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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86)화 (186/235)

186화 

하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먼저, 디에스 라고가 섣불리 움직이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니르로르의 힘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 힘을 제대로 다룰 때까지 여기 머무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으음, 그게 좋겠지만…….”

유리한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백작과 한 맹세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거든.”

“백작? 뮤즈의 백작 말인가?”

“응.”

유리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주일이란 시간을 넘기면 내 심장은 멈춰.”

그 말에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유리한이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려 했을 때.

“짐은 괜찮다.”

니르로르가 말했다.

“너희에게 이 힘으로 피해를 줄 일 따위 없을 거다. 짐은 위대한 죽음의 드래곤이니까.”

“죽음의 드래곤이 아니라 어둠의 드래곤이었잖아.”

“그거야 격이 낮아져서 그랬던 것이다!”

“네네, 그러시겠죠. 그리고 지금은 광명의 드래곤이죠.”

“이익……!”

니르로르가 유리한의 말에 분하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디에스 라고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떠나야겠군.”

“네, 그래야겠네요.”

고요한이 아쉽다는 듯 그리 말하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디에스 라고는 챙길 짐 따위 없다는 듯 비딱하게 선 채 니르로르를 불렀다.

“이봐, 니르로르. 힘을 잘못 다뤄서 유리에게 피해를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럴 일 없을 거다.”

니르로르가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너 같은 음흉한 인간한테는 피해를 조금 줄 것 같지만.”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은 디에스 라고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고요한은 대놓고 키득거리며 웃어버렸다. 디에스 라고의 날 선 시선에 곧장 웃음을 멈췄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에 그들은 무림의 세계로 다시 떠나게 됐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이제 떠날 생각인가 보지?”

“네, 그래야죠.”

그건 바로 작별 인사였다.

유리한이 레어로 들어오는 아리아텐과 리아그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원래 니르로르가 깨어나자마자 바로 떠나려 했으니까요.”

“저 위로 말이지.”

“네, 하지만 그 전에.”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니르로르한테 간식거리를 좀 많이 사다 주려고요. 저희가 가려는 세상에는 니르로르가 좋아하는 간식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

아리아텐이 온화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뿐.

그녀는 니르로르의 귀에 걸려 있는 귀걸이를 보자마자, 아들의 팔을 낚아채듯 잡았다.

“너……!”

니르로르가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였다. 당황한 건 아리아텐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라고 준 물건이 왜 제 아들의 귀에 걸려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은 곧장 해소됐다.

“아리아텐 님.”

유리한이 아리아텐의 손에서 니르로르의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는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팔 수가 없는 물건이더라고요. 그래서 니르로르한테 선물해 줬어요. 어때요? 잘 어울리지 않나요?”

묻는 말에 아리아텐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어울리는구나.”

아리아텐이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중하게 여겨다오. 필요할 때는 너를 지켜줄 물건이니까.”

“짐은 한낱 장신구의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느니라.”

“그래도 소중히 여겨줬으면 하는구나.”

“걱정 말거라.”

니르로르가 명랑하게 말했다.

“유리한이 선물해 준 거다. 소중하게 여길 거다.”

그 말에 아리아텐이 미소를 그렸다. 옆의 리아그 역시 제 어머니와 똑같이 웃음을 보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이 녀석한테 간식거리도 사주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면 시간이 조금 빠듯할 것 같아서요.”

“그래, 배웅해 주마.”

아리아텐이 직접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일행을 안내해 줬다.

그 앞에서 유리한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도 좋을 텐데요.”

“아니.”

아리아텐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길고 길었던 만남의 끝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리한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니르로르가 그때 입을 열었다.

“유리한아, 네가 부하로 삼았던 녀석들은 도대체 뭐 하는 녀석들이었느냐?”

“부하로 삼은 적 없고, 네가 깨어날 때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보호해 준 분들이라니까?”

그 말에 니르로르가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할 걸 그랬구나.”

“오, 네가? 웬일로?”

“유리한, 너를. 그리고 너희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 녀석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콧대 높은 니르로르가 자신들을 생각해서 남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생각을 하다니!

모두의 시선에 그가 부끄럽다는 듯 작게 말을 더듬거렸다.

“따, 딱히 별 뜻은 없다! 그냥, 부담이 된 도리로……!”

“그래, 그렇겠지.”

“이익! 아이 취급하지 말거라!”

니르로르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는 유리한의 손을 피하고자 발버둥 쳤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두 사람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고요한아! 음흉한 인간아! 그렇게 웃지만 말고 이 녀석한테서 짐을 떼어내 다오!”

니르로르의 외침은 깔끔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 * *

아래층으로 향하던 엘리베이터가 멈춰선 듯했다. 고요히 찾아온 정적, 그것을 부순 건 리아그의 목소리였다.

“갔네요.”

“그래, 갔구나.”

다시 모녀만이 남게 됐다.

“이제 만날 일 없겠지.”

아리아텐이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렸다.

하지만.

“리아그?”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딸아이의 모습에 아리아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아그는 여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리아그.”

아리아텐이 다정하게 딸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리아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사실, 떠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수백, 아니, 수천 년 만에 만난 오라버니잖아요!”

리아그가 울먹였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라버니를,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보내게 되다니.”

“리아그, 니르로르에게는 저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욱 나은 선택지다. 알지 않느냐?”

“알아요! 알지만.”

리아그가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아주 잘 알았다.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니르로르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 잘 모르나, 먼 옛날 니르로르를 죽이기 위해 모든 드래곤들이 나섰다고 했다.

그중에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러니 니르로르 앞에 그의 가족이라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쉬웠다.

아리아텐이 그런 딸아이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리아그, 울지 말렴.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도대체 언제요?”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그보다는.”

아리아텐이 말을 멈추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우리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구나.”

아리아텐과 리아그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아리아텐은 본능적으로 리아그를 제 뒤로 숨겼다.

곧, 쿵!

대지가 울림과 동시에 레드 일족의 장로, 알케나가 모습을 보였다.

- 아리아텐.

“장로님.”

아리아텐이 알케나를 향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 떠나자마자 저를 찾아오신 것을 보면, 그 인간들이 꽤 무서웠나 봅니다.”

- 닥쳐라!

외침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 너는 감히 죄인을 숨겨줬다. 일족을 배신하고서 말이다!

“저는 일족을 배신한 적 없습니다. 그냥 떠났을 뿐. 그리고 그건 장로님께서도 눈감아 주신 일이지 않습니까?”

- 그렇다고 재앙을 숨겨주다니! 네가 제정신이냐!

“네, 제정신입니다.”

아리아텐이 무심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니르로르는 재앙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제 아들입니다.”

- 하하! 잘도 말하는구나! 그런 녀석을 ‘아들’ 취급하다니!

그 말과 동시에 아리아텐의 온몸이 불꽃에 휘감겼다.

곧 드러난 건 알케나 못지않게 거대한 몸집을 지닌 드래곤이었다.

-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 이상 혀를 놀리면, 당신의 목을 물어뜯겠습니다!

“어머니!”

- 리아그, 너는 물러나 있거라. 아니, 자리를 피해라.

“그럴 수는 없어요!”

- 리아그!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리아그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 순간, 누군가 다정하게 리아그를 감쌌다.

“딸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쓰나?”

“시드니 님……?”

리아그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건 리아그뿐만이 아니었다.

- 시드니, 네가 왜 이곳에!

알케나가 놀라 외쳤다. 그 목소리에 시드니가 눈웃음을 지었다.

“약속한 것이 있어서 말이다.”

- 약속?

“그래, 약속. 우리 화이트 일족은 은혜를 아는 자들. 아리아텐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왔지.”

그 말과 함께 곳곳에서 화이트 드래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드니가 당황해하는 알케나를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자, 알케나. 어떻게 하겠느냐? 재앙이니 뭐니, 허울뿐이기 짝이 없던 이름이 사라진 지금, 너는 우리와 전쟁을 하겠느냐?”

알케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커다란 날개를 한 번 움직이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 이번에는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다시 한번 더 그 재앙을 이 땅에 들이면 그때는 전쟁임을 잊지 말도록 해라!

알케나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알케나가 사라진 후, 시드니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암만 생각해도 레드 일족의 장로는 잘못 뽑힌 것 같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알케나 님.”

어느새 인간의 모습을 취한 아리아텐이 고개 숙였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느냐? 우리는 그저 은혜를 갚으러 온 것뿐이다. 그보다 보거라.”

시드니가 품속에서 해츨링을 꺼내 보였다.

“에덴, 내 손주 녀석이다. 네 아들이 구한 녀석이기도 하지.”

- 우움!

“이 녀석, 잘 날지도 못하면서 계속 날아오르려고 하면 못써.”

시드니가 엄하게 손주를 달래며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려고 할 때였다.

“아리아텐?”

“잠시… 만져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시드니가 아리아텐에게 에덴을 보여줬다.

아리아텐은 조심스럽게 해츨링의 둥근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아리아텐?”

“어머니?”

뚝뚝, 눈물을 흘렸다.

“저도 이렇게 아이를 품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날고자 날갯짓하는 것을 보고 싶었고, 처음 폴리모프를 성공하는 그 모습도 보고 싶었죠.”

리아그가 아닌 니르로르.

재앙이라 불렸기에 자신 역시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아들을 향한 마음이었다.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옛날 일이지만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리아텐은 그것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바랐다.

유리한이, 그녀의 동료들이.

부디 니르로르를 밝은 빛으로 잘 이끌고 나가주기를. 아이가 다치는 곳 없이 몸 성하게 돌봐주기를 말이다.

아리아텐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어미 된 도리로 그리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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