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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08)화 (208/235)

208화 

타앗!

유리한이 땅을 박찼다. 주철야는 흐르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그녀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눈앞의 여자가 제 앞에 당도하는 순간 자신은 죽는다.

주철야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쿠구궁!

주철야가 앞으로 뻗은 주먹에 온 땅이 진동했다. 유리한은 자신을 향해 튀는 파편을 빠르게 피했다.

- 죽어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철야가 다가왔다.

유리한이 저를 죽이러 오기 전, 자신이 그녀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주철야의 패착.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스스스―!

그녀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유리한은 손가락을 까닥여 그것을 움직였다.

솟구쳐 오른 그림자가 주철야를 향해 쇄도했다.

- 무슨……!

“내가 말했지? 이번 공격으로 너를 죽여버릴 거라고.”

그림자는 주철야를 집어삼켰다.

- 크아아아!

그림자 속에서 주철야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유리, 괜찮은가?”

“응, 괜찮아.”

디에스 라고의 걱정에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친 곳 없어. 저런 놈한테 내가 다칠 리가 없잖아?”

“그렇기는 하지.”

디에스 라고가 고개를 끄덕인 후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라. 방심은 금물이다.”

“방심 안 해.”

유리한이 픽 웃었다.

“방심할 필요도 없고.”

주철야는 자신을 집어삼킨 그림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다.

‘그 속에서 몇 번이고 몸이 짓뭉개지다 숨이 끊어지겠지.’

유리한은 여유롭게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 속에서 문지기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유리한은 그제야 그림자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풀썩.

그림자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힘없이 쓰러졌다.

라이 에스페란도가 유리한의 옆에 서서는 물었다.

“죽었습니까?”

“아니요. 아직이요.”

주철야의 몸이 미약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참으로 질긴 목숨이도다.

유리한이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니르로르. 너 계속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던 거야?”

- 둔하구나.

“둔한 게 아니라 싸움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던 거야.”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이마에 딱밤을 때려주고는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주철야를 쳐다봤다.

‘대단하네.’

유리한이 질린듯한 표정을 보였다.

‘분명 죽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주철야를 집어삼킨 그림자는 회심의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살아 있다니.’

괜히 69층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유리한이 휘파람을 작게 불고는 주철야를 향해 다가갔다. 손에 검을 쥐고서 말이다.

- 끄윽.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한은 주철야에게 다가서서는 무릎을 살짝 굽혔다.

“유리한 씨!”

“저는 괜찮아요, 요한.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에 고요한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주철야에게 유리한을 해칠 힘 따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걱정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어 고요한은 유리한에게 마법을 걸어줬다.

‘요한도 참.’

자신을 둘러싼 보호막에 유리한이 픽 웃으며 고요한을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에 고요한이 배시시 웃었다. 유리한 역시 그를 향해 웃어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주철야.”

- 빌어먹을……!

주철야가 목소리를 토해냈다.

- 고작 너 같은 버러지한테 쓰러지게 되다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성난 목소리에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입 놀릴 시간에 빨리 목숨을 끊지 그래?”

주철야가 분하다는 얼굴로 유리한을 쳐다봤다. 그녀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겠지? 그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니 뭐니 입은 잘만 놀려.”

- 그 입 닥쳐라!

주철야가 으르렁거렸다.

- 이 수모는 잊지 않겠다. 내 꼭 지옥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아이고, 그러셔요?”

유리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며 검을 들었다.

“그럼, 열심히 기다리고 있도록 해. 다만, 나를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나는 최대한 오래 살 거거든.

유리한이 뒷말을 삼키고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 끄흡!

주철야가 자신의 혀를 스스로 깨물지만 않았더라도 그랬을 거다.

“너!”

- 버러지 같은 네 녀석에게 죽을 바에야……!

잘린 혀가 툭 떨어졌다. 주철야가 피를 질질 흘리며 웃었다.

- 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그는 힘없이 쓰러졌다. 유리한은 숨이 약해지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얼굴을 찌푸렸다.

“망할.”

정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릴 줄은 몰랐다.

“유리.”

나지막하게 자신을 부르는 디에스 라고의 목소리에 유리한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끝났어.”

그 말대로 그들의 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계, ‘마계’가 플레이어 여러분의 앞에 펼쳐집니다!]

69층의 문지기가 쓰러졌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제로 바니스타가 그토록 원하던 세계가 말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제로 바니스타가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유리한 님!”

“오, 백작님. 타이밍 좋게 잘 오셨네요.”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그토록 원하던 위층으로 올라가게 됐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기쁩니다.”

제로 바니스타의 목소리에는 가식 따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함께한 덕분이죠.”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그보다 마계라. 이름 그대로 마족이 득실거리는 세계일까요?”

“글쎄요. 그거야 이제 알아보면 될 겁니다.”

“네? 알아본다고요?”

“네.”

제로 바니스타가 주검이 된 문지기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각 세계의 문지기는 다음 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서 말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당연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하는 이야기이니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유리한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이어 물었다.

“그보다 주철야는 죽었는데요?”

그것도 스스로 혀를 깨물어 죽고 말았다.

유리한의 물음에 제로 바니스타가 말했다.

“죽었다고 해도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당장 유리한만 하더라도 ‘망자의 아우성(B)’을 가지고 있었다.

망자의 아우성은 상대의 죽음에 그녀가 일조했다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그리고 주철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는 유리한의 공이 너무나도 컸다.

어쨌거나 제로 바니스타의 말에 유리한이 나섰다.

“그럼, 제가 알아내 볼게요.”

“네?”

“백작님이 못 미더워서요.”

당장 한 세계의 문지기가 다음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잖는가!

솔직한 말에 제로 바니스타가 애매하게 웃었다. 그때 랴오륭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지! 저 망할 백작 놈이 못 미덥기는 하지!”

“랴오륭 씨, 웃으면서 제 등을 치는 건 그만두십시오.”

랴오륭은 서문기율의 말을 무시하며 나불댔다.

“생각해 보면 무림에 대해서도 제로 바니스타가 가장 많은 정보를 독점했었지.”

“59층의 문지기로부터 기억을 읽어내서 말이죠.”

“그래! 그러고는 무림에 대한 정보를 원하면 그에 알맞은 돈을 지불하라고 했었지.”

“덕분에 저희 청의 기사단은 무림의 세계를 독점하는 데 애를 먹고 말았죠.”

“우리도 그랬지!”

랴오륭이 청예신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면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했어, 영웅님! 저 망할 백작 놈보다는 영웅님이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겠지!”

새롭게 펼쳐질 마계에 대해서.

나지막하게 덧붙여진 말에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그렇다고 하네요.”

라이 에스페란도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맡기겠습니다.”

한발 물러나겠다는 소리였다.

- 주제를 알아서 다행이구나.

니르로르가 오만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라고 유리한이 말해 달라고 했느니라.

“내가 언제 그랬어?”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뺨을 쭉 잡아당기고는 말했다.

“그럼, 보고 올게요.”

69층의 문지기가 ‘마계’라고 불리는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순간이었다.

* * *

주철야.

그는 마교의 수장이었다.

무림에서는 천하제일악인(天下第一惡人)이라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원했다. 또한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기를 끊임없이 바랐다.

그렇기에 주철야는 날밤이 새도록 수련하고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나 성장은 더디기만 했다.

“빌어먹을!”

10년에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이자 주철야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공이란 무공은 모두 흡수하고 영약이란 영약도 모두 먹어봤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은 이 자리에 계속 고여 있단 말인가!

그 이유를 주철야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자신과 같은 실력자와 맞붙은 지가 너무 오래돼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문이 없어서.

그렇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다.

주철야는 결국 술독에 빠져 허송세월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같았다.

“마교의 수장이신 주철야 님이 아니십니까?”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듣기 좋은 미성을 가진 그는 주철야에게 손을 내밀며 웃었다.

“귀하신 분께서 왜 이렇게 살고 계시는 겁니까?”

“닥쳐라!”

주철야는 그를 향해 술병을 집어 던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지도록 해라, 이 버러지 같은 녀석아!”

“감히 누구한테 버러지라고 하는 거야?!”

남자의 곁에 있던 소년이 버럭 소리 질렀다. 남자는 진정하라는 듯 소년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주고는 주철야에게 물었다.

“강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뭐?”

“강해지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주철야 님.”

남자가 주철야의 앞에 앉아서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줬다.

다정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에 주철야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남자는 그대로 미소를 그렸다.

“주철야 님, 당신이 바라는 그 힘을 제가 쥐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네놈의 뭘 믿고?”

남자가 로브를 끄집어 내렸다.

태양같이 찬란한 금발이 달빛에 빛을 발하자 주철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남자는 싱긋 웃었다.

“보시는 그대로 믿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펼쳐진 것은 마법진이었다.

“제 이름은 멀린 아서.”

푸른 눈의 남자가 싱긋 웃었다.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 플레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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