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두쿵.
심장소리가 울렸다. 이것은 사람의 심장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세계.
드드드드…. 지면이 흔들린다. 건물이 떨린다. 괴물이 만들어놓은 폐쇄 공간인 던전 속에 흐르는 붉은 기류,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놓은 혈 지옥.
그 속에 있는 모든 암흑이…심장 없는 시체에게 모여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의 압축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으로 변하여 텐타클 뱀파이어의 촉수들을 으스러뜨리고, 압축시켜버린다.
그것에 놀란 놈은 자신의 모든 신체를 거둔다. 그 안에 들어간 것은 방금 전 단순히 얼어붙었다 깨졌던 것들과는 달리 합쳐지지도, 재생되지 않았으니까.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텐타클 뱀파이어는 판별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이상 현상이란 것은 인지한 놈은, 지금까지 숨겨왔었던 모든 여력을 집중하기 위해 전역에 흩어진 몸체들을 끌어 모으고 시작했다.
그동안…모여든 암흑은 남자의 몸 앞에 긴 타원형의 구체가 되어서 허공에 떠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찌지지직…. 알이 갈라지듯 어둠에 금이 가며 검정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깨여져 나가며….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은 세 명의 나신의 여인이 나타났다.
<아. 정명한 별의 적자시여.>
<고귀한 땅이 낳은 위대한 이여.>
<어찌 상처 받으셨나이까?>
아니, 저것을 여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에겐 다리가 없었다. 몸 곳곳이 흐릿하게 지워지고, 오직 실루엣만이 그들을 그런 형태의 존재임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울려 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남자를 걱정하며 읊는 모든 음성이 노래되어 퍼진다. 감미롭게, 애절하게, 요염하게 흐르는 그 목소리에 디제스터는 공격태세를 멈추고, 자신의 핵―붉은 눈을 끄집어 내 그녀들을 마주보았다.
<그 상처 저희가 어루만지겠나이다.>
<감히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받아주소서.>
<짓이겨주소서. 밟아주소서. 부숴주소서.>
아리아가 울려 퍼진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떠올리듯, 그녀들은 부끄러움 없이 그의 곁에 다가가 나신을 몸에 붙였다.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유방이 그의 얼굴에 닿는다.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의 비부가 늘어진 손가에 닿는다. 바닥에 기듯 누워 음란하게 내민 혀로 남자의 발을 핥는다.
그러면서 세 여자는 읊으며, 신음하며, 절정하며―외쳤다.
<<<아아. 어찌하여 저희를 품으셨나이까.>>>
아름다운 목소리 내던 세 여자의 형태가 일그러진다. 원형으로 빨려 들어가듯 쭈그러지고 짓이겨져, 이윽고 어둠의 커튼이 되어 그의 몸에 덮어 씌워졌다.
한 장. 모든 외상이 사라졌다.
한 장. 심장이 돌아왔다.
마지막 한 장.
영천후는 눈을 떴다.
“…하…아아아아아.”
강화마법 해제 시 그의 몸 주변을 맴도는 무색의 아지랑이가 더더욱 강해진다. 그가 인간임을 보여주던 윤곽선마저 무너뜨리고, 주의 깊게 시선을 두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까지.
그 때. 아지랑이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정. 뒤섞인 둘은 어느새 때어낼 수 없는 것이 되어, 흐릿하게 일렁이며 천후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
일렁. 일렁. 암색 투명한 촛불 되어 영천후. 아니 그것이었던 무언가가 일렁인다. 그 가운데…그것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천지가 진동하며 주변 모든 건물의 창문이 깨져나갔다. 지면이 떨리고, 멈춰있던 자동차들이 미끄러지며 부딪힌다. 그 가운데, 그의 몸에 걸쳐져있던 상의가 찢어져나가고, 짧게 깎은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아지랑이와 함께 일렁였다.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흑색 흉성을 눈에 담고서 놈에게 고했다.
“없애버리겠다.”
사신이 내뱉었는가 싶은 낮은 목소리에 디제스터는 빠르게 반응했다. 지금까지 아직 완전하게 모이지 않은 모든 분신들을 순식간에 끌어 모은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살인 프로세스에 적용시킬 수 없는 그것이 눈앞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명백히 규격 외. 범례 외!
일반적인 생명체였다면 그것을 느낀 순간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놈은 디제스터. 인간을 사멸시키는 것을 숙명으로 가지고 태어난 녀석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손패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첫째는 모든 인간종들에게 통했었던 지면에서 치솟아 올라 옭아매는 촉수. 하지만 검은 아지랑이는 그것에 눈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다리만을 들어 올렸다가, 지면에 내리찍었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 그 순간, 던전 내의 모든 아스팔트와 보도 블럭이 까뒤집어졌다. 파편은 튀지 않았지만, 완전히 조각조각 나 세로로 서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지면이 피바다로 바뀌었다.
단 한 동작. 그것만으로 모든 지면에 깔아둔 흡혈용 촉수가 재생도 못하게 전멸해버렸다.
뱀파이어 텐타클의 홍안에 감정이 서렸다.
공포.
탐색전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디제스터는 자신이 잡고 있던 모든 인간들을 던져놔 버리고, 전력을 투입하여 촉수의 파도를 만들어내 덮쳤다.
“…….”
그러나 암색 불빛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때마다 사라지는 것은 디제스터의 몸의 일부일 뿐이다.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검정에 닿는 그 순간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지루했던 것일까? 순간 검은 아지랑이가 움직였다. 손이 튀어나와 촉수 중 하나를 잡는다.
“―!”
부글. 부글부글부글. 잡힌 그 순간, 그 자리에서부터 수포가 일어나 역으로 거슬러 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파악한 시점엔 이미 본체에도 퍼지고 있었다. 디제스터는 그것을 간신히 스스로 끊어내어 더 이상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그 꼴을 보며…머리카락 일렁대는 어둠이 손을 뻗었다. 허공에 무언가를 움켜쥐듯….
콱. 뿌지지직! 그 순간, 텐타클 뱀파이어의 거체가 땅에 박혀있는 뿌리 채 들려 검은 존재에게 날아갔다. 거부하고 저항하지만 소용이 없다.
커다란 거구를 낮추고 낮춰, 작은 신형의 손이 있는 위치에 맞춰 괴물의 핵이 고스란히 바쳐졌다. 흑색 신형은 그 붉은 눈을 콰득 하고 움켜쥐었다.
눈 크기만도 사람의 몸 크기만 한 그것에 손가락을 박아 넣으며 움켜쥔 것이다.
디제스터는 고통에 날뛰었지만, 암흑을 두른 그것은 멈추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디제스터의 핵과 몸체를 땅에 처박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
콰득. 카드드드득! 처음에는 느리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정색 선이 되어버린 그것은 디제스터를 왕복 4차선 도로에 강판으로 갈 듯 갈아버렸다.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에서 흑색 아지랑이가 흩어져 나와, 떨어져 나온 놈의 몸체를 소멸 시킨다.
어느덧 손에 붉은 핵과 아주 약간의 몸체만이 간신히 누더기처럼 남은 그것은, 공격 수단조차 모두 잃고서 길쭉이 째진 눈동자로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잠시 내려 본 어둠의 후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마치 저 멀리…사람의 눈에 보일 수 없는. 아니 그 무엇에도 보일 수 없는 것을 바라보듯이….
후욱.
그는 이제는 더 이상 마법이 아닌, 강화된 완력만으로 소멸되기 직전의 디제스터를 하늘 위로 던졌다.
그리고는 복싱의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며 나지막히…주문을 읊었다.
“나, 별의 정당한 적자로서 신비에 고한다….”
그것은 노래하는 듯한 영창.
한 소절, 두 소절이 아니라, 길고 길어 하나의 곡을 만들 수 있을 만한 유려한 가락.
아무리 긴 주문을 외워도, 아무리 긴 손동작을 취해도 마법의 위력은 늘어나지 않음에도 흑색을 감싼 이는 소리 낸다.
그와 함께…그의 몸에서 흑색이 걷히며, 이번엔 발끝에서부터 붉은 색의 아우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발끝에서 몸통, 머리카락을 지나 허공으로 점점 올라가, 이윽고는 던전 경계마저 뚫고 구름 더 너머까지 붉은 기운이 치솟을 즈음.
흑색이 걷혀 드러난 긴 머리칼의 남자, 영천후는 굳은 목소리로 마법의 이름을 외쳤다.
“신위神位!”
완성을 맺자마자 그는 발을 땅에 굳게 디디며, 무릎에서 허리, 몸통, 어깨, 팔꿈치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주먹이 휘둘러지는 길을 만든다.
그 길을 따라 몸에 걸린 강화 주문이 반동하며, 뛰쳐나가려 용솟음친다.
영천후는 그 기세를 거부하지 않고 적을 향해
“가라!”
쏘았다!
소리를 필설로 형용하는 것이 무의미한, 적색 빛이 하늘을 꿰뚫었다.
그 붉은 광선은 디제스터를 없애버리고, 던전을 뚫고, 대기권과 성층권을 넘어…열권조차 넘어서 지구 중력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하고 뛰쳐나가버렸다.
전리층이 손상된 것일까? 서울 하늘 위에 일시적인 오로라가 피어났다.
“헉…헉….”
넘실 넘실. 붉은색 오오라를 피워내며 그것을 쏘아낸 후에도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있던 천후는 이윽고 천천히 기운을 풀어냈다.
역으로 치솟아 올라있던 머리카락이 내려앉으며, 땅바닥까지 닿았다. 갑자기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후. 후후후….”
낮은 웃음을 흘려낸 천후는 그 직후, 휘청거리며 뒤로 쓰러져버렸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레이나드와 하연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
<전 유그드라실 전속 일리미네이터, 영천후의 생명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뭐, 뭐야 저거!>
<강화마법 랭크를 확인. 랭크 A입니다!>
<디제스터를 끌고 온 염동력도 랭크 A!>
유그드라실의 상황분석실. 천후의 생명활동 정지 직후 일어난 일들에 그들은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외쳐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지부장님? 지금이라도 위성영상을 끊을까요?”
“끌끌끌. 소용없어. 이미 늦었어. 지금 저 꼬라지가 나온 이상 다들 알아챘을걸.”
불안감 섞인 목소리에 손을 절레절레 흔든 중년 남성은 양손을 꼬옥 쥔 채 기도하듯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옆에 섰다.
“그래. 어때? 저 모습을 보니 만족 하나? 내려 보내길 잘 한 것 같아?”
“…….”
그녀, 이미연은 남자의 말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가 ‘큭’하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었죠? 최완 지부장님. 천후의 이력서에 손댄 게.”
“그래. 나였지.”
“왜 그랬죠?”
“결과가 보여주고 있을 텐데, 이미연 소장.”
중년의 남성은 턱짓으로 암흑을 뒤집어 쓴 인간 아닌 무언가를 가리켰다.
“크크큭…. 랭크 D에, 한정 A? 아주 재미있게도 써놨더군. 자기도 다시는 보이기 싫다던 녀석이 이력서에는 순진하게도 갈겨 놨더구만? 그래서 뭉개놨었지. 정신 좀 차리라고.”
“…….”
“마력 변동능력. 정확히는 롱 캐스팅에 의한 스펠 어센션. 그리고 노 코스트 스펠 세이브.”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제 2 인류 전부는.
아무리 길게 주문을 외워도 정해진 힘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100이 최대 파워라면 100이상의 힘은 무슨 짓을 해도 내지 못한다.
영창을 하지 않고, 수인도 맺지 않는 식으로 이른바 즉시 시전 마법, 무영창 마법 등으로 마법의 위력을 ‘낮출’ 수는 있어도 최대치 이상으로 늘릴 수는 없다.
그것이 이 세상 마법사들이 가지는 종의 한계였다. 초능력을 가진 자들의 한계.
하지만 천후는 달랐다.
천후는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무작정 길게 외우기만 하면 위력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최대 A랭크까지. 아니…어쩌면 그 위까지도.
이것이 롱 캐스트에 의한 스펠 어센션.
이 특성을 이용해 천후는 일상생활을 하며 언제나 캐스팅 상태에 들어가 있다. 무영창, 무수인으로 계속해서 고 랭크의 강화마법을 실시간으로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렇게 해두면 그는 그 유지에 마력을 먹지도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도 비슷한 방식의 상황설정 발동 마법, 지연마법이 가능하지만, 당연히 유지에 마력을 먹어서 여러 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것이 노 코스트 스펠 세이브.
수많은 강화마법을 몸에 쟁여두고도 그 상태에서 랭크 F가 떠버리는 것이 이 때문이다. 주문을 발동하지 않으면 랭크가 잡히질 않는 것이다.
평소 파급 디제스터를 상대할 때 걸고 있는 강화마법은 D도 C도 아닌 B랭크.
스스로가 D랭크 마법사라고 하고 다니는 건 그저, D랭크 수준의 마법을 그 수준의 마법사와 동일 캐스팅 시간이 걸려서 쓸 수 있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천후는 언제나 일상 시에도 고랭크의 마법들을 ‘저장’해두었다가 특정 상황에 발동시키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B랭크까지는 별로 티가 나지 않지. 워낙 생소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그걸 일일이 분석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A랭크부턴 달라. 이미연 소장. 스펠 세이브가 해제되면서 외형에 변화가 일어나버리잖아. 저거 봐. 머리카락이 2미터는 되겠어.”
“…….”
“애초에 주문 좀 쓴다고 사람이 형상변환을 일으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지…. 변신주문도 아닌데 말이야. 저 눈깔에 쌍 라이트 단 걸 보라고. 저건 이미 마법과 사람이 한 몸인 거나 마찬가지야. 어떻게 수습할 건가? 저걸? 내일부터 일리미네이터 커뮤니티에선 바로 이런 소리가 나올걸?”
끌끌 하고 곤혹스러워하는 미연을 보며 웃은 최완은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자기 혼자 끝머리가 잘리더니, 불꽃이 피어났다.
남자는 실내가 금연이고 뭐고 상관없단 기색으로 시가를 한껏 빨아들였다가 크게 내뱉었다.
“제 3 신인류 탄생이라고.”
“그렇겠죠….”
똑같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천후는 마법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일정 마력 사용이 활발해지면 육신 자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난다던가, 머리카락이 길어진다던가, 윤곽선이 흐려지는…육체가 마력과 동조현상을 보였다.
“거기에 아직도 10년이나 박아두고서 연구했는데도 전부 파악이 안 된 초자연적 능력들까지.”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가 생각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저게 과연…인류에 포함되긴 하는 것일까…하고.
“어쩔 수 없잖아요…! 더 이상 유그드라실에선 천후의 사회성 면의 발달은 기대할 수 없었어요. 약리적인 데이터는 쌓일 만큼 쌓였고. 그렇다면 놓아줘야죠. 그를 인간으로 보아줄 용의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있다면…! 그래서 보내준 거잖아요!”
“아아. 알겠네. 화내지마. 탓하려는 건 아니야. 난 그저 좀 더 철이 든 다음 내려 보내려고 했지. 예를 들어서….”
거기까지 말한 최완은 시가를 입에 문 채 이미연의 허벅지 안쪽에 시선을 보냈다. 이미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10년이나 같이 붙어 지내서 절 여자로 안 본단 말이에요.”
“크하하하핫! 그거 참 아깝군! 난 그래도 내려가기 전날 고추를 땄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용케도 참았네?”
부들부들. 듣다 못한 이미연은 그대로 떨리는 주먹을 그의 안면에 박아 넣었다. 남자는 그것을 피하지도 않고 정통으로 맞아주며 시가를 뱉어냈다.
“쿨럭쿨럭. 미안하네. 이러지마, 미연. 이래 뵈도 내가 한국 지부장이야?”
“시끄러워요, 수염 난 아저씨. 것보단 앞으로 수습이나 도와주세요. 내려 보내자는 옹호파 수장이 당신이잖아! 뭘 제 책임인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하하하. 알겠네. 뭐. 수습이 될까 모르겠지만….”
그 때, 상황실 화면에 비상경보가 표시가 붉게 번뜩였다.
“지부장님! 그가 발사한 방출마법의 궤도에 유그드라실이 겹칩니다. 바, 방출마법의 랭크는 S! 보조 없인 막을 수가 없습니다!”
“강화주문을 몸의 파트 별로 따로 걸어두고 육체반동으로 발사해 S급 방출마법으로 만들다니. 끌끌. 온몸이 터져 죽어봐야지, 원.”
그렇게 웃은 그는 가볍게 손을 아래로 내뻗었다. 그러자 쿠웅 하는 충격과 함께 유그드라실 전체가 잠시 요동치다가 멈췄다.
외부를 비추는 스크린을 통해 홍색 광선의 궤도가 미세하게 바뀌어 지구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후우. 어떻게든 막았군.”
“간신히 빗겨낸 거잖아요. 조금 진지하게 행동하시죠!?”
진동을 근처의 벽면을 짚고서 간신히 버텨낸 이미연은 그를 쏘아붙였다. 그 말에 최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았네. 알았어. 뭐 양아들도 아들이니 사고를 쳤으면 부모가 수습을 좀 해줘야지. 어른이 됐어도.”
그렇게 말하며 천후가 힘을 다 쏟아내고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본 그는 씨익 웃으며,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 분명 보고서 노리고 쏜 거 같은데…여전히 저 상태일 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꾸욱 하고 아래쪽으로 뻗었던 손으로 주먹을 그러쥔 그는 천천히 다시 한 번 시가를 한 모금 빨았다.
“끌끌. 이봐, 아들. 앞으로 어쩌려고 봉인을 푼 건지 모르겠지만…. 고생 좀 해야 할 걸? 그래도 이 아비한테…사람답게 살아가는 걸 보여줄 수 있겠지?”
웃음소리 속, 아주 희미한 애정을 드러냈다 감춘 남자―유그드라실 한국 지부장, 대한민국 유일의 S랭크 마법사 최완은 그렇게 미소 지었다.
============================ 작품 후기 ============================
시간을 하루이내로만 되돌릴 수 있다면, 네타를 극구 피하고 축구 재방 보겠답시고 tv를 틀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그 방송은 볼 필요 없었어...
내일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