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75)화 (175/235)

175화 

“둘 다 그만 고개를 들도록 하려무나.”

그 말에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가 서로를 흘긋거리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마자 시드니가 물었다.

“너희가 데리고 있다는 해츨링이 도대체 어떤 녀석이기에 우리 아이가 필요하다는 거지?”

“니르로르.”

시드니가 표정을 굳혔다. 유리한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서 추방당했던 죽음의 드래곤이요. 아, 지금은 죽음의 드래곤이 아니라 어둠의 드래곤인가? 어쨌든 그런 이름이에요.”

“문제는 녀석이 모든 힘을 소진했다는 거지.”

“맞아요, 그래서 죽어가고 있어요.”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절한 채 잠든 니르로르를 보며 유리한은 뚜렷이 느꼈었다.

니르로르, 죽음의 드래곤이었으나 어둠의 드래곤으로 격이 떨어진 그가 죽어가고 있음을.

“그럼, 우리 아이의 이름을 대신 받게 해달라는 이유는?”

“그 이름으로 니르로르의 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예요.”

“그럼,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요, 적어도 그 녀석처럼 재앙은 되지 않겠죠.”

한 마디로 도박이었다.

블랙 드래곤은 이미 멸족된 자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다른 이름이 주어졌다. 그것이 바로, 니르로르와 같이 ‘어둠의 드래곤’과도 같은 격(格).

그러니 그들은 변종이라 불리며 검은 비늘을 갖고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고는 했다. 니르로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 그 행위는 더욱 심해졌다.

그와 같은 재앙이 또 한 번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누군가 대신 받게 된다면.

‘화이트 드래곤들이 보호 중인 해츨링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지.’

유리한은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시드니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유리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바로 그때.

- 죽여라! 저 재앙의 싹을 죽여 이 세상을 지켜라!!

동굴 뒤쪽에서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양, 데니스가 희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장로님!”

“겁 없는 인간들아, 대화는 나중으로 미뤄야겠구나.”

“아니요.”

유리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가죠. 꽤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알잖아요, 저희 실력?

유리한은 굳이 뒷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꾸나.”

시드니가 허락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후웅, 그녀가 등장했을 때와 똑같이 돌풍이 일어났다. 곧, 바람이 수그러들고 나타난 건 거대한 몸집의 드래곤이었다.

- 내 등에 올라타거라. 한시라도 빨리 내 딸을 구하러 가야 할 것 같으니.

딸이라니?

유리한이 놀란 눈을 보였다.

* * *

우르릉, 하늘이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가 아리아텐의 레어 안쪽까지 들렸다. 그뿐이랴? 대지가 요동치는 그 흔들림도 계속해서 고요한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더욱이 그를 예민하게 만드는 건.

‘니르로르 씨.’

자신의 품에서 점점 숨이 약해지고 있는 니르로르였다. 몇 번이고 힐을 쏟아부어도 그의 상태는 나아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될 뿐.

그때였다.

“하늘 머리 인간, 너는 시드니가 왜 그 변종을 보호하고 있는지 아느냐?”

‘하늘 머리 인간’이라고 불린 고요한이 놀란 눈을 보였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 거지?”

“니르로르 씨도 저를 그렇게 불렀거든요. 지금은 이름으로 부르지만요.”

그 말에 아리아텐이 물었다.

“네 이름이?”

“요한이요, 고요한.”

“그래, 요한.”

아리아텐이 고요한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금 물었다.

“너는 시드니가 왜 그 변종을 보호 중인지 알 것 같으냐?”

“시드니라면 화이트 드래곤의 우두머리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래, 그 녀석들의 수장이다.”

그 말에 고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글쎄요. 그분께서 변종이라는 블랙 드래곤을 낳으신 것 같지는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동족이 낳은 해츨링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다.”

아리아텐이 가볍게 부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시드니에게는 늦둥이 딸이 있지. 그 딸이 낳은 아이가 바로 블랙 드래곤이다.”

그래서 시드니를 비롯한 화이트 드래곤들이 변종으로 태어난 녀석을 보호하는 거라며 아리아텐은 말했다.

“더욱이 화이트 드래곤들은 동족 간에 애정이 참 넘치는 녀석들이라서 말이지.”

“그래서 시드니 님의 따님과 레드 드래곤 사이에서 태어난 해츨링을 보호하고 있는 거군요.”

“그래, 그게 아니었다면 그 녀석도 배척당했을 거다.”

“니르로르 씨처럼요?”

아리아텐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 으… 으음…….

“니르로르 씨? 정신이 드세요?”

고요한이 황급히 물었다. 그 즉시 니르로르의 몸이 환하게 빛났다. 그 빛이 수그러든 후 나타난 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요한아, 고요한아.”

“네, 니르로르 씨.”

“춥다. 너무 춥도다.”

니르로르가 벌벌 떨며 고요한의 품을 파고들었다. 고요한은 황급히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아이에게 둘러주었다.

“어때요? 이제 안 춥죠?”

니르로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전히 고요한의 품속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벌벌 떨었다.

고요한은 니르로르에게 힐을 시전했다. 하지만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요한이 입술을 꾹 깨물 때.

“이리 줘보거라.”

아리아텐이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새 기절하듯 잠든 채로 고요한의 품에 있던 니르로르를 빼앗듯이 안았다. 그녀는 제 품에 들어온 어린아이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말하는 꼬락서니는 정말이지, 제 아비를 꼭 닮았어. 예나 지금이나…….”

아리아텐이 그리움에 잠긴 눈빛으로 말했다. 고요한이 그 말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니르로르 씨를 미워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아리아텐은 잠시 말이 없다가 말했다.

“죽음의 드래곤이니, 재앙이니. 남들에게 그렇게 불리며 배척당했지만 내 아이다.”

그러니.

“미워할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럼.”

“왜 화이트 드래곤들처럼 하지 않았느냐고?”

고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텐은 쓰라린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내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었으니까.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도 별 볼 일 없는 작자들이었거든.”

다시금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끊겼다. 내려앉은 불편한 침묵을 깨뜨린 건,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를 안내해 주고 온 리아그였다.

“어머니, 저 다녀왔어요.”

아리아텐에게 인사한 리아그가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어머니의 품에 니르로르가 곤히 잠든 채 안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가 좋은 꿈을 꾸시는 것 같네요.”

그 말대로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춥다면서 금방 죽을 것처럼 굴던 니르로르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고요한은 순간 느꼈다.

솜사탕이나 달고나를 먹고 있는 니르로르보다 지금, 이 순간의 그가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고.

* * *

콰과광―!

폭음 속에서 시드니의 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 에이런!

“어머니!”

시드니의 늦둥이 막내딸, 에이런이 금방이라도 울 듯 그녀를 쳐다봤다.

에이런은 드래곤의 모습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랬다가는 품속의 어린 아들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시드니가 제 딸을 습격한 드래곤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면서, 등에 올라타 있는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에게 물었다.

- 너희 둘, 내 딸을 지켜줄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유리한과 디에스 라고가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다만, 장로님. 따님을 다친 곳 없이 몸 성하게 지켜드리면.”

- 너희의 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지.

“좋아요, 감사합니다.”

유리한이 만족스럽게 웃고는 디에스 라고와 함께 시드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평범한 인간은 물론이고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뛰어내리기에는 겁이 날 정도의 높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득한 스탯 능력치를 가진 플레이어들이었고.

“이, 인간?”

그렇기에 에이런의 앞에 무사히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더듬거리며 묻는 에이런에게 유리한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인간이에요.”

그렇게 말한 유리한은 날아오는 공격을 곧장 파훼시켰다.

“보다시피 평범한 인간은 아니고, 장로님으로부터 당신을 지켜달란 부탁을 받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비롯해서 아이까지 지킬 수 있느냐고 물으려던 에이런은 입을 다물었다. 유리한이 레드 드래곤과 블루 드래곤들의 마법을 손쉽게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장로님네 따님.”

“에이런이에요.”

“네, 에이런 님. 그거 아세요?”

유리한이 창을 고쳐 잡고는 씨익 웃었다.

“인간들의 마법은, 드래곤들의 마법으로부터 따온 거죠.”

드래곤의 마법을 인간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정리한 사람이 바로 멀린 아서.

유리한이 옛 동료를 떠올리며 미소를 그렸다.

“그래서 원리만 알면 쉬워요.”

유리한이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마법에 창을 휘둘렀다.

“이렇게 부수는 것이.”

파스슷―!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마법들에 에이런이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인간도 드래곤의 마법을 상대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어차피 질 것을 알았기에, 죽음을 자처하는 행동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간들은 도대체.’

에이런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린 순간.

슈욱―!

날아간 창이 에이런을 습격하려던 드래곤의 가슴팍에 꽂혔다.

“커헉!”

인간의 모습을 취해 그녀를 공격하려던 푸른 머리칼의 남자가 피를 토했다.

유리한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에이런 님, 아이를 지키려면 한눈팔면 안 되죠.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도 마법을 펼칠 수 있죠?”

“네? 네, 물론이죠!”

에이런이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에 방어진을 펼쳤다.

“좋아요.”

유리한이 하얗게 빛나는 방어진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그때, 하늘 위로 시드니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인간들아, 막아라! 저 망할 것들이 내 딸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도록 해!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부모는 쉽게 이성을 잃는다더니.

‘장로님께서 딱 그 꼴이네.’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고는 창을 휘둘렀다. 등을 맞대고 있는 사람은 디에스 라고. 그렇기에 뒤쪽 상황은 전혀 걱정이 안 됐다.

“크아악!”

“아악!”

인간의 모습을 취한 블루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이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창에 쓰러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위가 고요해졌다.

에이런이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는 벌벌 떨며 물었다.

“끄, 끝났나요?”

“에이런, 그건 굉장히 위험한 마법의 주문이에요.”

유리한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에이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이게 무슨 마법 주문이라는 거죠?”

“그게 말이죠.”

유리한이 설명해 주려던 찰나.

- 시드니, 어리석은 나의 친우여.

하늘이 울리며 시드니 못지않게 거대한 몸집의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었다.

“끝난 상황도 다시 시작되게 만드는 주문이거든요.”

화이트 드래곤들의 장로인 시드니를 ‘친우’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녀와 대등한 위치일 터.

‘비늘이 푸른 빛깔이니까.’

블루 드래곤의 장로가 몸소 행차하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