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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08)화 (108/235)

108화 

* * *

30여 년 전, 튜토리얼이 한창 치러지던 시기. 세상은 한없이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살아남으면 누군가는 꼭 죽었다. 유리한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건…….

“나는 있잖아, 유리한. 네가 참 부러워.”

주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주아라는 강한 자들 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살아남는 방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주아라는 그것을 치욕스럽게 여겼다.

‘나도 내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러고 싶은데.’

하지만 제가 나서기도 전에 동료들은 적들을 해치웠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그것이 못내 부러운 한편, 얄미웠다. 제게 활약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어쨌거나 주아라의 말에 유리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강하잖아.”

“아라, 너도 강하잖아.”

“아니야…….”

강자들의 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고 해도 주아라 역시 플레이어였다.

그것도 A급 스킬을 다수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비록, S급 스킬은 없다고 하더라도 주아라 역시 강한 축에 속했다.

다만, 그녀의 주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한없이 강하다는 게 문제였다.

당장 그녀 곁에서 검을 닦고 있는 유리한이 그랬다.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던가?

‘부러워.’

주아라는 문득 치미는 감정을 숨기고는 입을 열었다.

“유리한, 나는 약해.”

음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보다도, 디에스 라고보다도. 그리고 멀린 아서보다도 약해.”

힘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유리한이 유쾌하게 웃었다.

“약하면 뭐 어때? 우리가 곁에 있잖아? 아라, 너는 싸울 필요 없어. 우리가 다 해치울 테니까!”

그게 싫어.

그 말을, 주아라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저 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응, 그렇지.”

추악한 열등감이 제 속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그때의 주아라는 알지 못했다.

그 감정을 알아차린 것은 유리한이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

“아라 누나, 오랜만이에요.”

유리한의 동생, 유지한이 저를 찾아왔을 때였다.

* * *

‘그래, 그랬었지.’

폐허나 다름없는 실험실, 그곳의 낡은 의자에 앉아있던 주아라는 과거를 회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유지한,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유리한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그녀와 무척 닮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외모뿐이면 몰라, 닮지 말아야 할 것도 닮았었지.’

무한의 마력.

그것이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추악한 열등감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어쨌거나 지난 일이다.’

유지한은 죽었고, 그의 죽음에 얽혀있는 진실을 유리한은 절대 알아내지 못하리라.

주아라가 그렇게 과거에 잠겨있을 때였다.

“협회장님, 녀석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꼬마 녀석은?”

“사지 멀쩡하게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좋아, 곧장 실험을 진행하도록 하지.”

“네.”

끼익, 낡은 의자가 불쾌한 소음을 냈다. 주아라는 곧장 유시우의 실험이 진행될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다다른 곳에서 그녀가 마주한 광경은 색다른 것이었다.

“끄윽… 으……!”

“이, 이게 무슨!”

“도… 도망치십시오, 협회장님……! 커흑……!”

여자가 피를 쿨럭 토해내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주아라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으니.

“안녕, 주아라.”

유리한이었다.

그녀를 알아본 주아라가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유리한……?”

주아라의 두 눈이 빠질 듯 동그랗게 떠졌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고?”

유리한이 주아라의 말을 매섭게 끊고는 도리어 물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주아라가 꿀꺽 침을 삼켰다. 유리한의 옆으로, 디에스 라고가 지쳐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아라는 단번에 아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유시우!’

도대체 언제 꼬리가 잡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유리한이 어떻게 탑 밖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탑을 오르는 걸 포기한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답은 하나뿐.

주아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벌써… 50층을 공략하고 나온 건가?”

“정답.”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최대한 빠르게 탑을 올라가길 정말 잘했다니까?”

한껏 끌어 올려진 입꼬리가 비딱하게 비틀렸다.

“내 경고를 알아먹지 못하고 감히 시우를 건드려?”

쏴아아―!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인데 찬 바람이 불어왔다. 주아라는 오싹하게 이는 소름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유리한, 나는.”

“그 입 닥쳐.”

으득, 유리한은 이를 갈며 창을 꺼내 쥐었다.

“네 시답잖은 변명, 들어줄 생각 따위 없으니까.”

주아라의 곁에 있던 경호실장이 당장에라도 유리한을 향해 뛰어들 듯 굴었다.

그에 유리한이 피식 웃었다.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걸?”

“협회장님을 위협하는 인간을 처치하는 게 제 의무입니다.”

“그것참 안타깝네.”

유리한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기 무섭게 경호실장이 비틀거렸다.

모든 감각을 유리한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나 그는 기감을 느낄 수 있는 자였다.

경호실장이 가까스로 유리한을 쫓으며 외쳤다.

“협회장님, 도망치십시오! 저자는 괴물입니다!”

“시끄럽네.”

유리한이 가볍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경호실장의 앞에 순식간에 당도해 그의 목을 쳐 단숨에 기절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깔끔하면서도 간결한 행동이었다.

홀로 남게 된 주아라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유리한……! 나를 죽이면 후회할 거다……!”

“안 해, 후회.”

오히려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겠지.

유리한은 그대로 주아라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유지한!”

빼액 내지르는 목소리만 아니었더라면 유리한은 주아라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 거다.

주아라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외쳤다.

“유지한이 먼저 나를 찾아왔어! 자신을 이용해 너를 살려내 달라면서!”

“뭐……?”

“내 탓이 아니야! 유지한, 그래. 네 동생이 스스로 내게 찾아온 거라고!”

“그게, 무슨.”

“그러니까 나는 유지한이 원하는 바를 들어준 것뿐이야!”

유리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주아라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선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 잘못은 없으니까 용서해 달라고?”

유리한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웃기지 마.”

그리고 소리 질렀다.

“지한이가 나를 살리기 위해 너를 찾아왔다고 해도 말렸어야지! 애가 그러지 못하게! 괜한 짓을 하지 못하게!”

분노 어린 목소리가 폐허나 다름없는 지하를 울렸다.

“말렸어야지, 주아라!”

“나도 말리고 싶었어!”

주아라가 울분에 차 외쳤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사람?”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지한이의 죽음에, 오광만 있는 게 아닌가 봐?”

주아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시, 실언이야! 잘못 말한 거야!”

“그래?”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할게.”

촤아악―!

휘둘러진 창이 주아라를 횡으로 베어버렸다. 희고 고운 뺨에 붉은 피가 튀었으나 유리한의 두 눈은 한없이 고요했다.

그녀는 그저 진실을 좇았다.

[시전자의 정신력이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망자의 기억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유리한의 정신력은 100을 넘은 지 오래.

‘주아라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도대체 뭐기에.’

유리한이 비딱하게 말했다.

“상관없어, 실행.”

* * *

유리한의 희생으로 찾아온 평화.

주아라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재건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디에스 라고는 유리한의 죽음과 함께 종적을 감췄고, 대마법사인 멀린 아서는 진작 죽음의 드래곤에게 잡아먹힌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주아라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강자에게 빌붙어 살아남은 플레이어, 그것이 그녀의 별명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아라 역시 ‘영웅’이었다.

영웅이란 허울뿐인 이름에도 주아라는 크게 만족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알았다.

진정한 영웅은 자신이 아님을.

“유리한 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 희생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른 분이라면 누구? 멀린 아서 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고, 설마 디에스 라고 님?”

“왜, 있잖아. 주아라 님.”

저를 욕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아라는 이를 아득 물었다.

자신의 힘이 유리한에게 크게 못 미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노력했다.

사람들이 ‘유리한’이 아닌 자신을 떠올리게끔 하기 위해. 하지만 그럴수록 주아라는 더욱 지쳐갔고, 그녀 안의 추악한 열등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유지한은 그때 나타났다.

“아라 누나, 오랜만이에요.”

“너는… 지한이?”

“네, 유지한이에요.”

주아라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유지한 역시 유리한의 죽음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었다.

“너, 네가 어떻게!”

“하하, 오랜만이에요.”

아이는 못 본 사이에 훌쩍 자라 있었다.

“디에스 형이랑은 연락해요?”

“아니.”

애초에 주아라는 디에스 라고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었다. 유지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디에스 형은 탑에 들어갔어요.”

“소망의 탑에?”

“네, 누나를 살리려고요.”

주아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를 살린다고? 유리한?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네,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아이가 싱긋 웃었다.

“디에스 형은 소망의 탑,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누나를 살릴 거예요. 그리고 저도 힘을 보탤 거고요.”

“네가 어떻게 힘을 보탠다고!”

아니, 애초에 소망의 탑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최상층을 공략한 사람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줄 거라고 했으니.’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닐 거다.

하지만.

‘안 돼.’

유리한이 다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거라니!

‘내가 어떻게 재건한 세계인데! 내가 어떻게 유리한의 이름을 지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녀가 다시 돌아온다고?

‘싫어.’

싫다는 그 단어가 주아라의 머릿속을 빈틈없이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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