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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98)화 (98/235)

98화 

* * *

응접실을 나온 유리한은 다리를 쭉쭉 뻗으며 나아갔다.

- 유리한아, 이대로 마을을 침략하러 가는 것이냐?

“글쎄. 하지만 다른 침입자 녀석들과 같이 움직이기는 할 거야.”

- 애매모호한 대답이구나.

한편인 침입자와 함께 움직이기는 할 테지만 마을을 침략할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니르로르가 의문에 찬 시선을 보냈지만 유리한은 가볍게 무시하며 중얼거렸다.

“랴오륭…….”

혈맹의 맹주인 그의 이름을 한 번 내뱉은 유리한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재수 없는 남자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나지막하게 덧붙인 말에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렇다면 죽이면 되지 않느냐?

“그러고야 싶지.”

하지만, 랴오륭. 그가 ‘유지한’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는지 확실치가 않았다.

청예신과 같은 성격이라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겠지만 랴오륭은 아니었다.

그는 교활한 뱀 같은 남자였다. 또한, 하이에나처럼 질 좋은 시체를 잘 뜯어 먹을 수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유지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았으리라.

‘진실 감별(B)을 통해 랴오륭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라면 분명 진실 감별(B)을 넘어서는 스킬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당장, 조금 전의 대화만 보더라도 그랬다.

수인족의 왕이 제 사랑에 답을 주지 않아 죽였다는 이야기, 그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49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험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

정말 그 모든 이야기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랴오륭이 말재주가 뛰어난 자인 것은 분명했다.

‘정 안 되면 죽여서 망자의 아우성(B)을 사용해 보자.’

물론 그렇게 할 가능성은 적었다. 여러모로 리스크가 큰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야, 오광 중 한 곳인 혈맹을 이끄는 맹주이지 않은가?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려도 상관없긴 하지마는 유리한은 괜한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부디 랴오륭이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기를 바라며 건물을 나섰다.

“오, 저 기다리고 있었어요?”

건물을 나오자마자 백여 명 남짓한 플레이어가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가벼운 물음에 침입자들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녀석이 하나 남은 마을로 안내해 준다고 합니다! 당장 무너뜨리러 가죠!”

“함께 탑을 올라가게 돼서 영광입니다, 유리한 님!”

곳곳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었다.

“네, 저도 영광이에요. 그래서 침입자는 여러분이 끝인가요?”

“네, 끝입니다. 사실, 저희 모두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죠.”

플레이어들은 숟가락만 얹게 돼서 미안하다느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하며 웃어댔다.

유리한은 미안해할 필요 없다며 그들을 향해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런데 저분들은 뭔가요?”

유리한이 가리킨 사람들은 수인족들이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자신들을 향하자 수인족들이 고개를 숙이며 벌벌 떨었다.

그들과 달리 침입자인 플레이어들은 킬킬거렸다.

“인질입니다. 일종의 방패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방패……?”

“네, 태초의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녀석이 꽤 성가신 놈이거든요.”

“그런데 또 보기보다 마음은 약해서 말입니다. 아마 수인족을 인질로 잡고 내세우면 순순히 마을을 내놓을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수인족들은 그녀가 보이는 미소에 벌벌 떨었다. 유리한은 그들에게 한 번 시선을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죠, 마을은 누가 안내해 준다고요?”

“저기, 저 녀석이 안내해 줄 겁니다.”

플레이어가 가리킨 사람은 레오 알버스였다. 유리한이 그를 보고는 싱긋 웃었다.

“잘 부탁해요.”

레오 알버스는 희게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인 거지?’

분명, 조금 전에 서문기율에게 제 처분을 맡겼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침입자라고 나타나다니.

‘불안하군.’

어쨌거나 레오 알버스는 침입자인 플레이어들에게 태초의 마을을 안내해 줘야했다.

그는 유리한을 흘긋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태초의 마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 *

“곧 침입자들이 올 겁니다.”

서문기율은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을 불러놓고 그리 말했다.

여명이 막 찾아온 이른 아침.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그 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유리한은 해가 뜰 때까지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유리한 씨는 침입자로서 마을을 떠났습니다. 곧 다시 돌아오겠지요.”

수인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유일한 마을, 바로 이곳 태초의 마을을 공격할 테니 말이다.

‘유리…….’

디에스 라고의 두 눈이 한없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디에스 씨.”

디에스 라고가 왜 부르냐는 듯이 고요한을 쳐다봤다. 고요한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유리한 씨와 싸울 생각인가요?”

“유리가 나와 싸우려고 들면 나 역시 그래야겠지.”

고요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는 싸우고 싶지 않아요.”

유리한과 같은 편이 된다면 몰라도 말이다. 음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디에스 라고가 비웃음을 흘렸다.

“웃기는 소리를 다 하는군. 너한테 유리와 싸우라고 하지 않는다. 네가 유리의 상대가 될 리도 없거니와…….”

그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유리가 너와 싸우려고 할 리도 없으니.”

그러니까 괜한 걱정하지 말라면서 덧붙였다.

“그렇지만 유리와 함께 움직일 침입자 녀석들과 싸울 각오는 하는 게 좋을 거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고요한이 싱긋 웃고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쥐었다. 디에스 라고, 그한테서 배운 검술을 마음껏 뽐내보겠다는 의미였다.

자신만만한 모습에 디에스 라고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얻어맞지나 말아라.”

“디에스 씨야말로요.”

“웃기는군. 내가 누구한테 얻어맞을 것 같다고 그러는 거지?”

“유리한 씨한테요.”

디에스 라고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문득 저 역시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봐주는 법이 없는데.’

그녀가 저와 싸우려고 들면 온 힘을 다해서 맞붙어야 할 것이다.

디에스 라고가 그런 시답잖은 걱정을 할 때였다.

“다들 준비하십시오.”

마을의 입구에 서 있던 서문기율이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지시했다.

스르륵, 마을을 보호하고 있던 수호진이 걷히는 것이 보였다. 서문기율이 검을 꼭 끌어 쥐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적들이 옵니다.”

적.

디에스 라고는 그 단어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제가 유리한과 적이 되다니.

‘부디 유리한테 다른 뜻이 있기를 바라야겠군.’

그렇지 않다면…….

‘검 하나 쥘 줄 모르는 녀석들을 사냥하는 취미는 없으니.’

디에스 라고가 황급히 몸을 피하고 있는 수인족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수호진이 걷히자 침입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디에스 라고기 긴 다리를 쭉쭉 뻗어 서문기율의 옆에 섰다.

“유리.”

“안녕, 디에스.”

유리한이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니르로르, 너도 디에스한테 인사 좀 해.”

- 어두침침한 인간한테 할 인사 따윈 없도다.

그건 디에스 라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니르로르의 말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유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군.”

“무슨 생각일 것 같아?”

“글쎄.”

디에스 라고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한 건, 네가 재미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에도, 이 탑을 오를 때에도 유리한은 항상 그랬었다.

“혈맹의 맹주를 처리하기 위해 침입자가 되기로 한 건가?”

“그건 내가 수호자를 선택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렇다면 왜 침입자가 되기를 선택한 거지?”

“너랑 한번 싸우고 싶어서?”

유리한이 웃음기 섞인 말을 내뱉고는 곧장 땅을 박찼다.

채앵―!

날 선 것들이 서로 맞부딪쳤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디에스, 진심으로 나를 상대해야 할 거야.”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임과 동시에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큭……!”

유리한이 가지고 있는 스킬, 오감 지배자(A)에 의해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리!”

“이제 나랑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들었어?”

퍼억!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복부를 걷어차고는 방긋 웃었다.

“디에스 씨!”

서문기율이 장작더미에 처박힌 디에스 라고를 다급하게 불렀다.

“디에스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요?”

후웅, 허공을 가르는 공격에 서문기율이 황급히 고개 숙였다.

“유리한 씨……!”

“그렇게 부르지 말고 쥔 검을 휘두르기나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이 다칠 거예요.”

물론, 그걸 휘두른다고 해도 제가 다칠 일은 별로 없겠지만요.

유리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뒷말을 덧붙이고는 서문기율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정말이지 즐거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서문기율은 오직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진작 팔다리 중 하나가 날아갔을 것이다.

유리한 뒤에 서 있던 침입자들이 환호했다.

서문기율은 그들한테 있어서는 한없이 꼴 보기 싫은 존재였던 탓이다.

“그냥 죽여요, 유리한 님!”

“죽여버리세요!”

“하하하! 혼자서 정의로운 척 다 하더니 꼴좋다, 서문기율!”

서문기율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와 달리 유리한은 미소를 그린 낯이었다.

“기율 씨!”

“라펠, 프엉! 오지 마십시오!”

가까스로 유리한의 공격을 피한 서문기율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외침에 라펠과 프엉이 제자리에 멈췄다.

유리한은 그런 그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촤아악―!

흙바닥에 금이 그어지자 라펠과 프엉이 흠칫 놀라 주춤거렸다. 유리한이 그들을 향해 씨익 웃었다.

“서문기율 씨 말대로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 말에 라펠이 분하다는 표정을 짓자 프엉이 말렸다.

그리고.

“유리한 씨.”

고요한이 유리한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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