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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46)화 (146/235)

146화 

탑의 주인.

그 녀석이 모든 시작이며 모든 일의 끝일 게 분명했다.

‘왜?’

왜 그는 이 세상에 나타나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유리한의 세상뿐만이 아니다.

‘니르로르의 세상도, 그리고 9층의 리스체가스도.’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것은 온갖 세상과 거래를 했고, 이렇게 탑을 만들었다.

유리한을 포함해 플레이어에게는 달콤한 금은보화와도 다름없는 신비로운 탑을.

탑의 최상층을 클리어한 플레이어에게는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했던가?

튜토리얼을 끝낸 플레이어들을 움직이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디에스 라고조차 그 말에 이끌려 탑을 올랐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후, 탑에 의해 선택받아 들어오는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위를 향했다.

“다들 무슨 소원이 있기에 그렇게 위를 향하고 싶어 했던 걸까?”

“뭐?”

“저 위에는 뭐가 있는 걸까? 정말,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아이템이 있는 걸까? 아님, 제단?”

유리한이 구슬프게 읊조렸다.

“플레이어들 중 어떤 인간은 제 한계를 깨닫고 탑을 오르는 걸 포기해. 어떤 인간은 위를 오르는 걸 포기하고 자신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지키는 데 집중하지.”

행복 머니의 직원들이 전자였고, 후자는 서문기율이었다.

49층, 수인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정의로운 플레이어.

그리고 가장 성장 가능성이 많은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비교하자면 요한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수준이었지.’

어쨌든 간에.

“있잖아, 니르로르.”

유리한이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저 위에는 탑의 주인이란 녀석이 있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니르로르가 고개를 저었다.

“탑의 주인은 지금도 온 세상을 떠돌며 자신과 거래할 대상을 찾고 있을 거다.”

“왜? 이 탑은 이미 완성된 곳이잖아.”

“그래, 그렇게 생각되겠지.”

니르로르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유리한.”

니르로르가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너는, 이 탑의 끝을 아느냐?”

“그거야…….”

100층.

당연히 100층이라고 생각했다.

니르로르가 유리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듯 픽 웃고는 말했다.

“이 탑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너희는 어리석다.”

유리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니르로르가 지구에 처음 나타났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어리석은 인간들아, 낮을 잃은 너희에게 희망은 없느니라.

낮을 잃은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고 했다. 아니, 그 이전에 인간을 향해 어리석다고 했다.

“니르로르,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

“무엇을?”

“탑의 주인, 그 망할 녀석에 대해서.”

“글쎄다.”

니르로르가 나른하게 바깥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형체가 없다. 때론 남자로 나타났다가 여자로 나타났다가 아주 제멋대로지. 아이의 모습일 때도 있고, 노인의 모습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 가운데서도.”

니르로르의 붉은 눈이 유리한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굉장히 탐욕적이며, 또한 광적인 장난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니르로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녀석은 장난을 좋아한다, 유리한. 그것도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 제 장난에 무너지는 꼴을 보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지.”

“악질이구나?”

“그렇지.”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말이 없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굉음도 멈췄다.

“디에스랑 요한이 만물의 마법사들을 물리쳤나 봐.”

“그 둘이 만물의 마법사들에게 당했을 거란 생각은?”

“할 리가 없잖아?”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품에서 벗어나고는 말했다.

“일어나, 니르로르. 너 엄청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거 알지?”

“그래, 안다.”

니르로르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을 따라 붉은 도포가 흘러 내렸다. 니르로르는 그것을 단정하게 정돈하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오래 잠들었었지.”

또한, 꿈을 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세상의 위험 요소라 외치며 사라지게 만들어 달라던 자들의 목소리를.

그래, 그러니까 악몽을 꿨다.

“가자, 니르로르.”

내밀어진 손이 보였다. 니르로르가 물끄러미 그 손을 보자 유리한이 멋쩍게 말했다.

“네가 암만 드래곤이라고 해도 엄청 오래 잠들어 있었잖아. 걷기 힘들걸? 뭐, 싫으면 말고.”

유리한이 손을 거두려고 하자, 니르로르가 황급히 그 손을 잡았다. 작고, 또 작았다.

이 손이 어떻게 자신을 죽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단한 녀석.”

“뭐?”

“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니라. 어서 가기나 하자꾸나.”

“네네, 그래야죠.”

유리한은 니르로르가 힘들까 싶어 천천히 걸음을 뗐다. 니르로르는 그녀와 발을 맞췄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 잘 걷지 못할 거라니, 참으로 인간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드래곤인데.’

암만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본질은 드래곤.

지금 당장 아무렇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니르로르는 굳이 유리한의 손을 잡아 천천히 움직였다.

디에스 라고가 본다면 격분할 모양새였다.

그래, 지금처럼 말이다.

쐐액! 날아온 것에 니르로르가 유리한의 손을 놓고는 몸을 돌렸다. 유리한은 놀란 눈을 보였다.

“디에스!”

“유리, 뭐 하는 짓이냐?”

“뭐 하는 짓이기는! 니르로르를 부축하고 있었지!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드래곤이다. 멀쩡히 돌아다닐 놈이란 말이다.”

“그거야 모를 일이잖아!”

유리한이 빼액 소리 질렀다.

“유리한 씨, 니르로르 씨는 멀쩡해요.”

디에스의 곁에 고요한이 서며 예쁘장하게 웃었다.

“살펴보니 괜찮네요. 굳이 손잡아 부축해 줄 필요 없겠어요.”

니르로르의 주위로 은빛의 빛무리가 떠돌다가 사라졌다. 고요한의 힘이었다.

그 말에 유리한은 두 눈을 샐쭉하게 뜨며 니르로르를 쳐다봤다.

“야, 요한의 말이 사실이야?”

“짐은 모른다.”

“모르지 않는 것 같은데?”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으며 주먹을 들려던 찰나.

니르로르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하며 올망졸망 두 눈을 떴다. 유리한이 아이의 모습에 약하다는 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너, 이 자식!”

“짐을 때릴 것이냐, 유리한아? 이 작고 어린 아이를 네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때릴 생각이냐?”

“너 안 작잖아! 원래 모습으로 당장 돌아오지 못해?!”

유리한이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분은 디에스 라고가 대신 해소해 줬다.

“악!”

니르로르의 작은 머리통에 딱밤을 때려버린 것이다.

“유리한아! 저 자식이 짐을 때렸도다!”

“잘했어, 디에스.”

“유리한아!”

니르로르가 빽빽 소리 질렀지만 유리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니르로르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고요한을 쳐다봤다. 고요한은 싱긋 웃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인간들.’

니르로르가 이를 드러내는 순간,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아, 여기 있었군요!”

화산의 2대 제자, 백명이었다.

“오, 안녕하세요? 사파들은 다 처리하고 오셨나 봐요?”

“네, 덕분입니다.”

“저는 한 게 없는걸요?”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백명은 고개 숙이며 말했다.

“당신이 두 협객의 우두머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당신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저분들은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

‘저렇게 들으니 뭔가, 내가 두목이 된 것 같네.’

유리한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백명은 계속해서 인사했다.

“두 협객이 아니었다면 저희 모두 죽었을 겁니다. 설마, 사파와 마교가 손을 잡았을 줄이야!”

그야, 당연했다. 사파는 만물의 마법사들이고 마교는 천하태평의 무인들이니까.

어찌 됐든 플레이어들의 세력.

그들이 손을 잡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에 아주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더군요. 자칫 잘못하면 전멸할 뻔했습니다.”

백명이 이를 으득 갈았다. 유리한은 그에게 태연히 물었다.

“종남은요? 그들도 가까이에 묵고 있지 않았나요?”

“아, 그 녀석들 역시 무사합니다. 협객께서는 참으로 정이 넘치시는군요.”

“하하,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말이에요.”

뭐, 칭찬을 해주는데 기분 나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진심인 것 같고.’

비꼬는 투 따위 없는 진정성 어린 말. 유리한은 백명이란 자가 마음에 들었다.

한편, 디에스 라고는 그에게 괜한 경계심을 세웠다.

유리한이 저렇게 올곧은 신념을 지닌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다.

‘뭐, 그래 봤자 무림의 사람.’

이곳을 떠나면 잊힐 자라고 생각하며 디에스 라고는 어서 그가 제 눈앞에서, 아니, 유리한의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백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발길을 붙잡았다.

“협객,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화산으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긴장되는지 백명은 꿀꺽, 침을 삼켰다.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어디로요?”

“화산, 저희의 문파로 말입니다.”

저희가 왜요?

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유리한은 가까스로 제 입을 틀어막고는 물었다.

“화산에 저희의 힘이 필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있습니다.”

백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무림은 보다시피 사파와 마교의 위협으로 분열 직전입니다. 아니, 이미 분열되었죠.”

유리한은 조금 전, 화산과 종남이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저희는 원래 개방의 중재로 서로를 견제하며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오호, 개방은 거지들의 소굴이라고 들었는데 딱히 그런 건 또 아닌 모양이구나?’

유리한은 백명과의 대화를 끝낸 후 무조건 T-Network를 통해 ‘무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재미있는 곳이란 말이지.’

힘이 전부인 세계인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라니. 유리한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그런 세계가 왜…….’

탑의 주인이란 놈과 거래해서 이렇게 탑에 갇히게 된 걸까? 유리한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머릿속에서 니르로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것 아느냐? 녀석은, 그 빌어먹을 녀석은 거래를 했다. 드래곤과 정령들, 그리고 인간. 그러니까 짐이 살던 세상과 말이다.’

‘정령왕들은 그 녀석에게 부탁했지. 이 세상을 위협하는 블랙 드래곤을 없애달라고. 그 대가로 그 녀석은 말했다.’

‘짐은 그래서 너희의 앞에 나타나게 됐다. 너희가 파괴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너희를 파괴해야 하는 존재로.’

무림은, 무엇을 이 세상에서 지우고자 했던 걸까?

유리한이 백명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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