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0년 전.
대참사가 일어났던 그 날의 늦은 밤.
<<당신의 마력 랭크는 랭크 F. 랭크 F입니다.>>
랭크 F? 랭크 F라고? 좌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온 사방에서 터졌다.
국내, 외신을 가릴 것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면 그건 기자가 아니라는 듯이.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그 빛들을 정면으로 마주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연예인도 뭣도 아닌, 그저 자원봉사를 하는 마법사일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노출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메라의 초점이 향하고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무릎까지 덮는 하얀색 옷 한 장만을 걸친 어린 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외모의 아이였다. 분명 발표로는 남자아이라고 들었는데,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게 기르고 있어 그것이 진짜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 외모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아이의…눈.
곁의 어른들조차 눈을 감아버릴 정도로 엄청난 플래시가 터지는 와중에도 아이는 아주 느리게,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서만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 때 외에는 움직이지 조차 않는다.
눈꺼풀 뿐 아니라, 눈동자의 광점조차도.
그 눈과 마찬가지로 온 몸 역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그 아이의 모습은 사람이라기 보단 흡사…마네킹을 연상시켰다.
기자들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그 아이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앞만을 보고 있었다.
이것이 10년 전. 1200만 명의 시민들이 자연사해버린 뭄바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영천후의 어릴 적 모습.
*
그에게 판단력이라는 것이 처음 생긴 것은 이미 그의 삶의 향방이 결정되어버린 이후였다.
새하얀…생리작용을 해결할 변기와 수면용 매트리스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방.
천후의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부분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 즉시 천장에 달린 로봇 팔에 의해 피를 뽑히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는다. 그리곤 천장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시키는 행동들을 따라 하다보면 식사시간.
어린 아이가 먹기엔 턱없이 적은 양의 식사가 문도 달려있지 않은 방의 천장 구멍을 통해 미끄러져 내려오면, 천후는 그것을 먹었다.
아이에게 주어진 오락거리라곤 몇몇 유아용 조립형 장난감과 분홍색 공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천후는 그나마 그것들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방송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없을 때는, 움직이지 조차 않았다. 그냥 멍하니…처음 뭄바이에서 한국으로 이송되었던 그날처럼, 그저 정면만을 바라보다가 잠들고, 다시 아침을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냈을까? 달력과 시계조차 없어 날짜조차 가늠할 수 없지만 꽤 긴 시간이 지났던 것으로 천후는 기억했다.
정면만을 바라보던 아이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저 사람들은 누굴까?
천후가 바라보던 정면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서, 천후가 무언가 행동을 할 때마다 기계에 혹은 종이에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곤 했다.
궁금했다. 당신들은 누구고, 나는 누구고, 우리는 어떤 관계인지. 지금까지 전혀 들지 않았던 의문이 그날따라 폭발적으로 솟아나왔다.
그래서 천후는 직접 다가가…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는 사람 옆자리까지 다가가 그것을 물었다.
그 사람은 요란하게 자리에서 넘어졌다. 넘어진 체 뒤로 기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를 지켜보던 여러 사람들이 벽에 붙어서 신음했고,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벽으로 위장된 매직미러를 투과해서 넘어왔다는 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
“오늘부터 천후 선생님이 될 이미연이라고 해. 잘 부탁해.”
“…….”
그날 이후로, 천후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사방이 두꺼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방이었다. 이전 방과 달리 출입구는 존재했지만, 밖에서만 열 수 있었다. 안쪽에서는 이음매 하나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가게 된 그 날부터 하루에 1시간씩, 이미연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여자가 들어와 로봇 팔 대신 채혈과 약물 주사를 대신했다.
그녀는 그 외의 메디컬 체크도 함께 하며, 그와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타인이 되어주었다.
“그럼 천후는 그날 이전 일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니?”
“응.”
“네~라고 해야지.”
“네.”
작게 끄덕이며 대답하는 모양새에 밝게 웃은 그녀는 가끔씩 질문을 던진 이후에 그를 꼭 끌어안아주곤 했다. 부드러웠다. 그래서 따랐다. 그녀가 원하는 모양새의 인간이 되면, 더 안아줄지도 모르니까.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 매일이.
어느 날 그녀는 천후에게 한 가지 영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단 몇 초만을 틀다가 멈추곤, 문을 닫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가 큰 목소리로 누군가와 대화했다.
“어린애한테 이런걸 보여줘도 되는 거예요? 당신들은 돌았어!”
한참이 지나 다시 들어온 그녀는 영상을 꺼버리려 했다. 그때. 천후가 입을 열었다.
“이거. 매일 봐.”
“응?”
“매일. 봐. 누나 가면.”
“뭐?”
당시 유아수준을 간신히 넘는 대화능력을 가지고 있던 천후의 말을, 미연은 몇 시간이나 걸려 어렵게 해석해냈다.
안색을 달리한 그녀는 그 어떤 때보다 그를 강하게 끌어안아주며, 물방울을 흘리며 물어왔다.
“천후야. 괜찮니? 그런 거 매일 밤 보면…. 힘들지 않아? 아프지 않아?”
그 말에. 천후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방금 전보다 몇 배는 표정이 파리해진 그녀는 그에게서 몇 걸음이나 물러나버렸다. 그 뒤로, 그녀는 여러 번 잠을 자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주사는 다시 로봇 팔이 놓았다.
아이는 굳게 닫힌 철문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철문이 열렸다.
미연이 들어왔다.
미안해. 미안하다 외치며 그를 다시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서 다시 한 번 똑같은 물음을 되풀이 했다.
“누나가 미안해…. 천후가 많이 힘들텐데…. 당연히 아플텐데…. 그치?”
언제나처럼, 아이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바라보는 것은 철문이 아니라 그녀의 눈.
두 줄기 눈물이 흐르는 얼굴.
“응. 싫어. 무서워.”
그 꿈을 악몽으로 여기게 된 것은 이 날 부터였다.
*
아이, 영천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그의 처우는 이미연과 커뮤니케이션을 늘려갈수록 조금씩 나아져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후는 말이 늘어갔고, 더 이상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이 먼저 궁금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경우도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금속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얇은 유리 너머로 미소지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방이 바뀌었을 즈음.
여느 때처럼 이미연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던 천후는, 그날 처음으로 미연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누나…. 나 조금 이상해….”
“응?”
속닥속닥. 표정조차 아직 잘 짓지 못하던 아이는 살짝 시선을 유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두었다. 그것이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신호라는 것을 캐치한 미연은 그들을 물리고는 진지하게 그것을 들어주었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천후는 그녀의 앞에서 양 손에 작은 불덩어리를 피워 올렸다. 라이터불 보다 조금 클까 싶은, 랭크F에 걸맞은 아주 작은 불덩어리.
“이런 게 돼.”
“응. 천후는 마법사라 그래. 누나도 할 수 있어.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미연은 그를 안심시키듯이 좀 더 큰 불덩어리를 피워 올렸다. 그 모습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이네. 그럼 이건?”
“아?!”
미연이 자리에서 넘어져 버렸다.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것은―
미연은 아이의 양 손을 꽉 잡으며, 굳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천후야. 방금 그거…절대 아무한테도 보여주면 안 돼. 알았지?”
“…….”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문 쪽에 두었다.
미연이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자, 그곳에는 중년의 남성 하나가 서있었다.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이미연 연구원. 왜 이걸 꼭 비밀로 해야 하지?”
“읏…!”
“보여다오, 천후야. 계속 해보거라.”
끄덕하고 아이의 고개가 움직이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것의 의미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아이는 그녀에게 보여줬던 것을 계속해나갔다.
경보음이 울렸다.
사람들이 넘어졌다. 미연이 그의 다리를 붙잡고 울었다. 방 안이 온통 흔들렸다.
문밖의 중년 남성이 이마를 감싸고 폭소하고 있었다.
아이는 문득 시선을 유리창 너머에 두고 좌에서 우로 돌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날 이상하게 보지?
어느새 다시 몰려든 사람들의 표정이 익숙했다.
시간관념이 정립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그 하얀 방. 그 너머로 넘어갔을 때의 사람들이 보였던 것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때의 천후는 그것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두려움.
어째서?
그때처럼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는 있었다.
역시 누나 말은 늘 맞다.
이건 앞으로…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말자. 이걸 보면 사람들이 무서워해. 이런 거 때문에 나를 무서워하는 건 싫어.
그러니까. 다시는 하지 말자.
불편하고…조금 갑갑하지만….
영천후의 이름을 받은 그 아이는, 그렇게 그날의 일을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
다시는…남들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어.
이제는 알아.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어떤 시선으로 나를 봤는지. 알게 되어버렸어.
그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야.
내가 이상한 거지.
그렇잖아? 이런걸 보고…사람들이 이해해줄 리가 없어. 그러니까…안할래.
…….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럴 순 없겠지. 이봐, 영천후. 천후야.
사실 아니잖아. 여기가 사지란 거 알고 있었잖아? 기어들어온 그 순간부터, 마지막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들어온 거 아니었어?
딴엔 그 생각이 맞아. 미연이 누나 말도 옳지. 여길 오기 전에 유그드라실이 위성 촬영 화면을 보고 왔으니까, 지금 상황도 전부 찍히고 있을 거야.
그럼…아마 해버리면. 저질러버리면…. 이젠 유그드라실 뿐 아니라 모든 일리미네이터들이 전부 보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전부 눈치 채겠지. 그들 모두가 마법사인 이상, 모를 수가 없을 거야.
그건 정말 원하는 바가 아니야. 아니지만….
희주 씨…. 셀레나….
기다리고 있겠지?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걸…계속 보고 있었을 거야. 미안해요. 미안해. 걱정시켜서…. 그렇지만 이 녀석이 너무 강하잖아.
나도 막 들어올 땐 그래도 몇 명 더 있을 줄 알았다고.
달랑 세 명이서 이게 뭐하는 거야? 하긴……. 그래도 들어왔겠지만.
아아…….
뛰어다니면서…아이들이, 그 어머니들이 다친 걸 봤어. 난. 나는 그런 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런 녀석으로 자라나버렸어.
외면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미안해.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미리 사과해둘게.
아니…앞으로가 있을까?
내가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두 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까?
피하지 않을까? 그녀들이. 그리고 내가. 서로가 피해서…엇갈리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버려.
……그래. 알고 있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약속은 지킨다.
반드시 살아갈게. 어떻게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대가로……너희들이 나를 떠나게 될 지라도…!
“생명유지활동 정지 확인. 한정 봉인 술식 해제.”
움직일 리 없는 시체의 입술이 달싹인다.
그 순간.
두근.
움직일 리 없는 꿰뚫린 심장이, 맥동 쳤다.
어둠이―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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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아. 축구 이겼으면...! 재방으로 봐야겠지만...크흑!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