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화 (1/324)

1화

<스타트>

<<주민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쇼핑센터 내에 디제스터가 출현했습니다. 방송을 듣는 즉시 대피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끄러운 소리.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소리의 변화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경우…찾아오는 것은 아비규환.

“으아아악! 살려줘! 저리 비켜!!”

머릿속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구 쪽으로 몰리며 자기들끼리 밀쳐대며 살기 위해 아우성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방송에서 언급한 그 이름, 디제스터의 이름을 들은 이상.

10년 전, 인도 뭄바이에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란 말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없이 뭄바이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들이 자연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뭄바이에 있던 모든 건물들, 모든 인공물들 역시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시체만이 빼곡히 존재하는 드넓은 벌판으로 화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 날을 일컬어 ‘대참사’라고 불렀다.

그 날 부터였다. 디제스터가 나타난 것은.

디제스터. 인류의 천적.

인간의 상상으로만 생각했었던 존재들이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나타나 인간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인간 얼굴에 사자의 몸, 박쥐의 날개를 가진 괴물이, 총을 아무리 맞아도 재생하며 덮쳐오는 거인이 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나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비정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이런 마물들을 총칭하여 디제스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그 10년간 인간들은 디제스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적응하여 빠른 대피태세를 갖추고, 대응 부대도 만들었지만…그럼에도 한계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중대장님! 왜 클레이모어를 설치해서 유인섬멸하지 않는 겁니까? 폭발물과 함께 사용한다면 디제스터를 격퇴할 수 있습니다!”

‘니기미. 이 새끼가 지금 지 책임 아니라고 지멋대로 씨부리네?’

이래서 학군새끼는 안 돼. 그걸 지금 누가 몰라서 안하고 있냐? 속으로 온갖 욕지기를 다 내뱉은 중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현대화기는 강력하다. 정말 재수 없는 상성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디제스터는 섬멸이 가능하다. 눈 딱 감고 MBT, 그래. K-2 흑표라도 끌고 와서 120mm 활강포라도 쏴재끼면 고대 괴물이고 신화시절 괴물이고 간에 걸레조각으로 만들 수 있겠지.

이 쇼핑센터가 개작살 나는 걸 감수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후…. 디제스터 하나 잡는데 쇼핑센터를 가라앉히면 진급은 물 건너가잖아.’

디제스터 자체는 인류의 천적이니 모든 힘을 다해서 잡아야하지만, 그로 인해 일어난 재산손실 등을 온전하게 커버해 주냐면 그건 아니었다.

물론 그걸 그의 월급에서 까서 갚게 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적어도 ‘책임’을 물게 되리라.

지금 옆의 이 학군 출신 소대장은 그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언하고 있으니 중대장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주, 중대장님! 디제스터 육안 확인!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막아! 1소대 사격, 2소대 분대화기 준비!”

“그, 그게!”

부대원들이 뚜렷하게 당황하는 목소리에 중대장은 지금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나타난 디제스터를 보니 병사들이 당황하는 이유를 알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의 안개 같은 형체를 가진 이상한 존재였다. 저기에 총을 쏜다고 해서 상처를 입기나 할까? 클레이모어가 어쩌고 어째? 저런 걸 상대하려면 특수 장비가 필요하리라.

그러나 지금 이들은 대 디제스터 전문 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디제스터가 쇼핑몰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급하게 투입된 수방사의 병력.

사실상 5대기에 가깝게 튀어나온 건데 분대지원화기와 폭발물까지 착실하게 들고 나온 것만으로도 평소 훈련 이상의 역량을 발휘했다고 칭찬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아…아아….”

그 검은 안개의 한쪽 끝이 날카롭게 가다듬어지더니, 긴 손톱 달린 손 모양이 되어 천천히 뻗어서 부임한지 얼마 안 된 여자 부사관에게 가져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사 계급장을 단 그녀는 이미 패닉에 빠졌는지, 목숨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덜덜 떨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검은 안개는 그런 그녀를 희롱하듯, 수많은 병사들이 시선이 집중된 와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손을 움직여 그녀의 몸 주변을 닿지 않고 훑어나갔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그녀의 목에 차고 있던 군번줄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가고, 스쳐지나간 군복에 실금이 그어지며 천천히 양옆으로 벌려졌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날카로움.

대학에 막 입학해서 부사관을 지원한 그녀의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몸이 남성 병사들에게 만천하에 공개되었지만, 그녀는 불쾌감이나 굴욕감보다, 검은 안개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사이한……얼음장 같이 차가운 기운에 압도당하여 옴짝달싹 조차 하지 못했다.

뼛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듯한 오싹함에 자기도 모르게 양 허벅지를 오므리며 검은 안개를 직시할 뿐이었다.

‘젠장…!’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중대장의 안색도 새파래졌다. 다 죽는 건가? 이런 장소에서? 저런 어처구니없는 것에게? 대항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이 녀석들 집에 돌려보내주겠다고 편지 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안개는 중대장이 생각이 어떻건, 천천히 손을 벌려서 하사의 얼굴을 감싸 그러쥐려했다.

오금이 저린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걸까? 하사는 자기도 모르게 오므렸던 다리를 덜덜 떨다가, 어째선지 허벅지 안쪽 부근이 뜨끈해 진 것 같다고 느끼며 눈을 꼭 감았다.

바로 그 순간!

“늦어서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고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병사들은 그 순간 검은색 인영이 자신들의 위를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 너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 물어보고 말았지만, 중대장은 이미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중대 병력을 통째로 넘어선 그 인영은 검은 안개 앞에 도착한 순간 검은 선이 되어서 안개를 유린했다.

하사를 감싸고 있던 팔이 끊어져나가고, 폭음이 터지며 몸통과 머리에는 원형 구멍이 숭덩숭덩 뚫려나갔다.

“사라져라!”

마지막으로 제자리에 멈춘 그는 크게 왼 팔을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크게 그어버렸다.

“키에에에에에!”

그와 동시에 검은 안개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마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벼렸다. 그 자리에는 이제 그 검은 인영, 아니 머물러 있는 한 명의 사람이 일으킨 시원한 바람이 대신 남았다.

아니…저게 사람은 맞긴 한 걸까?

중대급 병력의 머리 위를 날아들어 온 것부터가 이미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지금 그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완전한 비무장.

재래식 병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적을…오직 적수공권만으로 격퇴한다는 게 말이 될 리가?

그런 게 가능한 존재라면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으리라.

“너…일리미네이터냐?”

빙긋. 중대장의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 그는 더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고 쇼핑몰의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선 방금 전 검은 안개 괴물을 쓰러뜨릴 때 났었던 폭음들이 몇 번 더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중대장은 꾸욱 하고 주먹을 그러쥐며 작게 읊조렸다.

“만분의 일인가…. 마법사 놈들….”

“네?”

“아무것도 아니다! 철수한다! 마법사가 왔으니까!”

그들이 왔다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날 때부터 인간을 초월한―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마법사란 그런 존재들이니까.

중대장은 이제 와서 목숨의 위기에 공포를 느껴 실례를 한 것이 부끄러워 주저앉아 울고 있는 하사를 다독여주면서 병사들을 물렸다.

*

모든 것이 정리된 후, 쇼핑센터의 옥상.

자살방지를 위해 설치된 철제 펜스 위에 올라서서 동틀 녘의 막 떠오르던 해를 바라보던 청년이 함박 미소를 지었다.

이 날을…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드디어…내일이구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이 시작되는. 이 날을.

재앙Disaster은 인간을 먹어치우고 인간은 마Devil에 손을 벌려 재앙에 저항한다.

액을 막기 위해 싸우는 저주 받은 이들Eliminator의 이야기.

지금 여기서 스타트.

============================ 작품 후기 ============================

신작 업데이트 내역이 메인에 뜨질 않아 새로 올립니다.

일일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