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어떻게……!”
“너를 잡았냐고?”
디에스 라고가 하연청의 말을 끊으며 픽 웃었다.
“네가 말했지? 플레이어가 아닌 몸으로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으려면 미칠 수밖에 없었다고.”
하연청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몸으로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으려면 미쳐야 했다네. 뭐, 자네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지.’
자신에게 꼴사납게 잡힌 센터의 협회장을 향해 디에스 라고가 한껏 비아냥거렸다.
“플레이어라고 미치지 않았을 것 같나?”
디에스 라고의 금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미쳤어야 했다.”
디에스 라고가 손에 쥔 창을 곧장 하연청의 어깨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악!”
하연청이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디에스 라고는 몸부림치는 그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 같은 놈도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 미쳐 날뛰면서 몬스터들을 처치해야만 했지.”
그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면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친히 말해주지. 유리라면 몰라도 나는.”
잠시 말을 멈췄던 디에스 라고가.
“너보다 더욱 미쳐 있는 인간이란 것을 말이다.”
하연청에게 꽂아 넣은 창을 빙그르 돌렸다.
“아아악!”
하연청이 살갗을 헤집는 날카로운 창끝에 비명을 질러댔다.
디에스 라고는 무심한 얼굴로 제 아래에서 살려달라 울부짖는 그를 쳐다봤다.
“사, 살려줘……!”
“말이 잘못됐어.”
“끄흡, 윽……!”
디에스 라고가 하연청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해야지.”
하연청이 파들파들 떨고는.
“퉤.”
디에스 라고의 얼굴을 향해 침을 내뱉었다.
“그 말, 네가 하게 될 거다!”
“아직도 입이 살았군.”
디에스 라고가 하연청의 어깨에 꽂아 넣었던 창을 빼 들었다가 다시금 찔러 넣었다.
“끄아아아악!”
하연청은 밀려드는 고통에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 순간 자신은 죽고 말 것이다.
아니, 디에스 라고가 억지로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는 다시금 지금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그건 원하지 않는 하연청이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내뱉었다.
“유, 유시우!”
들려온 이름에 디에스 라고가 미간을 좁혔다. 하연청의 상처를 헤집던 그의 손길도 멈췄다.
그에 하연청이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유시우의 기억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지 않나? 나를 죽이면 그 아이의 기억은 그대로일 거다!”
디에스 라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반면 하연청은 한껏 웃으며 말했다.
“유리한도, 그리고 너도 모두 잊은 채로 살게 될 거란 말이다! 그걸 원하는 건 아닐 텐데?!”
하연청이 킬킬거렸다.
‘그래! 유시우, 그 꼬마 녀석이 소중하다면 나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을 죽이면 아이의 기억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뭐?”
“할 말은 그게 끝이냐고 물었다. 더 이상 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든.”
디에스 라고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은 건, 유리한의 목소리였다.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잘 다녀왔냐면서 자신에게 건네는 그녀의 인사가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만 죽어라. 네게서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듣기에는 무리인 것 같으니.”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구겨져 있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태연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자, 잠깐! 으…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목소리가 끊겼다.
하연청의 어깨에 꽂혀 있던 창이 그의 목을 향해 단숨에 휘둘러졌기 때문이었다.
후드득, 얼굴에 튀어버린 피를 닦아내며 디에스 라고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별것도 아닌 녀석이 입만 살았었군.”
정말 유리한 대신 일을 처리하러 와서 다행이라면서 디에스 라고는 중얼거렸다.
“이만 돌아가야겠군.”
그 전에 디에스 라고는 유리한에게 줄 선물을 챙겼다.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하연청의 머리를 잡아 올린 것이다.
그러고는 곧장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지만, 디에스 라고는 여유롭게 움직였다.
센터 주위를 수십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가 감싸고 있었다.
“저기! 누군가 나온다!!”
“생존자인가?!”
“협회장일 수도 있어! 협회장이 이 일을 벌였다는 신고가 수십 건 들어왔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마!”
사람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는 큰 목소리에 디에스 라고가 비딱하게 웃었다.
‘저런 놈이 협회장이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청의 초대 기사단장 같은 놈을 그 자리에 올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디에스 라고였다.
어쨌거나 그는 입구 쪽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뗀 후.
“윽……! 갑자기 웬 빛이……!”
“바, 발포해!”
“앞이 안 보여서 발포하기가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적이 아니라 아군을 쏠 수 있어요!”
온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디에스 라고는 그렇게 사람들한테서 벗어나 근처 건물 옥상 위로 가볍게 걸음을 내디뎠다.
두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빛을 내던 것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허둥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 적은?! 협회장은!”
“놓친 것 같습니다!”
“당장 찾아! 놓치면 안 된다!”
아무래도 모두 플레이어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겁도 없이 청의 초대 기사단장을 찾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죽인 늙은이는 오광 중 하나를 만든 플레이어였다.
저들이 암만 플레이어라고 해도 그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인 것을 잘 알고 있을 터.
“겁이 없는 녀석들인가 보군.”
디에스 라고가 픽 웃었다.
그는 겁 없는 자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가 가상하다며 좋아하는 편이었다.
“길 좀 알려줄까?”
디에스 라고가 손가락을 튕겼다.
“반장님! 저기를 보십시오! 비, 빛입니다!”
“모두 내 뒤에서 천천히 오도록 해라! 저 빛을 따라가 본다!”
센터의 입구 쪽에서 허둥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빛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흠, 제대로 길을 알려주면 좋을 텐데.”
디에스 라고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빛 속성의 힘을 주로 다루는 플레이어였지만, 밤에는 그 힘이 약해졌다.
암만 달빛이 훤하게 밤을 밝히고 있다고 해도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영웅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였다.
설령 그 힘이 밤에는 약해진다고 해도 디에스 라고는 누구보다도 빛을 잘 다루는 사내였다.
그 때문에 디에스 라고는 자신과 함께 자폭하려 했던 남자의 공격에서 무사했다.
하연청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날려버린 남자를 잠시 애도한 디에스 라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알아서 잘 찾겠지.”
어쨌거나 자신의 일은 이제 끝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행복 머니의 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돌아온 곳에서.
“디에스 아저씨!”
디에스 라고는 자신을 향해 멀리서 두 팔 벌리며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에 그만 웃고 말았다.
청의 초대 기사단장이 죽음 앞에서 내뱉은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유리한이 가지고 있는 ‘진실 감별(B)’과 같은 스킬을 그 역시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하연청은 디에스 라고의 앞에서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으며 목숨을 구걸했다.
암만 생각해도 입만 살았던 놈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디에스 라고는 제게 달려오는 유시우를 막았다.
“시우, 다가오지 마라. 지금 너를 안을 수 없는 꼴이니까…….”
그러다가 말을 멈췄다.
제 앞에 내밀어진 손수건 때문이었다.
“닦으세요.”
고요한이 그의 손에 손수 손수건을 쥐여주며 말했다.
“시우 우는 모습 보고 싶지 않으면 어서요. 혹시, 시우 울리고 싶은 건 아니겠죠?”
만약 그런 거라면 탑에 돌아가자마자 유리한 씨에게 이를 거라면서 고요한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디에스 라고가 픽 웃고는 고요한이 쥐여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 * *
“끝났네.”
유리한이 제 앞에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노인에게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저씨, 이제 항복?”
“항복할 것 같으냐……!”
“그러는 게 좋을 텐데?”
우두둑, 구천하의 팔이 보기 좋지 않게 꺾였다.
“끄아아악!”
구천하가 비명을 내질렀다. 유리한은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저씨, 그렇게 소리 질러봤자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있다고 해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유리한이 만들어낸 공간은 그녀의 허락이 없는 한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아저씨,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하지? 두 다리 멀쩡하게 걸어서 가는 게 좋잖아?”
구천하가 까드득 이를 갈고는 아직 멀쩡한 두 다리 중 하나를 빠르게 움직였다.
유리한이 자신을 향해 날아든 발길질에 손을 올렸다.
척, 구천하의 발을 맨손으로 잡아낸 그녀가 방긋 웃었다.
“두 다리 멀쩡하게 걸어서 가고 싶지 않은가 봐? 그것참 아쉽네.”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공간을 다시금 울렸다.
“끄으윽……!”
구천하가 비명을 억지로 참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유리한이 픽 웃었다.
“그러게 왜 고집을 부려? 내가 순순히 심장을 걸고 맹세해 주겠다고 했잖아?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리다니.”
유리한이 미소를 그렸다.
“나이를 헛으로 먹었다는 소리가 왜 있나 했더니. 아저씨를 두고 하는 소리였나 봐?”
구천하가 유리한을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그만 죽여라.”
“싫은데?”
유리한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웃었다.
“아저씨도 내가 안 죽일 거 알고 나한테 달려든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구천하가 입술 안쪽을 꾹 깨물고는 말을 내뱉었다.
“나를 이렇게 데려간다고 해도 네가 원하는 건 얻지 못할 거다.”
“그거야 모르지.”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저씨한테서 정보를 빼낼 사람은 내가 아니거든.”
“정보……?”
“응, 정보.”
유리한이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치며 만들어낸 공간을 거두었다.
쏴아아―!
바람에 이리저리 잎사귀가 흔들렸다. 유리한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한 후 방긋 웃었다.
“어때요, 백작님?”
언제 왔는지 모를 제로 바니스타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유리한은 웃는 낯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제가 기꺼이 백작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겠다고 했죠? 나머지는 맡겨도 되겠죠?”
“…네.”
제로 바니스타가 꿀꺽 침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제로 바니스타는 그렇게 말한 후 품에 안고 있던 니르로르를 놓아줬다.
- 유리한아!
“얌전히 있었어?”
니르로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 너는 짐을 저런 수상쩍은 인간한테 맡기고 싶었느냐?!
“응.”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그 순간 구천하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니르로르가 귀를 쫑긋 세우고는 비명이 들려오는 쪽을 쳐다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허, 보지 마. 애가 봐서 좋을 것 하나도 없어.”
유리한이 그림자를 움직여 제로 바니스타와 구천하의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에 니르로르가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 짐은 아이가 아니다만?
“내가 애라면 애인 거야.”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으며 니르로르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니르로르가 물끄러미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쳐다보다가 웅얼거렸다.
-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오, 철들었나 보네?”
- 무슨 말이냐?
“애는 몰라도 돼.”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인 후 하늘을 올려다봤다.
“디에스와 요한이 빨리 돌아오면 좋겠네.”
제로 바니스타는 분명 구천하한테서 금방 정보를 얻어낼 거다.
그런 다음 곧장 69층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로 향하겠지.
‘같이 탑을 오르고 싶은데.’
유리한이 씁쓸하게 미소를 그리던 순간.
“유리한 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