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42)화 (142/235)

142화 

【 19. 무림 】

“글쎄요.”

유리한이 60층에 진입하기 전, 눈으로 뒤덮인 엘리아룸의 세상을 마지막으로 기억 속에 담고는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무림의 세계라고 했으니 무인들이 넘쳐나는 곳이지 않을까요?”

“무인들이요?”

고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물음에 디에스 라고가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는 말했다.

“북해빙궁에서 봤던 녀석들과 비슷한 놈들이다.”

그에 고요한이 디에스 라고를 뒤따르며 입을 열었다.

“무림에서도 마법사들이 날뛰고 있나 보네요.”

“아니.”

디에스 라고가 단호하게 말했다.

“북해빙궁에서 만났지 않나? 마법사들과 함께하던 무복을 입고 있던 녀석들을.”

“아하.”

고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분들이 날뛰고 있는 세상이라니, 뭔가 꺼림칙하네요.”

“하하, 거기서처럼 그러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T-Network로 파악해 보니 그곳은 9파 1방이라고 하여 아홉 개의 문파와 한 개의 방(幇)이 서로의 세력을 견제하는 세계라고 했다.

‘전쟁 중이지만 않으면 좋겠네.’

유리한이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 고요한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대로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백작님을 만나야 한다거나 그러지 않아도 괜찮나요?”

“괜찮을 거예요.”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위에서 만나게 될 텐데요, 뭘.”

69층의 문지기를 처치하기 위해서라도 백작은 위로 올라와 저를 찾아올 터였다.

애초에 그러자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알아볼 것도 있고.’

제로 바니스타와 함께 탑을 올라가야만 그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더욱이 그의 친구와 함께 있다는 마법사도.

‘그 마법사가 정말…….’

유리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곧 고개를 내저으며 머릿속의 생각을 털어냈지만 말이다.

때맞춰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띠잉―!

울린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소망의 탑, 60층이 플레이어 ‘유리한’의 입장을 환영합니다!]

이제 지겹기 그지없는 환영 문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유리한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아악!”

“와아악!”

“죽여라! 죽여!”

개판 5분 전인 세상이 말이다.

* * *

“아, 말해주는 걸 잊었네.”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이 떠난 57층, 오염된 숲을 회복시키던 이그니스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아우라가 물었다. 아쿠아는 잠들어 있는 테라의 뺨을 콕콕 누르는 중이었다.

“아쿠아, 잠든 애 건드리는 거 아니야. 특히나 성질 더러운 애는 더더욱 건드리면 안 돼.”

“테라는 애가 아닌데?”

“어쨌든.”

이그니스가 아쿠아를 품에 안고는 말했다.

“우리의 다음 세계 말이야. ‘무림’이라고 했나? 거기 한창 전쟁 중이라고 했잖아.”

“아아, 그랬지.”

아우라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 인간들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잘 살아남지 않을까?”

오염된 공기를 맑게 정화시킨 아우라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늙은 마법사도 멀쩡하게 목숨 부지하고 있는 곳인데 그 인간들이라고 다를까 봐? 걱정하지 마, 이그니스.”

“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이그니스가 뚱하게 말하고는 쓰러져 있는 테라를 걷어찼다.

“그보다, 테라. 야! 이제 그만 일어나!”

“으윽…….”

테라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눈을 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어야 할 금빛 눈은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가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탁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안 돼.”

이그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뭐가 안 돼?”

“몸이 오염됐어. 이대로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나와 연결된 모든 것이 오염되고 말 거야.”

“나 참.”

이그니스가 혀를 찼다.

“정화는 안 돼?”

“평소의 아쿠아라면 나를 정화시킬 수 있었을 테지만…….”

테라가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아쿠아를 쳐다봤다.

아쿠아는 이그니스의 품에 안긴 채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이그니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잖아?”

테라가 픽 웃었다. 이그니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정령왕의 죽음은 인간이 겪는 ‘죽음’과 다르다.

그들은 순환하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그들에게 완전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테라는 지금 저를 죽여 자신이 다시금 태어나게끔 해달라는 거였다.

그것을 잘 알아들은 이그니스가 사납게 말했다.

“아우라, 아쿠아 좀 부탁할게.”

“왜? 나는 이그니스랑 같이 있고 싶은데!”

“아쿠아.”

아우라가 아이의 투정을 다정하게 달래며 품에 안았다.

“놔! 이거 놔와, 아우라! 나 이그니스랑 있을래! 테라랑 있을래애!”

아쿠아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쿠아.”

테라가 아쿠아에게 손을 뻗었다가 황급히 그 손을 거뒀다. 까맣게 오염되어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곧 주위의 정령왕들에게 영향을 미칠 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는 것이 좋았다.

테라는 결국 아쿠아의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지 못하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보자.”

아쿠아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 뒤로 테라가 이그니스에게 말했다.

“이그니스, 너도 나중에 다시 보자.”

“젠장, 빌어먹을 자식.”

이그니스가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테라를 집어삼킨 것은 금방이었다.

* * *

“으아아악!”

“죽여라, 죽여!”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우리가 할 소리다!”

곳곳에서 검과 창이 맞부딪치고 불꽃이 튀고 있었다.

유리한은 그 가운데에서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일단, 두 개의 세력이 서로 충돌 중인 건 알았다. 문제는.

‘어디에 붙어서 싸워야 하지?’

어느 쪽이 아군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때였다.

“유리!”

“우왁!”

유리한이 갑작스럽게 날아온 창을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채앵!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을 노리던 무기를 날려버리고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나?! 다친 곳은!”

“없어. 잠깐 방심했을 뿐이야.”

그랬을 뿐인데 무기가 날아오던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다른 곳과는 다르게 얕봐서는 안 되는 세계인 것 같네.’

유리한이 삐질 흘러내리던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외쳤다.

“요한,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아요! 니르로르 씨도 괜찮고요!”

“그 자식 안부는 안 궁금해요!”

유리한이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느 쪽이 아군인지 모르겠으니 방법은 하나였다.

“디에스.”

“그래, 유리.”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의 뒤에 탁 붙어서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다 족치자.”

“좋은 생각이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땅을 박찼다.

“크아악!”

“으악!”

유리한은 푸른색의 도복을 입은 자들을 상대했고, 디에스 라고는 분홍색의 도복을 입은 자들을 상대했다.

고요한은 그 아수라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품에 안고 있는 니르로르가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와 함께 싸움에 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니르로르가 걱정됐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돼.’

그랬다가는 유리한에게도 일이 생기고 말 거다. 그것도 굉장히 좋지 않은 일이.

그렇기에 고요한은 잠들어 있는 니르로르를 난장판에서 지키고 있기로 했다.

다행히도 아수라장은 금방 진정이 됐다.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가 서로 싸우고 있던 두 세력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린 것이다.

“우와, 오랜만에 한바탕 신나게 싸운 것 같아.”

“나 역시 그렇다.”

디에스 라고가 무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에 마을이 있는 것 같지는 않군. 이 녀석들에게 물어봐야겠는데.”

“그래?”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저기요, 혹시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아래에서 지금 막 올라온 참이라 모르는 게 많거든요.”

유리한은 기절한 척 바닥에 누워 있던 푸른색 도복을 입은 남자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정중하게 묻는 목소리치고는 굉장히 양아치스러운 자세였다. 유리한에게 멱살이 잡힌 남자는 비명을 지르고 외쳤다.

“무,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하, 하지만 때리지는 마시오! 이러다 기껏 쌓은 내공을 못 쓰게 될 것 같단 말이오!”

“내공?”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아.” 하고 웃으며 말했다.

“플레이어들의 ‘마력’과 비슷한 힘이죠? 알아요, 아래층에서 그런 힘을 본 기억이 있거든요.”

북해빙궁, 생각만으로도 씁쓸해지는 그곳의 기억을 떠올린 유리한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싸우고 계셨던 건가요?”

“그야, 저 자식들이 화산파 녀석들이니 그랬던 것 아니겠소?!”

“화산파?”

유리한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였다가 입술을 오므렸다.

“9파 1방 중 한 곳! 맞죠?”

“9파 1방은 무슨! 화산파는 순 양아치들의 소굴이지! 감히 우리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알겠소?”

그거야 모르겠고,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남자 역시 9파 1방에 소속된 문파의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유리한은 물었다.

“당신은 어느 문파 사람인데요?”

“종남이오.”

“종남?”

유리한이 고개를 기울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9파 1방, 유리한이 T-Network룰 통해 알아낸 정보는 아래와 같았다.

9파에 속하는 곳은 소림과 무당, 아미와 화산, 그리고 곤륜와 해남파였다.

1방은 거지들의 조직이라는 개방이었고.

유리한의 말에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가 빼액 소리 질렀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라니!”

“하하! 그거야 너희같이 조무래기들이 있는 문파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 망둥이 같은 자식들아!”

분홍색 도복을 입고 있던 사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너희가 암만 지랄, 아니, 날뛰어도 우리 화산에는 못 미치리라!”

남자가 당당하게 외쳤다. 유리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를 때려눕힌 자신은 그럼 ‘화산’이란 곳에 미친 자란 말인가?

그런 유리한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분홍색 도복을 입은 사내가 합장하며 외쳤다.

“대화산파의 3대 제자, 청하연이 협객을 뵙습니다!”

‘협객(俠客)’, 그것은 무림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를 칭하는 말이었다. 유리한은 떨떠름한 얼굴로 사내와 똑같이 합장하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참으로 어색한 인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