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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28)화 (228/235)

228화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멀린 아서가 두 사람의 뒤에서 웃고 있었다.

“멀린!”

디에스 라고가 얼굴을 구기며 그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찰나.

“미안, 디에스.”

멀린 아서가 마법을 시전해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를 내던졌다.

“디에스 씨!”

고요한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저기, 지금 디에스를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멀린 아서가 고요한의 손목을 강하게 틀어잡았다.

“윽……!”

무지막지한 악력에 고요한이 얼굴을 찡그리자, 그가 웃으며 물었다.

“신기하네. 도대체 어떻게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당신한테 말해 줄 의무 따위 없습니다.”

“그렇겠지.”

멀린 아서가 싱긋 미소 지었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아. 어차피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은 내 것이 될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고요한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요한!”

멀리서 달려오고 있던 유리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멀린! 멈춰!!”

“리한.”

고요한의 손을 잡고 있던 멀린 아서가 싱긋 웃었다.

“멈추기에는 이미 늦었는걸?”

파지직!

고요한과 멀린 아서 사이로 전기가 튀기 시작했다.

“으윽!”

쓰러진 고요한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요한!”

유리한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멀린 아서가 잡고 있는 고요한의 손에서 마력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요한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마력을 강탈하는 것이리라.

“멀린 아서!”

유리한이 당장에라도 그를 향해 달려들 듯이 이를 드러냈다.

“멈춰, 리한.”

멀린 아서는 평온하게 말했다.

“네 동생처럼 이 친구도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뭐?”

멍하니 묻는 소리에 멀린 아서가 눈웃음을 지었다.

“지한이가 왜 죽었는지 알아?”

당연히 안다.

유리한은 온갖 실험 끝에 명을 달리해 버린 동생의 모습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멀린 아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재차 물었다.

“알지?”

유리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린 아서는 그녀가 알고 있으리라 믿는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렇게 몰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그거야.”

오광이지 않나?

유리한이 미간을 좁히고는 멀린 아서를 노려봤다.

그때 디에스 라고가 외쳤다.

“유리! 듣지 마라!!”

하지만.

“나야, 리한.”

이미 늦어버렸다.

멀린 아서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한이의 일은 미안하게 됐어. 원래는 네 동생이 가진 무한의 마력만 얻고 끝내려고 했었거든.”

죽일 생각은 없었다면서 사과했다.

“미안해.”

선하게 웃는 낯으로 말이다.

유리한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거짓말.”

“아니야, 리한. 너도 알잖아?”

멀린 아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는 거짓말 같은 거 하는 성격이 아니란 것을.”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유리한이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멀린 아서!!”

쿠구구궁!

유리한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에 멀린 아서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역시 대단해! 리한, 내가 이래서 너를 좋아한다니까!”

다음 순간,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만큼 싫어하지만.”

그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축 늘어져 있던 고요한을 집어 던졌다.

“요한!”

잠시 이성을 잃었던 유리한이 급히 움직여 추락하던 남자를 잡아냈다.

“요한, 정신 차려요! 요한!!”

고요한의 몸에서는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멀린 아서가 무한의 마력을 모두 강탈해 버린 거다.

‘도대체 어떻게 요한한테서 마력을 뺏어 간 거지?’

유리한이 이를 악물던 그때.

“유…리한 씨……?”

고요한이 힘겹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유리한이 안도하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요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요.”

가지고 있던 마력을 모두 빼앗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 진정하거라, 유리한아.”

니르로르였다.

그가 옆구리에 디에스 라고를 낀 채로 나타났다.

“오는 길에 주웠느니라.”

니르로르가 디에스 라고를 바닥에 놓아주고는 이어 말했다.

“계속 귀찮게 굴길래 오다가 기절시켰다.”

“뭐?!”

그 말대로 디에스 라고는 두 눈을 꼭 감고 정신을 잃은 채였다.

유리한이 이를 드러냈다.

“안 그래도 상태 안 좋은 애한테 무슨 짓이야?!”

“안 그랬으면 죽었을 거다.”

니르로르가 무심하게 말했다.

“저 마법사한테서 살기가 느껴졌으니.”

유리한이 휙 고개를 돌렸다.

고요한이 가지고 있던 마력을 모두 강탈해 버린 멀린 아서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유리한이 표정을 굳히고는 창을 꺼내 쥐었다.

“니르로르. 디에스랑 요한, 지켜줄 수 있지?”

“물론이지.”

니르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거라. 짐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두 녀석을 지켜줄 테니.”

그러자 고요한이 외쳤다.

“유리한 씨! 저는 괜찮아요! 저도 함께할래요.”

“요한.”

유리한이 다정하게 말했다.

“제 싸움에 요한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그 말을 남겨두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리한 씨…….”

고요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 * *

유리한이 감쪽같이 사라졌음에도 멀린 아서는 태평했다.

“리한, 계속 숨어 있을 거야?”

어차피 그녀는 자신의 근처에 있을 테니 말이다.

멀린 아서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유리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그림자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다.

멀린 아서가 싱긋 웃었다.

“못 본 사이에 재미난 힘을 얻었네? 그보다 더 재미난 녀석도 데리고 있고.”

“몰랐나 봐?”

“아니, 알고 있었어.”

멀린 아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두 눈으로 보니까 신기해서 말이야.”

그야,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였던 죽음의 드래곤인 ‘니르로르’와 그녀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그가 사용하던 힘과 비슷한 것을 두르고 있으니 신기할 만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멀린 아서는 처음 유리한이 니르로르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깜짝 놀랐었다.

‘직접 보니까 더 놀랍네.’

멀린 아서가 싱긋 웃었다.

“니르로르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마음대로 생각해.”

유리한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한테 가르쳐줄 이유 따위 없으니까.”

멀린 아서가 입술을 오므렸다.

“네 힘을 가지고 있던 남자와 같은 말을 하네? 신기해라.”

“별걸 다 신기해한다?”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창을 들어 올렸다.

“뭐, 마음껏 신기해하도록 해. 곧 죽을 테니까.”

살기 어린 목소리에 멀린 아서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친구한테 너무 무서운 말을 하는 거 아니야, 리한?”

“닥쳐.”

유리한이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지한이의 이름을 거론한 순간부터, 아니, 디에스를 그 꼴로 만든 순간부터 우리 관계는 끝나버렸으니까.”

그러자 멀린 아서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디에스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유리한이 두 눈을 번뜩이고는.

“죽어.”

땅을 박찼다.

그녀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멀린 아서는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유리한이 오감 지배자(A)를 이용해 그의 감각을 차단해 버린 거다.

멀린 아서가 픽 웃었다.

“나를 정말 죽이고 싶은가 보네? 처음부터 내 감각을 빼앗아 가버리다니.”

유리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한다고 해서 멀린 아서가 들을 리도 없거니와, 그와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빠르게 그의 앞에 도달한 유리한이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리한, 나는 마법사야.”

파지직!

그의 주변에 전기가 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유리한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크윽!”

유리한이 제 목을 노리던 마법을 아슬아슬하게 파훼시키고는 흙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사이 멀린 아서는 공중에 몸을 띄웠다.

“내가 그저 그런 마법사였다면 네 손에 금방 죽었겠지. 그렇지만, 리한, 너도 알잖아?”

멀린 아서의 두 눈에 마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란 것을.”

멀린 아서.

그는 위대한 대마법사였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검사이기도 했다.

곧, 그의 손에 검이 들렸다.

멀린 아서가 정확히 유리한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이런 식으로 너와 척을 지게 돼서 슬플 따름이야.”

“헛소리 집어치워.”

“그렇게 들렸다니 유감이고.”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위대한 마법사께서는 마력을 이용해 그녀의 스킬을 무마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유리한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그를 향해 땅을 박차 날아올랐다.

멀린 아서 역시 웃는 낯으로 허공을 박차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유리한이 그림자를 움직이자 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공에서도 저 힘을 사용할 수 있나 보네? 하긴, 그래야 재미있어지겠지.’

멀린 아서가 씨익 웃었다.

유리한과 진심으로 맞붙는 것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멀린 아서가 쇄도하는 그림자를 베어내고는 유리한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카가각―!

유리한의 창에 멀린 아서의 검이 가로막혔다.

얼굴을 가까이하게 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리한.”

“멀린.”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뭘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는데?”

멀린 아서가 싱긋 웃으며 재잘거렸다.

“지한이한테 왜 그랬는지 묻는 거야, 아님, 디에스한테 왜 그랬는지 묻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이 땅의 종족들에게 왜 그런 건지 묻는 걸까?”

“모두 다!”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창을 휘둘러 그의 검을 튕겨냈다.

멀린 아서가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창이 뺨을 스치는 건 막지 못했다.

유리한이 제게서 물러난 그를 향해 소리 질렀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멀린 아서! 대답해!!”

멀린 아서가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낸 후 미소를 그렸다.

“대의를 위해서야.”

“뭐?”

대의라니?

유리한이 일그러진 미소를 그려 보이며 물었다.

“사람을 죽이고, 죽이려고 하고, 학살하려고 한 게 대의를 위해서라고?”

“그래.”

멀린 아서가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한, 무한의 마력이 어떤 힘인지 알아?”

멀린 아서의 위로 수십, 수백 개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건 아주 간단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야.”

“그래서?”

유리한이 비딱하게 물었다.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그 힘을 탐냈던 거야?”

멀린 아서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주는 의미는 명백했다.

‘정답이라는 거겠지.’

유리한이 픽 웃었다.

“멀린, 대의를 위해 무한의 마력을 탐냈다고 했지?”

그녀가 살기를 내뿜으며 으르렁거렸다.

“지랄하지 마. 너는 그저 네 욕심 때문에 그 힘을 원했던 것뿐이잖아.”

세상이니 뭐니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으리라.

유리한의 날 선 외침에 멀린 아서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역시, 유리야.”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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