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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18)화 (118/235)

118화 

행복 머니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그래, 분명 그랬었다.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를 다 풀어주면 어떻게 해?! 내가 그러라고 너를 아쿠아리움에 데리고 간 줄 알아?”

유리한이 환장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그녀 앞에서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니로르르가 뚱하게 말했다.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자유를 준 것뿐이다.”

“자유는 무슨! 그냥 죽으라고 그런 거겠지!”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노려봤다. 유리한은 그 시선에 코웃음을 치고는 성난 목소리를 뱉어냈다.

“니르로르,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줄 모르겠는데.”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말했다.

“아쿠아리움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짐은 잘만 살아남았느니라.”

“그건 네가 드래곤이니까 그런 거겠지!”

아니, 잠깐만.

‘자기는 잘만 살아남았다고?’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꼭, 니르로르 역시 갇혀서 지낸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 알 바는 아니지.’

지금 유리한이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주아라의 죽음 이후 센터의 협회장을 누가 맡게 될 거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는 다른 사건을 한창 보도 중이었다.

- □□ 아쿠아리움은 플레이어의 소행으로 보고 센터에 조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플레이어의 소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쿠아리움 내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버린 범인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니르로르!’

유리한은 뉴스에서 떠들고 있는 사건의 범인인 죽음의 드래곤을 한껏 욕하고는 얼굴을 구겼다.

“유리, 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

“맞아요, 유리한 씨. 센터에서 니르로르 씨를 추적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센터를 새롭게 이끌어갈 플레이어가 누가 될지 궁금했는데.’

분명, 사람들은 그와 관련해서 한창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니르로르, 저 망할 죽음의 드래곤이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를 모두 자연에 풀어버리면서 대중의 관심이 그 사건으로 쏠려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사납게 머리를 헤집었다.

적어도 일주일은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었건만, 저 빌어먹을 용이 다 망쳐버렸다.

“알겠어, 그만 탑에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바닥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유리한의 근처에서 놀고 있던 유시우가 장난감을 떨어뜨린 거였다.

“…시우야.”

“싫어요!”

유시우가 빼액 소리 지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 그대로 제 방으로 달려갔다.

쾅! 닫히는 문에 유리한이 앓는 목소리를 냈다.

“꼭 지한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군.”

“그러게나 말이야.”

유지한도 불만이 있으면 저런 식으로 행동했었다. 유리한이 픽 웃고는 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유리한은 유시우의 방문을 열었다.

“유시우.”

조카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리한이 아이의 머리맡에 앉고는 다정하게 물었다.

“고모 안 볼 거야?”

“안 볼 거예요!”

“정말로?”

유시우가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있던 이불을 끄집어내렸다.

“고모, 갈 거예요? 이제 또 못 보는 거예요?”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유리한은 조카를 품에 꼭 끌어안고는 말했다.

“시우야, 고모 다시 돌아올 거야. 최대한 빨리. 그때는 서아 누나랑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 어때?”

유시우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아이의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시우 잘 때까지 가지 마요.”

“응, 시우 잘 때까지 옆에 계속 있을게.”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자려는 건지.

유리한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때, 다시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유시우가 물었다.

“고모, 옆에 있죠?”

“응, 옆에 있지.”

유시우가 유리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웅얼거렸다.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아빠 이야기 들으면서 잘래요.”

유리한이 미소를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시우의 아빠는 애늙은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었어.”

“왜요?”

“어린데도 울지 않고 매달리지도 않고 묵묵히 견뎌내려고 해서.”

“아빠는 왜 그랬대요?”

“글쎄.”

유리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조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지한은 제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런 거였다. 유리한은 그게 참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고모?”

“응, 시우야.”

“아빠 이야기 계속 해주세요.”

유리한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유지한이 그보다 어릴 적에 얼마나 사고뭉치였는지, 또 얼마나 말을 안 들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던 유리한이 입을 닫았다.

새근새근 아이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기 때문이다.

“시우야, 자?”

아이의 두 눈은 꼭 감겨있었다.

“…잘자, 시우야.”

유리한이 아이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유시우의 방을 나왔다.

“유리.”

“가자.”

유리한이 겉옷을 챙겨 입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에 행복 머니의 직원들이 유리한을 배웅하고자 모여있었다.

“다녀오십시오, 유리한 님!”

우렁찬 인사에 유리한이 웃었다.

“시우랑 서아를 잘 부탁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행복 머니의 직원들이 유리한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꼭 어느 조직의 큰형님이 된 기분이었다.

유리한이 피식 웃고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50층에 진입한 후, 잠깐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은 원할 때 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 문이나 잡고서 탑에 돌아가기를 소망하면 그들 앞에 길이 나타났다.

‘이대로 다시 탑에 돌아가면 언제 또 나올 수 있을까?’

그때는 서아를 꼭 깨워야지.

유리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열 때였다.

“고모!”

분명 잠들었을 아이가 유리한에게 달려왔다.

“다녀와야 해요! 꼭 돌아와야 해요! 알겠죠?”

유리한이 입술 안쪽을 꾹 깨물고는 조카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응, 꼭 돌아올게. 삼촌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웅!”

아이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유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곧, 문이 닫혔다.

* * *

달칵, 닫힌 문에 검푸른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하연청 님.”

“무슨 일이지? 이전의 센터 건은 거절한 것으로 아는데.”

“재고해 주셨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내 대답은 똑같다만?”

‘하연청’이란 이름을 지닌 남자가 오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절하겠네.”

그를 찾아온 남자가 그 대답에 냅다 무릎을 꿇었다.

“주아라 협회장님의 죽음에 유리한 님께서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금 뉴스에서 한창 떠들고 있는 아쿠아리움 사건도요!”

그 외침에 하연청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뭐라고 했지?”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제 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에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쏟아냈다.

“유리한 님께서 탑을 나오셨다고 합니다. 탑의 공략을 포기한 건 아니고, 50층에 진입하면서 잠깐 밖으로 나오신 모양입니다.”

“지금은?”

“지금은…….”

남자가 두 눈을 데굴 굴렀다. 하연청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흐음.”

하연청이 아래턱을 쓰다듬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센터를 맡을 적임자가 없다고 했던가?”

“네? 네, 맞습니다!”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하연청이 웃었다.

“그 자리, 내가 맡아주도록 하지.”

당당한 선언이었다.

* * *

유리한은 탑에 돌아오자마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

“그러게요.”

고요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디에스 라고는 눈가를 찡그린 채 주변을 살펴봤다.

니르로르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폴리모프를 푼 그는, 그저 유리한에게 야단을 맞은 것에 꿍해 있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간 실종됐던 청의 기사단의 초대 단장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탑이 시끌벅적 소란스럽답니다.”

휘황찬란한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유리한 님?”

“…안녕하세요, 백작님.”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남자의 정체는 제로 바니스타.

오광 중 한 곳, 뮤즈를 이끌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백작님께서 저를 찾아오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사실, 제로 바니스타가 언제고 저를 찾아올 줄은 알았다.

탑을 떠나기 전, 그의 면전에 ‘나를 만나고 싶다면 같잖은 가면 뒤에 숨어서 나불대지 말고 직접 얼굴을 보여라’ 하고 경고를 날렸는데 찾아오지 않으면 이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는데.’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암만 봐도 제가 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요?”

“이런.”

제로 바니스타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영웅님께서는 보기보다 성질이 급하신 것 같군요.”

“성질이 급한 게 아니라 혹시 몰라 묻는 거예요.”

성큼, 그의 앞에 다가선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으며 속닥거렸다.

“이번에는 그 두꺼운 낯짝을 왜 그대로 저한테 내미는 건가 싶어서요. 제이라고 했나요? 당신이 흉내를 냈던 사람.”

제로 바니스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보였다. 그러자 유리한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니 본론부터 말하죠. 뮤즈의 백작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왔나요?”

제로 바니스타가 한없이 가라앉은 여자의 두 눈을 보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영웅님과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싶은데 말입니다?”

하, 유리한이 실소를 터트리고는 순식간에 그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유리한과 제로 바니스타를 알아본 플레이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웃는 낯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제로 바니스타 백작님.”

그의 앞에 들이밀어진 검이 얕게 자상을 남겼다. 유리한이 짓고 있던 웃음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내가 모를 줄 아나 봐? 당신이 내 동생한테 저지른 짓을.”

짐승이 위협하듯 내뱉어진 목소리에 제로 바니스타는 미소를 내보이기만 했다.

그저, 제게 벌어진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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