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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51화 (51/324)

51화

“드라이브 한다매요! 왜 거짓말 쳐! 나빴어!”

“맞아! 사고 쳤어! 나빴어!”

잠시 후.

어찌어찌 쇼핑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어온 천후는 강호가 웬 백발의 여자 아이 두 명에게 잡혀서 끌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천후의 가슴 높이에나 올까 싶은 키의 그 둘은 일란성 쌍둥이인지 그냥 보기에는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코스튬 플레이라도 하는 건지 검은색의 메이드 복을 입고 머리에는 카츄사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도 똑같은 옷이다.

“쟤들은 누구야?”

마침 돌아와 있었던 셀레나를 보며 묻자, 그녀는 살짝 움찔하면서도 대답했다.

“강호 씨 서포터랑 오퍼레이터야. 오른팔에 팔찌 찬 애가 서포터인 이브. 왼팔에 찬 애가 오퍼레이터인 에바.”

“완전 어린애들이네? 존댓말도 좀 했다 안했다 하고.”

“응. 서포터나 오퍼레이터는 어린애들인 경우도 종종 있어. 그래도 처음 왔을 때보단 많이 컸지.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왔는데 아직 한국어가 미숙해.”

“고, 고생했겠네.”

“말도 마….”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셀레나는 짝짝하고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이브. 에바. 강호 씨 혼내는 건 그쯤 하고 이리 와서 인사 해. 저번 달에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일리미네이터 영천후. 그리고 서포터 홍희주야.”

그녀의 말에 참새마냥 짹짹 대던 걸 멈춘 그 둘은 쪼르르 달려오더니 양 치맛단 끝을 잡고서 꾸벅 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이브!”

“저는 에바!”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서 피식하고 웃은 천후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눈을 깜빡대다가, 그의 손에 손을 겹쳐보며 말했다.

“크다! 우리 둘 합친 거 보다 커!”

“덩치야! 산만해!”

“…….”

뭐가 그렇게 놀라운지 만지작거리는 걸 본 천후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아. 뭔가 조막만한 애들이 이러니까 좀 귀엽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둘이 한꺼번에 물어왔다.

“천후! 랭크 얼마야?”

“중요해! 진짜!”

“응? 랭크? 아. 마력랭크? 마력랭크는 D...읍.”

그 말에 순수하게 평소처럼 입을 열려던 순간, 그의 입을 옆에 다가온 희주가 살며시 막았다.

“주인님의 마력랭크는 B입니다.”

“B! 대단해!”

“쓸모 있어!”

그제야 눈을 반짝이며 천후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든 둘은 만세 하듯이 양팔을 쫙 벌리며 환영의 포즈를 취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얕잡아 보여선 안 됩니다.”

“아…. 확실히 알 것 같네요.”

그냥 D랭크였다고 했으면 완전 다른 반응이 나왔을 것 같다. 그렇게 천후가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서포터 언니. 랭크 몇?”

“알려줘!”

이번엔 희주의 역량을 재보려는 듯 둘이 눈을 빛내며 올려본다. 그에 희주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지갑에서 서포터인증을 꺼내 둘에게 보여주었다.

처음엔 왜 말로 안하고 보여주나 싶었던 둘은 그걸 들고 요리조리 보다가, 랭크에 박혀있는 S자를 보고는 눈이 화등잔 만해지더니 그대로 그녀를 향해 폴짝 뛰어 점핑 큰절을 하며 외쳤다.

“제자 시켜줘요!”

“존경해요!”

‘와아. 속보여….’

애들답다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너무 직관적이라 오히려 화도 안 난다.

그런 둘을 내려 본 희주는 둘을 일으켜 세우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앞으로 여러분들 태도를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말 잘 들어! 우리!”

“완전 착해!”

의욕 충만한 둘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희주는 천천히 손을 들어 천후를 가리켰다.

“일단…호칭을 바로 해야겠군요. 앞으로는 주인님을 오빠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응! 오빠! 잘 부탁해!”

“오빠! 열심히 해!”

“하하. 내참.”

헛웃음을 지은 천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엎드려 절 받기 같지만 애들한테 오빠소리 듣는 게 기분 나쁘진 않다.

“인사는 이쯤이면 됐고.”

줄 걸 줘야지 하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이브, 에바에게서 풀려난 강호는 눈치를 보고 있다가 천후의 말이 떨어지자 휙 하고 튀어나와 둘에게 뭔가를 건넸다.

“그래! 자. 자. 천후의 첫 월급 선물 겸 귀국선물이다. 받아라.”

지금 이 때가 아니면 이미지 만회할 기회가 없다고 느꼈는지 조급한 태도로 밀어 붙이는 바람에 희주와 셀레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말았다.

하지만….

“호오…. 이게 첫 월급 선물?”

“………감사합니다.”

받은 직후 둘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의 톤이 한없이 낮았다. 뭘 선물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희주조차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그럴 수밖에. 그녀가 그들에게 안겨준 것은 닭다리 그림이 잔뜩 그려진, 1kg들이 7900원짜리 ‘왕큰치킨’이었으니까.

“하하. 어떠냐? 역시 먹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했다.”

“…네네.”

셀레나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그걸 식탁에 내려놓고는 끄응 하고 이마를 짚는 모양새. 희주 역시 내려놓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천후에게 가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인데, 싸늘하기 그지없다.

천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천후는 사실 굉장히 고민했다. 먹는 거 좋지.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백화점을 돌면서 괜찮은 것들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후야. 다리가 아프구나.”

“천후. 남자가 쇼핑을 이렇게 오래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백화점을 한 바퀴 다 돌 수 있지?”

“나는 자동차 용품 코너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될까?”

옆에 있는 약 1명이 카트도 안 밀고 있으면서 쫑알거리는 소리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엔 나와 버린 것이다. 당최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결과.

…일 뻔했습니다.

“후우. 저건 선배가 산 귀국선물이고…. 내가 사온 건 따로 있어.”

결국 비우고 비웠는데도 두 사람이 양손 가득 들고 왔던 식료품 봉투 속에서 천후는 뭔가를 뒤적거리면서 꺼내왔다.

“일단…. 자. 셀레나.”

메이커 명이 삽입된 검은색의 종이 박스를 꺼낸 천후는 그것을 셀레나에게 넘겼다. 얼떨떨하게 그것을 받은 그녀는 조심해서 그것을 열어보았다.

“어머. 이게 뭐야?”

“구두야. 정장용 구두. 선배가 옆에서 하도 칭얼대는 바람에 급하게 사서 발에 맞을지 모르겠네. 안 맞으면 내일 다시 바꿔올게.”

“와….”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가 그대로 꺼내서 신어보았다.

“맞네. 내 발 크기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런 거 대충 보면 알겠더라고. 왠지 모르게.”

“오올…. 근데 왜 하필 구두야?”

“지금 신고 다니는 거 밑굽이 좀 닳은 것 같길레.”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하나 새로 구매를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오 하고 감탄사를 낸 셀레나는 생긋하고 웃고는 그의 볼가에 입을 가져가려다가, 사람이 많을 것을 보고 움찔 멈추곤 볼을 붉히며 말했다.

“땡큐, 천후. 잘 쓸게.”

“그래. 그리고 음…. 희주 씨는 이거.”

이번엔 셀레나에게 줬던 것보다 얇지만 넓은 상자였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든 희주는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화장품 세트군요.”

“응? 보면 아세요?”

“메이커 정도는 숙지하고 있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열었다. 스킨에서부터 마스카라까지, 거기에 더해 향수도 첨부해서 들어있는 세트였다.

“…50만원선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내, 내외라고 하셨잖아요. 얼마 차이 안 났어요!”

“…….”

구성을 보자마자 고가인 게 티가 확 난다. 희주는 살짝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용인의 의미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제야 천후도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아. 희주 씨 화장하는 걸 못 봐서요. 음.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여자라면 있는 게 낫잖아요.”

깜빡깜빡.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뜬 희주는 시선을 셀레나에게 옮겼다. 그것을 받은 그녀는 하아 하고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응? 왜 그래?”

“바보니? 희주 지금도 화장 하고 있어.”

“…어?”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부끄러운 모습인지라….”

“어, 진짜요?”

전혀 몰랐다. 천후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워낙 기본이 희고 고운 피부에다, 눈썹도 길다보니까 화장을 한 게 티가 안 난다. 물론 그녀가 그런 ‘안 한 것 같은’ 화장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그럼 잘못 사왔네.”

사실 희주의 선물을 고르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모든 행동에서 개인 기호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셀레나의 경우엔 매일 정장을 입으니 옷이나 구두 중에서 택일 한 것이지만, 희주는 그런 것도 없으니 두드러지게 필요하겠다 싶은 것을 유추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마침 생각난 게 저거였는데 아무래도 꽝이었나? 하지만 희주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이걸 사온 이유가…혹시 또 있으신지요?”

“…….”

희주의 말에 얼굴을 살짝 붉힌 천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그녀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향이…좋아서요.”

희주에게서 났으면 했다. 특히…….

“…….”

그 뒤에 숨은 말을 짐작한 그녀는 아주 살짝 볼가를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소중히 쓰겠습니다.”

“…….”

아. 부끄럽다. 뭔가 결국 내 맘대로 선물한 느낌인데. 하지만 희주는 그게 싫지 않았던지 정말로 조심스레 케이스를 닫아 그 위를 쓰다듬었다.

“그런 향 좋아하는구나….”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셀레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메이커 이름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소리에 천후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넌 네가 지금 쓰고 있는 게….”

“…….”

“…….”

둘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씬데 새삼스레 더 더워져, 둘은 땀을 비질비질 흘렸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숙인 셀레나의 얼굴은 살짝 헤실 대고 있었다.

‘아. 나 미쳤나봐.’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무슨 대단한 소리 들었다고 기분이 좋지?

“어. 어쨌든 간에. 으흐흠.”

분위기가 묘해지자 천후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셀레나. 사실은 희주 씨랑 같이 있을 때 뭐 또 하나 좀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은 셀레나는 오히려 깜짝 놀라더니 급히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안 돼. 절대 안 돼!”

“…?”

뭐가 안 된단 거지?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야?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한 천후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별로 어려운 거 아닌데.”

“무슨…! 벼, 변태야! 애들도 있는데서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어? 갑자기 애들이 왜 나와?”

“으, 응?”

그의 말에 되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다가,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또, 또 셋이서 하게 해달라고 그러는 거 아냐?”

“………………………………………….”

“…아니야?”

“넌 대체……날 뭘로 보는 거야…….”

이브와 에바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기색인 걸 확인한 천후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셀레나가 답했다.

“지, 짐승?”

하….

못해먹겠다.

못해먹겠다아!

*

“아이. 천후. 화 풀어. 응? 삐지지 마아.”

“아. 몰라. 짐승이라 모르겠네요. 에헤이. 손때시죠, 사장님. 균 옮을라.”

잠시 후. 완전히 삐져서 사무실 구석에 등 돌리고 누워버린 천후의 뒤에서 셀레나가 쪼그려 앉아 빌었다.

“착각할 수도 있지이. 응?”

“있기는 무슨! 요즘 나 피해 다닌다 싶더니 그런 생각 했던 거야?”

“헤, 헤헤헤. 미안.”

“어휴. 진짜. 아오….”

이 여잘 어떻게 해야 하나. 다 커서 엉덩이를 두드릴 수도 없고 진짜.

그래, 뭐 솔직히 그러고 싶지. 마음이야 없진 않다고. 부정하진 않겠어. 그런데 그걸 또 말하겠냐고.

그렇게까지 경우 없이 군다고 생각했다니 속상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셀레나도 그것을 눈치 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딱 붙어서 아양 부리는 것이다.

“그러지 말구. 선물로 준 구두도 이렇게 신고 있잖아. 한번만 봐줘. 응?”

“에휴. 앓느니 죽지, 내가….”

이걸 그렇다고 길게 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천후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셀레나가 그 즉시 어깨를 주물러온다. 평소에 좀 이러지.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자, 셀레나는 헤헤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희주랑 나 둘 다 있으면 뭐 물어보려고 했는데?”

“…….”

아. 맨날 이렇게 쉽게 넘어가주면 안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살갑게 굴자 마음이 좀 풀리니 참 큰일이다.

“후우. 그냥…이번에 잠깐 유그드라실 올라갔다 오려고 하거든.”

“응? 왜?”

“거기 내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좀 있어서…뭐 좀 사가려고. 특히 미연이 누나한테. 그래서 뭐 사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려고 했었어. 어쩌다보니까 백화점 두 번 가게 됐네. 덕분에.”

그의 말에 눈을 깜빡깜빡 감은 셀레나는 희주를 마주보았다. 답은 그녀에게서 나왔다.

“보통…첫 월급을 받았을 경우 부모에게 하는 일반적인 선물은….”

“선물은?”

“빨간 내복이지요.”

고도 43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던 유그드라실 안. 이미연은 오싹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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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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