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
검은, 아니 피를 빨아들여 이제는 검붉은 그것은 발성기관이 없어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드드드…. 그저 감기고 감겨 올린 몸의 일부를 땅에서 들어올린다. 마치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듯이. 그것만으로도 운동장의 흙이 흩어지며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텐타클 뱀파이어는 그것을 자신을 노리는 무리들에게 큰 호를 그리며 휘둘렀다.
후오오오오…. 쿠르르르릉!
그 두께만 무려 3미터! 3미터 두께의 채찍이 학교 옥상을 휩쓴다. 그 즉시 옥상으로 올라오는 통로가 완전히 붕괴하고, 옥상 바닥이 깨져나간다.
자살방지를 위해 설치해둔 철제 펜스는 그것이 있었다는 존재감조차 주지 못하고 속절없이 찌그러진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세 방향으로 뛰쳐나가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 중 하나는 B랭크의 일리미네이터. 하연. 어느새 저 높은 하늘까지 날아올라 디제스터를 굽어본다.
다른 하나는 공격대장인 레이나드. 그는 의도적으로 리타이어한 아군들이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달리면서도 입과 손을 움직이며 주문을 구성하고 있었다. 숙련된 일리미네이터들에게만 가능한 이동 간 주문 시전. 이른 바 컴뱃 캐스팅.
그리고 마지막 남은 영천후는….
“흐으으음!”
빠르게 훑고 지나간 블랙 텐타클의 3미터짜리 촉수 위에 발을 대고, 그 위를 달리고 있었다.
거의 4개 교실 너비를 훑은 공격. 때문에 본체까지 닿으려면 땅을 달리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천후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위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슈르르르륵!
그것을 경계한 것인지, 블랙 텐타클은 뻗은 팔을 회수하며 여러 가닥으로 얇게 풀어나갔다. 순식간에 10미터 이상 높이에서 발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악의 가득한 가는 촉수들만이 남아 그에게 쇄도해왔다.
천후의 격투센스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발을 지지해줄 곳이 없어진 이상 이것은 치명적. 그러나!
“처음부터 쉽게는!”
처음 날아온 예봉을 꺾기 위한 검은 촉수를 주먹으로 쳐낸 천후는 그 반동으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다리 아래쪽에서 수많은 선들. 그것들 중 강화마법을 침범할 수 있어 보이는 크기의 것들만 침착하게 발로 차낸 천후는 이윽고 한계에 치닫자 외쳤다.
“공대장님!”
“오냐!”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천후와 촉수들 사이에 섬광이 지나간다. 그 직후,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폭음과 함께 그것들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그 사이에 공격 주문을 외운 레이나드가 그 공격을 끊은 것이다.
“어그로가 너무 쏠리셨네.”
지면에 내려선 천후는 텐타클 뱀파이어 특성상 밑창이 조금 녹아버린 신발을 바닥에 꾹꾹 비벼대며 웃었다.
그 말을 들었다는 듯이, 놈은 이번엔 그 거체에서 다 세지도 못할 만큼의 검은 촉수를 꿈틀대면서 준비해왔다.
“후우. 이제부터 진짜군.”
양쪽 모두 방금 이 행동들은 전력이 아니다. 저 거체로 얼마나 기민한 행동이 가능한가? 이 작은 먹잇감들이 과연 자신을 어디까지 상처 입힐 수 있을까에 대한 파악, 탐색전에 가까웠고 그 때문에 서로가 모두 보여주지도 않았다.
최초로 보인 모습에서 느낀 감상은 해볼 만하다는 것.
하지만 서로가 얼마만큼 숨겨놓은 것의 차이가 클지…. 이제부터의 싸움은 그것으로 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놈은 그 격차를 보여주겠다는 듯, 꼬여있는 실체의 일부를 풀며 이번엔 전 방향으로 그것을 쏘아냈다.
“가!”
“네!”
공격대장의 명령에, 영천후는 그것을 따르는 하나의 기계가 되어 몸을 낮추며 앞으로 마주 쏘아져나갔다.
날아오는 촉수들의 수는 기백. 아니 기천! 그것은 이미 ‘쏘아낸다’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폭력의 파도가 되어서 천후를 덮쳐온다.
이미 사람이 몸을 틀고 움직이는 정도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의 벽이 되어서 빗나갈 구석 없이 날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오히려 환영한다!
“하아아아아!”
콰쾅! 폭음. 그와 함께 비산하는 검붉은 피들이 천후의 몸 전체를 뒤덮는다. 맞부딪히는 그 순간 폭발이 확산되며 앞쪽 몇 미터가 완벽히 공백지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텐타클 뱀파이어는 자신의 여력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듯이, 그대로 벽을 밀어 붙여왔다. 그것을….
연타. 연타연타연타!
단 1초, 콤마 1초도 쉬지 않고 손을 뻗는다. 발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마다 폭음이 터지며 뻗어내는 검붉은 벽이 비산하며 터져나간다.
그것은 이미 격투의 영역이 아니라 땅을 파고 들어가는, 굴착에 가까운 영역! 인간의 스테미나가 무한하지 않은 이상, 이것은 오래 지속해선 안 될 금기에 가까운 행위였다.
텐타클 뱀파이어 역시 그것을 눈치 챘는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여력을 분산해 다른 둘을 노려갔다.
지금 이 녀석을 제외한 다른 둘은 지금까지 도망만 다녔던 존재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을 없애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예의 검은 촉수가 생성되어 천후를 보냈던 위치에 그대로 서있는 레이나드에게 쏘았다.
“흥! 무시하긴!”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촉수는 그의 몸을 확실히 관통했다. 하지만 그 순간, 관통당한 부위가 전격으로 변하더니 촉수를 태운 것이다.
전신 전격화.
일반적인 물리 공격에 거의 면역이 되는 효과가 있는 이 주문은 강력하지만 방출마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마력 소모가 어마무지하다.
C랭크인 레이나드로서는 도저히 오래 지속할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 계속해서 날아오는 촉수들에 맞아주면서, 양 팔을 옆으로 쭉 벌리며 또 하나의 주문을 외웠다.
“하아아아아! 전위계를 관장하는 대기의 정령이여! 나의 뜻에 따르라! 먼 태곳적 맹약으로 너희들을 초환한다! 찢어지는 우레!”
빠지지지직! 펼친 양 손에서 번개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날아오던 촉수가 깡그리 타들어갔다.
일시적인 위력으로 치자면 천후의 공격 이상!
C랭크 일리미네이터 모두가 이 정도의 위력은 낼 수 있지만 캐스팅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서 쓰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모든 시선을 다 끌어주고 있는 천후가 있는 지금은 다르다!
“으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압!”
두 남자의 고함과 함께 텐타클 뱀파이어의 몸이 파 먹혀 들어간다. 15m나 되는 거체의 일부를 던지고 던지지만 그것들이 전부 접촉과 동시에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순간적으로 텐타클 뱀파이어의 기색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거체를 유지하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크기를 줄여가면서 본체 자체를 아예 쏟아 붓는 방식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크아아아악!”
“으으으윽!”
아무리 천후라도 이것마저 버틸 순 없다! 주먹질로 폭발을 일으켜보지만 그와 동시에 촉수, 아니 아예 살이라 불러야할 그자체가 고속으로 밀고 들어오며 그의 몸을 상처 입혔다.
단숨에 턱 옆이 찢어져 나가며 이빨이 드러나고, 가슴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우그러진다.
레이나드도 마찬가지. 전신 전격화는 지금 놈이 가하는 모든 공격을 무효화하고 있었지만, 그가 전격화를 풀었을 때 점유해야할 공간마저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이 전신 전격화는 마력이 다하는 순간 속절없이 풀릴 것이고, 그 순간 그는 그 즉시 육신이라곤 손바닥 한줌 정도만 남은 고깃덩어리로 인생을 마감하리라. 그리고 그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
얼마 못 버틴다. 아니,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상황 속에서, 두 남자는 단 하나만을 떠올렸다.
‘아직 멀었나?!’
그 때. 하늘에서 천음이 들려왔다.
“끝났어요!”
그것은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한 자루의 창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들 있을 수 있을 만한, 길긴 하지만 디제스터에 비하면 이쑤시개나 다름없는 크기의 그것.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치켜들어―지면으로 던졌다.
푸욱. 거창한 소리조차 나지 않으며 그것은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놈의 몸체에 박혔다. 당연한 것이, 이정도의 크기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못 맞출 수가 없다. 그러나―
쩌적. 쩌저저적. 그 순간, 창이 꽂힌 지점에서부터 놈의 몸이 얼어붙어갔다. 마치 처음부터 움직일 수 없는 생명체였다는 듯이, 그것은 그 거체를 오들오들 떨면서 빠르게 굳어갔다.
그렇게 10초도 걸리지 않아 완전히 빙결된 놈은 그 순간, 창을 맞은 곳 바로 옆에 새빨간 구슬을 얼음을 깨며 올려 보냈다.
그것을 본 하연이 소리쳤다.
“천후 씨!”
더 이상의 말은 필요도 없다.
팔. 오른팔은 맛이 갔다. 왼팔은? 괜찮아. 쓸 수 있다.
다리. 양 다리 모두 오케이! 그럼 됐어!
“하아아아아아!”
콰앙! 놈의 얼어붙은 몸 사이에 파묻혀있었던 천후는 그대로 주먹을 위로 찔러 튀어나왔다. 그리곤 눈에 비치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 거체 위를 달려 핵을 향해 달려갔다.
“끝이다!”
푸걱! 두꺼운 살을 파고드는 특유의 음성과 함께, 그것은 보이는 색과 마찬가지의 붉은 피를 콸콸 쏟아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짜각. 짜가가가각! 놈의 거체에 금이 가기 시작해, 커다란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으로 가라앉았다. 수만 조각의 얼음으로 갈라져 흩어진 것이다.
“끄, 끝난 건가?”
“그런 거 같아요! 이게 B랭크 일리미네이터의 풀 캐스팅 방출마법…!”
시간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경급 디제스터 조차 일격에 빈사상태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천후는 전율마저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하늘을 날고 있던 하연이 내려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 살았어요! 살았어! 당신 정말 대단하군요!”
“아, 아니! 대단한 건 하연 씨….”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제대로 포인트 맨을 맡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요. 당신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을래요? 잘 해줄게요.”
“아니 죄송한데 그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으며 유혹하는 그녀의 기세에 천후는 볼 옆쪽이 다 날아가서 사랑니와 턱 근육까지 고스란히 보이는 와중에도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본 레이나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유그드라실과 연락할 수단을 찾으려 몸을 돌렸다. 젊은 사람들끼리 붙어서 노는 걸 보는 게 기분 나쁘진 않았지만, 눈꼴시잖은가?
그러던 그 때.
“컥….”
입에서 짧은 신음성을 토한 레이나드는 갑자기 덮쳐온 통증의 출처를 찾았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낼 수 있었다.
배 쪽에 한줄기의 긴 촉수가 등과 배를 관통해서 삐져나와 있었으니까.
“아, 아직 살아있다고?”
말도 안 돼. 핵을 부쉈을 텐데? 하지만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그의 몸엔 다시 몇 개의 촉수가 틀어박히며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이런!”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천후가 추가공격을 막으려했지만, 이번에는 본체가 있었을 때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촉수의 파도가 쏟아져 들어와 그의 거동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 동안 하연 역시 신발에서 허벅지를 타고 촉수가 기어오르더니, 온 몸을 휘감으며 하늘에 떴다. 쫙 달라붙는 면바지가 속절없이 찢어져나가며 손가락 두 마디보다 좀 더 두꺼운 두께의 그것이 속옷 안을 탐하려 들었다.
“꺄아아악!”
그녀는 기겁을 하며 즉시 시전 주문을 마구 쏘아댔지만, 순식간에 재생한 촉수는 끈질기게 그녀의 몸을 물고서 놔주지 않는다.
이윽고 지면과 완전히 수평이 되는 누운 자세로 허공에 들어 올려진 그녀는 속옷조차 뜯겨나간 맨 몸을 그대로 노출하며, 다가오는 것에 관통당하기 직전에 몰렸다.
“아, 안 돼!”
하연은 여성으로서의 위기를 느낄지 몰라도, 천후가 생각하기에 놈에게 그런 사고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저것은 그저 자신에게 큰 타격을 준 개체를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하반신부터 두개골까지 일직선으로 뚫어버릴 셈인 것이다!
그걸 두 눈 뜨고 지켜볼 순 없어!
그런 생각에 천후는 신형을 움직이려 했지만….
푹. 푸푸푸푸푹!
“컥…!”
시선을 잠시 돌렸던 그 잠깐 사이에 그를 덮쳐오던 파도가 그의 몸을 휩쓸며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버렸다.
상반신, 하반신 가릴 것도 없이.
심장마저도.
쿵. 쿵.
피를 빠는 형질을 가진 놈은 심장을 꿰뚫자마자 자비 없이 천후의 것을 갈취해갔다.
원래 몸으로 들어가야 할 것들이 빠져나가며, 몸이 빠르게 식어간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며, 사고과정조차 힘겨워진다.
쿵…. 쿵….
관통당한 심장의 근육은 매일같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 맥동을 멈춰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천후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생각했다.
아….
안되는데….
저 사람을 구해야하는데…. 공대장님도….
아직…저 건물에 사람들이 많은데….
아니….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애매한 이유로 싸우지 마.’
가슴 두근거리게 했던 두 여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른 거린다. 둘 모두 울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아 그들을 안심시켜 줄 수 없다.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약속했었어.
반드시 살아가겠다고.
쿵…….
쿵…….
돌아가면…그날 하지 못했던 걸…계속 하자고…….
그러려면…돌아가야 하는데….
“허…윽….”
마지막으로 공급됐었던 과잉된 피가 역류하여, 호흡과 함께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토해낼 수 있었던 숨.
이대로 죽을 수는…없는데….
아…………. 살고…싶다….
쿠………웅.
마지막. 느린 한 번의 울림.
그것을 마지막으로, 영천후의 심장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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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