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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36화 (36/324)

36화

셀레나는 기분이 좋았다. 천후가 들어온 이후로 사업이 술술 풀렸기 때문이다.

원래 그녀 역시 그의 가치를 진작 알아보고는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천후의 기준을 B랭크 일리미네이터와 동등하게 두고서 의뢰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이 녀석이 의욕이 있다.

보통 갑이신 B랭크 일리미네이터님들은 일을 고른다. 자주하지 않는다. 기업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있지. C랭크 마법사가 단독으로 잡을 수 있는 0.3급 서브 퀘스트 디제스터가 주는 돈은 평균 3,4천이지만, B랭크 마법사가 듀오로 잡아오는 파급 디제스터는 적어도 5,6억인데.

건당 6억 물어오는 인력을 함부로 다루는 회사 봤는가? 그들은 회사에서도 프리하다.

그런데 천후는 다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트란제비야를 키울 생각인지, 셀레나가 물어오는 대로 일을 척척 해치우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야 좋긴 한데….”

당연히 수입이 늘어나면 좋긴 하지만, 천후가 이걸 빌미로 대체 뭘 요구할 지가 짐작이 안가서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농담 삼아 호구호구 거렸지만, 사실 셀레나는 그에게 상당히 특이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본인 입으로 이상하게 살아왔다고 평소에 말하곤 한다지만, 그걸 훨씬 뛰어넘는달까?

그는 돈에 초탈한 인상을 준다. 그것 말고도 보통 사람들에게 중요한, 특히 자기 보신에 관련된 가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이득에서 한걸음씩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결정적인 상황에선 그녀가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그러니까…애초에 천후는 생계유지가 충분한 돈을 얻을 수 있게 된 시점에서부터, 아니 어쩌면 최초부터 자신이 일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자신의 힘을 곤란해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 작정한 것 같달까? 트란제비야에 몸을 담고 있는 건, 정말 그것을 위한 거쳐 가는 과정쯤으로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멋진 모습이긴 하지만…그를 볼 때마다 과거의 일이 떠올라서 셀레나는 가끔씩 걱정이 되곤 했다.

뭐 그래도 덕분에 셀레나는 승승장구. 한 달 만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일리미네이터가 한 명뿐인 기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거면 정말 조금만 지나면 사무실도 옮기고, 광고도 빵빵하게 찍고, 사람들도 더 고용할 수 있겠는데?”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던 전성기 시절까지 닿는데도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묘하게 기뻤다.

게다가 천후는 점점 업계에서 이름이 퍼져가고 있었다. 아직 그를 직접적으로 찾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경력이 조금만 더 쌓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이전, 현장에서 일리미네이터들이 보인 반응들을 생각하면 그건 그리 먼 훗날도 아닐 것이다.

“그릇이 큰 건지, 어떤 건지….”

피식하고 웃은 셀레나는 으샤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전에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 겸사겸사 키워주겠다라.

“흥. 멋있는 척 하긴. 두고보라구, 영사원. 그 말한 거 후회할 정도로 뽑아먹어 줄 테니까.”

빙긋이 웃은 그녀는 책상 위에 다리를 쭉 펴서 올리고는 다음 처리할 의뢰를 살펴보았다. 셋 중 둘은 서브. 하나는 메인. 셀레나는 메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내려놓았다.

서브 퀘스트가 주. 메인 퀘스트가 부.

이것은 셀레나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운 기본 방침이었다. 안전이 최우선. 수익은 그 다음.

친오빠를 디제스터에게 잃은 그녀에게 있어 이 방침은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천후는 능력이 된다고는 해도 아직 이 바닥에서는 신입이다. 메인 퀘스트를 몇 번 돌린다고 해서 비난이 날아올 일도 없으리라.

“그럼, 이 둘 중에선 의뢰비 높은 걸로. 오케.”

흥흥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서류를 정리한 셀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였다.

꽈릉! 창문 밖이 한순간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셀레나는 흠칫 놀라,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려보았다.

“비오네.”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하늘이 먹색이다 싶더니, 번개가 떨어지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장마철도 아닌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아 셀레나는 살짝 얼굴을 굳혔다.

“천후랑 희주한테 좀 늦게 와도 된다고 해야겠다.”

둘이 오면 바로 차타고 서브 퀘스트 의뢰가 들어온 곳으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그것도 쉽지 않게 생겼다. 현장에서 움직여야할 걸 생각해보면, 하루 이틀 정도 시간 여유는 있는 일이니 의뢰주에게 설명하고 아예 내일 출발해야 모른다.

어찌되었던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셀레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바로 그때.

부우우웅. 부우우웅.

셀레나의 손에 들린 폰이 진동으로 떨렸다. 천후일까? 잠깐 표정이 잔망스러워지고 마는 셀레나. 그러나…어디에서 걸려왔는지가 떠있는 화면을 본 셀레나는 고운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 유별난 곳은 아니었다. 아니, 평상시라면 오히려 전화오길 바라는 곳이었다. 일을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으니까.

유그드라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일이 세 건이나 들어온 상태다. 이것만해도 사실 동시에 들어온 것 치고는 많은 편이다. 괜히 TV에 디제스터 퇴치 광고를 하는 게 아니다. 보통 이렇게 일이 넘치게 들어오진 않는다.

이렇게 많이 들어왔으면 이제 그녀가 그쪽에 연락을 할 차례지, 추가적인 연락이 들어올 일은 없어야한다.

그런데도 연락이 들어왔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느 쪽이던 셀레나에게 있어서는 나쁜 케이스다.

하나는 의뢰가 파기된 경우.

그리고 또 하나는….

“아니겠지….”

셀레나는 뭔지 모를 불길함에, 여러 번이나 반복되는 진동음을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신호가 끊기고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었는지 진동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 직후.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셀레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유그드라실은 중개역할이라고는 하지만, 이 디제스터 퇴치시스템의 절대적인 관리자이기도 했다. 무슨 소리냐면…그들은 급하지 않다는 뜻이다.

의뢰가 파기된 경우라면 굳이 전화연락을 두 번 씩이나 하지 않는다. 문자메시지로나 보내주면 다행일까? 보통 기업 쪽에서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

트란제비야 마법 사무소 정도의 작은 기업 상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한 가지.

“…….”

꽈르르릉.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다.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조차 사라져, 창문 밖에서는 장대비 떨어지는 소리밖에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셀레나는 어쩐지, 건물 안에 있는데도 그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에 빠진 것 마냥 몸이 무겁다. 핸드폰을 귀에 대는 게 이렇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을까?

하지만 받아야 했다.

받지 않는다면 아마도….

아랫입술을 꼭 깨문 셀레나는,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

“웃기지 말아요!”

희주와 함께 장대비를 뚫고서 출근한 천후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셀레나의 날카로운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깜짝 놀라 뭔가 해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할 여유도 없는지 핸드폰에서 입을 때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장난치지 말아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일리미네이터 수가 몇인지 알아요? 100명이에요, 100명! B랭크 이상은 전부 서울에 있고!”

그녀는 화를 내며, 또는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고운 입술은 바싹바싹 말라있었고, 눈가엔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듯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참이라고요! 베테랑만 뽑아서 보내도 부족한 상황 아닌가요? 아니, 저기요! 저희도 좀 양해를 해주세요! 배려를 해줘야할 건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

천후를 두 번째 만났던 그날에도 이렇게까지 격해진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천후는 조금 냉정하게 그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맥락에서…그는 그녀가 지금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해냈다.

“셀레나.”

“아…. 아! 잠깐만! 말이 안 통하는 건 당신들이야! 잠깐만! 미안해요! 잘못했으니까 끊지 마! 끊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다시피 외친 셀레나는 전화가 끊어지자, 성을 참지 못해 핸드폰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파각. 도움이 되기나 하는 지 의문인 얇은 프로텍터가 떨어져나가며 스마트폰은 땅바닥을 굴렀다.

“너…! 왔으면 조용히 하고 있지 왜 입을 열어서!”

“셀레나….”

눈이 새빨개진 그녀의 모습을 본 천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를 만지려했다. 하지만 그 때. 이번에는 천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자 셀레나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그의 손을 양손으로 와락 움켜쥐었다.

“천후. 받지 마.”

“…….”

“받지 마, 절대. 받으면 안 돼, 천후. 제발. 제발…!”

애원에 가까운…아니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셀레나의 모습에 천후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핸드폰은 계속해서 울렸다. 몇 번이고. 마치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자신이 지워주겠다는 듯이.

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 벨소리가 세 번은 끊어졌다 다시 울리기 시작했을 즈음…. 천후는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핸드폰으로 가져갔다.

“…받을게.”

“안 돼! 천후! 천후야!”

“…유그드라실이지?”

“…….”

“받을게.”

“안 돼!”

천후가 핸드폰을 들어 귓가에 가져가자, 셀레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채서 자기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는 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서더니, 가져가지 못하도록 벽에 등을 딱 붙였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러는데.”

“몰라도 돼. 알려고 하지 마.”

“셀레나.”

“몰라도 된다고, 바보야! 멍청이야!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오늘…오늘 그냥 집에 가버려! 쉬어도 괜찮으니까! 제발…제발 가버리란 말야….”

“…….”

반 패닉에 빠진 그녀의 모습에 천후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엔 한쪽 귀에 착용하는 블루투스 헤드셋처럼 보였는데, 천후는 그것을 그녀에게 내보이면서 말했다.

“셀레나. 이건 유그드라실과 상시로 통신할 수 있는 통신기야. 이걸 쓰면 지금 당장이라도 유그드라실에 연락할 수 있어.”

“!”

“그러니까 말 해줘. 네가 말해줬으면 해. 안 그러면 아마도 난…. 무슨 내용이든 수락해버릴 거야.”

“아….”

비틀 하고 다리가 풀린 듯이 제자리에서 휘청거린 셀레나는 간신히 창가를 손으로 짚어서 버텼다. 그녀는 한참 천후의 핸드폰과 그가 들고 있는 통신기를 번갈아 보면서, 표정을 여러 번이나 바꿨다.

“…….”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창가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자리. 사장 대리 명패가 놓여있는 탁자 앞 의자에 앉더니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있었다.

“……서울.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경驚급 디제스터가 출현했대.”

“…….”

“하아…….”

고개를 들어 올려 간신히 얼굴에서 흘러나오려고 하는 것을 막은 셀레나는 탁자에 올려져있는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TV화면이 켜지면서, 장대비 속에 불꽃과 번개와 온갖 화려한 것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교전장소에서 오퍼레이터들이 유그드라실에 보내고 있는 화면. 유그드라실의 위성촬영 영상이랑 섞여있어. 이건 유그드라실 쪽에서 디제스터 퇴치기업이랑 프리랜서에게 쏴주고 있는 걸 우리가 보고 있는 거고. 업계사람 밖에 못 봐.”

“그렇군…. 그런데 이게 뭐?”

“경급 디제스터를 처리할 때 소집되는 일리미네이터 수는 25명. 그 중 한 명이 도주했대. 그래서 널 보내달라고 하더라.”

“…….”

그 말에는 천후도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왜 하필 나야? 순번 상으로는 나한테 올 일이 없지 않아?”

“없지. 없는데….”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얼굴을 감싼 셀레나는 그대로 중얼거렸다.

“저 디제스터는…던전화가 가능한 디제스터래. 그래서….”

“던전화라고!”

그녀의 말을 들은 천후의 눈이 커지며, 다시금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리미네이터들이 연주하는 폭음들이…잦아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업뎃하는 시간이 12시에서 1시 와리가리하는건 제가 늦게 끝나는 일을 할 때가 종종 있어서요.

응원, 질타 모두 감사드립니다.

죄송합니다만 욕설이나, 다른 독자분들을 비방하는 코멘트는 부디 자제해주세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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