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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30)화 (130/235)

130화 

트라이라면 제로 바니스타가 어렸을 때 목숨 걸고 탑으로 탈출시켰던 그의 친구였다.

유리한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제로 바니스타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트라이의 편지를 읽기 전 기록을 해뒀더군요. 제가 간혹 기억에도 이상이 생겨서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걸 용케 기억해 냈네요?”

“고요한 님의 치료 덕분입니다.”

고요한이 자신을 치료해 주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거라면서 제로 바니스타가 멋쩍게 웃었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 제로, 나는 지금 악마들의 세계에 있어. 너는 모를 거야. 이곳은 아직 공략되지 않은 곳이니.

아직 공략되지 않은 곳, 70층 이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유리한이 수정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나 혼자 이곳에 있는 건 아니야.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진작 죽었을 거야.

뒤이어 제로 바니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분……? 그분이 누구지……?

의문도 잠시, 그는 다시금 편지를 읽었다.

- 그분은 위대한 마법사야. 이 탑에서 가장 강한 분이기도 하지. 제로, 그분과 함께 너와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 분명 너는.

뚝, 수정구의 빛이 끊겼다.

“뭐죠?”

“하하, 그게 말입니다.”

제로 바니스타가 유리한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

“수정구의 전원이 하필 그때 끊긴 모양이더군요. 그래도 마지막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리한에게 멱살이라도 잡힐까 싶어 그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분명, 너는 그분이 가장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 함께 나를 만나러 올 테니.”

유리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트라이가 말한 사람이 유리한 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선택했죠. 함께 탑을 올라갈 사람으로요.”

유리한이 말을 가로채자, 제로 바니스타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 탑에서 제가 아는 한 가장 강한 분은 유리한 님이니까요.”

그리고 멋쩍게 웃고는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디에스 님 역시 유리한 님 못지않게 강한 분이시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치켜세워 줄 필요 없다만.”

디에스 라고가 날 선 목소리를 뱉어냈다. 제로 바니스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한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뭐가요?”

“제이의 말로는 유리한 님께서 트라이의 편지에 적혀있던 ‘그분’과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제로 바니스타는 지금 유리한에게 ‘그분’에 대해 묻고 있는 거였다.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 유리한이 픽 웃었다.

“글쎄요.”

유리한이 그에게 수정구를 건네주고는 말했다.

“아는 사람일까 했던 건 맞아요. 제가 아는 한, 위대한 마법사는 단 한 명뿐이거든요.”

“만물의 여우 말입니까?”

“여우요?”

“그레이시 아서 말입니다.”

유리한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 세상에! 그레이시 아서는 절대로 위대한 마법사가 아니에요!”

물론, 이곳 탑에서는 위대한 마법사라고 불릴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일 테다.

하지만 유리한에게는 달랐다.

“멀린 아서.”

그녀는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 그가 이끌던 마법사 무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에 버금가는 위대한 마법사들을 말이다.

‘물론, 멀린이 그들 중에서 최고였지마는.’

어쨌거나 유리한은 제로 바니스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제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는 멀린 아서뿐이에요. 누군지는 당신도 알죠?”

제로 바니스타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분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죽었죠.”

유리한이 씁쓸하게 웃고는 품에 안겨있던 니르로르의 뺨을 쭈욱 잡아당겼다.

“이 녀석한테 말이에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니르로르는 이번만큼은 아프다면서 놓아 달라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일 뿐이었다.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뺨을 당기는 걸 그만두고는 말했다.

“어쨌든, 그래서 흥분했던 거예요. 멀린이 저처럼 살아 돌아와 이 탑에 있는 건가 해서.”

“유리한 님…….”

제로 바니스타가 안타깝다는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한이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뭐, 정말 그랬다면 멀린이 진작 저를 찾아왔겠지만요.”

그러니 트라이의 편지에 적혀있던 ‘그분’은 멀린 아서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 이왕 이렇게 온 거 70층 공략에 관해서 이야기 좀 나누죠.”

“네? 네! 좋습니다!”

제로 바니스타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색은 안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70층 공략을 위해 움직이고 싶었던 것이다.

유리한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대화를 청한 거였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숙소 안으로 들어갔고,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하태평과 만물이 기껏 손을 잡았지만 70층 공략이 지지부진한 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요. 그들이 69층의 문지기를 쉽게 처치하지 못하는 이유는 화염 저항이 통하지 않는 그곳의 열 때문입니다.”

제로 바니스타와 유리한은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곁에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자 유리한의 품에 안겨있던 니르로르가 길게 하품하며 말했다.

- 유리한아, 지루하도다.

“나는 하나도 안 지루해.”

니르로르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유리한이 그에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자든가! 아님,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쐐!”

빽 지르는 목소리에 니르로르가 투덜거리며 그녀의 품에서 벗어났다.

니르로르는 자는 것 대신 바람을 쐬는 걸 선택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나 참.”

니르로르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유리한이 혀를 찼다. 시선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왜 그렇게 보세요?”

“신기해서 말입니다.”

제로 바니스타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니르로르 님께서 비록 저렇게 하찮… 아니, 작아졌다고 하나 저분은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갔던 죽음의 드래곤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냥 하찮은 식충이일 뿐이죠.”

“식충이요…….”

제로 바니스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 녀석이 솜사탕이랑 달고나에 엄청나게 환장하는 거 알아요? 이번 경매에 붙잡혔던 것도 솜사탕에 유혹당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정보에 제로 바니스타가 두 눈을 반짝였다.

‘아, 정보꾼인 거 잊고 있었다.’

허약한 모습을 감추고 있으나 제로 바니스타는 뼛속까지 정보에 환장하는 남자였다.

이 이상 니르로르에 대해 알려주면 그 정보를 어디에다가 써먹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말했다.

“70층 공략에 대해서나 계속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화제가 바뀌자 제로 바니스타가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봐, 드래곤.”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니르로르가 고개를 돌렸다.

“짐을 보러 나온 것이냐?”

“바람을 쐬러 나왔을 뿐이다.”

디에스 라고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고는 니르로르에게 물었다.

“어울리지 않게 뭐 하는 짓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짐은 평소와 같다만?”

그 말에 디에스 라고가 픽 웃었다. 평소와 같다니!

그렇다면 지금쯤 유리한에게 쫓겨난 것을 우울해하면서 솜사탕이나 찾아다녔어야 했다. 아니면 그에게 사달라고 하거나.

하지만 니르로르는 답지 않게 우울한 낯을 보일 뿐이었다.

“멀린의 죽음에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죄책감?”

니르로르가 별소릴 다 들었다는 얼굴을 보였다.

“짐은 멀린이란 녀석이 누구인지 모르니라.”

“하긴, 그렇겠지. 네가 죽인 사람이 워낙 많았어야지.”

날 선 목소리에 니르로르의 두 눈이 뾰족해졌다.

“짐이 원해서 저지른 일이 아니었느니라. 너희를 죽이지 않았다면 짐이 죽었을 거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디에스 라고가 차갑게 말했다.

“너를 죽이지 않았으면 우리가 죽었을 거다.”

니르로르가 뚱하게 말했다.

“그래서 짐이 죽어줬잖느냐?”

“말은 바로 해야지.”

디에스 라고가 금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죽어준 게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지. 유리와 같이.”

그날만 떠올리면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디에스 라고였다.

니르로르가 핏줄이 설 만큼 꽉 주먹 쥐고 있는 디에스 라고의 손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짐을 원망하느냐?”

“그래, 원망한다.”

디에스 라고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멀린을 죽였던 너를, 그리고 유리를 죽였던 너를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말에 니르로르가 픽 웃었다. 디에스 라고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너는 유리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다. 그 목숨이 붙어있는 이유는 유리 때문이니까.”

“그것참 감사한 일이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디에스 라고가 이를 으득 갈고는 니르로르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어린아이의 몸은 힘없이 올라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어디 한번 죽여볼 테면 죽여보라는 듯 체념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디에스 라고는 그대로 니르로르를 내팽개치려고 했다.

“디에스 씨.”

고요한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이야기 끝났어요.”

디에스 라고가 짧게 혀를 차고는 니르로르를 집어 던지듯 놓아줬다. 그리고 그대로 숙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신경질적으로 문이 닫히자마자 고요한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니르로르에게 다가갔다.

“니르로르 씨, 괜찮으세요?”

“괜찮다.”

니르로르가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 하고는 말했다.

“짐은 위대한 죽음의 드래곤, 멱살 한 번 잡혔다고 울거나 그러지 않는다.”

“아하, 그렇군요.”

고요한이 웃는 낯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늘 머리 인간아,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니르로르 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왜 겁도 없이 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이냐?”

니르로르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 매서운 시선에 고요한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는 했거든요. 제가 슬퍼하거나 토라져 있을 때요.”

니르로르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짐은 지금 슬프지 않다. 그렇다고 토라진 것도 아니다.”

“네, 그러시겠죠.”

니르로르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쳐다봤지만, 고요한은 그저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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