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인정을 받아가며>
정소라는 후회하고 있었다. 이 의뢰는 받아들이지 말아야했다. 처음 수락할 때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메인 퀘스트 따위는. 역시 하는 게 아니었어.”
소라는 아직도 창창한 20대 중반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이미 5년이나 구른 베테랑이었다. 보통 일리미네이터는 이 정도 경력이 쌓이면 프리랜서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녀는 기업에 남았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파티원을 구하는 것이.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명도가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는다면, 서브 퀘스트가 프리랜서에게까지 돌아오는 경우는 적었다. 서브 퀘스트는 결국 군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피해가 적게 상대가 가능하니까.
군, 유그드라실에 먼저 돌아가고, 그 뒤가 기업. 마지막이 프리랜서.
경험은 많지만 마력 랭크는 C. 자신이 프리랜서로서는 두드러질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억대연봉을 발로 찰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회사가 국내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드는 업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가 들어왔다. 경기도 인근에서 날뛰기 시작한 파급 디제스터에 대한 의뢰였다.
그녀의 회사에 있는 일리미네이터는 총 여섯 명. 군에서 보낸 의뢰라는 이름의 각출에 가까웠기 때문에, 한 명은 무조건 나와야했다.
다들 꺼려했다. 당연하다. 정소라 역시 결코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메인 퀘스트, 파급 디제스터는 강하다. C랭크 일리미네이터가 4명은 모여야 한 마리를 간신히 잡는다.
그 양태는 MMORPG로 따지자면 딜러에 의한 어그로 드리블.
용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릴지 몰라도 풀어 말하자면 한 대 세게 때려서 괴물이 화가나 따라오면 전력으로 도망치면서, 따라잡히기 전까지 아군이 극딜로 몹을 녹이길 하늘에 비는 것이다.
운이 없어 3인의 전력 공격에 놈이 죽지 않으면 최초로 가격한 일리미네이터는 사망하기 딱 좋다. 이런데 누가 하고 싶겠어. 하지만 그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장 경력이 길었기 때문이다.
‘송우 선배. 나쁜 자식!’
그녀보다 더 경력이 긴 사람이 하나 더 있었지만, 그는 이번 달에 서브 퀘스트를 연달아서 5개나 뛰었다는 명목으로 뒤로 물러났다.
나머지 셋은…그녀가 보기에도 걱정됐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그림이 나빠지기 전에 자신이 하겠다고 지원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 5년이다, 5년. 메인 퀘스트를 처음 뛰어보는 것도 아니다.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차례가 돌아온다. 그녀는 거기서 모두 살아남고 목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것의 연장이다. 너를 믿어, 정소라. 넌 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잘 해왔잖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특수성과 그녀가 포인트 맨으로 지정됐단 사실을 듣는 순간, 그 작은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포인트 맨. 간단하다. 디제스터에게 공격당하는 역할이다. 최초 가격자.
가장 죽음에 가까운 포지션.
그리고 특수성.
이번 디제스터는…‘두 마리’였다.
투입된 일리미네이터 수는 여섯.
정소라는 죽음을 예감했다.
*
“소라씨! 피해요! 오른쪽으로!”
“꺅!”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그녀를 엄습해왔다. 소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퍼레이터의 지시에 따라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굉음이 한번. 그녀가 있던 위치 바로 앞쪽에 길쭉한 무언가가 아스팔트를 박살내며 박혔다. 건물들에 설치되어있는 피뢰침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대로 쭉 달리고 있었다면 두개골을 관통했을 위치에 쳐 박힌 것이다. 그것도…거의 절반 가까이.
아스팔트 타는 냄새에 소라는 오한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야!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왜!”
왜 퇴치가 안 되고 있어 라고 외치려는 순간, 저 하늘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의 공격.
화염과 전격이 하늘을 수놓는다. 대전차 로켓의 위력을 상회하는 공격들이 폭사되면서 하늘과 땅이 우르릉 진동했다. 이거라면 어떤 파급 디제스터라도 죽거나, 최소한 전투력을 상실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소라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블루투스 통신기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소라씨! 멈추지 마요! 안 돼!”
“!!!”
깜짝 놀란 그녀는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쾅! 쾅쾅! 그녀가 있었던 자리에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박아놓은 픽들이 꽂혔다.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픽의 머리가 보이지도 않는다.
“뭐야?! 왜 계속 날아오는 거야?!”
절망한 소라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며 허공을 올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 정면에, 놈의 모습이 보였다.
“우호! 우호!”
시꺼먼 검은 털에 두꺼운 팔. 탄탄하다기 보단 딱딱해 보이는 가슴근육을 가진 놈이었다. 유인원, 그 중에서도 고릴라를 닮은 외형.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놈의 몸체가 4m에 가깝다는 점. 그리고….
팔이 네 개라는 점.
“꾸후후후! 꾸후후!”
놈은 몸만큼이나 새까만 이빨을 내보이며 허공에 떠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전신주에서 연결된 전선을 타고 매달려 있었다. 마치 정글에서 나무덩굴을 타고 돌아다니는 보노보나 침팬지마냥, 전깃줄을 타고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젠장!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
“아! 또 와요!”
포인트맨이 도망치는 동안 공격을 가하던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의 표정이 굳었다.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동시에, 놈은 네 개의 팔 중 하나로만 몸을 허공에 지탱하고 나머지 셋으로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픽들을 세 명에게 던진 것이다.
“이런 젠장! 뭐 이딴 새끼가!”
비명을 토해내며 간신히 그것을 피해낸 일리미네이터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파급 디제스터들은 보통 지능이 낮다. 시선이 한명에게 가면 그를 뒤쫓으면서 동선이 단순해지고,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은 공격당하기 전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놈은 다르다. 외형이 유인원이어서 일까? 영리하다. 일단 건물 옥상으로 올라 선 놈은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 다니면서 날아오는 마법 공격들을 피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전선을 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포인트맨은 착실하게 쫒아간다.
움직임이 너무 입체적이어서, 도저히 한곳에 박혀서 주문을 외울 수가 없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도 꾸준히 움직여야했고,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만큼 포인트 맨은 점점 위험에 처했다.
거기다 잊을 만하면 간간히 주변 지형지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다른 일리미네이터에게도 던지는데, 그 하나하나가 적중 당하는 순간 사람의 머리를 풍선처럼 터트릴 수 있는 것이었다. 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점들이 겹쳐서 그들은 이놈에게 아직 제대로 된 타격을 한 번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헉…헉…. 따라다니기도…숨이 찬다…. 소라 씨는 괜찮아?”
“한계예요! 어서 공격을 집중해야 해요!”
“우리도 그러고 싶어! 젠장!”
놈이 단순히 이동하는 것을 따라잡기 위해 그들은 마법을 사용해야했다. 이것 자체는 늘 있는 일이지만, 교전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옥상을 뛰어넘어 다니기 위해 걸어둔 보조마법의 지속시간이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길어질지 생각하지 못하고 짧게 설정한 것이다. 과연…정소라가 다시금 보조마법을 거는 캐스팅 시간동안 생존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맺혀라! 제우스의 창! 천지를 관통하는 신벌의 현현이여!”
꽈르르릉! 뇌운소리가 들리며 선글라스 쓴 남자의 손에 뇌전이 맺혔다. 어둠에 잠긴 밤하늘이 대낮처럼 환해진다. 그는 침착하게 뇌격을 놈, ‘쿼드라 콩가’에게 조준했다.
뇌격이란 말 그대로 광속. 최초 조준만 정확하다면 발사하는 그 순간 필중. 덕분에 이곳에 파견된 일리미네이터 중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그나마 놈에게 타격을 주고 있었다.
이 일격으로 놈을 끝장내진 못하겠지만, 정소라가 도망칠 거리라도 벌어야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악물며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호호!”
푸걱! 뇌전이 터지고 있던 그의 손에 무언가가 박혔다 싶더니, 그대로 왼팔의 뼈를 박살내고 타고 올라오며 팔꿈치를 통해 빠져나갔다.
“끄아아아악!”
등을 돌려 포인트맨을 쫒던 쿼드라 콩가가 섬광이 터지는 것을 보자, 재빠르게 남아있던 픽을 던진 것이다. 영악하게도 손에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맞은 남자의 오른팔은 완전히 박살나며 즉시 쇼크가 찾아왔다.
‘아, 안돼! 전멸이다…!’
남자는 혼절해가는 와중에도 좌절했다. 다른 둘의 주력 방출마법은 위력은 강하지만, 저놈에게는 명중률이 형편없다. 아마도 포인트 맨이 사망하면 그 뒤로 연이어 찢겨죽으리라.
그는 문득 다른 한 마리를 맡은 두 명을 떠올렸다. 그들이 와준다면…아니. 무리겠지. 네명이 붙은 이쪽이 이 꼴이다. 그들은 진작 죽었으리라.
온다 해도 다른 한 마리의 쿼드라 콩가가 찾아오리라. 그는 신음성을 토하며 의식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 때였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봐요!”
찰싹 찰싹. 볼을 두들기는 느낌에 간신히 눈을 뜬 남자는 팔에서 통증이 느리게나마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놀랐다. 고개를 올려보니 그곳에는 다른 한쪽을 맡으러 갔던 일리미네이터 여성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당신이…어떻게…?”
“아! 그게! 아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어서 일어나요! 통각은 차단했으니까!”
그 말에 선글라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태도엔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지상에 내려와 아예 전신주를 뽑아든 놈이 그것을 정소라에게 쏘아내고 있었다.
“아, 안 돼!”
외침도 공허하게 전신주는 창이 되어서 그녀에게 날아가, 그녀의 복부에 꽂혔다.
“컥…!”
터엉―! 반투명한 무언가가 움푹 패이는 게 보인다 싶은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입에서 한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간신히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아…윽….”
방금 그 전신주는 사람 배가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조차 꼬치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싸움 전에 놈의 정보를 듣고 투사체에 한정시킨 보호마법을 걸어둠으로서 그 일격을 받아낸 것이다.
이렇게 사전에 최대한의 보호마법을 걸어두는 것이 포인트 맨으로 지정되었을 때 그녀가 구사하는 노하우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특기마법은 방출계지 방어마법이 아니었다. 막을 수 있는 것은 이 한 번이 한계. 그나마도 내상을 입었다. 지금 이대로 병원에 가더라도 내장기관 전체에 내출혈 선고를 받으리라.
“하악…하악!”
그러나 그녀는 죽을 수 없다는 일념 하나 만으로 느리게나마 걸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은 더 이상 그녀에게 뭔가를 던지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픽도 다 떨어지고 전신주를 던진 직후 날아온 마법들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희망이 솟아났다. 그러나….
“우뤄어어어어….”
쿠우웅!
마지막으로 날아온 화염을 피해낸 쿼드라 콩가는 그대로 전깃줄을 손에서 놓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은 마침 정소라가 도망치는 곳 바로 앞이었다.
“아….”
어지간한 2층 건물 크기만 한 팔 4개 달린 고릴라가 날카로운 이빨을 쩌억 벌리며 자신을 노려보자, 정소라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었다.
쿼드라 콩가는 그런 그녀를 그녀의 키만 한 손을 뻗어 움켜쥐려 들었다.
“아…아아아….”
털썩! 찌이이이이익! 하지만 천운인지, 그녀가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놈의 손은 허공을 가르고, 대신 손톱 끝에 걸린 그녀의 옷가지만이 찢겨져 나왔다.
작고 납작한 양 가슴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의 분홍 방점은 위기에 놀랐는지 쫑긋이 서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평소의 정소라라면 아직 한창인 20대 아가씨답게 부끄러움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놈의 모습에,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과연, 쿼드라 콩가도 쥐는 것이 수고롭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오른쪽 두 번째 손으로 주먹을 꾹 말아 쥐며 내려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죽는 구나.’
그 순간 그녀는 양 눈을 꾹 하고 감았다. 돈만 모아놓고…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부웅 하고 무언가가 휘둘러지는 소리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 때.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졌다.
“우궈어어어어어어!!!!!”
“…아?”
지금 이 상황을 이용해 공격을 가한 걸까? 하지만 지면에 자신이 있다. 재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자신이 말려들 공격을 할 수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소라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놈의 공격이 오지 않자, 조심스레 한쪽 눈을 떴다.
그 눈앞에는…커다란 남자의 등이 있었다.
“…….”
남자의 모습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의 몸 주변에는 무색의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잔뜩 껴서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그가 한 팔이 날아가 울부짖고 있는 놈을 공격한 주인공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훅.
그의 왼손에서 무언가가 던져져 쿼드라 콩가의 얼굴을 맞혔다. 아주 대충 던져서, 맞아도 타격이 될 리가 없는 그런 행동. 그것은 맞춘 후에도 힘없이 덱데굴 땅 위를 굴렀다.
하지만…맞고서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쿼드라 콩가의 눈이 커졌다. 분노로 번들거리며 지금껏 정소라를 쫓고 있던 시선이 확실하게 그에게 고정되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리며,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우궈어어어어어어어어!!!!!”
천지 사방이 요동친다. 그 고함을 정면으로, 단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으며 받아낸 남자는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네 상대는 나다.”
지금은 시체가 된 또 다른 쿼드라 콩가의 잘려진 머리를 놈에게 던졌던 남자―영천후는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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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일도 끝나서 오늘은 12시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