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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52화 (52/324)

52화

고도 43000피트. 13km. 성층권 중간 지점. 유그드라실은 그곳에 있었다.

반지름 300m의 구체형 외관. 내부에서 모든 것들이 자급자족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있는 마법사들의 요람. 거주인원 8000명. 미국 나미츠급 항모 이상의 위용을 자랑하는 그것은 이미 하나의 작은 도시에 가깝다. 게다가 항모와는 다르게 전투기 등을 수납하고 있지도 않아, 개개인에게 제공되는 생활공간은 더욱 넓다.

우주공간도 아닌데 저런 건축물이 뻔뻔하게 떠다니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현실. 그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탐지되지 않는 불가시의 요새는 높은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런 그 내부. 유그드라실 최심부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어떤 방 안.

“그럼 세 분 다 절 받으세요.”

흰 벽지와 흰색 장판이 깔려있는 방이었다. 보통 일반적인 가정집에서는 장판과 벽지 사이에 틈새나 색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집요할 정도로 하얀색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거라곤 침대에 책상. 그리고 책장과 옷걸이. 화장실이 전부인 방. 그 흔한 컴퓨터 하나 없다. 옷걸이에는 무슨 환자복을 연상시키는 복장들만 주욱 걸려있었다.

천후가 유그드라실에서 내려오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방.

그 안에서 천후는 세 명의 사람을 모셔놓고서 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 좀 월급 받은 걸로 절은 무슨. 절.”

이런 소리를 하며 몸을 빼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남성. 천후의 양아버지. 유그드라실 한국지부장. 최완.

“한다고 할 때 받으시죠. 다음에 언제 또 받아볼지 모르잖습니까?”

침대에 걸터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있는 안경 낀 청년. 정신과 주치의이자 홍희주를 서포터로 보내준 남자. 고인규.

“아. 나 이제 스물아홉인데 절 받아야 되나? 좀 부끄러운데.”

그리고 언제나처럼 흰색 가운을 입고서 부끄러워하고 있는 여성. 그의 최초 커뮤니케이션 대상이자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유그드라실 메디컬센터 소장. 이미연이 그들이었다.

셋 중 둘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큰절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세 사람은 남세스러워 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 말도 제대로 못하던 놈이 장성해서 돈벌어와 이러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

사실 천후는 처음엔 유그드라실에 안면 있는 모두에게 뭔가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의견은 두 여자에게 바로 커트 당했다.

“쫌…. 강호 씨 같은 소리 하지 말아줄래?”

“……내가 큰 잘못을 했다.”

“무슨 뜻이냐?!”

옆에서 듣고 있던 이강호가 억울하단 듯이 외쳤지만, 셀레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선물을 주는 대상을 줄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천후는 선물할 대상을 다섯 명으로 좁히고, 자신이 생활했던 방에 모여 달라 미리 연락을 취해뒀다.

대신 선물 주러 가는 길에 아는 사람 보면 사탕이나 뿌리라는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유그드라실에서 아는 사람들이라곤 해도…전부 천후보다 기본적으로 열 살 이상 연상인 사람들인지라, 그가 가벼운 먹거리나마 돌리자 기뻐하며 받아주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 뭐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이런 반응들이 주였다. 천후는 그때마다 웃으면서 사양해야했다. 하지만 모두 이런 화기애애한 반응은 아니었다.

“…….”

중간 중간 마주치는 사람 중 일부는 차가운 시선을 던져왔다.

유그드라실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천후의 정체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중에서는 천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존재했다.

그런 이들은 그가 유그드라실에 나타나면 피해 다니거나, 층간을 이동하는 내부 승강기를 탈 때 탑승하려다 내려버리곤 했다.

이런 경우야 어릴 적부터 익숙했기 때문에 천후도 쉬이 무시했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이럴만한 이유도 있고….

그리하여 자신이 사용하던 방까지 도착한 천후는 절을 올리고 선물들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후. 뭐 이런 걸 다.”

“좋아하는 거 티 다 납니다. 나이 먹고 뭡니까? 얼굴 시뻘개져서. 그냥 대놓고 좋아하세요.”

“시끄러워!”

부웅. 옆에서 쫑알거리는 소리에 최완은 주먹을 휘둘렀지만, 고인규는 선 얇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날래게 그것을 피해냈다. 그리곤 자신이 받은 선물을 손가락 위에 올리고 돌렸다.

“고마워요, 천후. 내가 천후한테 뭐 받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네요. 정말로. 잘 쓸게요.”

“아뇨. 형이 희주 씨를 보내주신 덕에 이렇게 잘 된 거니까 사실 이정도로 끝내면 안 되는데.”

“희주가 잘 하고 있나보군요. 뭐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위해서 준비해왔으니까.”

“네?”

“아…. 본인이 아직 이야기 안했나보군요. 실수했군. 나중에 직접 들으세요.”

“…….”

무슨 뜻이지? 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인규는 더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빙글빙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받은 선물 포장을 빠르게도 뜯어본 최완은 검은색의 S.T 디폰 S-tend 라이터를 보고서 휘파람을 불었다.

“웬 라이터냐?”

“아저씨 맨날 마법으로 불붙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편하니까. 뭐 그래도 지상에 내려갔을 때는 이런 거 하나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최완은 조금 신이 나서 당장 피워보려다가, 옆에서 이미연이 인상부터 찌푸리고 있자 혀를 차며 집어넣었다.

“뭐. 잘 쓰마. 아. 그런데 너 오면 좀 물어볼 게 있었는데.”

“네?”

“너 저번에 신위 썼을 때. 일부러 유그드라실에 쏜 거냐?”

“…….”

그 말에 천후는 대답하지 못하고 애매한 웃음만 보였다. 그것이 대답이라고 받아들인 최완은 굳은 얼굴로 뭐라 말하려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미연이 끊었다.

“거기까지 하세요. 오늘 그런 말 하려고 모인 거 아니잖아요.”

“아니 그렇지만….”

“지부장님. 유그드라실 안입니다.”

최완이 뭔가 더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을 이번에는 고인규가 끊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한번 천장 쪽에 뻗었다가 빠르게 접으며 말을 맺었다.

“여긴 천후의 방 안이고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춰있던 최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천후는 분위기를 풀고자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런데 다른 둘은 어디 갔어요?”

“그들이라면 워낙 바빠서 오질 못했어요. 굉장히 아쉬워하던데.”

“으으음…. 별 수 없죠. 그럼 미연이 누나가 나중에 기회 봐서 좀 전해주실래요.”

“그래.”

원래 만나기로 했던 다른 두 명의 선물을 미연에게 건넨 천후는 약간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최완은 자신의 감정을 수습하고는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쳤다.

“짜식. 뭘 또 그렇게 풀 죽고 있어. 다음에 다시 올라와서 보면 되지. 자. 이럴게 아니라 그래. 온 김에 그동안 뭐하고 지냈는가나 말해봐라.”

그 소리에 기쁜 웃음을 지은 천후는 내려가서 자신이 겪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각자 앉을 만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천후가 그만 둘 때까지. 주욱.

흰 벽지와 흰색 장판이 깔려있는 방 안에선 한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

시간이 지나 천후가 지상으로 돌아간 이후. 유그드라실의 다른 방 안.

일부러 조명을 전부 꺼둔 그 방 안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 아니 이제 장년으로 넘어가는 기로에 서있는 남자 최완은 입에 시가를 꼬나물고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이번 중국에서 일어난 매지션 레이지는 파장이 심각하더군. 안 그래도 사회통제가 심각한 곳인데…. 사막 쪽에서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에 지장이 올 수도 있겠어.”

“꼭 이렇게 잊을 만하면 레이지 사건이 터지니….”

매지션 레이지Magician Rage.

평생 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왔던 마법사들이 갑자기 마법을 사용했을 경우, 극히 일부가 광증에 미쳐 날뛰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번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일어난 레이지는 특히 워낙 공개된 장소에서 큰 인명피해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주목도가 남달랐다. 마법사에 대한 사회적인 제재. 마법사 판별법 등에 대한 부분들이 공론화 되었다.

“중국은 로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라가 아니니 골치 아파.”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던 부분이니까요. 러시아도 가틴 총리가 암암리에 조금씩 시도를 하려는 모양인데.”

방 안에는 최완 혼자밖에 없었지만 의자는 여러 개가 놓여있었는데, 그 위에는 마치 도깨비불 같은 푸른 불길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그 불꽃에서 나오고 있었다.

최완은 그것들을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입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그 부분들은 SA들에게 압력을 넣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죠. 제 쪽에서도 한번 타전은 해두겠습니다.”

눈빛과는 달리 나오는 말은 정중하다. 그의 말을 들은 불꽃들은 그 크기를 길게 늘어뜨리며 일렁댔다.

“어쩔 수 없겠지. 인간들의 심령을 제압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럴 때마다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너무 큰 제약을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아.”

‘그러시겠지. 미친 노 괴물들 같으니….’

디제스터가 나타나자마자 자체 위성을 만들어 날리고, 지상시설이었던 유그드라실을 SA랭크들을 닦달해 이런 인간으로선 제대로 된 컨텍트 시도도 하기 어려운 곳에 올려놓고는 하는 말이 저거라니.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염원하고 있던 빅브라더 짓거리를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최완의 표정이 아주 약간 찌푸려졌다.

하지만 벌써부터 신경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아직 본제는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은 바로 직후 언급되기 시작했다.

“대참사에서 살아남은 그 꼬맹이가 내려갔다지?”

“정말 괜찮은 건가? 녀석의 인간성엔 아직도 결함이 있을 텐데. 메이거스의 처치가 아무리 완벽하다지만….”

으직. 시가를 씹어 부러뜨린 최완은 그것을 입에서 뱉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름은 언급을 삼가시죠. 아무리 원로 분들이라고 해도….”

“미. 미안하네…. 실언을 했군.”

최완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불꽃이 호르륵하며 촛불만한 크기로 작아졌다. 그와 함께 잠시 방 안이 조용해졌다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불꽃들이 몸집을 불려가며 조잘댔다.

“하지만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도 되는 건가?”

“인간도 마법사도 아닌 이레귤러가 아닌가?”

“개에겐 목줄을 채워야 하는 법이거늘….”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그 소리들을 들은 최완의 얼굴이 피로로 물들어갔다.

몇 번이나 반복된 회의. 몇 번이나 언급되었던 의제. 그럼에도 이자들은 포기를 모른다.

유그드라실이 공중요람이기 이전. NGO의 탈을 쓰고 활동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원로들. 마법사들을 구제하기 위해 진심으로 마법을 사용해 인류를 지배하고자 시도했으나, SA랭크에게 패퇴당하고 발의권만 행사할 수 있게 된 퇴물들.

마법사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

“몇 번이나 말씀 드렸을 겁니다. 먼저 이것은 SA랭크들의 권유가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봐온 유그드라실 거주원 8000명의 투표 결과 62%가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내려가자마자 자기 본 모습을 보여 버린 것도 사실이지.”

“게다가 방출마법을 유그드라실을 직접 조준해서 발사까지 했었지 않나? 어떻게 저런 놈을 믿겠다는 거야? 지금 당장 재투표를 해보지 그러나? 12%차이는 이미 뒤집어졌을걸.”

은근히 권하듯 속삭이며 말해온다. 그 말들에 최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감시하고 있었나? 자신의 경솔함을 속으로 탓하면서도 최완은 애써 담담히 대답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SA랭크의 총의입니다.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그들에게 타전해보겠습니다만.”

“…너무 날카롭게 굴지 말게, 최완. 우리는 그저 염려를 하고 있을 뿐이야.”

“유그드라실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니. 그곳에서 평생을 산다고 해서 어떻게 되지 않을 게야. 안 그런가?”

“자네가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면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네만…. 만약이란 게 있지 않나?”

이들은 마법사 외에 초능력을 발현한 제 3의 인류인 영천후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거늘…. 그럼에도 자신들의 특권, 자신들만 가지는 희소성이 사라진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그의 유전자 구조 해석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였다.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인간과 일치했다. 이것은 그의 인자가 인류에 섞일 수 있다는 것.

즉, 제 3인류로 태어나는 것이 그만이 아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은…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가 실행할 수 있는 최대 위력의 마법은 S랭크.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강호가 있습니다.”

최완의 말이 떨어지자, 원로들의 목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이강호…. 흠. 그자라면….”

수긍했다는 듯이, 불꽃들이 커져있던 크기를 점점 줄인다. 오늘 이 의제는 이 정도로 정리되겠군. 최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뒤로도 지켜보겠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들이 나왔지만 무시했다. 들어줄 필요조차 없는 말들이다.

‘망령들 같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불꽃들은 방 안에서 사라졌다. 최완은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를 향하여 조용히 입을 열었다.

“멍청하군…. 자신들이 보고 싶은 세상만 보고 있다니. 이미 세상은 그 예전 당신들이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던 그런 곳이 아닌데.”

당신들이 떼를 써서 하늘에 올린 이 유그드라실이 오히려 당신들의 방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감들 하는 말에 혹한 놈들이 없는 건 아니니까.”

조심해야겠지. 유그드라실 내에도 그런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마법사들은 인간에게 차별과 학대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영천후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자들이.

덕분에 도대체 몇 년이나 아무것도 없는 독방에서 죄수처럼 살았어야 했던가.

이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벽지에 무늬 하나 넣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선 뭐가 나쁘지 않은 환경이란 거야? 정신병자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니 정신병이 있었지. 그러고 보니.

“그런 여기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멍청한 녀석.”

최완은 그가 선물한 가스라이터에 불을 붙여보았다. 후욱. 송곳같이 뾰족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불길을 보며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멍청한 새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에 다시 시가를 물었다. 평소보다 단 맛이 드는 건. 분명 기분 탓이리라.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쿠폰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상표명은 약간 바꿔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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