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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57화 (57/324)

57화

<이 허당을 어찌하오리까>

“강호 서방! 마지막 세트야!”

“파이팅!”

“음…!”

엔체스터 콜로니와 제휴한 피트니스 센터 안. 회색의 스포츠 브라에 같은 색의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세상에선 보기 힘든 이마를 훤히 드러낸 긴 땋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170이 넘는 장신이었는데,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울룩불룩한 근육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전력으로 어필하듯, 튀어나와있어야 할 부분들은 전부 과도하게 나와 있는 부드러운 몸이었다.

“후우우우!”

팔을 쭉 앞으로 내뻗으며 한차례 스트레칭을 하는 그 모습은 마치 야생의 암 표범을 연상시킨다. 피트니스 센터 안의 남성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몰렸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니면 개의치 않는 건지 무시하고는 벤치프레스에 몸을 눕혔다.

“…….”

누구랄 것 없이 목청을 움직이며 침 넘기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게 보통 저 자세에서는 실종되곤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볼륨을 자랑하며 치솟아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늘어져있으면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것은 그 아래에 아무것도 받쳐 입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듯 그 끄트머리가 아주 살짝 도드라져있었다.

근처에 있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집어 올려버리고 싶은 모양새.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두 일행-어린 여자아이 둘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훅! 후욱!”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그 천상의 움직임에 집중하다가, 곧 다른 것을 발견하고는 더더욱 놀랐다.

여자가 근력운동을 제대로 하는 경우는 흔치가 않다. 보통 저중량 덤벨이나 웹툰에서 여성운동으로 이슈화 된 케틀벨이나 좀 다루면 다행이랄까?

그래서 그냥 특수한 케이스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들고 있는 바벨의 무게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땋은 머리의 여자, 이강호가 이브와 에바의 응원을 받으며 들어올리기 시작한 벤치프레스의 중량은 95kg였다. 게다가 5회 1세트씩 벌써 3세트 째다.

1RM, 그러니까 한번 딱 드는 무게도 아니고 5회 3세트면 이건 헬스 좀 했다고 자신하는 남성들도 어려워할 무게다. 그런데 이걸 여자가 해내다니?

타 종목 여성 운동선수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어지간한 태릉선수촌 선수급. 아니 그 이상이다. 그녀의 체형을 감안해보자면 어마무지한 정도라, 보고 있던 모든 남자들이 혀를 내두르면서 운동에 다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쾌거를 이루고도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상에…. 벤치 프레스 1RM 200kg? 전문 헬스트레이너도 아니고.”

얼마 전에 들어온 회사 후배가 갑자기 셀레나 사장, 그리고 자신의 서포터와 함께 들어오더니 눈에 띄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벤치 프레스뿐 아니라 스쿼트, 데드리프트 근력 3대 운동 전부 대단해서, 저 정도면 정말 어지간한 현업 헬스 트레이너들도 긴장 타야 할 지경이다.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꽤나 근육이 있다곤 생각했지만, 저건 정말 상상 이상이다.

“100미터 달리기는 10초 8 찍더니. …뭐하는 괴물이야, 너?”

게다가 놀라운 건 저런 기록을 내면서도 민첩성도 엄청나다. 단거리, 중거리를 가리지 않고 달리기 기록도 우수하다.

“굉장한데?”

호기심에 눈을 반짝인 그녀는 마무리 운동을 대충 마치고 그에게 다가왔다.

스포츠 웨어를 입고 있지만, 지금까지 계속 운동을 해서 땀으로 젖어있는 그녀를 본 천후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응? 왜 시선을 피하는 거냐?”

“아, 아뇨….”

그녀의 성격상 분명 보고 있으면 불끈불끈해져서라고 말하면 격분하겠지. 간신히 본심을 숨긴 천후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그나저나 여기엔 어쩐 일이냐?”

“아…. 엔체스터 콜로니의 사장님이 써도 괜찮다고 해서요. 대신에 신체능력 측정 데이터를 좀 보내주기로 해서 재고 있었죠.”

“오오! 그렇군! 그럼 너도 앞으론 여기서 운동하게 되는 거냐?”

“아…. 아뇨. 집에 헬스 시설이 있어서 피트니스 센터는 오늘만 쓸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은 여기 바로 위층에 있는 복싱 짐에 가보려고요. 스파링도 시켜준다니 정말 잘됐죠.”

천후의 말에 강호의 눈은 더더욱 빛났다.

“호오오! 무예를 익힌 거냐? 격투술인가 보군? 정확히 어떤 거지?”

이 사람 왜 이리 신나해? 천후는 잠시 당황했지만, 미녀가 양손을 그러모으고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보는 것은 싫지 않았다. 운동이 막 끝나서 몸에서 나는 땀 냄새가 그대로 전해져오는데…이게 또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뭣보다 여성과 이런 운동이나 격투기 관련 토크를 해볼 기회는 워낙 없기도 하고.

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은 천후는 평소보다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제 베이스는 복싱이랑 무에타이에요. 그라운드나 레슬링 쪽은 기본만 간단하게 익힌 정도고. 그 외에는 자기류로 긴 사거리에 적응하는 훈련을 했죠.”

“긴 거리라. 대 디제스터용 무술이인거군? 괴물들한테 관절기나 누운 기술은 영 도움이 안될 테니 그쪽은 간단히 익힌 거고.”

“이것만 듣고도 알아들어요?”

“알아듣고말고!”

엣헴 하고 어깨를 펴면서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는데 통통 거리는 게 아니라 말캉하고 튕긴다. 그걸 자기도 모르게 뚫어져라 내려 보던 천후는 옆에서 셀레나가 날카로운 눈매로 째려보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말을 돌렸다.

“아∼. 하여간 일단 자리를 옮기죠. 선배도 같이 오실래요?”

“응! 따라가지! 재미있을 것 같군!”

강호는 그 말에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그녀가 따라오자 그녀의 딸린 식구 둘까지 붙어, 그녀의 주변에 돌아다니는 여자만 다섯이 되었다.

“왠지 좀 부끄러운데….”

아니나 다를까 그 멤버로 복싱 짐에 들어서니 모이는 시선들이 영 곱지가 않다. 그걸 간신히 받아낸 천후는 어떻게든 스마일 페이스를 유지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관장이라고 소개한 중년 남성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친란으로부터 이미 천후의 테스트에 응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관장은 천후를 링 위에 올라가게 해두고는 굳은 얼굴로 짐 안을 슥 둘러보았다.

그러자 안에 있던 선수 및 선수지망생들이 순식간에 동작을 멈추고 차렷 자세로 지명을 기다렸다.

관장의 말로는 이 스파링 영상은 엔체스터 콜로니의 CEO가 직접 감상할 거라 했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눈에만 띈다면 앞으로 선수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짐에서 프로선수가 나오면 엔체스터 콜로니의 상표를 달고 활동하긴 했지만, 이번에 점수를 따면 아예 제대로 스폰싱을 해줄지 누가 아는가? 실지로 그렇게 활동하는 프로선수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초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해봐도 괜찮을까?”

그가 링 위에서 쉐도우를 하며 몸을 푸는 걸 지켜보고 있던 강호가 손을 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관장은 그녀를 보고 흠칫 놀라다가 곧 인상을 살짝 굳혔다.

“흠. 강호 씨. 당신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맨손으론 절대 안 될 텐데.”

“하하. 알고 있다. 그냥 후배 실력을 좀 보고 싶어서 그럴 뿐이야. 1라운드만 시간을 내주지 않겠나?”

“흐으음. 뭐 그렇다면야…. 하지만 1라운드뿐이네. 2라운드부턴 다른 사람을 올릴 거야.”

“알았다.”

빙긋이 웃은 강호는 빠르게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하고는 링 위에 올랐다.

한편, 상대를 기다리고 있던 천후는 당황했다.

“잠깐만요. 저랑 선배랑 체격차가 얼만데…. 안돼요, 안 돼. 딴 사람으로 바꿔요.”

“어허. 남자가 그러는 게 아니다.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해주면 될 게 아니냐? 나도 조심하마.”

“아니….”

조심하고 자시고…. 어림짐작으로도 체중 차만 30kg 가까이 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천후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는 어디 때릴 데도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녀도 운동할 땐 별 수 없는지, 평소엔 그렇게 남자라고 빽빽 우기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스포츠 브라를 입지 않았는가? 덕분에 대한민국 평균을 아득히 상회하는 흉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 운동을 한 탓인지 평소보다 착 달라붙어있는 게 글러브로 두드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 곡선 아래쪽으로 드러나 있는 배는 탄탄하지만, 천후의 주먹이 저기에 박히면 어떻게 될까? 구토로만 끝나면 다행이다.

‘돌겠네….’

천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헤드기어에 마우스피스, 글러브 착용까지 완전히 마치고, 양 주먹을 부딪치며 씨익 웃고 있었다.

본인의 의욕이 저렇게 넘치니 말리기도 어렵다. 결국 천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땡.

관장의 복스선언과 함께 공이 울린다. 그와 동시에 코너에 있던 강호가 뛰쳐나왔다. 경량급답게 대단한 속도다. 하지만….

“쉿!”

후웅! 바람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덜컥하고 멈췄다. 호흡소리와 함께 잽이 날아와 그녀를 맞춘 것이다. 숄더블록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잽인데도 돌진하던 몸이 멈출 정도다.

아니 정확힌 천후 쪽에서 일부러 잡아두고자, 때린 다기보단 미는 듯이 팔을 뻗고 있었다. 이대로는 잡고 맞는 식이 된다. 흠칫 놀란 강호가 스텝을 밟으며 그의 리치에서 빠져나갔다.

“…….”

링을 큼직큼직하게 쓰면서 히트&어웨이로 대응한다. 인아웃이 빨라서 천후도 쉬이 따라잡긴 어렵다. 하지만 뭐랄까….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정타를 맞지 않는 이상 데미지를 느끼기 어렵다. 물론 그녀의 펀치가 약해빠졌단 게 아니다. 아프기야 아프지. 하지만 복싱을 하고 있단 전제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정상적인 동 체급의 남성이 휘두르는 펀치는 이정도가 아니다. 맞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신이 단발에 멍해지는 것이 그들의 펀치다. 그것에 비하면 약하다.

게다가 그녀가 쉽게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치차이가 너무 크다. 그녀와 천후의 키 차이는 10cm 가깝게 난다. 팔 길이 차이는 더 심하다. 그녀가 파고들려 시도하는 사이사이로 잽만 던져도 몸이 덜컥덜컥 멎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덤벼왔다.

‘안되겠군.’

성격상 이 짓거리를 길게 지속하기 어렵다. 마음을 굳게 먹은 천후는 잠시 잽을 느슨하게 풀었다. 강호는 그걸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파고들어오더니, 그의 안면을 향해 원투를 날렸다.

원. 헤드슬립. 레프트가 헤드기어를 스치며 지나간다.

그리고 투. 원과의 시간차가 콤마 초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라이트.

“윽…!”

뻐억! 타격음과 함께 천후의 턱이 들렸다. 키 차이 상 어쩔 수 없이 아래서 위로 뻗는 궤도의 스트레이트를 정면으로 허용한 것이다.

아무리 체격차가 있어도 이걸 이렇게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하다. 하지만.

“어엇…?!”

털썩. 쓰러진 것은 강호였다.

“으…으음.”

그녀는 제자리에 털푸덕 주저앉아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다. 입에서는 침 한줄기가 주륵 하고 흘러내려서 링 바닥에 떨어졌다.

“끄응…. 아~. 아파. 카운트 좀 해주시겠어요?”

강호에게 맞아서 흐트러진 헤드기어를 다시 쓴 천후는 턱을 문지르면서 심판에게 부탁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그는 깜짝 놀라면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강호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퍼뜩 하고 고개를 치켜들고는 손을 내저었다.

“아아. 됐다. 됐어. 여기까지 하지. 상상 이상이었군. 으음…. 좋은 공부가 됐다.”

“죄송해요, 형.”

“아니. 아니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강호는 휘청거리면서도 자기 발로 링을 내려갔다. 그녀가 링에서 내려가자, 링에는 관장이 고른 다른 선수가 올라왔다.

“어떻게 된 거에요? 강호 씨?”

스파링을 지켜보고 있던 셀레나는 강호가 벤치에 앉아 굉장히 미안해하는 눈길로 천후를 바라보자 영문을 몰라 물어보았다.

한편, 맥락을 읽은 희주는 그녀의 관자놀이 부근에 얼음 팩을 대주며 말했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봐주기도 힘들다는….”

“으음. 뭐 그렇지. 아. 부끄럽군.”

강호는 귀까지 붉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천후가 한 짓은 간단했다. 그냥 그녀의 정타를, 그것도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정면으로 맞아주면서 레프트 훅으로 카운터를 쳤다.

헤드기어라고 해도 턱 보호는 변변치 못하다. 그녀의 공격은 그렇게 턱에 들어가고, 천후의 훅은 헤드기어 위를 때렸는데, 오히려 그녀 쪽에서 쓰러져서 잠시 혼절까지 한 것이다.

“내구력 차이, 체급 차이를 그냥 명확하게 보여준 거지. 아. 아무리 그래도 물펀치를 맞고 실신하다니. 진짜 너무 부끄러운데.”

“물펀치요?”

“제대로 친 게 아니었어. 맞아본 나는 알아.”

“…….”

진짜 쪽팔리겠다. 셀레나는 할 말이 없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왜 올라가서 사서 고생을 한담? 누가 허당 아니랄까봐. 하지만 강호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우…. 내가 녹슨 건가? 동 체급 상대론 이렇게까지 밀려본 적이 없었는데….”

푸칵! 후두두둑….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건 아니라는 것을 천후가 직접 보여주었다.

“컥…커흑…!”

강호 다음으로 올라갔던 연습생 하나가 천후의 어퍼를 턱에 맞자마자 몸이 공중에 뜨며 땅으로 가라앉았다.

쓰고 있던 헤드기어를 연결한 끈이 끊어지며 튕겨 나오고, 입에서 터져 나온 피가 마우스피스와 함께 링 밖까지 뛰쳐나가 셀레나 일행이 있는 곳까지 튀었다.

그 꼴을 본 체육관 안의 모든 인원들의 표정이 파리하게 굳었다.

“그럼 다음 분 올라오세요.”

대수롭지 않게 하는 소리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쿠폰,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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