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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38)화 (138/235)

138화 

“아쿠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보물을 빌려줄 수 있다니?”

놀라 묻는 이그니스에게 아쿠아가 밝게 대답했다.

“응, 빌려줄 수 있어!”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그니스가 격하게 고개를 내젓자 아쿠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왜 안 되는데?”

“저 인간이 네 보물을 어떻게 사용할 줄 알고 빌려준다는 거야? 절대로 안 돼!”

“싫어! 빌려줄 거야!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마!”

아쿠아의 투정 어린 목소리에 이그니스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나 참,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온 거야?”

“테라한테!”

“빌어먹을 테라!”

“테라 욕하지 마!”

아쿠아가 이그니스의 발목을 걷어찼다.

아이의 발길질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이그니스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자자, 이그니스 님. 일단 아쿠아 님과 이야기 좀 나눠보게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이 빌어먹을 인간이 겁도 없이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화르륵, 이그니스의 주위로 불꽃이 타올랐다.

‘오, 까닭 잘못하면 한 번 더 싸우겠는데?’

유리한이 애매하게 웃은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그니스.”

아우라가 그만하라는 듯, 아니, 진정하라는 듯 나지막하게 이그니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 다정한 목소리에 불의 정령왕이 활활 타오르던 불길을 누그러뜨리고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알았어.”

한발 물러나는 태도에 유리한이 아우라를 향해 고맙다는 듯이 미소를 보이고는 말했다.

“자, 아쿠아 님.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응! 좋아!”

“누구보고 방해꾼이라는 거야?”

이그니스가 툴툴거렸지만 유리한도 아쿠아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먼저, 내 보물은 이거야.”

아쿠아가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뻗자마자 작게 물보라가 일더니 투명한 유리구슬 하나가 나타났다.

“예쁘지?”

아쿠아가 유리한에게 유리구슬을 보여주며 배시시 웃었다. 유리한이 황홀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예쁘네요.”

자신도 모르게 아쿠아의 보물을 향해 손을 뻗었던 유리한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물의 정령왕님, 이거 저한테 빌려주셔도 되는 물건인가요? 소유권이 없어진다거나 그러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아쿠아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나쁘게 사용하면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아쿠아의 보물은 착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거든!”

“아하.”

‘그러니까 악행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소리구만?’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착하게 사는 건 내 신조지.’

누군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을 소리였지만 유리한은 태연하게 웃으며 아쿠아에게 말했다.

“좋아요, 아쿠아 님. 착하게 사용할게요. 그러니까 그 보물, 저한테 빌려줄 수 있으세요?”

“응! 하지만 그 전에 나랑 약속 하나 해줘.”

“무슨 약속이요?”

뭐든 말해달라는 듯이 유리한이 물었다. 그러자 우물쭈물 아쿠아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테라를 구해줘.”

때를 맞춰 대지의 정령왕이 지르는 비명이 온 땅을 울렸다. 짐승이 우짖듯 괴로움이 뒤섞인 그 소리에 유리한이 말했다.

“물론이죠.”

그녀는 아쿠아의 작은 손을 제 손으로 모조리 덮고선 단호하게 내뱉었다.

“제가 꼭 구해드리도록 할게요. 약속해요, 물의 정령왕님.”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흔들림 없는 약속을 말이다.

* * *

“끄윽, 으…….”

비명을 참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대지의 정령왕, 테라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를 갈았다.

“오, 잘 버티고 있구만?”

그레이시 아서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때였다. 그를 보자마자 테라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철컹, 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하를 울렸다. 그 위로 테라의 성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온 대지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하, 고귀하신 대지의 정령왕이시여.”

그레이시 아서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듯 그에게 성큼 다가가서는 히죽거렸다.

“입만 놀리지 말고 어디 한번 나를 죽여보시오.”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테라가 이를 으득 갈았다. 아무것도 못 하는 그를 보며 그레이시 아서가 키득거렸다.

“못 하겠지?”

“이익……!”

당장에라도 대지를 움직여 저 빌어먹을 늙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싶었다.

‘이렇게 묶여 있지만 않았더라도!’

테라가 씩씩거릴 때, 그레이시 아서가 다정하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시오. 내 좋은 소식을 들고 왔으니.”

좋은 소식이라니? 분명 좋지 않을 이야기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꼭꼭 숨어 있던 정령왕들께서 모습을 드러내신 것 같더군.”

“뭐?”

그레이시 아서가 들려준 이야기는 테라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혼자서 많이 쓸쓸했을 텐데 기다리고 계시오. 내 당신들 정령왕들을 모두 데리고 올 테니.”

“이 미친놈이!”

철컹, 사슬 소리가 다시금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레이시 아서는 음흉하게 웃고는 지하실을 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아 참, 깜빡할 뻔했군.”

그레이시 아서가 테라에게 다시 다가와서는 말했다.

“내 긴히 실험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시 잊었지 뭐요?”

테라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그레이시 아서를 노려봤다. 그 날 선 눈초리가 우습다는 듯 그레이시 아서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물과 불, 바람과 대지.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손으로 오염이 되는 아주 하찮은 것들이지.”

하찮은 것이라니!

테라의 두 눈이 번뜩였다. 이곳에서 풀려나기만 한다면 그레이시 아서의 목을 당장에라도 비틀어 버릴 기세였다.

그레이시 아서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궁금하지 않소? 그 하찮은 것들의 주인이 인간의 손에 오염될지, 그러지 않을지.”

“너, 무슨 짓을……!”

테라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의 입 안으로 검은 액체가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읍! 우웁!”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테라는 꿀꺽꿀꺽, 무엇인지 모를 액체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그레이시 아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통은 없을 거요, 위대한 대지의 정령왕이시여.”

* * *

우우우―!

소름 끼치도록 구슬픈 소리에 마탑으로 향하던 유리한이 걸음을 멈추고는 아쿠아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래요?”

“테라가 우는 소리.”

“땅의 정령왕님께서 우는 소리라고요?”

“아니.”

아쿠아가 서글픈 눈으로 말했다.

“땅이 우는 소리야.”

테라는 곧 대지의 정령왕, 그리고 대지는 땅이다. 그러니까 결국 대지의 정령왕이 우는 소리가 맞다는 거였다.

‘정령왕의 어휘란 참 미묘하네.’

유리한이 픽 웃고는 말했다.

“땅이 갑자기 울다니, 대지의 정령왕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아쿠아가 걱정돼 동행을 자처한 이그니스가 뚱하게 말했다.

“그 멍청이, 그러게 내가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는데! 하여튼 간에 더럽게 말을 안 들어요.”

그에 아쿠아가 빽 소리 질렀다.

“테라 욕하지 마!”

“젠장, 알았어!”

“나한테도 욕하지 마!”

“내가 언제 너한테 욕했다고 그래?! 쪼그만 게 성질은 더러워서!”

그 순간 유리한은 생각했다.

‘이그니스는 작지도 않은데 성질이 더럽네.’

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친 말이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설원에서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말 테니.

어쨌든 간에 유리한은 투닥거리고 있는 정령왕들을 뒤로하고 안톤 리오스에게 물었다.

“정말 이 길로 가면 몰래 마탑에 침입할 수 있어요?”

“네, 저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거든요. 아마도요.”

‘아마도’라니, 굉장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대답이었다. 유리한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니르로르가 뚱하게 말했다.

“유리한아, 저 인간을 믿어도 되겠느냐?”

“잘 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보다 니르로르, 이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안 돼? 무거운데.”

“짐은 무겁지 않으니라.”

“네네, 그러시겠죠.”

유리한이 니르로르와 시답잖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한 발 앞서가고 있던 안톤이 멈춰 섰다.

“도착했어요.”

그는 대지를 덮고 있던 눈을 치우고선 감춰져 있던 문을 열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돼요.”

“오.”

유리한이 입술을 오므렸다.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기요, 유리한 님? 안 들어가고 뭐 하세요?”

“안톤이 먼저 들어가야죠.”

“네?!”

안톤이 놀라 물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니? 나는 이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당황한 그에게 유리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길 안내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한 거 아니죠?”

망했다.

안톤 리오스는 울지 못해 웃으며 앞장서기로 했다. 디에스 라고가 그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리.”

“응, 디에스.”

“저 녀석, 믿어도 되겠나?”

그 말에 유리한이 안톤 리오스를 흘긋거리고는 디에스 라고에게 속닥거렸다.

“괜찮아, 배신할 일은 없을 거야. 배신하려면 진작 했겠지.”

다 들립니다, 영웅님들.

안톤 리오스가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우뚝, 안톤의 곁에 있던 고요한이 멈춰 선 건 그때였다.

“요한 님, 왜 그러세요?”

안톤 리오스에게 있어서 고요한은 이 무리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그런 고요한이 굳은 얼굴로 움직이지 않자 안톤 리오스가 다시금 불렀다.

“요한 님?”

“안톤 씨.”

“네.”

“여기, 안톤 씨만 아는 비밀 통로라고 하지 않았나요?”

“네, 그런데요?”

고요한이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저 사람.”

어두컴컴한 내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히이익! 뭐야, 귀신?!”

안톤 리오스가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요, 안톤. 진정해요. 귀신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귀신이 아니면 사람이라는 소리예요? 사람인 게 더 무서운데요?!”

안톤 리오스는 진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이그니스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쿠아가 놀란 눈을 보이고는…….

“테라? 테라!”

우다다, 대지의 정령왕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아쿠아 님, 안 돼요!”

유리한이 다급히 아쿠아를 붙잡았다.

콰앙!

지하실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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