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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92)화 (92/235)

92화 

【 14. 49층 】

쏴아아―!

54층, 청의 기사단 본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곳.

“라이, 여기 있었어?”

여자의 부름에 부단장, 라이 에스페란도가 고개를 들었다.

“엘레나.”

청의 기사단에 속해있는 유일한 마법사, 엘레나 리본이 눈웃음을 지었다.

“엘던스 테레시가 단장님의 소식을 알려왔어.”

“43층에 더 머무실 건가 보군.”

“아니, 44층으로 떠났다는데?”

“44층에?”

라이 에스페란도가 중얼거렸다.

“별일이군.”

“어쨌든 너한테는 잘된 일이지 않아?”

엘레나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다녀와, 라이. 혹시라도 단장님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오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후웅, 일어난 바람이 여자를 감쌌다. 이내 드러난 자는 라이 에스페란도. 그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모습이었다.

라이는 제 얼굴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가볍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 부탁하지.”

“맡겨만 줘.”

라이 에스페란도의 모습을 취한 엘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라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청의 기사단 본관 건물을 빠져나갔다.

긴 다리를 쭉쭉 뻗어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골목이었다. 가장 구석의 문을 망설임 없이 열어젖히자 환한 빛이 그를 반겼다.

라이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려던 찰나,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게 누구신가? 청의 기사단의 라이 에스페란도 님이 아니신가!”

얼굴 위로 아수라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그를 반겼다.

“무슨 정보를 팔려고 오셨는가? 아님, 정보를 사고자 오신 건가?”

“백작을 만나러 왔다만.”

“우리 백작님께서는 지금 이곳에 안 계신다만?”

“있는 줄 알고서 찾아온 것이니 안내해 줬으면 하는데.”

남자는 말이 없었다. 대신 얼굴 위로 덮어쓴 가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방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던 음악이 뚝 끊긴 것은 당연지사. 남자와 라이 에스페란도 사이에서 묘한 신경전이 벌어질 때.

“그만.”

휘황찬란한 가면을 눈 위에 덮어쓴 남자가 등장했다. 아수라 가면을 쓰고 있던 남자가 황급히 고개 숙였다.

“백작님.”

“손님을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면 안 되지, 제이.”

‘백작’이라 불린 사내가 미소를 그렸다.

“따라와, 부단장님. 마침 기다리고 있었거든.”

라이 에스페란도가 말없이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남자는 그를 계속해서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재잘재잘 입을 나불거리면서 말이다.

“아리따우신 단장님께서 44층에 올라가셨다지? 43층의 일은 수습이 됐나 보네?”

“잠깐…….”

“43층에서 일어난 참상으로 꽤 곤란했다고 하던데. 그런데 44층에는 왜 올라가셨대? 숨겨둔 자식이라도 있으신가? 그 자식이 죽기라도 했나 보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입에 라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아하하! 재미없는 사내라니까?”

남자가 유쾌하게 웃더니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성큼, 라이에게 다가선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물었다.

“우리 재미없는 청의 기사단, 라이 에스페란도 부단장님께서는 왜 나를 찾아오신 걸까? 응?”

화려한 가면 뒤로 저를 탐색하는 푸른 눈이 보였다. 라이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유리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얻으려고 왔다. 뮤즈의 백작, 제로 바니스타.”

백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유리한 씨, 왜 그러세요?”

“네? 아…….”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가 제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갑자기 귀가 간지럽네.”

그러고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분 탓이겠죠, 뭐.”

하지만 고요한은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44층의 특별 시험을 통과해 49층에 올라온 지 일주일.

특별 시험의 보상으로 정상적으로 탑을 오르면서 받을 스탯 능력치의 배를 얻었지만, 고요한은 크게 기쁘지 않았다.

그야, 유리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밤낮을 지새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다 못해 고요한이 제발 눈을 붙이라고 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며칠 안 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아요, 요한!”

참으로 밝은 목소리였다. 그에 고요한은 애원했었다.

“유리한 씨, 하지만 북해빙궁에서 손을 다쳤었잖아요. 그렇게 계속 깨어있으면 탈이 나고 말 거예요.”

“하지만 요한이 다 치료해 줬잖아요? 설마 요한, 제대로 치료 안 해준 거예요?”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결국 고요한은 백기를 들었다.

유리한, 그녀가 왜 편안하게 잠을 청하지 못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궁주님 때문이겠지.’

유리한은 북해빙궁주, 설영을 제 손으로 죽였다.

시스템이 내린 특별 시험으로 인한 결과라고 하나 분명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다.

‘나한테 궁주님을 한번 살펴봐 달라고도 하셨었으니.’

그건 유리한이 일으킨 소동으로 흐지부지됐지마는 말이다.

어쨌든 유리한은 44층의 특별 시험 이후로 잠을 청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저… 유리한 씨.”

고요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 때였다.

“유리, 도착했다.”

디에스 라고가 그의 말문을 막았다. 정말이지,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고요한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디에스 라고를 노려보든 말든 유리한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디에스,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이곳에 마을이 있는 것 맞아?”

“맞다, 유리.”

디에스를 이어 니르로르가 말했다.

- 유리한아, 마법이 펼쳐져 있느니라.

“마법?”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마력을 두 눈에 집중시켜 주변을 살폈다.

“오, 정말이네. 요한, 어때요? 요한의 눈에도 보여요?”

“네?”

고요한이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그의 두 눈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하늘 머리 인간아, 가지고 있는 마력을 이용해 보거라.

43층에서 만났던 만물의 마법사, 사토 하루나에 의해 무한의 마력을 가지게 된 몸.

아직 마력을 제대로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지마는 고요한은 니르로르의 말에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앞에 그려져 있는 붉은 마법진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빈틈없이 짜 맞춰져 있는 술식에 고요한이 황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네… 보여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디에스 라고가 마법진 앞에 성큼 다가섰다.

“부수려고?”

“아니, 부수고 싶어도 부술 수 없는 마법진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나 디에스 라고가 부수지 못하는 마법진이라고는 하나뿐.

멀린 아서, 대마법사라 불리던 그의 마법진뿐이었다.

‘그런 게 또 있다고?’

디에스 라고는 그녀가 의문을 보이자 싱긋 웃음을 지었다.

“보면 알 거다, 유리.”

디에스 라고는 그리 말하고는 붉은 마법진 위에 손을 얹었다.

톡, 토독.

손가락 끝으로 삼각형을 한 번, 역삼각형을 두 번씩 그리자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암호가 바뀌지는 않았군.”

“오.”

빛이 수그러들고 나타난 건 마을이었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끝이 보이는 작은 마을.

“변함없군.”

30년 전 이미 마을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디에스 라고였다.

“그런데, 디에스.”

유리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일행을 쳐다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나같이 경악과 놀라움,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으… 으아악!”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소란이 일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수호자! 수호자를 불러와!”

유리한이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침입자와 수호자라… 49층의 시험이 그거였지? 땅따먹기.”

“그래, 아무래도 3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규칙이 몇 가지 추가된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도 너무 격한 환영이었다. 유리한이 흐음, 하고 고개를 기울일 때.

“유리한 씨!”

쐐액―!

날 선 것이 허공을 가르며 들이닥쳤다. 유리한이 가까스로 그것을 피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고개를 뒤로 젖힌 유리한의 손에 가볍게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런 환영은 처음이네!”

* * *

따악!

손가락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 ‘유리한’에 대해 내가 알려줄 정보는 이게 끝! 궁금한 건 좀 해결이 되셨을까, 부단장님?”

“유리한이 지금 49층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얻은 정보가 없는 것 같다만.”

“하하! 유리한에 대한 정보는 꽤 값이 비싸서 말이지!”

유리한, 그녀의 행방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라는 뜻.

제로 바니스타의 경쾌한 목소리에 라이 에스페란도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를 보며 제로 바니스타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부단장님께서는 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구시대의 영웅님과 싸우기라도 하려고?”

“아니.”

물론, 유리한과 검을 한번 맞대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라이 에스페란도는 알았다. 저는 유리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유리한에게 있어 그는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병정으로 보일 뿐.

“그럼, 왜 유리한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거지? 아리따우신 단장님께 비밀로 하면서 말이야.”

“단지 알고 싶어서 네놈을 찾아온 것뿐이다.”

“무엇을?”

“유리한에 대한 모든 것을.”

제로 바니스타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라이 에스페란도는 단순한 팬심으로 유리한의 정보를 얻고자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이것 참 걸작이군!’

키득거리며 웃는 백작의 모습에 라이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네놈한테서 얻을 정보는 다 얻은 것 같으니 말이다.”

“뭐, 마음대로 해. 아, 혹시 배웅 필요해, 부단장님?”

라이는 매섭게 제로 바니스타를 노려보았다.

“아이, 무서워라. 농담이었어.”

그는 실실 웃음을 흘리는 백작을 못 본 척 무시하며 그의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아수라 가면을 얼굴 위에 덮어쓴 남자가 제로 바니스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백작님.”

“아아, 제이.”

제로 바니스타가 편하게 앉으란 듯이 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부단장님께서도 가만히 보면 순진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실실 웃음이 나왔다.

“유리한이 왜 소망의 탑을 오르는지 알면 절대로 저렇게 못 나올 텐데 말이야.”

알려줄 걸 그랬나?

제로 바니스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보다 49층이라면 1년 전에 탑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우리 슈퍼루키 님께서 계시는 곳이지?”

“네, 그렇습니다.”

“아직도 거기 계시고 말이야. 그렇지?”

“네.”

“흐음, 어떻게 나오려나? 슈퍼루키 님과 싸우려나, 아님 손을 잡으려나?”

이것 참, 손님들을 모셔두고 내기라도 걸고 싶네.

제로 바니스타가 히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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