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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06)화 (106/235)

106화 

* * *

먹구름이 가득한 서울의 하늘.

어린아이 하나가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다가 두 눈을 반짝였다.

“삼초온! 눈! 눈이에요!”

“그래, 눈이네. 지긋지긋한 겨울 같으니라고.”

“겨울이 왜 지긋지긋해요?”

아이의 질문에 남자가 몸을 움찔거렸다.

‘큰일 났다.’

눈앞의 아이는 끝도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호기심 왕성한 열 살이었다.

크흠, 남자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시우야, 눈이 쌓이면 어떻지?”

“눈사람을 만들 수 있어요! 눈싸움도 할 수 있고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눈이 녹고 나면?”

“우움…….”

곧, 아이가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러운 게 신발에 잔뜩 묻어요! 거리도 더럽고요!”

“그래, 그래서 겨울이 지긋지긋하다는 거야.”

“하지만 시우는 겨울이 좋아요!”

“시우가 겨울이 좋은 만큼 삼촌은 겨울이 싫어요.”

그 말에 유시우가 두 뺨을 불퉁하게 부풀렸다. 눈앞의 남자, 도웅은 어색하게 웃었다.

“자, 어쨌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눈싸움하고 싶은데! 눈사람도 만들고 싶어요!”

“그건 눈이 쌓인 다음에 하자, 알겠지?”

“네에!”

그렇게 도웅이 유시우의 손을 잡고 행복 머니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누구십니까?”

웬 수 명의 사람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나같이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도웅은 유시우를 제 뒤로 숨기며 두 눈을 부라렸다.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제 말 안 들립니까?”

“잘 들립니다.”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여자가 싱긋 웃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희는 센터 소속의 플레이어들입니다. 협회장님의 명령으로 유시우 군을 데리러 왔습니다.”

도웅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센터 소속의 플레이어들이라니!

‘시우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하지만 놀람도 잠시, 도웅은 제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유시우라니,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에 여자가 도웅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유지한 님의 아드님이자 유리한 님의 조카분이신 유시우 군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여자가 눈웃음을 짓고는 짝, 가볍게 손뼉을 쳤다.

“남자는 처리하고 꼬마는 상처 없이 데리고 오도록.”

“네.”

여자의 뒤에 서 있던 여럿의 무리가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도웅은 황급히 소리 질렀다.

“시우야, 도망쳐!”

유시우한테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텔레포트 스크롤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삼촌!”

“시우야!”

상대 중 한 명이 유시우를 낚아채는 것이 더 빨랐다. 도웅이 플레이어 하나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외쳤다.

“당신들! 그 아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딴 짓을 저지르는 거야?!”

“알고 말고요. 유지한 님의 아드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유리한 님의 조카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딴 짓을 잘도……!”

“두 분은 지금 안 계시니 말입니다.”

도웅을 공격하라고 명했던 여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동안 유시우 군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유서아 양도 데리러 오도록 하죠.”

그럼, 이만.

나지막하게 덧붙인 뒤 여자는 유시우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시우야! 유시우!!”

도웅이 황급히 그 뒤를 쫓으려고 했지만.

“허억……!”

기다란 창에 어깻죽지가 뚫리면서 그러지 못하게 됐다.

도웅의 어깨를 찌른 창이 빠져나가고 곧 날카롭게 벼린 검이 그를 베어냈다.

쿨럭, 피를 토한 도웅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시…우야…….”

여기서 이렇게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도웅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센터 소속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어차피 저와 똑같이 탑을 오르는 것을 도중에 포기한 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뭐……?”

도웅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었다. 제 어깻죽지를 찌른 남자가 창을 들고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탑의 50층을 뛰어넘은 플레이어들이랍니다.”

도웅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핏물이 번지고 있는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그런데, 왜.”

“협회장님의 아래에서 일하고 있느냐고요?”

센터의 협회장은 탑을 오르지 않은 플레이어였다. 더욱이 옛 시대의 인물.

50층을 뛰어넘은 요즘 플레이어들보다 스탯 능력치가 낮을 게 분명했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저희 모두 협회장님께서 키운 놈들이라서 말입니다.”

그러니 플레이어 협회장, 주아라의 말은 자신들에게 법이나 다름없다며 남자는 말했다.

“그럼, 한숨 푹 주무십시오. 일어나면 모든 상황이 끝나 있을 테니.”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

도웅은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짝, 짜악―!

싸움의 여파로 아수라장이 된 공원에서 살갗을 올려붙이는 찰진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도웅!”

유리한은 정신을 잃은 남자를 애타게 불러댔다.

“도웅, 일어나!!”

“허억!”

유리한이 몇 번이고 뺨을 때린 끝에 그가 정신을 차렸다.

도웅이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 그는 익숙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 유리한 님?”

그러자 유리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웅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정말 유리한 님입니까? 정말, 정말 유리한 님이란 말입니까?”

“아직 정신을 못 차리셨나 봐요? 한 대 더 맞으시면 정신을 차리시려나?”

유리한이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에 도웅이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정신 차렸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유리한은 스륵 손을 내렸다. 도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존댓말을.”

“불만이면 반말로 하고.”

“아, 아닙니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럼, 존댓말로 계속할게요. 제가 원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거든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모두 죽었나 보다.

도웅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저… 뒤에 있는 분들은……?”

“아, 제 동료들이에요. 함께 탑을 오르고 있죠. 이쪽은 디에스. 디에스 라고예요.”

“디에스 라고?”

도웅이 멍하니 그 이름을 읊조렸다.

‘디에스 라고라면… 미국의 영웅이지 않은가……?’

그것도 30여 년 전, 탑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실종된 영웅의 이름이었다.

도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말 디에스 라고 님이란 말입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없고 말고요! 문제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황급히 외치는 목소리에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디에스 라고 옆에 서 있는 고요한을 소개해 줬다.

“이쪽은 요한, 고요한이라고 해요. 탑의 주민과 플레이어 사이에 태어났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넵.”

도웅이 떨떠름하게 인사했다.

고요한, 그의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뭐지? 도대체 어디서 봤지?’

도웅이 미간을 좁히고는 고요한을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그자의 이름을 뱉어냈다.

“요한 리스체가스?”

“아.”

고요한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탑을 오른 적이 있는 분이신가 봐요?”

“네? 네, 맞습니다. 그럼, 당신은 정말…….”

“네, 9층에서 플레이어분들을 치료해 드렸던 요한 리스체가스예요. 지금은 ‘고요한’이고요.”

“아아, 그럼 좀 전의 제 상처도 요한 님께서 치료해 주신 겁니까?”

“네, 부상이 무척 심하셨는데 별 탈 없이 나아서 다행이에요.”

고요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도웅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다가 고요한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니르로르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유리한 님,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물어보세요. 저도 도웅 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그럼, 여쭤보겠습니다. 실례지만 요한 님의 머리 위에 있는 저건 뭡니까?”

- 저거라니, 무례하구나.

“허업!”

도웅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도마뱀이 말을 해?!’

그때, 유리한이 고요한의 머리 위에 있던 니르로르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냥 별 볼 일 없는 파충류라고 생각하세요.”

“파충류요?”

“네, 날개 달린 파충류요.”

- 유리한아, 그게 무슨 소리냐! 짐은 위대한 죽음… 읍!

유리한이 황급히 니르로르의 입을 틀어막았다.

“…죽음이요?”

“헛소리예요.”

유리한이 방긋 웃고는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도웅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유리한이 건넬 질문이 무엇일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도웅 씨, 도대체 누구와 싸우신 거예요?”

도움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해 주기로 했다.

“…센터 소속의 플레이어들과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리한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하지만 도웅은 그 표정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흑요석과도 같은 검은 두 눈이 제 속마음을 훤히 읽고 있는 듯 보였다.

어서, 답을 내놓으란 듯이.

그렇기에 도웅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시우를 두고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분명, 수풀이 우거져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흙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건 휑한 공터였다.

유리한의 주먹질 한 번에 빈 공터가 만들어졌다. 그 힘에 도웅은 희게 질린 얼굴로 유리한을 쳐다봤다.

유리한은 겁에 질린 그를 한없이 차갑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시우가 여기 없다는 건, 그 새끼들한테 빼앗겼다는 말이겠죠?”

도웅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네.”

내뱉은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도웅의 대답을 들은 유리한은 곧장 걸음을 옮겼다.

“유리한 님!”

도웅이 그 바지 자락을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우를 지키고 싶었는데, 일부러 빼앗긴 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야죠.”

유리한이 순식간에 도웅의 앞에 당도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짓고는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일부러 빼앗긴 거면, 아니, 그 자식들한테 넘겨준 거면 저한테 이미 죽었을 거예요.”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도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반응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리한은 웃는 낯으로 도웅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주고는 말했다.

“도웅 씨는 행복 머니로 돌아가 계세요.”

“아, 아닙니다! 저도 함께 시우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니요.”

유리한이 표정을 굳히고는 도웅에게 명령했다.

“행복 머니로 돌아가 계세요.”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도웅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네, 유리한 님.”

유리한은 말없이 한없이 초라한 남자의 모습을 두 눈에 한 번 담고는 걸음을 옮겼다.

디에스 라고가 그녀의 뒤를 급하게 따라잡으며 물었다.

“유리, 센터라고 하면.”

“주아라, 기억하지? 그 자식이 협회장으로 있는 곳이야.”

유리한이 입매를 비틀었다.

“아무래도 내 경고가 약했나 봐. 감히 겁도 없이 시우를 건드려?”

유리한이 이를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야말로 죽여버리겠어.”

진심 어린 목소리.

그녀는 핏줄이 설 만큼 두 손을 꽉 주먹 쥐며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주아라.

과거의 옛 인연을 죽여버리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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