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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53)화 (153/235)

153화 

* * *

오랜만에 정신을 잃은 유리한은 그리운 얼굴을 만났다.

“누나, 일어나.”

“으음, 지한이?”

“응, 나야.”

그 대답에 유리한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한아!”

유지한이, 자신이 없던 사이에 훌쩍 커버린 유지한이 제 앞에서 웃고 있었다.

“지한아, 유지한!”

유리한이 제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울 듯 웃었다.

“아팠지? 많이 아팠지? 누나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사과부터 먼저 나가버리고 말았다. 유지한은 그런 누나를 다정하게 안았다.

“괜찮아, 안 아팠어.”

“유지한, 내가 거짓말하면 나쁜 어린이라고 했지?”

“하하,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인데?”

그랬다. 유지한은 유리한이 없는 사이에 어른이 됐다. 차갑기 그지없는 지하 실험실에서 말이다.

“지한아.”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를 두고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세상 따위 그냥. 그냥…….”

멸망하게 뒀어야 했다.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누나.”

유지한이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꼭 끌어 잡았다.

“나는 괜찮아. 그보다 우리 애들. 서아랑 시우. 누나 조카들 좀 잘 돌봐줘.”

“당연하지.”

유리한이 금방에라도 울 듯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언제 약속 어긴 적 있어?”

“있는데?”

유리한이 세상을 위해 희생을 자처할 때, 그녀는 동생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었다.

꼭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이 동생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유리한이 서글프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거짓말 안 할게. 서아랑 시우, 내가 잘 돌볼게. 이 빌어먹을 탑을 무너뜨린 후에 사랑으로 돌볼게.”

“그래야지.”

유지한이 싱긋 미소를 그렸다.

“나를 살리겠다니 뭐니 그런 소원은 빌지 마. 내가 원하지 않으니까. 혹시라도 그런 소원 빌면 평생 누나 원망할 거야.”

유리한이 애달프게 웃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다짐했잖아. 이 탑, 꼭 무너뜨리기로.”

유리한이 어른이 된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지한아, 내 동생.”

“응, 누나.”

“누나 천천히 갈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응, 꼭 천천히 와야 해. 약속이야. 알겠지?”

유리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바람이 만들어낸 꿈이라고 해도 좋았다.

훌쩍 커버린 동생을 이렇게라도 만났으니까, 이렇게라도 대화를 나누며 얼굴을 매만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유리한은 좋았다.

“누나.”

“응, 지한아.”

유지한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유리한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싫어, 지한아. 안 돼.”

또한, 알아차렸다. 유지한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란 것을.

“지한아, 가지 마.”

“누나, 있잖아.”

유지한이 유리한과 똑같은 얼굴로 울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심해. 아라 누나를 찾아왔던 사람은…….”

유지한이 입을 뻐금거렸다.

하지만 유리한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저 밝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동생이 보였을 뿐.

“지한아! 유지한!”

유리한이 애타게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누군가 붙잡았다.

“유리.”

“허억!”

유리한이 잠에서 깨어났다. 정확히는 꾸고 있던 꿈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유리한은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말했다.

“지한이를 봤어.”

“그래.”

디에스 라고가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줬다.

“우리 지한이, 정말 멋지게 자랐던데. 정말 멋지게 컸던데.”

내뱉는 말이 형편없이 떨렸다.

“지한이가 보고 싶어.”

하지만 볼 수 없다. 떠난 이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저 그리워할 수밖에.

“흑, 으흐…….”

유리한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디에스 라고는 그저 기다렸다. 그녀가 눈물을 멈추기를.

유리한을 제 품에 꼭 끌어안으며 그렇게 기다렸다.

* * *

“아, 젠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미안, 디에스.”

유리한이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디에스 라고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는 아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괜찮다. 내 품이 네게 안정을 줬다면 다행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낯 뜨거운 소리에 유리한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보다 여기는 어디야? 화산?”

“그래, 화산이다. 이곳은 손님에게 내주는 방이라고 하더군.”

“오, 그래?”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한옥이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네.”

마치, 종로 익선동 한옥 거리의 어느 카페 안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니면 전주.’

유리한이 어릴 적 친구들과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물론,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었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빠르게 추억에서 벗어나 디에스 라고에게 물었다.

“요한이랑 니르로르는?”

“장문인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장문인이라고 하면 문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하는 거지?”

“그래.”

디에스 라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유리한이 말했다.

“그럼, 나도 인사를 하러 가야겠네? 손님으로 온 거니까 말이야. 디에스, 너는 장문인께 인사했어?”

“아니.”

디에스 라고가 고개를 젓고는 유리한의 손을 끌어 잡았다.

“어엇?!”

잠에서 깨어났다고 하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유리한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손쉽게 디에스 라고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됐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조금 더 쉬라는 뜻이다, 유리.”

“나 이제 괜찮은데?”

“아니.”

디에스 라고가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얼굴이었다. 지금 나가면 모두가 네가 운 것을 알게 될 거다.”

“아, 이런.”

유리한이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하긴, 디에스 라고의 앞에서 펑펑 울었던 자신이다.

‘분명 눈이 부었을 거야.’

유리한이 눈가를 꾹꾹 눌렀다.

“나 못생겨졌지?”

“아니.”

“디에스, 계속 아니라고만 대답하지 말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을래?”

그 말에 디에스 라고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유리, 너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적이 없는데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거지?”

“뭐?”

“혹시 예쁘다는 대답을 원하는 건가?”

“나 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얼굴을 밀어냈다.

디에스 라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유리한이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비켜, 좀 쉬어야겠으니까.”

“잘 생각했다. 인사는 나중에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네 눈의 붓기가 모두 빠진 다음에 말이다.”

“시끄러!”

유리한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디에스 라고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침대 위로 꾸물꾸물 올라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디에스 라고 앞에서 꼴사납게 울었다는 것에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는데!’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 수없이 많은 동료를 잃었을 때도 디에스의 앞에서 울지 않았던 유리한이었다.

‘유지한, 이 자식. 감히 누나를 이렇게 울렸겠다?’

유리한이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동생을 향해 이를 으득 갈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애정이 듬뿍 담긴 투정이었다.

‘보고 싶다.’

유리한이 침대 위에서 꾸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시우랑 서아, 잘 지내고 있을까? 행복 머니 자식들이 애들 잘 돌봐주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면 그들 모두 고통에 울부짖게 만들 작정인 유리한이었다.

‘69층의 문지기를 격파한 후, 50층에 내려가 애들을 보러 가자.’

하지만 곧 유리한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야, 70층의 세계에 있다는 마법사 먼저 찾아봐야지.’

멀린 아서.

문득 떠오르는 이름에 유리한이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세상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을 자처한 그가 정말 살아 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누군가 그를 흉내 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유리한의 두 눈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떠오른 건 꿈속에서 유지한이 제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말이었다.

‘누나, 있잖아. 조심해. 아라 누나를 찾아왔던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듣지 못했던 유리한이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주아라에게 누군가 접근한 사람이 있다는 건 망자의 아우성(B)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한이도 알고 있는 사람일까?’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주아라도, 유지한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

‘누구든 간에 죽여버리겠어.’

주아라 때와 같이 한 번의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 따위 없는 유리한이었다.

‘지한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유리한은 몰려오는 수마에 일단 몸을 맡기기로 했다.

‘망할 니르로르.’

도대체 마력을 얼마나 빌려 간 것인지 온몸이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설마 몸살이 난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플레이어가 된 이후, 몸살 한 번 난 적 없는 유리한이었다.

‘에이, 설마 정말 그러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 줄도 모르고 유리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유리한은 콜록거리며 잠에서 깨어나게 됐다. 일어나자마자 느낀 건 오한이었다.

“으으, 추워.”

유리한이 옷을 여미며 침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말았다.

밖은 이미 어둑하게 해가 졌고, 누군가를 부르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방이 어디인지 모르는 유리한이었다. 그녀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이 내가 몸살에 걸리다니. 빌어먹을 니르로르.”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 때였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러느냐, 유리한아?”

“니르로르?”

아이의 모습인 니르로르가 두 눈을 비비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의자 위에서 말이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러는 너는 왜 그러고 있느냐? 혹시 어디 아픈 것이냐?”

“알 거 없어. 내 질문에 대답이나 먼저 해.”

날 선 목소리에 니르로르가 뚱하게 말했다.

“음흉한 자식의 방에서 같이 자려다가 쫓겨났다. 고요한, 그 녀석은 너를 위한 영양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짐을 쫓아냈고. 그래서 이렇게 네 방에 온 것이다.”

영양제라는 단어에 유리한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분명 리스체가스에서 질리도록 먹었던 그것일 게 분명했다.

“큰일 났네.”

“무엇이 말이냐?”

“너는 알 거 없어.”

유리한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몸이 기우뚱 옆으로 넘어갔다.

‘아, 이런.’

유리한이 다가올 고통에 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몸이 뜨겁구나, 유리한아.”

나지막한 미성이 그녀의 귓가를 간질거렸다. 유리한이 놀라 니르로르를 쳐다봤다. 어느새 어른의 모습을 취한 니르로르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다. 네게 암만 마력을 빌려 썼다고 해도 본체로 돌아간 후유증이 상당해서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불러오겠다.”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침대 위에 앉히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붙잡을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곧, 그가 돌아왔다.

“아프시다고요?”

백명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리신과 함께 말이다.

유리한이 사납게 얼굴을 구겼다.

‘왜 하필 저 자식을 데리고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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