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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5화 (25/324)

25화

다음날 오후.

딱 봐도 더럽혀져도 좋을 옷들만 챙겨서 입은 세 사람이 산을 타고 있었다.

체격이 큰 남자는 작업용 멜빵에 정글도를 들고서 제일 앞에서 길을 트면서 죽죽 나아가고 있었고, 그 뒤를 머리엔 수건을 두른 선캡을, 옷은 추리닝과 몸빼 바지를 입은 두 여자가 따르고 있었다.

천후와 희주, 셀레나였다.

그 중에서 셀레나는 가장 뒤에서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눈이 반쯤 풀린 게 이미 탈진 직전으로 보였다.

“영. 미스터 영. 좀 쉬었다가. 나 죽어….”

“쉰지 이제 15분밖에 안됐는데.”

“으…. 정말. 그러게 왜 놓쳐가지고.”

결국 어제 그 녀석을 천후가 잡지 못하고 놓친 것이다.

200m밖에서 그를 포착하고 도망가는데 따라잡기가 쉬울 리 없다. 그래도 가속마법이 걸려있는지라 천후는 어떻게든 그 뒤를 따라 잡았지만….

놈은 잡히기 직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공간이동이 가능 할 줄 내가 알았나….”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다른 대처를 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수가 없었다. 공간이동 자체는 천후도 단거리라면 주문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놈을 ‘탐색’해서 ‘공간이동’으로 따라 잡는 주문을 외울 시간이면…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까지 도망쳐있을 것은 능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어서 세 사람은 사라진 디제스터를 찾아서 산을 타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선산으로 쓰이는 산인만큼 산세가 험하진 않았지만, 야트막한 경사가 넓게 펼쳐져 있어서 이건 나름대로 고되고, 결정적으로 추정되는 수색범위가 너무 넓었다.

“하여간 좀 쉬자. 응? 사장님을 너무 막 부려먹는 거 아냐?”

“이럴 때만 사장님이래. 에휴. 그래, 뭐. 쉬자. 쉬어.”

천후는 셀레나가 죽는 소리를 하자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셀레나는 표정이 환해지며 근처의 나무 밑동을 찾아 앉았다.

“휴우…. 살겠다….”

“물 너무 많이 마시지마. 오히려 더 목 타.”

“응.”

대답을 그렇게 하고서도 그녀는 가져온 물을 몇 모금이나 마시고 나서야 입을 땠다. 그리고는 머리를 푹 하고 숙이는 게 아무래도 정말 많이 지친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면 내려가지 그래?”

“어떻게 그래. 탐지마법 재대로 쓸 수 있는 게 나 밖에 없는데. 오퍼레이터로 와놓고 그럴 순 없어.”

“끙…. 그렇긴 한데….”

천후도 탐지계열 마법을 못쓰는 것은 아니지만, 셀레나보다는 범위나 정밀도가 크게 떨어졌다.

지금도 셀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법을 사용했는데, 그녀 주변으로 천분의 1 축적으로 축소된 지형정보와 그들의 현재 위치, 어제 디제스터가 도주한 곳, 예상 도주 경로,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상시 디제스터 탐지 주문이 돌아가는 범위 등이 3차원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있었다.

이런 건 천후에겐 도저히 불가능했다. 디제스터 탐지 범위부터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다가, 영상화를 위해 주문을 따로 외우지도 않고 한꺼번에 처리를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탐지마법에 한정해서 보자면 그녀와 천후 사이에는 위성GPS와 독도법으로 지도를 읽어 입으로 설명해주는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평소엔 그냥 사무실에서 오퍼레이팅 했다더니. 왜 이번엔 직접 나서서.”

“강호 씨 오퍼레이터는 따로 있단 말야. 나는 전체적인 상황 파악만 했던 거지. 그치만 오늘은 없으니까 나라도 해야 하잖아.”

“그럼 좀 더 힘을 내봐.”

“내고 있어…. 있는데….”

셀레나는 끄으으응 하고 힘주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하다가 폴싹 다시 주저 않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게 아무래도 당장 움직일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으…! 그러니까 어제 잡았으면 됐잖아!”

“설마 나를 보자마자 도망갈 줄 내가 알았겠어?”

메인 디제스터들만 상대했던 천후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놈들은 보통 전장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혹은 살해할 틈을 노리기 위해서 일시적인 후퇴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꼬리를 완전히 말고 도망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건…미리 말 안 해준 내 잘못도 있지만. 아. 정말 다 엉망이야. 저번에 그랬으니까 이제부턴 확실히 오퍼레이터로 활동하고 싶었던 건데.”

침울해진 셀레나는 고개를 푹 꺾었다. 그 모습에 뒷머리를 긁적거리던 천후는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돌려서 쭈그려 앉았다.

“어쩔 수 없구만. 자. 업혀.”

“응?”

“업히라고. 업고라도 가야지. 너 없으면 어디 있는지 못 찾는데. 일리미네이터와 서포터, 오퍼레이터는 셋이서 한 팀. 서로 돕는 거잖아.”

“…….”

그 말에 셀레나는 머뭇머뭇하다가 그의 등 뒤에 올라탔다. 허벅지를 손으로 확실하게 감싼 천후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애써 무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행동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희주는 천후에게서 정글도를 받아들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자의 어리광을 너무 받아주면 버릇이 되는 법입니다.”

“…….”

말에 뼈가 들어있다. 셀레나는 얼굴을 확 붉히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저런 말을 해도 할 말이 없는 게, 똑같은 상황에서 희주는 앞서서 길을 내고 있었다.

체격조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으니, 이건 순수하게 평소에 어떻게 지냈느냐를 보여주고 있어서 셀레나로선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론 조금씩 운동 좀 해둬.”

“…응.”

희주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해준 천후는 그 뒤를 따라 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 마을 주변 한 바퀴를 돌았을 즈음이 되어서야 멈춘 그들의 표정은 암담했다.

“이렇게까지 돌았는데 감지가 안 되는 거 보면 정말 단단히 숨었나본데….”

셀레나의 디제스터 탐지 범위는 2km. 그런데도 하루 종일 도보로 산을 돌아다녔는데 걸리지 않는단 건, 어지간히 멀리 떠났다는 것이 된다.

천후로선 이러다가 퇴치를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지만, 셀레나는 그 걱정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서브 디제스터들은 자기 힘을 키우기 위해서 특정 에너지를 섭취해. 이번 경우에는…지력인 거 같거든? 정확히 어느 성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놈들은 보통 일정 장소를 주요 출몰지점으로 두고 활동하니까, 분명 다시 나타날 거야.”

“장기전이 되겠군요.”

그렇게 말한 희주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살짝 나무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눈을 평소보다 크게 떴다. 희주에게 있어선 드문 일이라 천후는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움츠러들었다. 당황한 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말해보세요. 어디 갑자기 아픈 거예요?”

“아닙니다…. 그저….”

희주는 그의 시선을 피하다가, 그가 너무나 걱정하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옷 속으로…벌레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 손으로 꺼내기가….”

속삭이듯 하는 말에 천후 역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녀도 여자인지…벌레를 직접 만지는 건 두려운 모양이었다. 혹시나 해서 셀레나에게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질색하면서 머리를 저었다.

“으…. 제, 제가 꺼내 드릴게요. 어디인 것 같아요?”

“이쪽에….”

천후의 손을 짚은 희주는 느릿느릿, 추리닝 아래쪽으로 손을 가져와 넣게 하고는 점점 타고 올라오게 했다.

겉으로는 완전히 가려서 보이지 않는 그녀의 부드러운 속살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천후의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그녀가 진지하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 내색하지 않고 그 인도를 따라갔다.

희주의 손은 이윽고 위로 솟은 여성의 상징에까지 다다라서야 멈췄다.

“어, 어디에?”

“그…속옷의…안쪽으로….”

어디까지 파고든 거냐! 이 괘씸한 송충이 자식이! 천후는 잠깐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가, 진지하게, 어디까지나 정말 그녀가 곤란해 하니까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응….”

평소에는 듣기 힘든 낮은 신음소리가 귓가를 훑었다. 그 순간, 천후는 감각이 엉망이 되는 것을 느끼고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단 하나의 차단막을 아래로 내리며 손으로 꾹 감싸버렸다.

“…….”

백옥의 안면이 발그레해진 희주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서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천후는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남은 손 하나도 집어넣어 양 손을 놀렸다.

“여, 여긴가요? 어디 있죠?”

“모르겠…습니다. 하앗….”

“으으음…!”

눈을 벌겋게 충혈시킨 천후는 손을 살짝 아래로 내려, 보기와는 다르게 한 손에 가득 들어오는 그녀의 부드러운 둔덕을 아래쪽부터 쓰윽 훑어 올렸다.

“아…. 하읏!”

약간 딱딱하고, 까끌까끌한 손이 쓸고 지나가자, 희주는 허리를 튕기면서 그의 어깨를 꼭 잡았다. 그러자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 몸을 꾹 붙였다. 이미 발동이 걸린 한발의 탄이 실린 저격총이 그녀의 배꼽 아래를 꾹 찔러댔다.

그렇게 한차례 완전히 더듬어본 천후는 미칠 것 같은 감각을 간신히 참아내고는 말했다.

“없는데요?”

아무리 찾아봐도 망할, 아니 착한 송충이 자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말에 희주는 떨고 있던 눈을 살짝 뜨더니,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내리셨을 때, 떨어진 모양입니다.”

아아. 과연…. 땅에 떨어지는 걸 보진 못했지만, 그랬겠지 싶어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그놈이 언제 떨어졌다 한들 제대로 보일 리가 없으니.

“…….”

천후는 잠시 손안에 가득한 감각이 아쉬워 떼지 못하고 있다가, 저쪽에서 셀레나가 기겁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보는 것을 느끼고는 그제야 떨어졌다.

희주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서 자신의 가슴위에 손을 올렸다가, 담담히 매무새를 고쳤다.

“벼, 번태.”

“아, 아냐. 도와준 거야. 너도 봤잖아.”

“주인님은…셀레나 씨가 그랬더라도 똑같이 해주셨을 겁니다.”

기복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희주의 말에 셀레나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기분을 느꼈다. 저게 지금 천후를 옹호해주는 건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다 돌아봤으니까 내려가자. 새벽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급하게 그렇게 말한 천후는 허둥지둥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시간동안 천후가 업고 다닌 덕분에 체력이 많이 회복된 셀레나는 그를 노려보면서도 뒤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후두둑. 큰 바람이 한번 불더니, 나무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셀레나의 쇄골 위에 안착했다. 뭔가 해서 고개를 내려다보니, 그곳엔 진짜 송충이가 꿈틀거리며 가슴 골로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었다.

“꺄, 꺄아아아악! 천후! 천후! 도와줘!”

기겁해서 그렇게 소리쳤지만, 이미 저 아래까지 내려간 천후는 뭔가 싶어 느릿느릿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확실하게 희주 일을 재현하게 생겼다 싶었다. 하지만 그 때였다.

그녀의 뒤에서 뒤따라오고 있던 희주가 다가오더니, 송충이를 손으로 집어서는 휙 던져버렸다.

“별 것 아닌 일로 너무 소란 피우지 마세요.”

“네? 네, 네에…. 고마워요.”

예상치 못한 도움에 셀레나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감사를 표했다. 희주는 그녀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정말 감정을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야. 그래도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단 안도감에 한숨을 내쉰 셀레나는 그 다음 순간, 흠칫하고 제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잠깐만…. 아까 벌레 만지기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 그렇게 말하면서 천후에게 빼달라고 안쓰럽게 부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송충이를 손으로 집을 수 있지?

“서, 설마.”

셀레나는 뭔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게 다 연기라고? 그 표정으로 어떻게 그런 연기를?! 아니 대체 뭐하러 그런 연기를?!

셀레나는 다시 올라오던 천후와 합류해 그 옆에서 조신하게 걸어가는 희주를 보고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저기까지 얼마나 빨리 내려갔는지 모르는 천후는 그녀가 느리게 걷자 보폭을 맞추어주고 있었다.

‘무, 무서운 여자…!’

쫒고 있는 디제스터보다 저 여자가 더 무서워. 셀레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조심 산을 내려갔다.

============================ 작품 후기 ============================

이제부턴 희주 턴.

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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