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최근 일리미네이터 업계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트란제비야라는 영세기업에 파급 디제스터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일리미네이터가 있다!’
이 이야기에 한 차례 업계가 뒤집어졌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파급 디제스터를 혼자 퇴치할 수 있는 일리미네이터가 업계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균적인 일리미네이터 마력랭크는 C. 그렇기 때문에 업계에서 쓰는 모든 용어, 룰 등은 여기에 맞춰져 있다. 파급 디제스터를 상대할 때 4인 파티를 맺는다거나, 포인트 맨 지정비율이라거나 하는 것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규격 외…그러니까 마력랭크 B이상은 다르다. C랭크와는 격이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강력한 공격마법 한번으로 파급 디제스터가 정리가능 하다. 그냥 딜러가 아니라, 슈퍼 극딜러라 부를만하다. 이들도 공격실패를 염려하여 보통은 더블 팀을 짜긴 하지만.
허나 이들은 수가 적다. 마법사로 태어날 확률이 1만분의 1. 이중 C랭크 마법사는 여기서 또 10분의 1, B는 또 10분의 1. 랭크가 오를수록 이런 식이다.
즉, B랭크 마법사는 100만분의 1이다. 국내 일리미네이터 중에선 열 명이 간신히 넘는다.
당연하지만, 이들은 세상에 나타나는 그 순간부터 갑 중 갑이시다.
천후가 면접을 보았을 때 있었던 B랭크가 교섭 시작 2분 만에 국내 최고 기업에 억대연봉으로 스카웃 되었는데, 사실 이 억대연봉조차 페이크고, 실제는 사전 조율이 있어 이면계약서로 수십 억대 계약이 되어있었다. 그 정도의 존재감인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B랭크 이상 마법사는 프리랜서. 당연한 게 기업에 박혀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기업의 서포트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들은 서브 퀘 정도론 아예 파티조차 맺지 않는다.
의뢰가 안간다? 그럴 일도 없다. 이들이 최고의 실력자다. 당연히 어려운 일 순서로 이들에게 무조건 우선적으로 유그드라실에서 꽂힌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에게 맞는, 하고 싶은 입맛 좋은 일만 고르시고 남는 걸 세상에 뿌려주신다.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은 모두 다 그 한번 거른 찌꺼기를 먹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과 동급의 존재가 영세 기업에 들어갔단 소리가 들린 것이다.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은 업종이다. 그에 대한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B랭크처럼 원턴 킬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파티플레이가 가능하며 추가 비율도 ‘포인트 맨 만큼만’ 가져갔다…라는 점까지 밝혀지자, 온 기업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랭크 B이상은 갑중 갑이시다. 당연히 파티플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포인트 맨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비율을 많이 가져가고, C랭크 마법사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자기 행보하시는데 그냥 잠깐 따라오는 잔챙이들 상대해주시는 수준에 가까운 것이다. 온라인게임으로 치자면 쩔 받으러 온 놈들 취급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공짜쩔. 사람취급이나 해줄 거 같은가?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위기에 처했던 일리미네이터에게 자기 옷까지 벗어줬다지 않나? 갑님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엄청 같이 일하고 싶다! 그런데…
‘왜 저런 애가 트란제비야인지 제비인지에나 들어가 있냐고?!’
이것이 한결같은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의 반응. 그 이유는 금세 나왔다. 당일, 유그드라실 전산오류가 있어서 탈락시켰단다.
본인이 마력측정 재측정 기회를 달라거나 유그드라실에 사실 확인만 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 한데다가, 그 후 모든 기업에 스스로 먼저 전화까지 돌렸는데 인사담당자들이 죄다 무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리미네이터 뿐 아니라 회사 운영자들까지 분노에 미쳐 날뛰었다.
‘이 월급도둑 새끼들이!’
인사계에 피바람이 불었다. 장판파에서 단기 필마로 백만 대군을 종횡하던 조자룡마냥 수많은 사람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이 사나운 격풍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실수- 실수 라기도 애매한 게, 이상하게도 유그드라실 이력서 내역은 여전히 다시 전산공유요청을 해도 이력서가 공백인 상태로 나왔지만,-를 만회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단 하나의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헤드헌팅을 한다! 돈 빨엔 장사가 없는 법!
그렇게 마음먹고 그들은 천후를 만났지만….
“네에? …싫은데요. 그 날 저한테 그렇게 대하고서 무슨. 그깟 돈 그냥 제가 열심히 해서 벌면 되지. 나가주시겠어요?”
“…….”
고생고생해서 구석진 곳에 있는 사무실까지 찾아가 부탁했건만, 그는 굉장히 불쾌하단 표정으로 그들을 문 밖으로 쫒아내 버렸다. 이건 뭐 협상의 협자도 안 박힐 기세라, 그들은 절망해서는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몇 없다. 어떻게든 여자라도 붙여서 미인계라도…!
한 편, 평소처럼 아이스크림이나 사러 외출했다 계단을 올라온 셀레나는 사무실 문 앞에 중년 남성들이 우울하게 일렬로 죽 늘어서있는 걸 보고는 바로 무슨 일인지 짐작해냈다.
“풉. 푸푸풉.”
셀레나는 일부로 그들을 보면서 입을 가리고 노골적으로 비웃더니, 사무실 문을 일부러 활짝 열고 고정시켰다. 그러곤 그세 맨몸 스쿼트를 하고 있던 천후의 목을 팔로 감싸 안으며 달라붙었다.
“영사원~. 아이스크림 사웠어~. 아이스크림 먹을래?”
“응? 아. 고마워.”
천후는 등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부끄러워하면서 문 쪽에서 반대로 몸을 돌렸다.
그걸 확인한 셀레나는 밖에서 턱이 빠질 것 같은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이전 면접관들에게 한쪽 손으로 자기 눈 아래를 주욱 늘리면서, 혓바닥을 베에 하고 내밀었다. 어딜 넘봐? 이건 이미 우리 거라구!
‘이미 저년이 스스로 미인계를 쓰고 있었어!’
그제야 진짜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계단을 내려갔다. 아마도 돌아가면 사장이건 CEO건 그들에게 조자룡 헌 창 쓰듯 세 글자가 적힌 봉투를 휘둘러댈 테지만, 그들에겐 이미 방법이 없었다.
“아. 다행이다. 저 중에 내가 섞여있을 뻔했잖아?”
“어?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셀레나는 새삼 천후가 여자에, 그리고 정에 약한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옆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그 날 이후, 트란제비야에는 요물 같은 여사장이 있단 소문도 같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
천후가 일반 기업의 디제스터 퇴치에 참가했던 그 날 이후로 트란제비야는 조금씩 바빠졌다. 메인 퀘스트에서부터 서브 퀘스트에 이르기까지 파티 요청이 쇄도해온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천후라면 혼자서 모두 처리 가능한 일인지라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지만, 셀레나는 극구 그가 파티플레이를 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수령액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회사, 그리고 너의 지명도를 끌어올리는 게 더 중요해. 그리고 천년만년 솔플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사람에 익숙해져야지.”
“음….”
얼마 전 희주가 해준 말도 있었다. 게다가 파급 디제스터라고 해서 그가 위험한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번 농촌사건처럼 힘만 강해선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동료를 의지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겠는가?
지당하다고 생각한 천후는 그 뜻에 따라서 한동안 파티플에 전념했다. 그는 어딜 가든 환영 받았고, 점점 더 다른 일리미네이터에게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의 오후.
요 근래 한참 메인, 서브를 오가며 디제스터를 상대하느라 쉴 틈이 없었던 천후는 오랜만에 꿀맛 같은 휴식을 맛보고 있었다.
요즘 너무 열심히 일했다고 셀레나가 잠시 의뢰를 빼준 것이다 보통 일리미네이터는 한 달에 3, 4건, 많으면 6건 정도의 서브 퀘스트를 처리하는데, 천후는 아직 첫 월급도 나오기 전에 이미 7건을 넘은 상태였다. 그 중에는 메인 퀘스트도 섞여있었으니, 다른 일리미네이터와 비교하면 이런 착취가 없다.
“아…. 이쯤 오니까 이 사무실이 가정집 같은 게 나름 장점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그렇습니까?”
일단 출근은 하라는 말에 사무실에 쿠션을 베고 누워있던 천후는 하품을 하면서 그렇게 중얼 거렸다.
뭐 하긴 사내에서 무슨 서류작업이라거나 하는 건 셀레나 정도뿐이고, 의뢰주 대면은 보통 이쪽이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굳이 찾아온 의뢰인은 근처 카페라도 가서 상대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사무실이 가정집처럼 생겨도 아무 문제없지 않나? 설렁설렁 그렇게 생각한 천후는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깜빡거렸다.
“주무시고 싶으신가요?”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비몽사몽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희주는 흰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매만져주었다. 스윽스윽 하고 문지르는 감촉에 천후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그 때였다.
탕탕탕! 갑자기 사무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계세요? 사무실에 아무도 안계신가요?”
“…음?”
의뢰인인가? 셀레나에게서 딱히 누가 온단 소리를 들은건 없는데? 고개를 갸웃한 천후는 졸음을 억지로 내쫒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그곳엔 가슴골이 훤히 노출된 형형색색 자극적인 옷들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몸에서는 농밀한 향수 냄새가 진동해왔다.
‘윽….’
깜짝 놀란 천후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그녀들도 놀랐는지 조금 물러섰다. 그 반응에 이들이 뭔가 이상한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건 아니라고 생각한 천후는 일단 평상심을 되찾으며 물었다.
“어…. 무슨 일이시죠?”
“아. 저기…. 저희는 이 아래 카페 사람들인데요….”
“아, 네.”
카페라…. 그 문짝에다가 선팅 해놓은 그곳 말인가? 허벅지에 찰싹 붙어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들의 모습에 천후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애매하게 열려있는 현관 문짝에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에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건지, 여자들은 우르르 사무실 현관 안으로 몰려들어와 천후를 에워쌌다. 여성의 체취에 둘러싸인 천후는 단박에 새빨개지며 소리치듯 물었다.
“저기! 무슨 일들이신데요?”
“아, 저기요…. 사실은 부탁드릴 게 좀 있어서 왔는데요.”
“디, 디제스터라도 나타났어요? 저희는 디제스터 퇴치 업소라 다른 일 안해요!”
“알아요. 아는데…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맞아, 오빠. 별로 어려운 일 부탁하려는 거 아니니까. 응?”
스윽 스윽. 여자들의 숨결과 손길이 단박에 가까워지자 천후는 눈이 어지러워져서 희주에게 눈짓으로 헬프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그저 어떻게 되는가 빤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윽…. 아, 알았어요! 일단 진정들하시고.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요. 들어봐야 뭘 알 거 아니에요.”
천후가 어쩔 줄 몰라 그렇게 외치자, 여자들은 그를 만져대던 것을 멈추고는, 이번엔 정말 절박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 드려요…. 저희 애 좀…오늘 저희 일 끝날 때까지만 상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애요?”
천후의 반문과 동시에, 아직 사무실 문 밖에 서있던 이들 중 가장 앳돼 보이는…보기에 따라서는 미성년자로까지 보이는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흰색과 검은색이 번갈아가며 그려져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부터 가슴 깨까지가 훤히 파인데다가, 아랫단 역시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다리를 굽히기만 해도 속옷이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짧았다.
그녀는 천후를 바라보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앞에 섰다.
“…….”
롱 펌한 머리에서 진한 향기가 올라와 콧속으로 파고든다.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이 오히려 조금 귀엽다고 잠깐 생각한 천후는 헉 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잠깐만. 상대해 달라니 무슨…!”
“하아.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 사람이 없어…. 자기네들 아니면 아무래도…. 마침 저 안에 여자애도 있고 셋이서 같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어떻게 안될까?”
“…….”
셋이서 같이? 천후는 순간적으로 엄한 상상을 몽실몽실 피워 올렸다. 그것은…남자의 꿈. 로망. 무리해서라도 이루고자 얼마든지 지갑을 쾌척한다고 하는 미답지 아닌가?
천후는 잠깐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가,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손을 흔들었다.
“아, 안돼요! 전 아직 그런 건….”
“아아…. 어쩔 수 없나?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게에 데리고 있긴 좀 그런데….”
그들 중 가장 원숙해 보이는 여자는 서운한 얼굴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때였다.
“엄마. 나 그럼 어디로 가야 돼?”
천후 바로 앞에 마주 서있던 어려보이는 여성의 다리 뒤에서 이제 막 5살이나 됐을까 싶은 조그마한 여자 아이가 쏙 하고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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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