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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79)화 (179/235)

179화 

조롱 섞인 목소리에 엘리아데스가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 버러지 같은 인간 녀석이!

엘리아데스는 몰랐다. 그 버러지 같은 인간이, 자신을 크게 압도하리라는 것을.

- 크아악!

유리한을 향해 호기롭게 달려들 때는 전혀 몰랐다.

아니, 알 수 없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자신의 모든 감각을 빼앗고, 재앙이 부리던 어둠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공격할 줄 말이다.

엘리아데스와 유리한의 싸움을 보고 있던 시드니의 상처투성이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유리한’이란 이름을 가진 인간이 엘리아데스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른 인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던 시드니였다.

그렇기에 에이런을 맡긴 거고.

‘하지만.’

엘리아데스를, 블루 일족을 통치하는 장로를 저렇게 쉽게 압도할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시드니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인간.”

“디에스 라고다.”

“그래, 디에스 라고.”

시드니는 단 한 번도 인간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 적 없었다.

인간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든 드래곤에게 있어 하찮고 미천한 존재였으니까.

“저 인간은 정말 ‘인간’이 맞는 존재인가?”

“그래, 인간이다.”

디에스 라고가 무심하게 말했다.

“너희가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인간이지.”

시드니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꾹 깨물었다. 디에스 라고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그런데도 너는 우리가 다른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딸을 맡긴 것이 아니었나?”

“그래, 맞다.”

그러나 저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시드니가 엘리아데스를 가볍게 압도하고 있는 유리한의 황홀한 힘을 보며 디에스 라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역시 저 인간과 같겠지.”

유리한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그에 디에스 라고는 픽 웃었다.

“나는 유리보다 약하다. 또한, 이 세상에서 유리보다 강한 녀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구시대의 영웅이라고 떠들어대도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시드니는 엘리아데스의 모든 감각을 빼앗은 채 그를 공격 중인 유리한을 바라보다 두 손을 주먹 쥐었다.

“내 선택이 옳았군.”

시드니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너희에게 내 딸을, 내 손주를 맡긴 나의 선택이 옳았다.”

아니, 그보다 그 이전.

에이런의 아들, 에덴이 태어났을 때 그 해츨링을 죽이지 않은 자신이 옳았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그것을 똑똑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곧, 시드니의 금빛 두 눈에 눈물이 들어찼다. 이내 뺨에 떨어지는 것을 디에스 라고는 무심하게 보다 고개를 돌렸다.

드래곤과 인간.

둘의 싸움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 헉, 허억…….

숲의 절반이 사라졌다. 곧, 엘리아데스가 물거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네 녀석은 정말 인간이 맞느냐……?”

“네, 맞아요.”

유리한이 엘리아데스를 향해 사용하던 힘을 모두 거두고는 싱긋 웃었다.

“날 때부터 인간이었고 앞으로도 쭉 인간으로 살아가겠죠. 그래서, 블루 드래곤 일족의 장로님?”

성큼성큼, 엉망진창의 몰골인 그에게 다가간 유리한이 그의 목에 창을 들이밀며 물었다.

“저와 더 싸우고 싶으신가요?”

엘리아데스가 분하다는 얼굴을 보이던 찰나.

- 장로님!

- 저희가 있습니다, 장로님!

- 저 인간한테 복수를!

- 복수를, 장로님!

곳곳에서 블루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쳐 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다들 그만!”

그들의 분노를 진정시킨 사람은 엘리아데스였다. 그가 자신의 일족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생각이 있다면 그 모습을 당장 버리고 눈앞의 인간과 같은 모습을 취하도록 해라.”

“그래, 다들 엘리아데스의 말을 따르도록 해라. 무엇보다.”

엘리아데스의 말에 뒤이어 시드니가 입을 열었다.

“인간에게 치료를 받아 겨우 상처를 회복한 녀석들이 말이 많구나. 몇몇 녀석들은 마법에 묶여 있는 것을 보니, 자신을 치료해 준 인간을 해치려고 한 모양인데.”

시드니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을 깔보듯이 말했다.

“블루 드래곤은 은혜를 모르는 일족이었나 보군.”

“시드니……!”

엘리아데스가 그 입 닥치라는 듯이 경고 어린 목소리를 냈다. 그에 시드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거나 싸움은 이제 종료다, 엘리아데스. 너와 알케나가 걱정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하하! 인간들의 말을 믿겠다는 거냐, 시드니?!”

조롱 섞인 목소리에 시드니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나는 너를 압도한 힘을 가진 저 인간의 말을 믿을 거다.”

시드니의 말을 차마 부정하지 못한 엘리아데스가 분에 찬 얼굴로 말했다.

“알케나가 분노할 것이다.”

“내 알 바 아니지.”

시드니가 단조롭게 말했다.

레드 드래곤은 가장 호전적인 성정의 일족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알케나는 그런 레드 드래곤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여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드니는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엘리아데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 믿을 수 없다면, 나중에 알케나와 나란히 손잡고 우리들의 레어를 방문하도록 하거라.”

그녀가 휙 그에게서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내 손주 녀석 얼굴을 보여주도록 할 테니.”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엘리아데스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고요한이 드래곤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나타난 건 그때였다.

“유리한 씨!”

“아, 요한.”

유리한이 고요한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보아하니 요한을 공격하려던 드래곤들이 몇 있었나 보죠?”

“네? 네.”

고요한이 멋쩍게 웃었다. 유리한의 말대로, 몇몇 드래곤이 치료해 주려는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탓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유리한 씨의 말을 믿고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고요한은 자신감을 가졌다.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에.

‘이런 힘을 원래 유리한 씨와 그 동생분이 지녔었다고.’

돌려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고요한의 시선이 상처투성이의 엘리아데스에게로 향했다.

“제가 상처를 봐드려도 될까요?”

“필요 없다!”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엘리아데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까짓 상처 따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을 터!”

엘리아데스가 고요한을 향해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지르고는 시드니에게 말했다.

“시드니, 알케나와 함께 곧 찾아가도록 하지.”

“얼마든지.”

시드니가 입꼬리를 올렸다. 엘리아데스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는 폴리모프를 풀었다.

물거품이 일어나며 곧, 곳곳에 상처를 입은 거대한 몸집의 블루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다들 이곳을 떠난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아데스가 날아올랐다.

장로의 뜻에 맞춰 화이트 일족을 공격하러 왔던 블루 드래곤들이 각자 폴리모프를 풀고 날개를 활짝 폈다.

고요한은 그들 중 몇몇을 묶고 있던 사슬을 흔쾌히 풀어줬다.

“자, 그럼.”

블루 드래곤 일족이 사라지기 무섭게, 시드니가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에게 물었다.

“내 딸아이와 손주를 만나러 가고 싶은데, 지금 어디 있지?”

* * *

“에이런!”

한달음에 딸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시드니가 에이런을 찾았다.

“어머니!”

아들을 돌보고 있던 에이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것 좀 보세요, 어머니. 에덴이에요.”

- 우움, 우우.

“세상에……!”

시드니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로 우리 일족의 아이가 됐구나. 완벽하게 우리 일족의 아이가 됐어.”

검은 비늘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금빛 두 눈은 그대로였다. 시드니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제 손주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고맙다, 인간. 아니.”

시드니가 입을 열었다.

“유리한.”

나지막하게 들린 이름에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드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이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라는 의문도 잠시, 시드니가 말했다.

“너희 인간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 이름이 ‘유리한’이란 것도 그래서 알았지.”

“아하.”

유리한이 픽 웃었다. 시드니는 제 손주의 얼굴을 두 눈에 꼭 담으며 환하게 웃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 인사는 나에게도 해줬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시드니.”

“아리아텐?”

시드니가 놀라 아리아텐을 쳐다봤다. 그녀는 오래전 모습을 감춘 레드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놀람도 잠시, 시드니가 미간을 좁혔다.

“품의 그 녀석은…….”

“니르로르.”

아리아텐이 곤히 잠든 아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제가, 그리고 모두가 재앙이라고 부르던 저의 아들입니다. 게다가.”

아리아텐이 애달프게 웃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아이가 받았을 이름을 대신 짊어진 녀석이기도 하지요.”

아리아텐이 자조적인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지금 와서 어미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품에 닿는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하여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놓아줘야겠지.’

세상모르고 잠든 아들이 깨어나면, 그가 이 세상을 벗어나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니르로르는 자신의 ‘아들’로 살았던 시간보다 저들의 ‘동료’로 살았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

무엇보다 저들과 함께하는 것이 니르로르에게 있어 더욱 행복한 길이 될 것 같았기에.

그렇기에 아리아텐은 곤히 잠든 아들을 꼭, 그러나 아이가 깨지 않을 만큼의 힘으로 끌어안았다.

니르로르가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유리한아!’

‘나 여기 있어, 니르로르.’

‘유리한아, 저 여자는 누구냐? 나를 정말 죽이려는 것이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대못이 박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리아텐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레어를 찾은 시드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행복하다는 듯이, 자신의 딸과 함께 손주를 안고 있는 얼굴.

곧, 아리아텐의 시선이 그들 뒤의 유리한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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