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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17)화 (117/235)

117화 

다섯 번째 문을 열자마자 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유리한은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후우.”

그저, 작게 숨을 내쉰 후 무기를 꺼내 쥐었을 뿐이다.

- 크르르르!

- 키에엑!

수십, 수백의 몬스터들이 유리한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유리한은 어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쿠아리움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우한테 수중 몬스터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진짜 좋았을 텐데.”

- 아쿠아리움이 무엇이냐?

어느새 드래곤의 모습을 취한 니르로르가 흥미 어린 눈으로 유리한에게 물었다.

“너는 몰라도 되는 곳이야.”

니르로르가 뚱한 얼굴을 보였다.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몬스터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 아니.

타앗!

박차 올랐다.

물속이라 움직이는 것이 쉬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호흡하기가 편해 괜찮았다.

휘익, 탁!

유리한은 창을 가볍게 휘두르며 몬스터의 몸통을 꿰뚫었다.

곧, 맑기 그지없던 물이 몬스터들이 흘린 피로 탁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유리한은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물속인데도 냄새가 나지? 역해 죽겠네.”

- 나가고 싶다, 유리한아.

“나도 나가고 싶으니까 조금만 참아.”

유리한이 휘두른 창을 어깨에 얹고는 씨익 웃었다.

“저 전기뱀장어만 처치하고 바로 나갈 거니까.”

파지직―!

머리 위에 달린 두 개의 더듬이에서 푸른 전기가 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리한이 다섯 번째 문의 보스 몬스터를 보며 한껏 웃었다.

지난 도전에서는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그대로 감전사 당할 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유리한은 전(電) 속성 저항 아이템을 온몸에 착용하고는 뱀장어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내딛던 움직임이 이내 빨라졌다.

유리한의 온몸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유리한 씨, 늦으시네요.”

“곧 돌아올 테니 자지 그래?”

“유리한 씨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디에스 라고가 읽던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유리는 너한테 맡겨두고 나는 먼저 자러 가지.”

거짓말.

고요한은 그 말이 단번에 거짓임을 알아차렸다.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자러 간다고?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고요한은 눈치껏 인사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디에스 라고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제 방으로 향했다. 달칵, 문을 닫자마자 그는 창을 열었다.

고요한의 생각대로 잠을 청하겠다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행복 머니의 옥상에서 유리한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창을 넘으려고 할 때.

“아저씨.”

웬 손님이 찾아왔다.

디에스 라고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문 쪽에서 저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시우?”

“아저씨?!”

“쉿!”

디에스 라고가 황급히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유시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스 라고는 창틀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다가갔다. 유시우가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아저씨, 창문은 문이 아니에요.”

아이의 눈에는 제가 창문을 문으로 착각해 나가려는 모양새로 보였나 보다.

자살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디에스 라고가 말했다.

“안다.”

“모르는 것 같은데에.”

디에스 라고는 말없이 유시우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왜 왔지?”

“잠이 안 와서요! 고모한테 책 읽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유리한은 방에 없었다. 유시우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디에스 라고는 픽 웃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고요한한테 해달라고 하지 그래? 잘도 ‘형’이라고 부르더니.”

“그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방에 들어가는 게 보여서요!”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건가 보군.”

“네!”

“책을 읽어달라고 말이지?”

“네에!”

유시우가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동화책 한 권을 디에스 라고에게 내밀었다.

읽어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참 뻔뻔하다 싶었다.

‘보면 볼수록 지한이를 꼭 닮았다니까.’

디에스 라고는 잠시 그리움에 잠긴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아저씨?”

“그래, 읽어주도록 하지.”

“우와!”

유시우가 활짝 웃고는 그의 침대 위에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디에스 라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내 침대에서 자려고?”

“아니요! 잠 오면 시우 방에 갈 거예요!”

잘도 말한다 싶었다.

디에스 라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아이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다. 아이는 디에스 라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크게 하품을 하고는 잠들어버렸다.

오늘 하루, 암만 일찍 잠들었다고 해도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지 않았었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침대에서 이렇게 세상모르고 잠이 들다니.’

겁이 없는 건지, 아님,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디에스 라고가 아이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디에스.”

“유리?”

드르륵, 창문이 열리며 유리한이 방에 들어왔다.

“창문은 문이 아니다만.”

“누가 그래?”

“시우가.”

디에스 라고가 살짝 몸을 틀어 유시우를 보여줬다.

“시우가 왜 네 방에 있어?”

“자다 깨서는 책을 읽어달라면서 찾아왔다.”

“아이고.”

유리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앓는 목소리를 내고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디에스 라고가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거실에서 고요한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왜 하필 제 방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거냐는 물음이었다. 유리한은 조심스레 조카를 안아 들면서 답했다.

“괜히 사람들 깨울까 봐 그랬지.”

“그렇군.”

그러고는 보이지 않는 니르로르의 모습에 그가 씨익 웃었다.

“빌어먹을 용을 드디어 버렸나 보군.”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야.”

디에스 라고가 대놓고 아쉽다는 얼굴을 보였다.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아쿠아리움 갔어.”

“…어디에 갔다고?”

“아쿠아리움에 갔다고.”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그녀는 날개 달린 파충류와 함께 성장의 문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 * *

유리한은 사투 끝에 다섯 번째 문을 공략했다.

쿠웅―!

전기뱀장어가, 아니. 고대의 포식자(Lv50)가 두 눈을 뒤집어 깐 채 산호초 위에 쓰러졌다.

유리한은 밭은 숨을 내쉬고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예쓰! 이겼다!”

전(電) 속성 저항 아이템을 모조리 쓸어 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니르로르는 좋다고 웃고 있는 유리한에게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 한낱 미물을 겨우 잡아내는 꼴이라니, 한심하도다.

“시끄러.”

유리한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때였다.

산호초 위에 쓰러져 있던 몬스터의 사체가 거품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나타난 건.

“오, 예쁘다.”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몬스터가 흘린 피로 탁하게 흐려졌던 물이 맑아졌다.

유리한은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보며 웃었다.

“진짜 아쿠아리움에 와있는 기분이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건 저뿐만이 아닌 듯했다.

“니르로르?”

유리한이 아무 말이 없는 용을 불렀다.

- 유리한아, 아쿠아리움이란 곳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냐?

“아마도? 왜?”

- 가고 싶도다.

내뱉은 목소리가 황홀함에 잠겨 있었다. 유리한은 멍하니 드래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 시우 일어나면 가보자.”

- 아니.

니르로르가 고개를 저었다.

- 짐은 지금 당장 가고 싶도다, 유리한아.

“뭐?”

유리한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니르로르는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 자유롭구나.

유리한에게 건넨 말이 아니었다. 그건, 제 앞에 펼쳐진 광경에 대한 소감이었다.

유리한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은 드래곤의 목덜미를 콱 잡고는 걸음을 돌렸다.

- 유리한아?! 이게 무슨 짓이냐!

그대로 성장의 문을 빠져나온 유리한이 입을 열었다.

“가자.”

니르로르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고 싶다며? 가자고.”

작은 용이 크게 뜬 두 눈을 끔뻑이다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리한은 픽 웃었다.

‘저렇게 티 없이 웃을 줄도 아는구나? 항상 재수 없게 비뚜름하게 웃어대는 꼴만 봤는데 말이지.’

어쨌든 그렇게 해서 유리한은 용과 함께 아쿠아리움에 도착하게 됐다.

일찍이 영업을 종료해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유리한은 니르로르와 함께 자유롭게 아쿠아리움을 구경했다.

그리고 대형 수조 앞에서 두 사람은 멈춰 섰다.

“니르로르, 그 모습은 뭐야?”

“아이의 눈으로 보면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얼씨구.”

유리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니르로르는 대형 수조 안에 있는 물고기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유리한의 허리까지 오는 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붉은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유리한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여기 더 있을 거야?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 하는데.”

생선 비린내가 온몸에서 아주 진동하는 기분이었다. 여간 찝찝한 게 아니라 유리한은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유리한의 물음에 니르로르가 말했다.

“더 있고 싶도다.”

“그럼 나 먼저 돌아간다?”

니르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여전히 어린 모습의 그를 흘긋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유리한은 홀로 행복 머니에 돌아오게 된 거였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용과 함께 아쿠아리움에 무단 침입해서 구경을 좀 하느라 이렇게 늦었다는 말이군.”

“뭐, 그렇지.”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에게 성장의 문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그냥 말해줄 걸 그랬나?’

디에스 라고의 기분이 조금, 아니, 꽤 많이 언짢아 보였다.

유리한은 뺨을 긁적이다가 잠든 조카를 다시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디에스 라고에게 팔짱을 꼈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다음에 같이 가자!”

그의 두 뺨이 붉게 물들였다. 다음에 같이 가자니? 설마, 저랑 단둘이?

“탑에 들어가기 전에, 시우랑 요한이랑 다 같이!”

그럼, 그렇지.

디에스 라고가 뒤에 붙은 이름들에 픽 웃었다.

“싫어?”

“그럴 리가.”

디에스 라고가 제게 팔짱을 끼고서 올려다보는 얼굴에 애틋하게 미소를 그렸다. 유리한은 그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그러나 다음 날.

“이 빌어먹을 용이! 너 미쳤어?!”

두 사람의 얼굴에 그려진 미소와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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