 더 마력을 주입할게요!”

때마침, 사토 하루나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요한에게 다가왔다. 그의 몸에 주입시켰던, 붉은 액체가 담긴 약병을 들고서 말이다.

사토 하루나는 주사기를 이용해 약병 안의 붉은 액체를 빼내고는, 고요한에게 이를 들었다.

그렇게 사토 하루나가 고요한의 몸 안에 다시금 마력을 주입시키려 할 때였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토 하루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아이고…….”

사토 하루나가 뒤통수를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고요한은 제 몸의 결박을 모두 풀고서 도망쳐 버렸다. 사토 하루나가 멀어지는 고요한의 인기척에 키득거렸다.

“도망가 버렸네?”

어차피 금방 잡힐 텐데.

사투 하루나가 몸을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한 번 더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으로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좋겠죠. 셋 세고 잡으러 갈게요, 요한! 붙잡히면 밧줄이 아니라 마법으로 묶어버릴 줄 아세요! 아시겠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고요한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 미친 여자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은 죽고 말리라.

“헉… 허억……!”

하지만 고요한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을 수박에 없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격통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고요한은 신음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기까지 했다.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요한?”

고요한이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고요한의 얼굴은 더없이 밝았다.

“유리한 씨……!”

눈앞에 다가선 여자를 본 순간, 고요한은 찾아오는 고통도 잊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찾아온 격통에 고요한의 몸은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요한!”

유리한이 바닥에 쓰러지려는 고요한을 붙잡아 흔들었다.

“정신 차려요, 요한!”

그러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열에 유리한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요한의 체온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마치,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오랫동안 서있었던 사람 같았다.

“요한……?”

유리한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남자를 불렀다. 그러나 고요한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쌕쌕, 힘겹게 내뱉는 숨소리만 들려왔을 뿐이다.

유리한이 고요한을 몇 번이고 흔들며 그의 정신을 깨우고자 했다.

“요한, 정신 차려봐요. 네? 제발 부탁이니까……!”

온갖 실험에 쓰러져 갔던 자신의 동생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유리한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 때였다. 어둠 속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술래에게 잡히기도 전에 쓰러져 버리다니. 곤란해요, 요한!”

다가오는 인기척은 한 명, 이내 나타난 사람은 낯선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익숙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유리한이 미간을 좁히며 여자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여자가 밝게 웃으며 유리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리한 씨! 그때는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보다 드래곤은 찾으셨나 봐요? 아까워라, 제가 찾아서 이곳저곳 연구해 보려고 했는데!”

에델라이어 주교.

분명, 그녀였던 여자다.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드러냈다.

“요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간단히 실험을 행한 것뿐이에요.”

사토 하루나가 예쁘장하게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유리한 씨의 동생분에게 했던 것처럼요.”

사토 하루나에게서 내뱉어진 목소리가, 유리한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 * *

쿠구궁―!

커다란 진동이 빈민가를 울렸다. 유리한과 고요한을 찾아 나섰던 디에스 라고가 자리에 멈춰 섰다.

내리던 비를 빌미로 둘을 찾으러 나선 디에스 라고였다.

비는 도중에 그쳐 우산을 챙긴 보람이 없게 됐지만 디에스 라고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의 진동으로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유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고요한은 관심 밖이었다.

디에스 라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에델라이어 주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태양교의 사람이란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꽤 인망이 두터운 여자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빈민가의 아이들이 그렇게 그녀를 반길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조금 전에 울린 진동 때문인지, 허름한 판자촌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잘됐군.’

하지만 디에스 라고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에델라이어 주교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었다.

“유지한……?”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리한의 동생, 몇 번이고 자행되는 실험 끝에 죽어버렸다는 그녀의 동생이었다.

“지한아!”

디에스 라고가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을 내팽개치고는 유지한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유지한과의 거리는 좁혀지지가 않았다.

‘환상인가? 만물의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이번에는 지한이의 환상을 이용해 나를 농락하려는 건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디에스 라고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유지한을 부르며 그를 붙잡고자 했다. 유지한이 멈춘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형.”

“지한아.”

유지한이 애달프게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나랑 한 약속 지켜줘요.”

“뭐……?”

디에스 라고가 제대로 된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유지한은 모습을 감췄다. 디에스 라고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지한아, 유지한!”

그는 황급히 유지한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유지한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망할……!”

디에스 라고가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순간.

쿠구궁―!

다시금 커다란 진동이 빈민가를 덮쳤다. 이번에는 밤보다 짙게 깔린 어둠이 함께였다.

“꺄아아악!”

“으아악! 피해!”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43층의 태양교의 신전, 진동이 시작된 곳까지 들려왔다.

- 이런, 야단났군.

뒤늦게 지하에서 나온 니르로르가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새끼 드래곤의 앞에는 칠흑같이 새까만 어둠이 허리케인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니르로르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가까이에 쓰러져 있는 고요한을 불렀다.

- 이봐, 하늘 머리 인간아. 일어나 봐라.

고요한은 미동도 없었다.

- 인간아, 죽었냐?

니르로르가 앙증맞은 앞발을 들어 고요한의 뺨을 꾹 눌렀다.

죽지는 않은 듯, 고요한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 흐음.

니르로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는 성난 기세를 토해내고 있는 어둠을 한 번,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요한을 한 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는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 저대로 두면 망할 인간은 죽어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곤란했다.

종속 관계가 파괴되는 것도 난처해지는 일이었지만, 솜사탕을 사줄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가?

‘안 되지, 안 돼.’

물주는 소중하다.

때문에 니르로르는 크게 마음을 먹고 유리한을 구하고자 했다.

옅은 그림자가 새끼 드래곤의 작은 몸을 휘감았다. 이내 니르로르를 감쌌던 그림자가 흐릿해지면서 사라졌다.

“오랜만에 인간의 모습을 취하니 어색하군.”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남자였다. 디에스 라고와 엇비슷한 키를 가진, 유려한 인상을 지닌 남자.

166769937260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