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하야시 리코 님이 잡혔습니다!]
[남은 플레이어, 6명]
남은 여섯 명 중 한 명, 도라이는 숨을 죽인 채 쓰레기통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올라오는 냄새가 고약했지만,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도라이는 코를 한껏 틀어쥐고는 주변의 인기척을 살폈다.
도라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쓰레기통은 저처럼 술래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던 데르나르 로덴이 숨어있던 곳이었다.
‘여기에 또 누가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겠지.’
때문에 도라이는 이 안에서 남은 20분을 버틸 생각이었다. 과연 바라는 대로 될지 모르겠지마는.
[6/27]
[이지운] : 우리 살아남을 수 있을까?
[리엘 왓슨] : 살아남아야지.
[리엘 왓슨 님이 잡혔습니다!]
[5/27]
[이지운] : 살아남자며ㅠㅠㅠ!
[벤 필릿 아머] : ㅋㅋㅋㅋㅋㅋㅋ
[티커 키코뉴] : 숨 좀 돌리려고 하면 잡히네.
도라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술래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심 짐작했다.
유리한의 팀이 자신들의 술래일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술래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들을 이렇게 씹어 드시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유리한의 팀에 대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5/27]
[이지운] : 진짜 우리 술래, 유리한 팀인 거 아니야?
[벤 필릿 아머] : 그런 것 같은데ㅋㅋ 이번 시험은 텄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네ㅎ
[이지운] : 안 돼ㅠㅠ 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세 번째 광탈이라고!
[벤 필릿 아머] : 오, 저런ㅎㅎ
그때였다.
[5/27]
[루크 메이슨] : 내가 한번 술래가 누군지 찾아볼까?
[이지운] : 그러다 잡히면 어떻게 하려고ㅠㅠ!
[루크 메이슨] : 걱정 마ㅋㅋㅋ 나 은신 스킬 S급이라 들킬 일 없을 테니까ㅋㅋㅋㅋㅋ
어떤 호승심 넘치는 플레이어가 술래를 파악하러 나가보겠다고 나섰다.
도라이는 그러지 말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다.
[루크 메이슨 님이 잡혔습니다!]
바로 잡힐 것 같았으니.
[4/27]
[이지운] : ㅠㅠ내가 저렇게 될 줄 알았지!
[벤 필릿 아머] : 이렇게 최후의 4인이 결정됐군ㅋㅋㅋ
[티커 키코뉴] : 곧 세 명이 될 것 같은데.
도라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멍청이.”
암만 S급의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동급의 간파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술래가 정말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라면, 동급의 간파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루크 메이슨인지 뭔지를 바로 잡을 거고.
도라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시험은 망한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해야 하나. 도라이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루크 메이슨? 얘 도대체 뭐래? 알아서 우리한테 오다니.”
“우리가 술래인 줄 몰랐던 것 같군. 가만히 서있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경계심이 없다고?”
술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라이가 숨을 들이켜 마셨다.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제 네 명 남았지, 디에스?”
“그래, 유리. 네가 열둘, 내가 열한 명을 잡았으니 세 명은 양보해 주지 그래?”
“세 명을 양보해 주면 내가 내기에서 지지 않아?”
“들켰군.”
그 술래가,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였다.
도라이는 곧장 이 사실을 같은 처지인 플레이어들에게 알렸다.
[4/27]
[도라이] : 우리 팀 술래,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임.
[이지운] : 정말?
[도라이] : ㅇㅇ내 옆에서 이야기 중임
[벤 필릿 아머] : 젠장ㅋㅋㅋ
[이지운] : 왜 하필ㅠㅠ
[티커 키코뉴] : 이번 시험 그냥 포기해야겠다.
도라이 역시 포기하고픈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쓰레기통을 박차고 나가, 여기 당신들의 쥐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근처에는 없을 거다, 유리. 골목을 벗어나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 좋아.”
디에스 라고와 유리한이 알아서 자리를 벗어난다고 하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기로 했다.
[4/27]
[벤 필릿 아머 : 그런데 도라이 씨는 어떻게 안 들키고 있대?
[도라이] : 쓰레기통에 숨어있거든ㅋㅋㅋㅋ
[벤 필릿 아머] : 미쳤네ㅋㅋㅋ
[이지운] : 나도 쓰레기통에 숨을까ㅠ
어찌 됐든 술래가 암만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라고 하더라도 들키지 않으면 그만. 도라이는 어떻게든 시험을 통과하고자 했다.
“그럼, 디에스. 서로 반대로 움직이자.”
“그래, 유리. 시험이 끝나고 보도록 하지.”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의 기척이 멀어졌다. 도라이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우당탕―!
놀라 숨을 들이켜 마셨다.
“어… 어어……?”
두 눈도 동그랗게 떠졌다.
자신을 감춰주고 있던 쓰레기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라이 역시 그 쓰레기들과 함께 바닥에 엎어져 있는 상태였다.
도라이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혹시나 했더니만.”
“…….”
디에스 라고가 고운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라이는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눈치껏 머리띠를 벗어 디에스 라고에게 넘겨주었다.
* * *
[도라이 님이 잡혔습니다!]
[남은 플레이어, 3명.]
20분 남짓 남은 시간.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있던 고요한이 미소를 그렸다.
“니르로르 씨, 곧 시험이 끝날 것 같아요. 세 명밖에 안 남았다는군요.”
- 세 명이나 남았다는 거냐, 하늘 머리 인간아?
고요한의 정수리에 둥지를 틀고 있던 니르로르가 뒹굴었다.
- 따분하고 심심하고 재미없도다.
고요한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따분하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건 고요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의 손에 의해 플레이어들이 잡힐 때마다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싶다고.
정확히는, 디에스 라고의 자리를 자신이 대신하고 싶다고.
[벤 필릿 아머 님이 잡혔습니다!]
[남은 플레이어, 2명.]
이제 둘밖에 남지 않았다.
고요한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었다.
“니르로르 씨, 도대체 제 마력은 언제 안정이 될까요?”
- 안 그래도 나 역시 궁금하다, 하늘 머리 인간아.
니르로르가 다소 불만 어린 얼굴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 원래라면 네가 품은 마력은 안정될 것도 없이 곧바로 사라져야 했던 거다.
그야, 인위적으로 형성된 불안정한 마력이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이 그 마력을 계속 붙잡고는 억지로 안정시키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까 그 말은…….”
- 무한의 마력이라고 하던가. 그것을 네 것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하늘 머리 인간아.
고요한이 얼굴을 굳혔다. 그 속에서 당혹감을 엿본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왜 그렇게 당황하느냐? 감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됐는데 말이다. 기쁘지 않느냐, 하늘 머리 인간아?
기쁘지 않느냐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야, 이 힘은 유지한.
‘유리한 씨의 동생분께서 가지고 있던 힘이잖아.’
고요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순간에 어두워진 그 낯빛에 니르로르가 미간을 좁혔다.
- 유리한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냐, 하늘 머리 인간아?
“네?”
- 그렇게 걱정되면 힘을 키워라.
아무래도 작은 드래곤이 오해를 한 것 같다.
고요한은 니르로르에게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 도와주마.
다짜고짜 도와주겠다며 인간의 모습을 취한 니르로르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거다.
머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고요한이 휘청거렸다.
“니… 니르로르 씨……?”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의 모습을 취한 니르로르가 말했다.
“너는 짐에게 솜사탕을 가장 많이 사준 인간이니까 그 답례다. 고맙게 여기도록.”
“아니요, 잠깐만요!”
고요한이 황급히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저기요! 잠깐만 멈춰달라니까요? 그 머리띠만 벗길게요! 겸사겸사 머리 가죽도!”
“미친, 당신이라면 멈출 것 같아?! 그만 좀 쫓아와!”
“술래인데 어떻게 안 쫓아가요?!”
저 멀리서 유리한이 달려오고 있었던 탓이다. 머리 위로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아무래도 유리한에게 쫓기고 있는 남자가 저지른 짓인 것 같았다.
고요한이 그에 험악하게 얼굴을 구길 때,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발견하고는 씨익 웃었다.
“마침 잘됐군.”
“네?”
“속성으로 하나 가르쳐 주마.”
고요한이 어떻게 말릴 새도 없이 니르로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심장 근처에서 요동치고 있던 마력이 순식간에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고요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따라 해라, 하늘 머리 인간아.”
“뭐… 뭐를요……?”
“리스트레인(Restrain).”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울렸다.
고요한이 니르로르를 흘긋거리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리스트레인.”
그와 동시에 은빛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내 펼쳐진 마법진 속에서 수 개의 사슬이 튀어나왔다.
“흐악! 이거 뭐야?!”
“……!”
고요한이 놀라 숨을 삼켰다.
마법진 속에서 튀어나온 사슬이 유리한을 피해 도망치고 있던 남자를 빈틈없이 꼼꼼하게 옭아맸기 때문이었다.
남자를 쫓고 있던 유리한 역시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유리한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마법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요한?”
“유, 유리한 씨. 그게, 이건, 그러니까…….”
유리한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고요한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아이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했다.
곧, 유리한은 아이가 붉은 눈을 끔뻑이자 빼액 소리 질렀다.
“야! 이, 망할 용용이 새끼야! 내가 요한한테 허튼짓하지 말라고 했지!”
유리한이 곧장 고요한 뒤의 니르로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니르로르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유리한아, 네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느냐!”
“……!”
니르로르가 고요한을 방패 삼아 그를 앞으로 밀쳤다. 그 탓에 고요한의 몸이 허물어졌다.
넘어지지 않고자 내뻗은 팔이 누군가를 붙잡았지만.
“윽!”
그는 자신이 붙잡은 사람과 함께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게 됐다.
“아야야……!”
앓는 목소리에 고요한이 황급히 숨을 들이 삼켰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아주 짧은 거리. 그 앞에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