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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44)화 (144/235)

144화 

유리한의 인사에 주위가 삽시간에 어수선해졌다.

“네년은 누구냐?!”

“네년이라니.”

디에스 라고가 으르렁거렸다.

“한 번만 더 유리를 그딴 식으로 부르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디에스 라고의 날 선 기세에 남자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유리한이 그런 디에스 라고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

“뭐, 갑자기 나타났으니 저 사람들도 많이 놀랐겠지. 진정해, 디에스.”

“유리,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걸?”

“아니에요, 유리한 씨!”

고요한이 말했다.

“유리한 씨는 착해요! 정말로요!”

“그렇다면야.”

디에스 라고가 뚱한 얼굴을 보였다. 제 말은 믿어주지 않고 고요한, 저 자식의 말은 믿어주다니.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불평과 불만을 드러내 봤자 좋을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

“여러분께서는 왜들 그렇게 싸우고 계셨던 건가요?”

자신들 앞에서 싸우고 있던 ‘화산’이라는 자들과 ‘종남’이란 자들의 중재였다.

그 말에 화산파의 2대 제자, 백명이 앞으로 나섰다.

“종남이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헛소리를! 시비는 너희 화산이 먼저 걸었잖느냐!”

“평화롭게 지나가던 자의 발목을 붙잡았던 사람이 누구더라?”

“이익!”

종남의 제자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분을 터트렸다.

종남이 화산에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 유리한은 생글 웃을 뿐이었다.

‘종남이고 화산이고 자시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원래 무림의 세계에 들어선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유리한과 같은 반응이었다.

무협 소설깨나 읽어본 플레이어들은 가슴 설레한다지만, 글쎄.

“그러면 여러분, 이제 싸움은 그만하시고 한 가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무엇을?”

“여기 여관은 어디 있나요?”

“여관?”

“객잔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언제 싸웠냐는 듯 화산과 종남이 주거니 받거니 말을 나눴다.

유리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T-Network를 통해 여기에 대해 이것저것 좀 알아봐야겠네.’

그러지 않으면 꽤 곤란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말 좀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한 오해를 받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유리한이었다.

더욱이.

‘니르로르.’

유리한이 여전히 기절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니르로르를 보며 쯧 혀를 찼다.

‘저 자식은 언제 정신을 차릴 생각이람?’

어쨌든 간에 어서 휴식을 취할 곳이 필요했다.

여관이 어디 있느냐는 유리한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는지 종남과 화산 사람들이 말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을이 하나 있다. 그곳까지 함께 가주도록 하지.”

“아니, 우리가 같이 가주도록 하지.”

어랏, 이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유리한이 당황하여 사람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싸우려고 들 듯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유리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마치 항복한다는 듯한 자세였으나 유리한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을 만류하는 자세였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 이번에도 이 협객을 너희가 가로채겠다?!”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라 길 안내를 해주려는 것뿐이야!”

“거짓부렁을!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저 망할 화산파 놈들을 쳐라!”

퍼억!

주먹으로 후려치는 찰진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화산파 놈들을 치라고 외쳤던 종남의 무인이 얻어맞는 소리였다.

“사, 사형!”

종남의 사람들이 희게 질린 얼굴로 우두머리를 때린 여자를 쳐다봤다.

유리한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말했다.

“아오, 진짜. 제가 불렀잖아요? 저기요, 그만하죠, 그만들 하라니까요, 뭐 이렇게요.”

‘저기요’라고 말하는 건 들었다.

하지만 뒷말은 전혀 듣지 못한 종남파였다. 그건 화산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눈만 데굴 굴렀다. 유리한은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여관, 그러니까 객잔이 어디 있는지는 대충 위치만 알려주세요. 저희끼리 알아서 갈 테니까요. 싸우고 말고는 저희 떠난 후에 당신들 알아서 하시고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고요함 가운데에서 입을 연 사람은 바로 백명이었다.

“당신들이 강하다는 건 알겠지만 저희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을 겁니다. 더욱이 아이를 데리고는요.”

아이?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곧 얼빠진 소리를 냈다.

‘망할 니르로르.’

빌어먹을 드래곤이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던 거다. 하필 저런 모습으로 기절해 있을 게 뭐람?

유리한이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이서 정해요. 누가 저희를 안내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명과 쓰러진 종남의 우두머리 곁에 있던 남자가 검을 꺼내 들었다.

스르릉, 바람결에 실려 오는 날 선 소리에 유리한은 오싹한 감각을 느꼈다.

“유리.”

그건 디에스 라고 역시 마찬가지였는지라 그는 나지막하게 유리한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한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저 사람을 때려눕힌 건 운이었나 봐.”

서로 검을 맞대기 직전의 두 남자는 플레이어로 치자면 50Lv은 가볍게 넘어설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하긴, 그래.’

이곳은 무림, 60층 이후에 펼쳐진 강호의 세계였다.

아래 정령왕들이 보살피고 있는 엘리아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곳.

‘구천하, 그 늙은이가 이곳을 왜 터전으로 삼았는지 알겠네.’

유리한은 옛 동료이자 전우였으며 또한 라이벌이었던 구천하가 이곳에서 ‘천하태평’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림의 세계에서는 ‘마교’로 이름이 드높다고 하던가?

‘그 양반도 참 인생 헛살았어. 아니, 나이를 헛처먹은 건가?’

어쨌거나 유리한은 곧 펼쳐질 대련을 마음 편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채앵―! 카앙―!

대련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윽……!”

유리한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황급히 팔을 들어 올려 눈가를 가렸다. 디에스 라고가 그런 유리한을 제 뒤로 숨겼다.

그에게 고요한은 안중에도 없었으나 유리한은 그렇지 않았다.

“요한,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저보다는 니르로르 씨가 걱정이네요. 이 정도 소란에도 일어나지를 않다니.”

여전히 니르로르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유리한이 쯧 혀를 찼다.

“이 망할 용은 도대체 언제 일어나려는 거야? 지하에서 그렇게 세게 부딪쳤던 것도 아니었는데!”

“하하,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충격이 강했나 보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유리한이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사이에도 대련은 계속됐다.

곧 승자가 나왔다.

“윽……! 이 빌어먹을 화산 놈!!”

승자는 화산의 백명이었다. 그가 흰 도복을 휘날리고는 유리한에게 손을 건넸다.

“가죠.”

“네, 뭐.”

유리한이 웃는 낯으로 그 손을 잡으려던 찰나.

“뭡니까?”

“가지.”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을 대신하여 그의 손을 잡았다. 백명은 제 손을 잡은 험악한 손에 얼굴을 찌푸렸다.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하다.’

본능적으로 느낀 강자의 기운 때문이었다.

‘사실 이 남자뿐만이 아니라 저 여자, 그리고 저 남자도…….’

모두 하나같이 강자였다. 처음 나타날 때부터 잠들어 있던 저 꼬마는 어떻고.

어떻게 보면 저 꼬마가 가장 강한 힘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명은 꿀꺽 침을 삼킨 후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꺼이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아닙니다. 길 잃은 협객을 도와드리는 건 저희 도사의 일이니까요.”

협객이니 도사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웃기나 하자.

유리한은 생글 웃으며 백명의 뒤를 따랐다. 그 뒤를 백명의 제자, 정확히는 화산의 3대 제자들이 쫓았다.

“화산이라고 했죠?”

“네.”

“화산이란 곳은 뭐 하는 곳인가요? 도사라고 하던데, 뭐 마법사라거나 그런 거예요?”

사실 그렇다고 치기에는 검술이 너무 뛰어났다. 마법의 ‘마’자도 보지 못했고.

유리한의 질문에 백명이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마치, 몇 번이고 저런 질문을 들었다는 듯이 말이다.

“저희 화산은 도를 중시하며 무를 연마하는 곳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유리한은 “아아.”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아는 척을 했다. 어쨌든 마법사란 소리는 아니었다.

‘하긴, 이곳에 마법사가 있는 것도 웃기겠네. 아, 웃긴 건 아닌가?’

무림의 세계에 만물의 빌어먹을 마법사들이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고 마법사란 작자들은 사파 놈들입니다.”

“사파요?”

“저희 같은 정파가 아닌, 비루한 놈들이란 말이죠.”

‘오, 그것 참 만물에게 어울리는 말인걸?’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렇군요.”

‘그래, 만물의 마법사들이 무림에 있단 말이지?’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야, 그들의 목표는 69층의 문지기를 격파해 70층에 도달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객잔은 어디인가요?”

“저쪽입니다.”

백명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 유리한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백명, 그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절벽이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저기 어디에 객잔이 있다는 말일까요?”

유리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명은 능숙하게 절벽을 타며 입을 열었다.

“암벽 사이사이에 굴이 있습니다. 객잔은 그중 가장 큰 굴 안에 있지요. 제가 밟는 곳을 잘 보고 따라서 올라오십시오.”

“아, 예에.”

유리한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왜인지 모르게 무림에서의 생활이 고달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유리한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유리한은 지친 낯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하지만 음식은 다 떨어진 지 오래였고 남은 것은 하나뿐.

“이건 벽곡단?”

“오, 아시는군요.”

“바깥에도 있거든요.”

그리고 참 많이도 먹었었다.

결국 유리한은 맛이라고는 없는 덩어리를 씹어 먹으며 미간을 좁혔다.

‘벽곡단이 어디에서 온 건가 했더니.’

무림에서 왔구만?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이상했다.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에야 어떤 음식이든 귀했으니 주워 먹었지만, 벽곡단이 무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니.

‘튜토리얼은 혹시…….’

유리한이 생각에 잠길 때였다.

쿠웅!

갑작스럽게 땅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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