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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35)화 (135/235)

135화 

* * *

“흐음, 고귀하신 물의 정령왕께서는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군.”

만물의 수장, 그레이시 아서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그런 그에게 곁에 있던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지의 정령왕은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모습으로 붙잡힌 대지의 정령왕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해 잔뜩 화가 났으리라.

그레이시 아서가 픽 웃었다.

“죽여봤자 다시 살아날 거다. 정령왕이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니.”

지금에야 인간의 모습으로 씩씩거리고 있지만 죽는 순간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터.

“탑으로 끌고 간다. 이왕 붙잡은 거, 놓아주기에는 아까우니 실험을 해보도록 하지.”

인간에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실험을 말이다.

“네, 수장님.”

만물의 마법사들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놔라!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인간들아!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예, 그럴 것 같소이다.”

“뭐?”

대지의 정령왕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쳐다보자, 그레이시 아서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위대하신 대지의 정령왕께서도 아셨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약한 인간들이 아니거든.”

만물의 마법사들은 모두 플레이어였다. 이 탑에 들어온 인간들 모두가 그랬다.

“뭣들 하느냐? 어서 탑으로 모시고 가도록 하거라. 아주 정중히.”

“네, 수장님!”

“놔라! 놔!!”

대지의 정령왕이 마법사들의 손에 붙잡혀 끌려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그레이시 아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숲을 태우고 오염시키면 바로 나올 줄 알았더니.”

“나오기는 했잖습니까?”

여전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레이시 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물의 정령왕이 아니라 대지의 정령왕이 나왔지. 필요한 건 물의 정령왕인데.”

그레이시 아서가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근처에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보도록 해라.”

“찾으면 어떻게 할까요?”

“즉시 독을 풀도록.”

그레이시 아서가 말해 뭐 하겠냐는 얼굴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정령왕들끼리는 관계가 아주 친밀하다지. 어디, 대지의 정령왕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보자꾸나.”

그레이시 아서가 음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울고 있네요.”

“네?”

마법으로 불을 지피고 있던 안톤 리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한은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공기가 울고 있어요.”

안톤 리오스가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 것도 느낄 줄 아세요?”

“안 느껴져요?”

“네.”

공기가 울고 있다니? 안톤 리오스는 코를 훌쩍이고는 생각했다.

‘춥기만 하구만.’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는 건 멈췄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문제는 57층의 땅에는 몸을 녹일 만한 마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안톤, 57층에서 사람 사는 곳은 마탑뿐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원래 57층은 울창한 숲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개간하고 탑을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만물. 그곳의 전 소속 마법사인 안톤 리오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그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게 어떨까요?”

곧 자신의 배신이 만물의 모든 마법사에게 알려질 터였다. 그전에 57층을 벗어나야만 했다.

하지만 유리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려갈 수는 없어요.”

“왜죠?!”

안톤 리오스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걸 위해서 노숙을 하고자 불을 지피는 중이었다.

그때, 부스럭 수풀이 흔들렸다.

안톤 리오스가 히익!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유리한은 태연했다.

“유리, 다녀왔다.”

고요한과 니르로르와 함께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사냥을 떠났던 디에스 라고가 돌아오는 소리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놀란 기색 없이 방긋 웃으며 그를 반겼다.

“어서 와. 먹을 건 좀 찾았어?”

“네, 유리한 씨.”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진 고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큰 걸 잡았네요.”

“니르로르 씨 덕분이에요.”

“맞아, 짐의 덕분이니라.”

고요한 뒤에서 니르로르가 빼꼼 얼굴을 드러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유리한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너는 또 왜 그런 모습이야?”

“귀엽지 않으냐?”

“응, 안 귀여워.”

니르로르를 귀엽게 여기다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생각이 없는 유리한이었다.

니르로르가 뚱하게 두 뺨을 부풀렸지만 그가 삐친 건 유리한의 관심 밖이었다.

“불은 아직이니까 그 전에 손질 좀 하자.”

“아직도 불을 못 피운 건가?”

디에스 라고가 한심하다는 듯 안톤 리오스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안톤 리오스가 부끄럽다는 듯이 두 뺨을 붉히며 말했다.

“그게요, 불을 사용하는 마법은 꽤 고난도라서요.”

그러자 디에스 라고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멀린은 잘만 사용하던데.”

“그거야 그분은 엄청나게 대단한 마법사니까요!”

안톤이 빼액 소리 질렀다. 멀린 아서는 마법사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구시대의 또 다른 영웅, 죽음의 드래곤인 니르로르를 처치하기 위해 유리한과 똑같이 스스로를 희생한 대마법사.

안톤 리오스가 어린아이의 모습인 니르로르를 흘긋거렸다.

‘유리한 님도 디에스 라고 님도 도대체 왜 이 녀석을 살려두고 있는 거지?’

안톤 리오스가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니르로르’란 이름에 가슴 떨려 하면서도 그를 연구하고 싶어 흥분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톤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니르로르란 존재에 오직 두려움만 느꼈다.

그때, 고요한이 조심스럽게 안톤의 옆에 앉고는 말했다.

“안톤 씨, 불을 사용하는 마법 좀 알려주시겠어요?”

“불을 사용하는 마법이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보편적인 마법은 ‘파이어(Fire)’죠.”

“아하.”

고요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이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리자 화르륵, 불이 피어올랐다.

안톤 리오스가 입을 쩍 벌렸고 디에스 라고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려운 마법이라고 하더니.”

“그, 그게, 진짜 어려운 마법인데!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안톤 리오스가 허둥거렸다. 유리한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뭐, 요한이 잘났나 보죠. 어쨌든 다행이네요. 요한이 불을 못 지폈다면 사슴을 생으로 뜯어 먹을 뻔했으니까요.”

“짐은 생으로 뜯어 먹어도 상관없다만?”

“그거야 너는 파충류니까.”

그것도 날개 달린 파충류. 놀림을 당한 니르로르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리한아, 짐의 위대함을 잊은 것 같구나.”

“응, 잊었어.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위협에 콧방귀를 뀌고는 입을 열었다.

“자자, 이제 사슴 좀 구워 먹어봅시다! 배고파요!”

디에스 라고가 손질한 고기를 불 위에 올렸다. 노릇노릇 익어가자 유리한이 싱글벙글 웃었다.

안톤 리오스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이래도 되나? 괜찮나?’

장작에 붙은 불로 인해 연기가 하늘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암만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해도 저 연기를 감추기에는 역부족일 터.

‘만물의 마법사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바로 알아차릴 텐데.’

그리고 이곳에 들이닥칠 거다. 그렇게 된다면 제 목숨은…….

안톤 리오스가 희게 질린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이대로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유리한에게 57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한 정보도 팔았는데!

“저기, 유리한 님.”

“네?”

어느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사슴 고기를 뜯어 먹고 있던 유리한이 왜 부르냐는 듯이 안톤을 쳐다봤다.

“그게, 괜찮습니까?”

“뭐가요?”

“이렇게 야영하는 거요!”

당장에라도 울 듯한 얼굴로 안톤 리오스가 외쳤다.

“제 동료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찾아오면 어쩌죠?”

“이제 동료 아니잖아요.”

“어쨌든요!”

안톤 리오스가 빽 소리 질렀다. 유리한은 사슴 고기를 우물거리고는 말했다.

“찾아오면 싸워야죠.”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그걸 위해서 이렇게 대놓고 불을 지피고 있는 건데요?”

안톤 리오스가 벙찐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저희 만물의 마법사들은.”

“강하죠.”

유리한이 안톤의 말을 끊어먹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안톤, 당신의 옛 동료들이 우리 상대가 될 것 같아요?”

안톤 리오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 그들은 구시대의 영웅들이었다. 특히 유리한은 튜토리얼을 끝낸 위대한 플레이어였다.

대답이 없는 그를 향해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안 될 것 같죠?”

안톤 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니르로르에게 사슴 고기의 살을 발라주며 말했다.

“만물의 수장님이라면 조금 상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글쎄요.”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찾아오면 쳐부수면 되고, 그러지 않는다면…….”

잠시 흐려지던 말끝이 이내 또렷해졌다.

“계속 자극하면 되고.”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

안톤 리오스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겁도 없는 하룻강아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유리한이 말하니 믿음이 갔다. 믿음만 갈까? 이유 모를 자신감도 샘솟았다.

만물의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든 그들을 쳐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말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곧 사라졌다. 부스럭, 근처의 수풀이 흔들렸을 때였다.

“흐갸아악!”

안톤 리오스가 놀라 유리한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었다.

“이봐, 유리한테서 떨어져!”

“죄송해요! 하지만 못 떨어져요! 흐아악!”

안톤의 비명에 유리한이 얼굴을 찌푸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안톤, 진정해요. 사람의 인기척은 아니니까요.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짐승일 거예요.”

그러나 안톤을 놀라게 한 사람은 짐승이 아니었다.

“배고…파…….”

물빛의 머리칼을 지닌 여자아이가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사슴 고기의 냄새에 이끌려 온 짐승일 줄 알았는데 아이라고?’

유리한이 놀란 얼굴을 보인 순간, 앞에 나타난 여자아이가 두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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