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별일은 아니에요. 다만, 소문을 좀 퍼트려 줬으면 해서요.”
“소문이요?”
“네.”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내었다.
행복 머니의 직원들은 유리한이 내뱉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네에? 협회장님이요?!”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리한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요.”
“네? 네, 알겠습니다…….”
행복 머니의 직원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 니르로르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제집 드나들 듯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백상철은 기가 찼지만, 그들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부하 직원 중 한 명이 백상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어쩌죠?”
“어쩌기는.”
백상철이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유리한 님께서 부탁하신 일이잖아. 못 해도 해야지. 도웅, 너는 올라가서 유리한 님과 동료분들의 편의를 좀 봐 드려라.”
“그래도 됩니까?”
“암, 그래도 되지. 그리고 다친 녀석이 함부로 움직이는 거 아니다. 안에 들어가서 그분들 수발 좀 들면서 쉬어.”
그 말에 도웅이 고개를 저었다.
“유리한 님의 동료분께서 치료를 해주셔서 상처는 모두 다 나았습니다.”
“…어허. 말에 토 달지 말고 들어가서 쉬기나 해. 안에 철만이 녀석 있으니까 상황 좀 설명해 주고.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는 애들이랑 잠시 다녀오마.”
백상철은 그 말을 남겨두고 다른 부하 직원들과 함께 홱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버렸다.
도웅은 그들이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으허허헝! 유리한 님! 도웅, 그놈 죽였다거나 하지는 않으셨죠? 시우 못 지켰다고 그랬으면 안 됩니다!”
“안 죽였으니까 이것 놓기나 해요! 눈물, 콧물도 닦고요!”
위에서는 백상철의 오른팔인 우철만이 유리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었다.
“삼촌, 더러워요!”
“아이고, 시우야! 무사해서 다행이다! 흐어어엉!”
우철만이 유시우를 품에 꼭 끌어안고는 울어댔다.
“우철만 씨, 시우한테서 떨어져요! 애한테 눈물, 콧물 다 묻잖아요! 시우야, 지지야. 지지!”
유리한이 제 조카를 떼어냈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인 상황.
도웅은 픽 웃고는 올라갔다.
* * *
〈탑갤러리_자유 게시판〉
- [님들, 소식 들었음?]
센터 협회장님께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연쇄 실종 사건의 주범이라던데;
[익명_A] : ㅇㅇ들었음;
└[익명_B] : 22 그리고 듣기로는 실종된 사람들 모두 외국으로 팔려나갔다던데;;
└[(작성자)] : 인신매매란 거지?
└[익명_B] : ㅇㅇ
└[(작성자)] : 협회장님,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ㅠㅠ 사실은 무서운 사람이었누ㅠㅠㅠ
└[익명_B] : ㅋㅋㅋ사실은 뒷세계의 흑막이었던 것임ㅋㅋㅋ
└[익명_C] : 센터 쪽에서 유언비어 퍼트리면 고소한다던데 못 들음? 중립 기어나 박으셈ㅋㅋ
└[익명_D] : 중립 기어는 무슨 중립 기어ㅋㅋㅋ 이미 곳곳에서 증거 자료 나오고 있는데ㅋㅋㅋ;;
└[익명_A] : 조만간 뉴스 속보에 얼굴 나올 듯ㅎㅎ
└[(작성자)] : 오; 나온다;;
└[익명_B] : ㄹㅇ?
└[익명_D] : 보러 간다ㄱㄱ!!
[익명_D] : 헐; 우리 센터장님 혼자 해 먹으신 게 많으신가 본데?
유리한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아나운서는 센터의 협회장인 주아라의 실종 소식과 더불어 그녀가 자행해 오던 온갖 악행에 관해 나열하는 중이었다.
- …이상, 오늘의 뉴스의 신시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 곧바로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센터의 주아라 협회장과 관련된 여러 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유리한과 함께 TV를 보고 있던 디에스 라고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들이 네 부탁을 잘 들어줬나 보군.”
“그런 것 같네.”
유리한이 제 무릎을 베고 잠든 유시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면서 웃었다.
“역시, 일 하나는 정말 잘 처리한다니까?”
믿고 맡기기를 잘했다면서 유리한이 키득거렸다. 그 웃음소리에 유시우가 잠에서 깨어났다.
“우웅, 고모.”
“응, 시우야. 일어났어?”
유리한이 TV를 꺼버리고는 잠에서 막 깨어나 비몽사몽인 조카를 안아 들었다.
“악몽이라도 꾼 거야? 조금 더 자지, 왜 일어났어?”
“고모가 웃어서 일어났어.”
“아이고, 고모가 미안해.”
유시우는 괜찮다면서 방긋 웃었다.
“그런데 고모, 요한이 형아랑 잘생긴 아저씨는?”
“요한이 형은 삼촌들 요리 도와주러 갔고, 잘생긴 아저씨는 시우 앞에 있잖아.”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를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난데없이 칭찬을 받은 그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아저씨 말고! 잘생긴 아저씨 있잖아! 엄청 빨간 눈을 가진 아저씨!”
“…니르로르?”
“응! 그 아저씨!”
유리한이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입을 벌렸다. 디에스 라고 역시 충격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유리한은 그런 그를 흘긋 쳐다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아저씨는 지금…….”
자신이 멸망시키려고 했던 세상을 구경하러 갔는데.
유리한이 치밀어 오르는 말을 겨우 집어삼키고는 말했다.
“산책 갔어!”
“산책?”
“응, 답답하다면서 산책 갔어.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런데 시우야, 앞에 있는 아저씨도 잘생기지 않았어?”
“아니야!”
아이의 순수한 대답은 디에스 라고에게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저, 정말?”
“응! 저 아저씨는 못생겼어!”
“못생겼다니……!”
유리한이 쩌억 얼어붙은 디에스 라고를 보고는 황급히 말했다.
“그래도 시우야! 저 아저씨 잘생기지 않았어? 고모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유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움, 자세히 보니 잘생긴 것 같기도.”
“그치?”
“응! 하지만 그 아저씨가 더 잘생겼어!”
디에스 라고는 조용히 생각했다.
‘지한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것 같다고 했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하지만, 유시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인가 보다.
디에스 라고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에스?”
“잠깐 나갔다가 오지.”
유리한이 품에서 아이를 내려놓고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시우 이야기에 상처받아서 나가는 거 아니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있었지만, 디에스 라고는 애써 유리한의 이야기를 부정했다.
“나 역시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고 싶어서 잠깐 나가는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렇다면야…….”
유리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배웅하면서 말했다.
“곧 저녁 준비 다 될 테니까 금방 돌아와. 알겠지?”
디에스 라고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유리한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닫힌 문을 쳐다봤다.
‘충격 많이 받았겠지?’
살아생전,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디에스 라고였다. 그의 외모는 유리한도 인정할 정도.
‘그런데 애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말았으니.’
아닌 척해도 분명 충격적이었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산책을 나간답시고 자리를 피해버리다니.
유리한이 피식 웃었다.
‘시우보다 더 애 같다니까?’
유리한은 키득거렸다. 그때, 저를 찾는 고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한 씨, 우철만 씨랑 도웅 씨가 후식으로는 뭘 드시고 싶냐는데요?”
“아무거나요!”
유리한이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대답을 내놓고는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 * *
유리한이 유시우를 허벅지 위에 앉히고 TV를 틀었을 때, 디에스 라고는 한 병원이 내다보이는 어두컴컴한 골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참 좋은 병원]
바로 저곳에 유리한의 또 다른 조카인 유서아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보러 갈 거라고 했었지?’
유리한은 당장에라도 유서아를 찾아가고픈 눈치였으나 유시우를 위해 참는 눈치였다.
‘시우가 많이 놀랐으니까 천천히 애를 좀 다독이고, 서아를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유리한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디에스 라고는 병원을 빤히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병원의 가장 최상층, 유서아가 입원해 있는 병실이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병실에 침입해 간이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곧, 디에스 라고가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병실을 찾아왔다.
“유리의 경고가 먹히지 않았나 보군.”
“헉……!”
남자가 디에스 라고를 보고는 헛숨을 들이마셨다.
“다, 당신은!”
“디에스 라고다. 그때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 말이지.”
디에스 라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에 찾아든 손님을 반겼다.
“주아라와 함께 죽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군.”
남자의 정체는 주아라의 곁을 지키던 경호실장이었다.
경호실장이 말없이 디에스 라고를 쳐다봤다. 경계심 어린 그 눈빛에 디에스 라고가 픽 웃었다.
“지금에라도 조용히 물러가면 못 본 것으로 쳐주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경호실장이 양손을 주먹 쥐며 자세를 취했다.
“저는 협회장님의 염원을 꼭 이뤄드릴 겁니다.”
“그 협회장님께서는 유리의 손에 죽었을 텐데?”
경호실장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 입 닥치십시오!”
그는 걸음을 박차며 디에스 라고에게 달려들었다.
“웃기는 자식이군.”
디에스 라고가 웃음을 흘리고는 단숨에 경호실장을 제압했다.
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경호실장이 앓는 목소리를 냈다. 디에스 라고는 그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잡으며 입을 열었다.
“협회장의 염원이란 게 유리의 조카를 죽이는 거였나? 아니었을 텐데?”
“크흑!”
“아님, 그냥 유리에게 절망을 맛보여 주고 싶은 건가?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군.”
디에스 라고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유리를 죽일 힘은 없으니까.”
“그 입……!”
닥치라는 말을, 경호실장은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네 입부터 닥치게 만들어야겠군.”
디에스 라고가 그의 입을 틀어쥐고는 손에 힘을 줬기 때문이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이윽고 병실을 채운 건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디에스 라고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머리 위로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유리를 슬프게 하려는 녀석들은 용서치 않아.”
그 상대가 누구더라도.
디에스 라고는 그대로 경호실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