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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8화 (18/324)

18화

<취직을 하긴 했는데...>

화창한 오후.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어 오늘 같은 날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라도 가면 좋아하겠다 싶은 날씨였다.

그런 날의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천후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어…. 여기 맞지?”

며칠 전, 셀레나에게 입사 권유를 받아서 응낙한 그는 오늘부터 자신의 직장이 될 곳에 와있었다.

“오늘은 직원들 소개나 좀 시켜준다고 했었지, 아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천후는 그래도 규모가 꽤 되는 중소기업의 이미지를 떠올렸었다. 일리미네이터 일을 하니까 무슨 컨베이어 벨트 같은 건 없겠지만, 왜 있잖은가?

따닥따닥 붙어있는 사무용 책상. 그 위에 각 사람 별로 놓여있는 컴퓨터.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수많은 포스트잇들. 그 빡빡함에 질려 고개를 돌려보면, 달력에 월간 일정들이 빼곡하게 써있는 사무실 같은 거.

“직원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천후와 함께 온 희주는 건물을 올려보면서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그 건물은 중심가에서 20분은 도보로 걸어 들어와야 있는 낡은 상가 건물이었다.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건물 이곳저곳에 실금이 보이는데 매우 안전해 보인다.

상가 입구엔 웬 중국 전통복장인 치파오를 사진이 지하 쪽으로 떡 붙어있고 ‘환상안마’라는 텍스트가 그 옆으로 길게 붙어있는 게 인상적이다.

“…….”

계단을 올라보면 볼수록 가관인 게, 계단 벽 옆면에는 페인트 도색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상가 화장실…이었다고 추정되는 장소엔 변기가 없고, 천정에는 전등 대신 그것에 연결되는 전깃줄이 그대로 노출되어서 치렁치렁 늘어져있었다.

2층은 별다른 이름도 없이 문에 단 두 글자 카페라고만 떡하니 쓰여 있었는데, 오픈을 거를 리가 없는 이 시간에 문이 굳게 닫혀있고, 검은색으로 선팅처리까지 되어있다.

“우와….”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까지 보였던 가게들도 하나같이 좀 수상하다 싶었는데, 여기까지 오니 아주 방점이 찍힌다.

‘이거 괜히 취업한답시고 왔다가, 이번엔 리미터가 아니라 주는 차 같은 거 얻어마셨다가 눈 뜨니까 새우잡이 배에 타고 있는 거 아냐?’

천후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발걸음을 3층으로 옮겼다. 거기까지 가서야 ‘트란제비야 마법 사무소’라는 명패가 걸려있는 철문 하나가 보였다.

“…….”

요즘 세상에 도어 락도 아니고 그냥 손잡이 하나 덜렁 달린 철문이다. 거기다 아무리 살펴봐도 옆쪽엔 벨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천후는 철문에 노크를 해보았다. 철문 너머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그렇게 몇 번을 두드려대자 응답이 들려왔다.

“열려있으니 들어오너라!”

“사람이 있긴 있군.”

안쪽에서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천후는 손잡이를 돌려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의 광경은…아쉽게도 천후가 예상했던 그런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들어서서 보이는 정면 끝에는 창문이 있고, 그 앞에는 꽤 구색을 갖춘 사무용 탁자와 고급스러운 의자가 하나. 탁자 위에는 ‘사장 황권복’ , ‘사장 대리 셀레브리아 R. 루셀’이라는 두 개의 명패가 올려져있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기업의 사장실이나 접객실의 이미지가 났지만…그건 딱 여기까지.

사무실인데 왠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턱이 있는 현관 바로 옆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전자레인지등이 놓여있었다.

중앙엔 탁자, 아니 식탁 하나가 놓여있고, 그 사방으로는 왠 길쭉한 배게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있다. 그냥 길쭉한 모양인 것부터, 고양이 모양 쿠션까지.

사무실 바닥엔 당연하단 듯이 장판이 깔려져있고, 그 위로 푹신해 보이는 카펫이 한 겹 더 깔려있어 드러누워 있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는 벽걸이 TV가 떡하니 걸려있었는데, 그 아래 리모콘 두는 곳에 깨알같이 귀여운 글씨로 ‘리모콘 소유시간표’라고 쓰여 있는 종이가 플라스틱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집인가요?”

“집이네.”

사무실로 보기엔 넘쳐흐르는 생활감에 잠깐 휘청인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면접 봤던 당일의 취업사기만큼은 아니지만, 왠지 이건 이것대로 단단히 잘못 걸린 느낌이 마구 들었다.

그때였다.

“아아. 셀레나냐? 열쇠를 안가지고 나갔던 거냐? 문을 다 두드리다니.”

왼쪽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가 덜컥 열리며, 그 안쪽에서 증기가 흩어져 나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그 안에서 한 명의 사람이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리면서 걸어 나왔다.

꽤나 큰 키의 여자였다. 170cm에 가까운 신장의 그녀는 거의 무릎까지 닿는 긴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덕분에 바닥 아래쪽으로 물기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물기는 머리카락 뿐 아니라 온 몸에 남아있었는데, 수건과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커다란 굴곡 있는 몸매를 따라서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씻다가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허리를 숙여 아래쪽의 물기들을 닦아내려하자, 그 움직임에 따라 쇄골 아래로 달려있는 커다란 계곡이 아래쪽으로 출렁하고 떨어지면서 요동쳤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엄청난 중량감.

양 손으로 다 떠받칠 수나 있을까 싶은 그것이 머리카락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유혹하는 것을 보고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것보다 더 크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은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아름다운 폭력 너머로, 이럴수가 있을까 싶은 잘록한 허리가 기다린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탄력 있는 그것은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그 선을 따라 내려가면, 허리를 지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폭포가 다시 한 번 거대한 굴절을 맞이하며 꺾인다.

출렁이고 있는 것보다 더욱 탐스러운 양 산맥 아래로 쭉 뻗은 다리는 유려한 각선미를 내며, 머리카락의 흐름을 따라 혀를 대고 핥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만들었다.

“……!”

단숨에 남성으로서의 반응이 오는 것을 느낀 천후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여성 직원이 많은 유그드라실에서 자라온 천후다. 어지간한 노출로는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이건 정말 폭력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뇌에서는 당장이라도 저것을 주물러대라고, 입을 대고 마구 빨아대라고 부르짖는다. 머릿속의 시뮬레이션으론 이미 바닥에 자빠뜨려 삽입하여, 교성을 터트리며 저 긴 다리로 허리를 교차하게끔 마구 찔러대고 있었다.

“음? 셀레나. 왜 그러는 거냐? 아. 알았다. 하하. 그거로군. 깜빡하고 이브가 부탁한 푸딩이라도 빼놓고 사온 게냐?”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목소리를 낸 그녀는 발밑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상체를 일으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확 젖혔다. 그와 동시에 남아있는 물기가 튀어 오르며, 몇 방울인가 천후의 얼굴에 튀었다.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입가의 물방울들을 혀로 탐하며,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나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해맑게 웃는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다.

그대로 시간이 멈췄다.

“…….”

“…….”

웃는 모습 그대로 경직되어버린 그녀는 미소로 벌리고 있던 입의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눈동자만 내려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

그러다가 자신의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이 나왔던 문 안쪽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았다.

그 직후 안쪽에서 우당탕쿵쾅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문이 열렸다.

거기서는 무슨 사극, 정확힌 무슨 홍길동이나 일지매나 입을 듯한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여자가 ‘쓰으으으읍’하고 고통을 참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문지르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하, 하하하하! 소, 손님이 오셨었군! 이거 큰 실례를 범했군! 자. 일단 앉으시게들!”

분명 급하게 옷을 입다가 넘어진 모양인데 그걸 눈물을 찔끔 거리며 참으면서 말하는 게 안쓰러워, 천후와 희주는 더 이상 뭔가를 묻지 않고 식탁 앞에 앉아주었다.

그 모습에 여자는 정말 고마운지,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싱크대 쪽으로 달려갔다.

그걸 보는 천후의 뺨은 자기도 모르게 달아올라있었다.

*

“하. 하하하. 오늘 참 공교롭게도 사무실에 있는 게 핫초코 밖에 없군! 평소에는 좀 더 ‘고급차’가 있곤 한데 말이지!”

조금 시간이 지나, 그녀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핫초코 세잔을 타와 둘에게 내주었다.

그러고선 둘의 눈치를 보며 ‘고급차’라는 부분에서 묘하게 악센트를 줘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게 한눈에 봐도 안쓰러워서 천후는 굳이 파고들어 묻지 않기로 했다.

“이야. 그런데 정말 놀랐다네! 설마 이 시간에 손님이 찾아올 줄이야! 평소엔 이 시간엔 손님은 전혀―”

상쾌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말하다말고 스스로 놀라 자기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러다 살짝 둘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바꿨다.

“전혀―엄청 많지만, 보통 사장 대리가 함께 모셔오는데 말이야. 아. 아하하하하!”

그렇게 말하는데, 방금 전 온수에 씻고서 나오다가 몸을 제대로 닦지 못한 여파로 후덥지근함과 말실수가 겹쳐서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땀범벅이 되었다.

그냥 봐도 태생부터 거짓말을 못하는 체질인 게 눈에 보였다. 천후는 더 이상 그녀가 자신들을 의뢰인으로 착각하면 불쌍하다 싶어서 방문 목적을 밝혔다.

“저기, 사실 전 의뢰인이 아니라 오늘부터 이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일리미네이터예요. 영천후라고 하고요. 이쪽은 제 서포터이신 홍희주라고 합니다.”

꾸벅하고 목례로만 인사를 하는 희주와 천후를 번갈아보던 강호는 잠시 눈을 깜빡깜빡 거리다가, 이번에야말로 정말 커다란 함박웃음을 짓더니 천후가 내민 손을 양손으로 와락 하고 움켜쥐었다.

“일리미네이터라고! 이야! 그럼 드디어 나에게도 파티원이 생긴 건가! 너무 기쁘군! 하하하하!”

“파, 파티원? 그럼 일리미네이터세요?”

“그래! 바로 그렇다! 하하하! 너무 반갑군! 영천후라고? 나는 이강호라고 한다.”

붕붕붕! 방에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크게 손을 쥐고 흔드는 그녀의 기세에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 지었다.

그나저나 이강호라니. 꽤나 남자 같은 이름이라고 영천후는 생각했다.

무릎까지 오는 머리를 이마를 완전히 드러내며 뒤로 넘긴 그녀의 용모는 대단히 아름다웠다. 검고 얇은 눈썹과 길고 늘씬하게 뻗은 속눈썹. 그럼에도 희주와는 달리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동그란 호선을 따라 예쁘게 늘어선다.

눈동자는 호기심에 빛나며 반짝이고, 작고 예쁜 입은 기쁨에 젖어서 크게 벌어져 고른 치아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워서인지, 얼굴 전체가 살짝 홍조가 일어나 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처럼 착각을 주어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여 드러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도 함께 들뜨는 기분을 주는 여자였다.

“그랬구나. 아. 그런데 혹시 무슨 무술 같은 것 하세요?”

온 몸이 여성스러움의 결집과도 같은 그녀. 하지만 유일하게 한 곳. 보통사람과는 다른 곳을 포착한 천후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손을 잡혔을 때 느껴지는 딱딱한 감각. 굳은살 특유의 감각이 느껴졌던 것이다.

“응? 하하하. 너는 눈썰미가 좋구나. 사실 부끄럽지만 도와 검을 조금 다루고 있다. 남자라면 역시 무예 하나 정도는 익히고 있어야지.”

“네?”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한 거 같은데? 웃는 낯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한 천후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 과연. 그래서 손이 그렇게.”

“음. 훈장이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하하. 그래도 이렇게 예쁜 분이신데…아쉽긴 하네요. 손은 여자의 생명이라고 하던데.”

“음? 무슨 소리냐? 여자 손이라니?”

“네?”

“응?”

순간, 다시금 찾아오는 정적. 두 사람은 서로서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후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끼면서, 최대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저…이강호…씨? 혹시…성별이 어떻게…?”

“응? 남자다만?”

“…네?”

그 되물음에 그녀, 아니 그?는 처음으로 고운 아미를 찡그리고, 양손바닥으로 식탁을 쾅 내리찍으며 상체를 천후 쪽으로 확 가져가면서 외쳤다.

“나는 정진정명한 남자다! 방금 전에 전, 전부 봐놓고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불쾌하군!”

“…….”

그래! 봤지! 당신의 모든 것을! 전부! 몽땅! 그런데….

“아, 안 달렸었잖아요! 파여 있었잖아!!!!”

“파, 파여…!”

그 말에 얼굴이 완전히 토마토가 되어버린 강호는 입을 우물우물 거리다가, 그대로 책상을 몇 번이나 쿵쿵 내려찍었다.

“그, 그래도 남자다! 남자라면 남자인 거다!”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남자라고 쳐요!”

“치는 게 아니라 남자다!”

“남자예요, 네! 오케이, 올 오케이!”

더 말했다간 당장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기세에 질겁한 천후는 그녀에게 동의해주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무슨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갑자기 급 피곤해지는 게, 왠지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물씬 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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