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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49)화 (149/235)

149화 

* * *

콰광! 콰과광!

소리 한번 요란했다. 온 숲이 울리며 암벽의 돌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누가 싸우고 있는 걸까?’

그녀는 암벽을 타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이런 소란이라니, 안 그래도 조금 전의 싸움으로 지반이 많이 약해진 곳이다.

‘저렇게 싸워대면 무너질 테지.’

그럼 협곡 곳곳에 존재하는 객잔이 큰 피해를 입을 거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객잔의 벽곡단은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 음식을 제공해 준 곳이 무너진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물론, 솔직히 몸이 근질거렸다. 니르로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탑의 주인.’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런 탑을 만들었을까? 아니, 애초에.

‘왜 우리 세상에 튜토리얼을 펼친 거지?’

그가 정말 모든 일의 흑막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니르로르의 이야기로만 한정하면 흑막은 바로 그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른다고 했지만’

어쨌든 그 빌어먹을 자식을 탑 끝까지 올라 만나고 말겠다고 유리한은 다짐했다.

그리고 그사이.

“죽여라! 무당 놈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죽여!”

“저 땡중 자식들을 죽여라! 겁먹지 마라! 어차피 상대는 땡중! 우리 무당의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다!”

싸움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 유리한아, 말릴 수 있겠느냐?

“아마도?”

유리한이 품에 쏙 들어가 있는 니르로르를 끄집어냈다.

“너는 걸리적거릴 것 같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 무엄하도다! 짐이 네 발목이라도 붙잡을 거로 생각하느냐!

“응, 그리고 방해도 되겠지.”

태연히 대꾸하는 말에 니르로르가 충격 먹은 얼굴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유리한은 서로 주먹과 검 따위를 맞붙이고 있는 상대들을 관찰했다.

한쪽은 검은 도복에 붉은 끈을 상징처럼 갖추고 있었고, 한쪽은 머리를 깔끔하게 민 중들이었다.

유리한은 미간을 좁혔다. 서로 붙고 있는 두 세력이 어느 곳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T-Network를 살펴본다는 걸 깜빡했네.’

유리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저들은 사파도 마교도 아니란 말씀.

그러니까.

“일단, 적은 아니란 소리지.”

휘익, 탁!

유리한이 기다란 창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자고로 싸움은 주먹으로 말리는 게 최고다.

고요한이었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그녀를 말렸겠지만,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리며 싸움의 한복판에 달려들었다.

* * *

쿠우웅―!

커다란 진동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있는 곳을 울렸다.

“끝났나 보군.”

“그러게요. 유리한 씨가 정리를 다 했나 봐요.”

사내들 중 한 명, 고요한이 디에스 라고의 말에 맞장구쳤다.

리신은, 아니, 백명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유리니까.”

“유리한 씨니까요.”

리신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십니까?”

“유리를 찾으러 가야지.”

“그리고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요한이 생글 웃었다.

“유리한 씨가 누구의 싸움을 말렸는지요.”

그 나긋한 목소리에 리신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구, 궁금하지요! 물론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오히려 제압당했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리 말하려던 리신이 입을 다물었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리신을 보고 있던 디에스 라고가 입을 열었다.

“유리가 제압을 당했을 거라고? 누군지도 모를 녀석들한테?”

“웃기는 소리를 다 하네요.”

고요한이 싱긋 웃었다.

리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디에스 라고야 성격 나쁘기로 워낙 유명한 자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고요한, 이자는 분명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북해빙궁에서 마주쳤던 그는 절대로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설마 그새 물들어 버린 건가?’

리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누, 누구냐!”

“거기 정체를 밝혀라!”

화산의 3대 제자들이 검을 쥐고 어둠 속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리신 역시 천천히 다가오는 인기척에 얼굴을 굳혔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평온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이 누구의 것인지 진작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제가 놀라게 했나 봐요? 저예요, 저.”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나타난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니르로르는 덤이었고, 유리한의 손에는 두 남자가 기절한 채로 잡혀 있었다.

그들을 알아본 화산의 3대 제자가 숨을 들이켜 마셨다.

“저, 저자들은……!”

“오, 누군지 아세요?”

화산의 3대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한 건 리신이었다.

“저자들은 무당과 소림에 있어서 차기 제일 검(第一劍)이라고 불리는 자들입니다.”

“차기 제일 검?”

“그만큼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란 겁니다.”

무공이라고 하면 곧 마력이었다. 유리한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움직여 두 사람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쩐지 제압하기 힘들더라니. 그래서 그랬구나?”

“유리한 씨, 혹시 다친 곳 있으세요?”

“아, 다친 곳은 없어요. 살짝 긁힌 곳만 있죠.”

“그래도 어디 봐요.”

고요한이 유리한의 상처를 살폈다. 그사이 무당과 소림의 차기 제일 검이라는 자들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아야야.”

“아오, 머리야.”

머리와 복부 따위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킨 그들이 숨을 들이켜 마셨다.

그들을 하나같이 경계하고 있는 화산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차기 무당의 제일 검이 될 거라는 진창과 차기 소림의 제일 검이 될 거라는 소협이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때 유리한이 말했다.

“두 사람 다 진정해요. 우리는 적이 아니니까.”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이 마녀야! 그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소협과 진창이 차례대로 악을 내질렀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진정은커녕 오히려 두 사람의 화만 돋우어 버린 유리한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제가 적당히 싸우라고 했잖아요. 이곳은 사파와 마교 때문에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요.”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무당의 진창이 유리한을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소위 말해 삿대질이었다.

그에 디에스 라고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봐, 너.”

디에스 라고의 금빛 두 눈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그 손가락 부러뜨리기 전에 거두도록 해라.”

살기 어린 목소리에 진창이 이를 드러냈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드러낸 송곳니였다.

“크윽! 네, 네놈은 뭐 하는 작자이기에……!”

“진창.”

리신이 백명의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진창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백명?! 화산의 제일 검이라고 불리는 네놈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이냐?!”

“하하, 화산의 제일 검이라니, 부끄럽네. 사형들께서 계시는 한, 나는 한낱 이무기일 뿐이지.”

풉, 유리한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저 자식 연기 잘하네.’

마법사가 아니라 탑의 바깥에서 배우가 됐으면 돈깨나 만졌을 것 같다고 유리한은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리신은 백명으로서 진창과 소협을 진정시켰다.

“우리는 뜻이 있어 협객분들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라네.”

“협객은 무슨! 시정잡배도 저런 시정잡배가 없네! 신성한 비무 중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아, 그게 비무였어요?”

유리한이 진창의 말을 끊고는 씨익 웃었다.

“나는 시정잡배들 간의 싸움인 줄 알았지 뭐예요?”

진창은 순간 이성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소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서 말했다.

“백명, 말리지 말게. 협객인지 뭔지 내 저 마녀를 기필코 때려눕혀야겠으니.”

“맞습니다, 백명. 소림의 이름을 걸고 저자에게 매운맛을 조금 보여주겠습니다.”

진창과 소협의 말에 유리한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탑의 바깥에서는 저를 향해 이런 식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야, 그녀는 유리한.

세상을 구한 영웅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의를 드러낸다고 해도 그녀를 알아본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고개를 낮췄다.

그래서 유리한은 소망의 탑이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뭐, 부서뜨리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지.’

그녀는 아까 그들의 싸움을 말렸던 창을 다시 꺼내 들었다.

“유리.”

“유리한 씨.”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그녀의 옆에 섰다. 유리한이 그 둘보다 한 발짝 앞서 내딛고는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유리한이 그렇게 나오자 리신은 백명으로서 진창과 소협을 진정시키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사형,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켜만 보고 있자꾸나.”

화산의 3대 제자는 존경해 마지않는 백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도 유리한의 뜻을 존중해 자리에서 물러나 줬다.

“니르로르, 너도 디에스랑 요한한테 가 있어.”

- 싫도다.

“나중에 맞았다고 울고불고해도 나는 모른다?”

그 말에 유리한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니르로르가 자리를 피해 고요한의 머리 위에 앉았다.

유리한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누구부터 덤빌래요?”

“하! 역시 협객이라 그런지 무림의 예법 따윈 모르는구나!”

“예법? 이곳에 그런 것도 있어요? 거참 신기한 세상이네.”

유리한이 감탄할 때, 진창의 옆에 있던 소협이 손바닥에 주먹을 맞대고는 외쳤다.

“소림의 2대 제자, 소협! 마녀, 아니, 당신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바입니다!”

그 뒤를 따라 진창이 말했다.

“무당의 2대 제자, 진창! 네 녀석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바다!”

유리한이 입술을 오므렸다.

‘나도 해야 하나?’

분위기를 보니 해야 할 것 같다.

그 때문에 유리한은 무기를 잠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한 손바닥을 들어 주먹을 맞대 인사했다.

“지나가던 협객인 유리한입니다. 한 수 가르쳐드릴게요. 누구부터 덤빌래요?”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이익!”

무당의 진창을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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