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짐의 훈련은 빡셀 것이다.”
“빡셀 거라는 게 무슨 뜻이죠?”
탑에서 나고 자란 고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물음에 니르로르가 혀를 찼다.
“밖에서 무엇을 듣고 배웠던 것이냐?”
“글쎄요.”
들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유리한이 조카인 유시우와 함께 웃어대던 소리라고 대답할 거고,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요리.’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고요한이었다. 그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웃자 니르로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짐의 훈련은 네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라는 의미니라. 괜찮겠느냐, 하늘 머리 인간아?”
“네, 괜찮아요.”
고요한이 결의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암만 훈련이 빡세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어요.”
“좋은 태도이니라.”
니르로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 그럼 짐에게 손을 내밀어 보거라.”
“손을요?”
고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의 말에 착실히 따랐다.
니르로르가 고요한의 손바닥 위에 손을 얹었고.
“윽……!”
곧 고요한은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비틀거렸다.
“견뎌라.”
니르로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몸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은 지나치게 안정된 상태이니라.”
그걸 지금 맘껏 헤집고 있는 니르로르였다. 고요한은 이를 악물며 신음을 참았다.
니르로르에게 먼저 마력을 운용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달라 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이 정도는 참아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니르로르가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자마자 고요한은 울컥 피를 토했다.
“쿨럭……!”
“이제 좀 봐줄 만한 꼴이 됐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요한이 쌕쌕 숨을 몰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니르로르가 붉은 눈빛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아느냐, 하늘 머리 인간아? 마력을 운용하는 법은 꽤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요.”
고요한이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시전하는 경우도 있고, 신체를 강화하는 경우도 있죠. 잘 알고 있어요.”
“그것참 다행이군.”
니르로르가 비딱하게 웃었다.
“자, 그럼 네게 쓸모있는 운용법이 무엇인지 확인하도록 하겠다.”
니르로르의 주위로 그의 두 눈과 똑같은 붉은색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에 고요한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니르로르 씨?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 말이 있지.”
“무슨 말이요?”
“맞으면서 배울 때 가장 습득이 빠르다.”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인데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고요한은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곧 붉은 마법진에서 여러 개의 칼날이 고요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과광―!
대지가 울렸다.
“악……!”
가까스로 칼날을 피한 고요한이 강풍에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일어나라. 짐이 너를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다시금 붉은 마법진이 빛을 냈다. 니르로르가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간다, 하늘 머리 인간아.”
“니르로르 씨…….”
고요한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왜인지 모르게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 제 착각이겠죠?”
“착각이다.”
전혀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고요한은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콰과광―!
다시 한번 시작된 공격에 꽁지 빠지게 도망치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니르로르 씨한테 마력 운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고요한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쿠르릉―!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디에스 라고의 손에 제 머리를 맡기고 있던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니르로르 이 자식,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고요한을 훈련시키고 있겠지.”
“그건 알아. 그런데 어떻게 훈련을 시키길래 건물이 이렇게 흔들리냐고. 설마 애를 잡고 있는 건 아니겠지?”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의 얼굴에 젖은 수건을 덮으면서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고요한은 애가 아니다, 유리.”
“알아. 하지만 애처럼 보이는 걸 어떻게 해.”
유리한에게 있어서 고요한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를 볼 때마다 유지한, 동생이 떠올라 그런 것이리라.
“아무래도 안 되겠어. 도대체 무슨 훈련을 시키고 있는 건지 보러 갈래.”
“가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디에스 라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고요한은 네게 마력을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면 너는 기꺼이 가르쳐줬을 테지.”
마법에 재능이 없는 유리한이라고 하더라도 무한의 마력을 지녔던 몸이었다.
그녀에게 마력을 운용하는 법 따위는 아주 식은 죽 먹기였다.
물론, 마력을 운용해 마법을 시전하는 재능은 전혀 없었지마는.
어쨌거나 그녀는 고요한에게 아주 훌륭한 선생이 됐을 터였다.
“하지만 고요한은 네게 부탁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모르겠나?”
“모르겠는데.”
유리한이 입술을 삐죽이며 덧붙였다.
“내가 불편한가?”
“그럴 리가.”
디에스 라고가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놀란 눈을 보였다.
고요한은 그녀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었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아갈 그럴 사람이었다는 거다.
그런 고요한이 유리한을 불편하게 여긴다니.
“고요한은 네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걸 테다. 그리고…….”
“그리고?”
유리한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니르로르에게 부탁한 거겠지. 유리, 너라면 고요한이 힘들어하는 순간 훈련을 그만뒀을 테니.”
유리한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어쨌든 니르로르가 요한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있는지 보러 갈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유리한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도 건물이 울렸다.
“나도 같이 가지.”
그렇게 그녀는 디에스 라고와 함께 숙소 앞마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발견하게 됐다.
“세상에, 요한!”
몇 번이고 바닥을 굴러 엉망진창이 된 고요한을 말이다. 그 앞에는.
- 왔느냐, 유리한아?
평소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진 니르로르가 있었다.
“니르로르? 너 꼴이 왜 그래?”
- 하늘 머리 인간을 훈련시킨다고 이렇게 됐느니라.
니르로르가 앙증맞은 날개를 있는 힘껏 퍼덕거리며 날아왔다.
유리한이 얼떨결에 막 태어난 해츨링과 같은 상태의 니르로르를 안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니야!”
- 적당히 했느니라, 그러지 않았으면 저 인간은 진작 죽었을 거다.
“나 참.”
유리한이 앓는 소리를 내고는 고요한에게 다가갔다.
“요한,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고요한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옷을 털어내고는 방긋 웃었다.
“아쉽네요, 조금만 더 맞으면 감을 잡을 것 같았는데.”
유리한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다. 디에스 라고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픽 웃었다.
“맞으면서 배웠나 보군.”
“네, 니르로르 씨가 그 편이 가장 빠를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도 빨랐고요.”
고요한이 한 손을 펼쳤다. 밤하늘을 비추는 달과 같은 밝은 빛이 점점이 모여들었다.
“오, 벌써 마력을 실체화할 수 있어요?”
“네, 애초에 마법도 사용했었으니까요.”
고요한은 43층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냈다. 니르로르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는 분명 마법을 사용했었다.
‘분명, 그 마법이…….’
고요한이 니르로르를 향해 손을 뻗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리스트레인(restrain).”
촤르륵!
디에스 라고를 향해 사슬이 쇄도했다.
“고요한, 죽고 싶나?”
채앵!
디에스 라고가 날아온 것들을 가볍게 쳐내며 물었다.
“아니요.”
고요한이 방긋 웃었다.
“디에스 씨라면 충분히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써본 거예요.”
“아하, 그렇군.”
디에스 라고가 입매를 비틀며 고요한에게 물었다.
“나도 어디 한번 이 창을 던져봐도 되겠나? 너라면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리예요.”
웃는 낯으로 말하는 모습이 참으로 얄미웠다. 디에스 라고가 짧게 혀를 차며 고요한을 노려봤다.
그 시선을 유리한이 막았다.
“자자, 두 사람 다 그만하고 이제 돌아가요. 디에스, 그 창 집어넣어.”
디에스 라고가 불만 어린 얼굴로 창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그가 유리한과 함께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잠깐만요.”
고요한이 디에스 라고를 붙잡고는 말했다.
“저랑 대련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런 몰골로 나와 검을 맞대겠다고?”
“네.”
고요한이 진중한 얼굴로 부탁했다.
“부탁드릴게요. 그동안 검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잖아요. 이번 기회에 밀린 수업 좀 진행해 주세요, 스승님.”
스승님이라니, 말 한번 참 잘한다 싶었다.
디에스 라고가 픽 웃었다.
“그래, 고요한.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디에스.”
유리한이 나지막하게 그를 불러 타일렀다.
“살살 해야 해, 알겠지?”
“걱정 마라, 유리. 내가 설마 저 녀석을 다치게 할까 봐?”
“응.”
할 말이 없었다.
크흠, 디에스 라고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던 창을 꺼내 들었다.
“최대한 상처 입히지 않도록 하지.”
“최대한 상처 입히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봐주라고!”
“아니에요, 유리한 씨.”
고요한도 검을 꺼내 들었다.
“적당히 봐주면서 해주실 필요 없어요.”
우웅―!
고요한의 주위로 그의 두 눈을 꼭 닮은 색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유리한이 놀라 입술을 오므렸다. 디에스 라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니르로르.”
- 왜 부르느냐, 유리한아.
“너 도대체 요한을 어떻게 훈련시킨 거야?”
하루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저렇게 마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니.
‘감을 잡지 못한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유리한의 물음에 니르로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 짐은 훌륭한 선생이니라.
“아, 네, 그러시겠죠.”
이 망할 파충류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건지 모르겠다.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단순한 대련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 먼저 공격하도록 하지.”
“마음대로 하세요.”
디에스 라고가 땅을 박차 고요한을 향해 창을 휘둘렀고.
콰앙―!
우렁찬 폭음과 함께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가볍게 검을 맞대며 실력을 겨루는 비무(比武)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대련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