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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93)화 (193/235)

193화 

* * *

제로 바니스타에게 니르로르를 맡긴 유리한은 빠르게 숲을 내달렸다.

쿵, 쿠궁―!

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랴오륭과 구천하가 싸우고 있는 현장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리라.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고는 창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그녀가 랴오륭을 돕고자 왔을 때, 혈맹의 맹주는.

“이봐, 망할 늙은이! 그만 힘 빼고 순순히 잡히지 그래?!”

“그러지는 못하겠군.”

구천하를 잡기 위해 열심히 그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젠장!’

암만 플레이어에게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눈앞의 노인을 지금까지 붙잡지 못할 줄은 몰랐다.

애초에 랴오륭은 구천하의 행방을 제대로 쫓지도 못했다.

‘숨는 게 얼마나 귀신같은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길을 알려주던 빛이 아니었다면 랴오륭은 영영 그를 찾지 못했을 거다.

‘도대체 그 빛은 뭐였지?’

랴오륭은 순간 그런 궁금증이 일었지만.

‘나중에 생각하자.’

그는 곧 구천하와의 싸움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랴오륭과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구천하가 분노 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이봐, 맹주. 만물의 수장과 똑같은 꼴을 당할 게 뻔한데 내가 어떻게 자네에게 잡히겠나!”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랴오륭이 구천하와 주먹을 맞대며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유리한은 지금 이곳에 없다! 엘리아룸으로 내려갔다고!”

“그래서?”

“당신이 살 수도 있다는 거지. 우리에게 얼마나 협조를 해주느냐에 따라 말이지.”

“흐음.”

구천하가 픽 웃었다.

“자네가 청의 기사단이며 뮤즈와 손을 잡게 될 줄은 몰랐군.”

“나도 몰랐어.”

몰랐던 것은 또 있었다.

“랴오륭 씨! 돕겠습니다!”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거기 얌전히 있어!”

자신에게 있어 한낱 피라미와 다름없는 서문기율, 그를 제자처럼 여기게 될 줄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드래곤에 의해 자신은 유리한에게 그러지 않겠노라, 제 심장을 걸고 맹세해 버렸으니까.

어쨌거나 랴오륭은 서문기율이 성장할 수 있게끔 든든하게 뒷배가 되어주었다.

그러다 어느새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함께하게 됐다.

‘서문기율, 저 자식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보니 그러겠거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봐, 랴오륭. 한눈팔 정신이 남아 있나 보군.”

“……!”

순식간에 랴오륭의 주먹을 흘려 보낸 구천하가 그의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랴오륭이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이 젊은이를 꽤 아끼는 것 같던데, 내 생각이 틀렸을지?”

서문기율이 기절한 채 구천하에게 들려 있었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쪽팔리지도 않냐!”

“살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구천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그는 만물의 수장처럼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더욱이 유리한의 손에는 죽을 수 없었다.

‘유리한.’

구천하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 몇 번이고 그녀를 죽이려고 들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구천하는 단 한 번도 유리한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녀가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때까지도.

유리한이 사라지면 그녀에 대한 호승심도 사라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는 허무했다.

그리고 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강함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유리한, 그녀와 똑같은 강함을.

그렇기에 유지한을 둘러싼 실험에 기꺼이 손을 보태기로 했다.

유지한을 통해 유리한이 지녔던 것과 똑같은 무한의 마력을 손에 넣으면,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구천하가 성난 기색의 랴오륭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랴오륭, 우리는 한때 같은 배를 탄 동료이지 않았는가?”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야?”

“유지한.”

구천하가 차갑게 이름을 내뱉고는 비딱하게 웃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한의 마력을 손에 넣기 위해 자네 역시 나와 똑같이 열심이었지.”

“그래, 그랬었지.”

까드득, 이를 갈며 랴오륭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그때의 일을 후회한다.”

랴오륭은 유지한을 건드린 대가로 오른쪽 팔을 잃었었다.

유리한의 동료인 고요한 덕분에 오른쪽 팔을 되찾았지만, 대신 자신의 심장을 내놓게 되었다.

유리한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 이 탑을 오를 줄 알았다면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으리라.

오히려 구천하에게 붙잡혀 있는 서문기율과 똑같이 소중하게 대했을 거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랴오륭은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봐, 늙은이. 좋은 말로 할 때 그 자식 풀어줘.”

“정말 아끼는 녀석인가 보군. 그렇다면 더더욱 풀어주기 싫은데.”

저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랴오륭이 울컥 쏟아져 나오려는 감정을 추스르고는 물었다.

“뭘 원하지?”

“나의 안전.”

구천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쫓지 말아줬으면 하군.”

“그러도록 하지.”

“심장을 걸고 맹세할 수 있나?”

랴오륭이 얼굴을 찌푸렸다.

‘튜토리얼을 겪은 플레이어들은 다들 심장에 집착하는 병이라도 가지고 있나?’

툭하면 심장이야!

어쨌거나 랴오륭은 구천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심장을 걸고 맹세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호오? 자네가 원해서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거겠군.”

구천하가 그렇게 말하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자네의 심장을 거머쥘 수 있는 플레이어야 이 탑에 몇 없지.”

오광 중 하나, 혈맹의 맹주인 랴오륭이었다. 그런 그에게 심장을 걸고 맹세를 강요한 자라니!

“유리한이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구천하가 픽 웃고는 붙잡고 있던 서문기율을 놓아줬다.

“서문기율!”

랴오륭이 황급히 쓰러지는 그를 붙잡으려고 할 때, 구천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안 돼!”

랴오륭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구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문기율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정확히 서문기율의 심장을 향해 말이다.

‘성장의 가능성이 무한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이 슬프기 그지없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구천하는 서문기율을 죽였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이, 이게 무슨……!”

서문기율이 구천하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구천하는 그의 행방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랴오륭이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구천하가 황급히 허리를 뒤로 젖히며 랴오륭의 공격을 피했다.

피하긴 했지만 뺨에 작게 상처가 나고 말았다.

구천하가 랴오륭한테서 멀찍이 물러난 후 두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자신이 붙잡고 있던 청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랴오륭 역시.

“서문기율 어쨌어!”

지금 상황에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해! 서문기율 어쨌냐고!”

“글쎄, 자네가 죽지 않은 것을 보니 그 청년도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구천하는 유리한이 랴오륭에게 어떤 맹세를 강요했는지 손쉽게 알아차렸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모를 그 청년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천하의 랴오륭이 혈맹의 단원도 아닌 젊은이를 애지중지 여길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구천하가 검을 고쳐 잡고는 랴오륭을 흘끗거렸다. 랴오륭은 잔뜩 성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랴오륭은 ‘힘’에 있어서는 오광의 그 누구보다도 우위에 있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화가 났다면 지금보다 상대하기가 더욱 벅찰 터.

‘어쩔 수 없지.’

구천하는 적당히 랴오륭을 상대하다가 도망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아저씨, 어디 가려고?”

그의 도망은 실패하고 말았다.

“유리한?!”

“오, 내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그럴 리가 있겠나!”

구천하가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면서 유리한을 향해 쥐고 있던 검을 날렸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렇게 격한 환영 인사라니.”

유리한이 저를 향해 날아든 검을 손쉽게 잡아내고는 씨익 웃었다.

“랴오륭 씨.”

“유, 유리한 님!”

“갑자기 웬 ‘님’이에요? 편하게 불러요. 그보다 실망인데요?”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랴오륭 씨라면 충분히 저 아저씨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 말에 랴오륭이 입을 꾹 다물었다. 유리한이 그런 그를 달랬다.

“괜찮아요. 생각보다 저 늙은이의 실력이 좋았나 보죠. 그보다 여기요.”

“우왓?!”

랴오륭이 제 옆에서 갑자기 치솟은 그림자에 놀라 펄쩍 뛰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랐다.

“서, 서문기율?!”

그림자가 구천하에게 잡혀 있던 서문기율을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서문기율, 야! 괜찮냐?!”

“괜찮아요.”

유리한이 기절한 서문기율 대신 답해주며 말했다.

“잠깐 기절한 거예요. 금방 깨어날 거예요.”

그 말대로 서문기율은 곧 눈을 떴다.

“으… 으윽…….”

“서문기율!”

“랴, 랴오륭 씨?”

서문기율이 코앞에 들이밀어진 얼굴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랴오륭 씨가 왜 저를 안고 있습니까?”

불쾌하다는 듯 묻는 목소리에 랴오륭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내가 안고 싶어서 안고 있는 줄 알아?! 그러게 왜 멍청하게 저 영감탱이한테 당해서는!”

“네? 제가 누구한테 당했다고요?”

“구천하한테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서문기율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유리한 씨?”

“오랜만이에요, 서문기율 씨. 랴오륭 씨와 사이가 돈독한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그 말에 랴오륭도 서문기율도 눈가를 찡그렸다. 유리한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뭐, 재회의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할까요? 지금 제가 좀 바빠서 말이에요.”

유리한이 구천하를 응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랴오륭 씨, 서문기율 씨 데리고 멀리 달아나세요. 이왕이면 백작님이 있는 곳까지요.”

명령과도 다름없는 말에 랴오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유리한 씨! 저도 돕겠습니다!”

“이봐, 서문기율! 너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야!”

랴오륭이 그렇게 말하고는 서문기율을 어깨에 들쳐 메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난 후, 유리한이 입을 열었다.

“구천하.”

이름이 불리자 구천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을 부릅뜨며 유리한을 노려봤지만 말이다.

유리한은 제게 닿는 시선에 씨익 웃었다.

“그때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을 갔겠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네.”

“그럼?”

“다음을 기약한 거지.”

구천하가 그리 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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