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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61)화 (161/235)

161화 

【 20. 동맹 】

그레이시 아서가 쯧 혀를 차고 몸을 뒤로 물렀다.

쉽게 뿌리칠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탓이다.

“웬 놈이냐?”

나타난 사람은 고요한이었다.

고요한이 디에스 라고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레이시 아서를 향해 검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디에스 씨, 정신 차리세요!”

그레이시 아서가 아닌, 디에스 라고를 향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좋지?’

어쩔 줄 몰라 하던 고요한은 느껴지는 시선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레이시 아서가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레이시 아서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네놈!”

그가 순식간에 고요한의 앞에 당도했다.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구나!”

“크윽!”

목이 붙잡혔다. 고요한이 괴로움에 발버둥 쳤다. 마법을 부리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구한 건 유리한이었다.

“요한!”

유리한이 구천하의 복부를 냅다 걷어차고는 그레이시 아서를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그레이시 아서가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물러났다.

유리한은 허공에서 아래로 내려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잠깐의 싸움이었는데 몸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빌어먹을.’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냥 화산에서 도망칠 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순간 그렇게 생각했던 유리한이 픽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유리한. 내가 도망이라니.’

그녀가 다시 픽 웃고는 바닥에 꽂힌 창을 집어 들었다.

“요한,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유리한 씨는 괜찮으세요?”

유리한은 척 보기에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녀가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네, 괜찮아요. 디에스 좀 정신 차리게 해주실래요? 한 대 때리면 정신 차릴 거예요. 아님, 니르로르, 네가 좀 때려줘.”

- 알겠느니라.

싸움 내내 유리한의 머리에 매달려 있던 니르로르가 아래로 내려왔다.

유리한은 한층 가벼워진 머리에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창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만물의 수장님?”

“종주는 어디로 보내셨소?”

“글쎄, 저승이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네.”

유리한이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그레이시 아서의 옆으로 천하태평(天下泰平)의 구천하가 섰기 때문이다.

유리한이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곤란한데.’

다시 현기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몸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이곳에서 무너지면 안 됐다.

그럴 수 없었다.

유리한이 이를 꽉 깨물며 창을 고쳐 쥐는 순간.

“만물과 천하태평 녀석들을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없이 제거하도록 해라!”

와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무림 사람이 아닌 플레이어가 화산에 들이닥쳤다.

유리한이 흠칫 놀랐다. 구천하와 그레이시 아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세 사람 다 놀란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며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만물의 수장님과 천하태평의 종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푸른 머리칼을 지닌 여자가 세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물론, 유리한 님께도요.”

청의 기사단장, 청예신.

유리한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청예신 씨? 다, 당신이 어떻게…….”

“종주께서 부르셨거든요. 아, 수장께서 부르셨나?”

청예신이 그렇게 답해 주고는 말을 이었다.

“뮤즈의 백작에게 가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웬걸?”

웃는 낯이었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내 딸을 죽인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가 저들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아주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지 뭐예요?”

말을 끝마치면서 다시 싱긋 미소를 그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청예신의 두 눈에 담겨 있는 것은 살기였다. 그때, 함께 나타난 푸른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단장님,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이는 지금 뭐 하고 있죠?”

“가장 앞장서서 만물의 마법사와 천하태평의 무인들을 베는 중이랍니다.”

“그래요? 그럼, 가서 도와주도록 해요, 엘레나.”

“네, 단장님.”

엘레나 리본, 청의 기사단에 속한 유일한 마법사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청예신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자, 수장님과 종주께서는 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실까요? 아, 저 혼자서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불공평하니 한 명을 더 부를게요. 그래도 되죠?”

그레이시 아서와 구천하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청예신은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말했다.

“맹주님, 어서 나오세요. 여기까지 와서 뭐가 부끄럽다고 그렇게 숨어 계시나요?”

“망할, 우리 단장님께서는 그딴 식으로만 굴지 않으면 내 마음에 아주 쏙 들 텐데 말이야.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고.”

쿵! 남자의 등장에 땅이 울렸다. 유리한은 그를 알아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랴오륭?”

“영웅님, 이것 참 오랜만입니다.”

랴오륭이 뚱한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는 49층에서 지독한 악연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는.

“이봐! 너도 어서 나와!”

“네, 랴오륭 씨.”

그녀가 맡긴 서문기율 때문이었다.

서문기율을 해치면 랴오륭 역시 죽는다. 또한, 그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줘야 한다.

서문기율, 그는 항상 유리한의 힘이 되어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랴오륭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혼자서 뮤즈의 백작을 찾아갔더라면 무림에 올 일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49층의 일이 일어난 후부터 항상 서문기율과 움직였고, 그렇기에 그와 함께 백작으로부터 만물과 천하태평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도우러 가죠.’

‘제정신이야? 네까짓 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랴오륭 씨는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빌어먹을 루키였다.

힘을 키우겠답시고 49층을 벗어나 올라간 세계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재능을 꽃피울 때 얼마나 놀라웠던가?

동시에 항상 유리한, 그녀의 뒤를 쫓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흥, 랴오륭이 다시 한번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종주는 내가 상대하지. 우리 예쁜 단장님께서는 당연히.”

“수장님을 상대해야죠.”

청예신이 검을 꺼내 들었다.

“내 딸이 그렇게 져버린 이유가 수장님의 빌어먹을 욕심 때문이었다는데, 어미 된 자로서 복수를 좀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말을 끝마치자마자 청예신은 그레이시 아서를 향해 땅을 박찼다. 만물의 수장이 이를 으득 갈며 마법을 펼쳤다.

괜히 단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닌 듯 청예신은 가볍게 그것들을 파훼했다.

유리한이 그녀가 펼치는 아름다운 검술에 멍한 얼굴을 보일 때였다.

“유리.”

“오, 디에스. 정신 차렸어?”

디에스의 두 뺨이 붉게 익어 있었다. 니르로르가 앙증맞은 발로 열심히 때린 덕분이었다.

디에스 라고를 깨우라는 원대한 임무를 끝마친 니르로르는 뿌듯한 얼굴로 유리한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디에스 라고가 날 선 시선으로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말했다.

“우리는 이만 자리를 피하지.”

“하지만.”

“네 몸은 네가 제일 잘 알 테지. 너는 지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유리한이 주먹을 꽉 쥐었다.

디에스 라고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 더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가는.

‘얽혀버린 마력이 폭주할 거야.’

니르로르에게 빌려준 절반 이상의 마력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마력이 폭주하게 된다면 이 일대는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망할.’

유리한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무력하다고 생각한 적도, 그렇게 느낀 적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력할 줄이야.’

그녀는 자괴감에 일그러진 얼굴로 디에스 라고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단장.”

“네, 디에스 씨.”

타이밍 좋게 그들 곁으로 몸을 피한 청예신이 싱긋 웃었다.

“우리는 이만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만.”

“그러도록 하세요. 유리한 씨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요. 옆의 남성분은 태양교의 사제셨던 요한이죠?”

“네? 네, 맞습니다.”

청예신이 그레이시 아서의 마법을 튕겨내고는 말했다.

“유리한 씨 좀 살펴봐 주세요. 저는 저 여우 같은 인간한테 흠집 좀 내고 갈 테니까요.”

가볍기 그지없는 말투.

청예신은 그만큼 이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만 있을까? 복수심으로 아주 활활 불타는 중이었다.

“서문기율! 너도 함께 자리를 피해라!”

“아니요! 저도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싸우고 싶어요!”

“도움이 안 되니까 피하라고 하는 거다, 이 얼간아!”

랴오륭이 서문기율의 목덜미를 잡고는 유리한이 있는 쪽으로 집어 던졌다.

날아오는 그를 디에스 라고가 가볍게 낚아챘다.

“그 자식 좀 부탁하지. 어이, 영웅님. 당신이 손수 구한 놈에게 흠집을 내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설마요.”

유리한이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에서 자리를 피했다.

“유리한 님, 괜찮으십니까?”

“서문기율 씨, 제가 분명 ‘님’ 자 붙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말 더럽게 안 듣네요.”

그 말에 서문기율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기억이 오락가락하는군요.”

서문기율의 입에서 나온 재미난 표현에 유리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쿨럭……!”

울컥, 피가 토해졌다.

“유리한 씨!”

“유리!”

“유리한 님!”

자리를 피하던 일행이 동시에 멈춰 섰다. 유리한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니르로르도 내려왔다.

“유리한아, 괜찮으냐?”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한 니르로르가 급히 그녀를 살폈다. 유리한은 이를 으득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하려고 하면 속에서 피가 울컥 토해질 기분이었으니.

더욱이 너무 어지러웠다.

유리한이 고개를 숙이고선 밭은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게 올라오는 기운에 제 손을 잡은 사람이 고요한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얽혀 있는 마력이 요동치는 것은 여전했다.

‘아, 힘들어.’

눈꺼풀이 자꾸만 감겼다. 유리한은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랬다가는 결국 마력이 폭주하고 말 테니. 그렇게 유리한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있을 때.

“이런, 유리한 님. 그게 무슨 꼴입니까?”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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