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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82)화 (82/235)

82화 

【 13. 북해빙궁 】

휘이잉―!

시린 바람 속에 뒤섞인 눈이 계속 시야를 막았다. 이곳은, 44층. 북해빙궁이라 불리는 문파가 자리한 곳.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내리는 아주 추운 곳이라고 하더니.’

단단히 준비하고 오기를 잘했다. 암만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날씨는 사양이었다.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청의 기사단으로부터 선물받은 두꺼운 코트를 여미면서 말이다.

- 유리한아.

“왜.”

- 춥도다.

“어쩌라고.”

유리한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니르로르가 코를 훌쩍였다.

- 짐에게도 네가 입고 있는 것을 내놓거라! 왜 너희 인간들만 꽁꽁 몸을 싸매고 있는 것이냐!

니르로르가 손톱을 들어 유리한의 머리를 헤집기 시작했다.

“아오, 이 망할 도마뱀이!”

유리한이 머리 위에서 난리를 치고 있던 드래곤의 목덜미를 잡아 들었다.

“위대한 드래곤이라면서?! 보온 마법 걸어! 아니면 폴리모프해!”

그에 니르로르가 뚱하게 말했다.

- 싫도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지?

유리한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니르로르는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 유리한아, 춥도다.

유리한은 무시했다.

- 유리한, 위대한 드래곤인 이 몸을 감기에 걸리게 할 생각이냐?

니르로르가 두 눈을 올망졸망하게 뜨고서 유리한을 쳐다봤다. 유리한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너 진짜 짜증 나는 거 알지?”

- 아느니라.

알아서 더 얄미워!

유리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대한 드래곤께서 감기에 걸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일이 있었다.

“요한, 혹시 드래곤 치료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드래곤은 니르로르 씨가 처음이에요.”

“그렇군요.”

결국, 유리한은 니르로르를 제 품속에 집어넣기로 했다.

“유리, 잠깐.”

그 행위를 디에스 라고가 막았다. 디에스가 유리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라리 내게 맡겨라.”

“아니면 저한테 맡기세요, 유리한 씨. 제가 품에 안고 갈게요.”

디에스 라고의 옆에서 고요한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유리한은 고민하다가 니르로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 짐은 네가 좋다만.

“나는 싫어.”

고민도 않고 내뱉은 단호한 목소리였다. 니르로르는 불퉁한 얼굴을 보였다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유리한한테서 벗어났다.

- 그렇다면 하늘 머리 인간한테 가겠느니라.

그렇게 니르로르는 고요한의 품속에 쏘옥 들어갔다. 고요한이 그런 니르로르를 보듬으며 물었다.

“니르로르 씨, 이제 따뜻하죠?”

니르로르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스 라고는 마치 고양이를 품에 안은 듯한 고요한의 모습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아쉽다고? 무엇이?’

디에스 라고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니르로르가 귀엽기는 했다. 그래, 드래곤의 모습. 그 작고 앙증맞은 그 모습이 귀엽기는 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 작고 앙증맞은 드래곤의 정체는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죽음의 드래곤, 니르로르.

디에스 라고에게 있어서 절대로 귀여워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그런데.

‘아쉽다니?! 저 망할 드래곤을 품에 안지 못한 게 아쉽다니!’

디에스 라고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경악스러운 생각에 두 손을 들어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디에스?”

그런 디에스를 유리한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디에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그건 아니다, 유리. 다만…….”

“다만?”

디에스 라고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나 자신이 갑자기 너무 혐오스러워졌다.”

유리한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디에스 라고를 쳐다봤다.

디에스는 커다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북해빙궁이 위치해 있는 마을에 도착한 건 그때였다.

휘이잉, 부는 바람이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유리한은 괜히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말했다.

“문을 열고 있는 곳이 없네.”

유리한이 곤란하다는 듯이 난처한 얼굴을 보였다.

플레이어들을 위한 안내소에 찾아가고 싶어도 이런 날씨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머물 곳이 보이지도 않고.’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구세주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행객들인가?”

“네? 네, 이곳은 처음이에요.”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여행객, 그건 ‘무림’을 기반으로 둔 세상에서 플레이어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유리한의 대답에 그녀의 허리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은 키를 가진 노인이 짧게 혀를 찼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머물 곳은 있나?”

“객잔을 찾아보려고요.”

객잔이란, 여관이나 다름없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44층에서는 이렇게 불러야 사람들이 이해를 한다고 그랬지.’

여러모로 불편한 세계였다.

어쨌거나 유리한의 말에 노인은 말했다.

“그곳은 이미 만석이라네. 몇 달 전에 찾아온 여행객들이 아직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

“아…….”

“괜찮다면 내 집에서 머무르게. 남는 방이 많거든.”

“그래도 될까요?”

“물론.”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으냐는 유리한의 소리 없는 물음에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대답을 보냈다.

“네 뜻대로 해라, 유리.”

“맞아요, 유리한 씨.”

그렇게 나온다면야, 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유리한이 노인의 호의를 받는 순간이었다.

“그럴 필요 없소.”

진중하면서도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유리한이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고서 고개 돌렸다.

유리한보다 세 뼘은 큰 사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유리한이오? 그 뒤로는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맞소이까?”

“네, 맞는데요.”

유리한이 사내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은 북해빙궁의 사람인가요?”

“맞소이다.”

그럴 줄 알았다.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북해빙궁의 사람이 저희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이곳은 북해빙궁의 영역. 마음만 먹으면 마을에 들어서는 방문객 따위 쉽게 알아차릴 터였다.

‘그것도 아니면 명성 때문에 나를 알아차린 걸 수도 있지.’

유리한의 명성은 천을 넘은 지 오래였다. 그녀의 날 선 물음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궁주께서 보고 싶어 하시오.”

궁주라면, 청예신의 딸인 ‘설영’을 뜻하는 거겠지.

기회는 왔을 때 잡는 법.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좋아요, 따라갈게요.”

유리한은 기꺼이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 전에, 그녀는 자신들에게 집을 내어주려고 했던 노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훗날을 위해서였다.

‘할 일도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던 건 아닐 거야.’

더욱이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다.

‘분명, 아는 것이 많은 노인일 거다.’

즉, 알아낼 것이 많다는 말씀.

유리한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어르신,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궁주님께서 직접 보고 싶어 하실 정도로 귀한 손님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혹여라도 자신이 무례를 저지른 것이 있다면 부디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며 노인은 말했다.

“무례라니요? 그런 것 없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유리한이 노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북해빙궁의 사람이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과 눈을 한 번 맞추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한참을 간 후에 북해빙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웅장한 규모의 대문에 유리한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고요한 역시 마찬가지.

디에스 라고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유리한이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디에스 라고에게 물었다.

“디에스, 왜?”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이라고 하면 30년 전, 탑을 오를 때를 말하는 거겠지. 유리한은 새삼스레 디에스 라고가 다시 탑을 오르고 있음을 인지했다.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머리를 짓궂게 헝클어뜨렸다.

“이곳에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었나 봐?”

디에스 라고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와서 떠올린 건데, 그때의 시험이 눈사람 만들기였다.”

“눈사람 만들기……?”

그게 뭐람?

유리한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디에스 라고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궁주가 어떤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궁주는 꽤 괴짜여서 말이지.”

그래서 시험을 치르는 데 고생 좀 했다면서 디에스 라고가 말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조금 언짢아졌던 것뿐이다, 유리. 네가 신경 쓸 것 없어.”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그때, 고요한이 물었다.

“눈사람이 뭔가요?”

- 하늘 머리 인간아, 그것도 모르느냐? 눈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야, 멍청한 용아.

유리한은 튀어나오려는 말을 집어삼키고는 고요한에게 물었다.

“요한, 눈을 본 적 없나요?”

“그게, 본 적은 있어요.”

고요한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리스체가스도, 태양교의 대신전이 있던 34층도 눈이 쌓이는 곳은 아니라서요.”

“아하.”

그러고 보니 44층까지 올라오는 내내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요한에게는 지금 이 세상이 무척 신기하겠구나.’

유리한은 그제야 고요한의 두 눈이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들뜬 것 같더라니.’

유리한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요한,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눈사람 만들어 봐요. 은근 재미있거든요.”

“네, 유리한 씨!”

유리한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뭐든 재미있는 고요한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말해주다니.

고요한이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웃음에 유리한은 두 눈을 비볐다.

순간, 고요한의 뒤에서 후광이 비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리한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미간을 좁혔다.

‘착각인가?’

아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다쳤다거나 그런 건가?

“유리한 씨, 왜 그러세요?”

“눈이 조금 이상해서요.”

“이상하다니요? 어떻게요? 저 좀 봐요.”

유리한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고요한이 그녀의 뺨을 붙잡았다. 순간, 마주친 두 눈에 유리한이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윽……!”

유리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요한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 그를 쓰러뜨렸다.

“유, 유리한 씨?”

고요한이 잔뜩 당황한 얼굴로 유리한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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