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26)화 (226/235)

226화 

【 28. 스승과 제자 】

“트라이……?”

내뱉은 목소리가 허망하게 흩어졌다.

“안녕, 제이.”

트라이가 제로 바니스타를 향해 싱긋 웃었다.

백작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분명, 친구를 만나면 기쁠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트라이를 만나면 있는 힘껏 그를 안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왜 기쁘지 않은 걸까?

트라이는 그런 백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옅게 미소를 그리며 인사했다.

“안녕, 제로. 오랜만이야.”

“정말… 너야……?”

“그럼, 나지.”

트라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 편지를 받았을 줄 알았어. 스승님의 마법은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스승님?”

“응.”

트라이가 멀린 아서의 곁에 가선 말했다.

“멀린 님은 내 스승님이셔. 탑에서 죽어가던 나를 살려주셨지. 이렇게 너와 대화할 수 있는 것도 다 스승님 덕분이라고.”

“너무 띄워주지 마, 트라이.”

멀린 아서가 웃음을 흘렸다.

“그보다, 트라이. 어서.”

“아, 네.”

트라이가 제로 바니스타를 향해 한 걸음 내딛고선 말했다.

“제로. 스승님은 나쁜 분이 아니셔.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세상을 위해서라고.”

“세상?”

“그래.”

트라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설마, 세상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잊은 적 없다.

제로 바니스타는 탑 바깥에서 제게 행해진 실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는 무한의 마력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실 거야.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빌어 처먹을 자식들을 없애주실 거라고! 그러니까, 제로.”

트라이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하자.”

제로 바니스타는 제게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제로?”

“미안, 트라이.”

제로 바니스타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트라이가 두 눈을 번뜩였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니? 뭐를?”

제로 바니스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다물 뿐.

그 모습에 트라이가 버럭 소리 질렀다.

“내가 말했잖아! 스승님께서는 탑 바깥의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실 분이라고!”

“그래, 그렇게 말했지.”

제로 바니스타가 애달프게 친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 누군가 희생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제로!”

트라이가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래? 아, 설마. 저기 있는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

제로 바니스타가 고개를 저었다.

유리한 때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유리한의 동생, 유지한.

그가 생각나서였다.

자신의 방조 속에서 죽어간 그녀의 동생이 말이다.

“트라이. 나는 너를 찾기 위해 애꿎은 사람을 희생시켰어.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무시했지.”

그렇게 하면 트라이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얻은 건 없었다.

선량하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뿐.

“미안, 트라이.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

트라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로 바니스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쥐기까지 했다.

그러나 곧 그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트라이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살기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스승님의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죽일 수밖에. 그래도 되죠, 스승님?”

“물론.”

허락이 떨어졌다.

파지직!

트라이의 주위로 전격이 튀기 시작했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 제로. 너를 죽여야 하는 내 마음도 죽을 만큼 아프니까.”

그럼, 죽이지 않으면 되지 않나?

제로 바니스타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트라이는 망설임 없이 마법을 날렸다. 백작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젠장!’

멀린 아서가 웃는 낯으로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끔 했기 때문이었다.

제로 바니스타는 제게 날아오는 마법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리고 실소를 흘렸다.

자신에게 꽤 어울리는 최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콰광!

제로 바니스타를 향해 날아오던 마법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에 제로 바니스타가 가볍게 기침을 터트렸다.

곧 흙먼지가 걷혔다.

‘어떻게 된 일이지?’

백작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고개를 들었고.

“…맹주님?”

제게 등을 보이고 있는 랴오륭을 발견했다.

“하하! 오랜만이야, 백작.”

랴오륭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끼어들어도 되겠지?”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요?”

그의 목소리 뒤로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단장님까지!”

청예신이었다.

청의 기사단장이 부드럽게 미소를 그렸다.

“랴오륭 씨의 말대로 오랜만이에요, 백작님.”

청예신이 그렇게 말하고는 검을 꺼내 들었다.

“저도 끼어들겠습니다.”

제로 바니스타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두 사람이 이곳에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트라이 역시 마찬가지.

트라이가 당황한 낯으로 멀린 아서를 불렀다.

“스승님.”

“오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것 참 귀찮게 됐네.”

멀린 아서가 싱긋 웃었다.

“죽이렴, 트라이.”

“네,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트라이의 위로 수 개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 * *

쿠구구궁!

대지가 파괴되고 하늘이 울렸다. 그 사이에서 유리한은 쿨럭거리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으윽…….”

이렇게 다쳐본 적이 있었던가?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때에도, 이 탑에서도 없었다. 유리한이 입 안에 고였던 피를 내뱉고는 중얼거렸다.

“요한이랑 니르로르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괜찮을 거다.

유리한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디에스…….”

디에스 라고는 폭발의 중심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저대로 두면 죽을 거다.

마력 폭주를 일으킨 플레이어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열에 열이 모두 죽었으니.

문제는 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마법사뿐이라는 거였다.

‘빌어먹을.’

왜 자신은 마법사가 아닌 걸까!

하지만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를 구하고자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보다 더 뛰어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유리한이었다.

분명 디에스 라고를 구할 방법이 있을 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를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유리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은 치료하면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살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디에스.”

유리한은 자신의 동료이자 소중한 친구인 그에게로 향했다.

1초가 1년과도 같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을 때, 그녀는 디에스 라고에게 도달했다.

“디에스!”

“유…리…….”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을 알아보고는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피해라…….”

유리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엉망이 된 몰골로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유리… 나는 곧 죽을 거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죽기는 왜 죽어?”

“너도… 알지 않나, 유리…….”

디에스 라고가 쿨럭, 피를 토해내고는 말했다.

“나는…….”

멀린 아서가 주입한 무한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한다.

디에스 라고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유리한도 알고 있었다.

“피하지 못하겠다면… 나를 죽여라, 유리…….”

“미쳤어?!”

유리한이 버럭 소리 질렀다.

“내가 널 어떻게 죽여! 절대로 못 죽여!”

“유리…….”

디에스 라고가 애달프게 그녀를 불렀다.

“고집부리지 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성적으로 생각한 거야.”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나는 절대로 너를 못 죽여.”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디에스 라고는 오래전부터 생사를 함께한 동료다.

“꼭 구해줄게.”

“유리…….”

디에스 라고의 뺨을 타고 투명한 것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은 괴롭게 구겨졌다.

“으… 으아아악!”

결국, 마력을 견디지 못한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다.

“끄아아악!”

“디에스.”

유리한이 황급히 디에스 라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분명, 그의 마력을 진정시킬 방법이 있을 거다. 없다면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윽!”

디에스 라고가 품은 무한의 마력이 유리한을 튕겨내 버렸다.

“디에스!”

바닥을 여러 차례 굴러 아플 법도 하건만, 유리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디에스! 정신 차려!!”

안타깝게도 유리한의 목소리는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닿지 못한 거다.

“젠장, 디에스 라고!”

유리한이 그를 향해 다시 몸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그의 폭주를 가라앉혀야만 했다.

이대로 디에스 라고가 죽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를 향해 다급히 걸음을 뗄 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리한이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녀를 붙잡은 사람은 분명 자리를 피했을 거로 생각했던 동료였다.

“요한?”

“유리한 씨.”

고요한이 유리한의 엉망진창인 몰골을 보고서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은 디에스를!”

“알아요.”

고요한이 유리한의 말을 끊고는 힐을 시전했다.

“제가 해결할게요, 유리한 씨.”

“네……?”

유리한이 멍하니 목소리를 내뱉었다. 고요한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저, 마법사잖아요.”

그것도 위대한 죽음의 드래곤이라 불렸던 니르로르에게 마법을 배운 무한의 마력을 지닌 마법사.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요한.”

기꺼이 디에스 라고를 향해 나서주겠노라 말하는 그가 정말 고마웠다.

또한 괴로웠다.

고요한을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녀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요한. 부탁할게요.”

고요한은 대답했다.

“네, 유리한 씨.”

자신만 믿어달라는 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