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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5화 (15/324)

15화

마트에 연결된 주차장 2층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디제스터, 임시명칭 ‘블랙 레오파드’에겐 선택지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이대로 1층으로 뛰어내려 도로에 있는 인간들을 습격하는 것.

둘째는 인기척이 가득 느껴지는 마트 내부로 들어가는 것.

디제스터를 괜히 인류의 천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디제스터는 오로지 인간만을 노린다. 생성되어 퇴치될 때까지 개체 차이에 따라 빈도수 차이는 있지만 인간만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인기척이 가까이에서 느껴지고는 있지만, 침입하기에 번거로운 셔터가 쳐져있는 마트로 들어가는 것은 블랙 레오파드에게 있어서 그렇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주차장 내부는 괜찮지만 마트와 연결되는 통로에 이르자 블랙 레오파드의 거체로는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니 이것은 지극히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크르르르르….”

괴물은 느꼈다. 자신을 부르고 있는 기척이 있다. 자신의 등장을 알았음에도 멈춰 서서 기다리고 있는 먹이가 있다.

겁에 질린 것인가? 아니다. 몇 겹에 겹친 장애물 너머에 있었지만, 그것이 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기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블랙 레오파드는 그 기백에 홀려, 천천히 화등잔만한 눈에 귀화를 피어 올리며 마트 입구를 향하는 길을 뚫었다. 그렇게 마지막 방해물을 뜯어내자 괴물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놈의 모습은 보통 먹이들과 다르지 않다. 2미터도 되지 않은 작은 몸. 만지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은 수수깡 같은 몸. 자신의 거체라면 온몸을 다 내던질 것도 없이, 주먹만 휘둘러도 박살나며 죽을 것이 뻔한 먹이. 허나….

“너. 어떻게 저걸 혼자서 상대할 거냐고 했었지? 똑똑히 봐둬.”

“크르르르르!”

블랙 레오파드는 그를 마주친 그 순간부터 한껏 긴장을 끌어올리며 경계했다. 그에게 인간의 표정을 가늠할 정도의 지능은 없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알고 나오는 지식. 모든 먹이들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에 저것은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것은 먹이가 아니리라. 분명….

“진정한 일리미네이터의 싸움을…보여주지.”

사냥꾼.

“크허어어어엉!”

그 순간, 블랙 레오파드는 자신이 무엇에 이끌렸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을 위협하는 요소를 최우선적으로 제거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열망.

그것을 자각한 괴물은 포효하며 스스로의 전의를 북돋았다. 타오르던 귀화가 더욱 커졌다.

*

“―강화 주문 봉인 해제. 마력 완전 개방.”

푸확!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천후의 몸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디제스터가 정문을 뜯어놓은 덕에 빛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 거체에 가려 여전히 많이 어두웠던 마트 내부가 한순간 환해졌다가 도로 어두워졌다.

“후. 후후. 후후후후.”

빛을 뿜어냈던 천후의 모습은 일견 보기에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터트렸던 빛도 딱히 물리력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주변에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감각이 비상히 끌어올려져 있는 상태인 셀레나의 눈은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저, 저게 뭐야?”

어둠 사이사이로…일렁임이 보였다. 온 몸에서 투명한 일렁임이 일어나 그의 몸이 미묘하게 비틀려보였다. 그 비틀림은 천후의 웃음에 따라 들썩이는 어깨를 따라 함께 움직인다.

그것이 마력을 온 몸에 휘감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셀레나는 전율했다.

저것은 사전에 신체에 걸어두었던 강화마법이 뿜어내고 있는 여파였다. 신체 자체에만 영향을 발휘하는 마법의 힘이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표출되어 주변 공간이 일그러져 보이고 있는 것이다.

블랙 레오파드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몸을 한껏 웅크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했다.

“뭐야? 안 올 거야? 산더미만한 놈이 그러고 있으면 안 되지.”

천후는 그 모습에 한껏 풀어진 웃음을 지으며 손을 까닥거리며 도발했다. 그것에 본능을 자극당한 괴물이 등 뒤에 달려있는 두 개의 촉수를 꿈틀거리다가…쏘았다.

파앙! 콰콰콱! 순간, 채찍 등이 음속을 넘을 때 나는 특유의 소리와 동시에 그가 서있던 지면에 촉수가 틀어박히며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이미 이것만으로 사람이 맞는다면 그대로 관통되며 부서질 위력에, 사람으로선 도저히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속도다.

하지만 영천후는…아지랑이에 감싸인 체, 땅에 박힌 두 촉수를 발로 밟고 서있었다.

“궤도가 너무 뻔한데. 그리고 그 몸뚱이를 하고서 겨우 이런 거나 휘두를 거야?”

두 촉수 모두 몸통을 단번에 관통하기 위한 직선 궤도를 그렸다. 순차적으로 날아온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이렇게 날아오면 비록 그 날아오는 것 자체는 보이지 않더라도 피할 수 있다.

괴물의 눈에 그것은 상대가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아니 그냥 제자리에 서있었는데 촉수가 투과된 걸로 보였다. 당황한 블랙 레오파드는 촉수를 회수하려 했지만, 이번엔 더더욱 놀라운 상황에 직면했다.

“크르르르르!”

촉수를 회수할 수가 없었다. 블랙 레오파드는 이것에 당황했다.

디제스터의 몸 크기는 현제 체고(體高), 그러니까 발부터 머리까지의 높이만 해도 3미터였다. 몸길이 자체는 5미터가 넘는다. 이것은 일반적인 표범의 3배가 넘는 크기이다.

체격이 3배가 크다는 건 단순히 몸무게가 3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피 자체가 큰 것이므로 가로x세로x높이가 되어서 27배.

일반적인 수컷 표범의 체중은 50~60kg. 즉, 블랙 레오파드의 현재 몸무게는 단순비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낮게 잡아도 1톤이 넘어간다는 소리다. 몸의 생김새 등을 생각하면 그 배에 가까울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람 하나가 발로 좀 밟고 있다고 신체 일부를 못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혼자서 황소와 줄다리기를 이기고 있는 꼴이다.

블랙 레오파드 역시 본능적으로 이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라서 낑낑댔지만, 도저히 꼼짝도 못한다. 그 모습을 여유롭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천후는 어느 순간, 미소를 싹 지웠다.

“안 오면 내가 간다.”

그 순간, 천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디제스터는 계속 당기고 있던 촉수를 회수할 수 있었지만, 그 덕분에 주의가 분산되었다.

하지만 분산되었다고는 해도 그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 초자연적인 감각을 지닌 블랙 레오파드는 그 직후 이미 천후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 찰나면 충분하다.

쿠쾅!!!! 폭음이 터져 나오며, 디제스터의 목이 위로 퉁겨져 튀어 올랐다. 블랙 레오타드의 머리가 스테인레스와 복합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통로의 지붕을 뚫고 튀어나갔다가, 천천히 내려오며 땅바닥에 가라앉았다.

쿠우우우웅…. 거체가 땅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으며 흙먼지와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흩뿌려졌다.

그 광경을 셀레나는 멀리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일격. 그 단 일격으로 천후는 디제스터를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촉수를 회수하느라 시선이 분산되었던 그 찰나의 시간에 안면 바로 앞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힌 천후는 자신의 어깨 높이에 있던 블랙 레오파드의 턱에 어퍼컷을 꽂았다.

디제스터의 안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안구 아래쪽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대로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몸 전체가 떠올려져 천장을 뚫었다가 간신히 내려온 것이다.

‘무, 무슨 저런….’

천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완전히 끝장낼 생각으로 그대로 발을 들어서 내려찍어버렸다.

“크허어어엉!”

쿠르르르르릉! 그 순간, 블랙 레오파드가 몸을 일으켜 단숨에 뒤로 수십 미터나 물러났다. 덕분에 표적을 놓친 천후의 발이 그대로 바닥에 꽂히자, 공중에 설치되어있는 주차장과 마트간의 통로가 무슨 밧줄다리처럼 출렁이며 요동치다가 그의 발 바로 앞 몇 미터가 끊어져 나갔다.

“칫.”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 챘군. 혀를 찬 천후는 통로를 완전히 벗어나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블랙 레오파드를 쫒았다.

놈이 좁은 장소는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넓은 장소로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전투를 아예 포기하고 길가로 뛰쳐나가 설치기 시작하면 피해가 커진다.

판단을 마친 천후는 아직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놈에게 쇄도했다.

*

“무슨…저런 마법사가 다 있죠?”

영천후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셀레나는 얼이 빠졌다.

마법사를 마법사라고 부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과거 설화속의 마법사들이 하는 행동과 실제 마법사들이 하는 행동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마법사가 마법을 발휘하려면 3가지의 준비가 필요했다.

마법의 3요소 영창(詠唱), 수인(手印), 마력(魔力).

영창이란 주문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아브라 카다브라’다.

수인이란 간단하게 율동이다. 지팡이를 들고 흔든다거나, 특수한 손 모양을 취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행해야 마지막의 마력을 소모해서 마법의 실행이 가능하다.

이것들을 거침으로서 모든 마법사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초자연적 능력, 마법이란 이름의 이적을 발휘할 수 있다.

즉, 손 모양을 여러 번 마구 바꿔가며 ‘임병투자개진열재전‘이라고 이마에 힘줄 세우며 외쳐줘야 마법이 나간단 소리다.

이렇다보니 일반적인 일리미네이터의 싸움 양상은 원거리전의 양상을 띤다. MMORPG로 따지자면 원거리 딜러들이 넓게 사방으로 퍼져서 몹 하나를 어그로로 드리블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춤추고 노래 좀 해줘야 마법이 나가는데, 사람 머리통을 무슨 쭈쭈바 꼭지 따는 것 마냥 툭툭 쳐 날리는 괴물들 상대로 코앞까지 다가가 저 짓거릴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원거리전을 해도 사망자가 종종 나오는 판이니 다른 선택의 여지 따윈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지금 영천후가 하고 있는 저 짓거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실텐데요.”

“있기야 하죠. 아마도…신체를 강화하는 주문을 사전에 외워놓은 다음 특정 상황에서만 발동하게끔 해서 그 지속시간동안 싸우고 있는 거 같은데, 미친 거 아닌가요?”

셀레나의 추측으로 영천후의 저것은 전체적인 신체 스테이터스 증가와 가속효과, 강체효과 등의 버프를 떡칠하듯 겹겹이 바르고, 그 지속시간들을 짧게 설정해서 최대 효과를 누리고 있는 동안 싸우는 전법이었다.

말이 전법이지….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참신한 자살 방법 이상이 아니었다.

“마법사마다 특기로 하는 종류의 마법이 있는 법이예요. 화염이나 번개마법 같은 에너지 방출계열에 강한 마법사는 치유마법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효과가 낮죠. 약국에서 연고나 사다가 바르는 게 나은 수준인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일리미네이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방출계열 마법사들이죠.”

그런 마법사들이 아니라면 디제스터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그런데 저 사람은 아마도 강화마법이 자기 적성인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무모해요. 아무리 강화마법을 걸어 놨다 해도…한대만 맞아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거예요.”

원래 공격력이 방어력보다 증가하기 훨씬 쉬운 법이다. 저런 거체 괴수의 공격은 방어마법의 고수라고 해도 대부분 몇 번 버티지 못한다. 하물며 그냥 신체 강화마법이라면…스스로 날리는 공격에서 오는 반동만 막아도 대단한 수준이리라.

셀레나의 말에 조용히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희주는, 그러나 조용히 말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맞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네…?”

“피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둔다면, 공격력은 충분해 보입니다만.”

희주는 중간이 끊어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부분도 크게 뒤틀려버린 통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과연…그가 방금 발휘한 그 공격은 방출계열 마법사들에 크게 뒤지지 않을 위력이다.

물리력만으로 따지자면 거의 양손에 대전차 로켓을 달고 있는 수준. 그렇다면 디제스터가 상대라도 충분히 통하리라. 하지만….

‘그게…말이 돼?’

그저 거체인 것 뿐 아니라, 거의 음속에 달하는 공격을 날리는 괴물을 상대로 단 한 번의 피격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말이 될 리가 없다.

‘그치만….’

영천후는 방금 전 이미, 그것을 실제로 체현해 냈다. 그렇다면….

‘단독으로 디제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일리미네이터……!’

셀레나는 자신이 어제부터 지금까지 한 말들을 기억해내고는 머릿속이 아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주씨….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죠?”

“저 사람이 싸우는 곳 쪽으로 가보고 싶은데요….”

“위험합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봐두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요.”

“…….”

의도를 파악하듯 희주는 맑은 눈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셀레나는 어째선지 자신의 생각이 모두 읽히는 것 같아 부끄러워 그 눈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희주는 얼마간 말없이 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오늘 오후에 한번 더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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