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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67화 (67/324)

67화

엔체스터 콜로니의 CEO.

아니, 정확힌 거대 기업 엔체스터의 동아시아 시장 담당자 직위를 역임하는 동시에, 겸사겸사 엔체스터 콜로니도 같이 굴리고 있는 여자. 엔체스터 가의 말예, 로자미야 엔체스터는 여느 때와 같이 여유가 넘치는 얼굴로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란님. 이사진들의 의견을 그렇게 쉽게 무시해서는….”

“아아. 시끄럽다. 돈을 직접 벌어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현실 감각이 없는 늙은이들이 하는 잡소리 따위.”

그녀를 보필하는 아랍계 청년이 하는 말을 단박에 끊어낸 그녀는 자기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를 올렸다. 그와 함께 치파오 뒷단이 흘러내리며, 허벅지 안쪽까지 파렴치하게 전부 드러났다.

“…그, 그런 행동도 그만 두십시오. 주변 눈빛들이 좋지 않습니다.”

“음? 여기에는 너와 나밖에 없는데, 앗삼.”

앗삼이라 불린 청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그 모습에 친란은 매혹적으로 웃으며, 오히려 대담히 다리를 스륵 하고 꼬았다. 그는 아예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쯔쯔. 반듯하게 생겨놓고 그렇게 숙맥이어서야…. 그러고 보니 아직 총각이었던가? 너에게 마음 있는 사원들이 꽤 있는 것 같던데. 하룻밤 정도는 연을 맺어보는 게 어떠냐? 남자로서 성숙해질게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마음 있는 여성분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쯔쯔…. 방금 전과는 달리 진심으로 혀를 찬 친란은 부채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아랍계 미남 특유의 조각상 같은 외모 덕에 그는 젊은 여사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게다가 약간 소년 느낌이 남아있는 점이 더더욱 먹히는 모양이었다.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알텐데…. 아내를 넷까지 둘 수 있는 나라 출신인 놈이 이러니 재미가 뚝 떨어진다.

뭐 그래도 이걸로 그의 잔소리는 완전히 멎어버렸다. 이것만해도 꽤 괜찮은 거래였군. 몇 초를 투자한 보람은 있다. 붉은 입술을 슬쩍 구부린 그녀는 반쯤 누운 자세 그대로 태블릿을 들었다.

업계의 주요 이슈를 비서진이 정리해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시켜 올려주는, 일종의 그녀 전용 신문으로 쓰이는 태블릿이었다. 물론 그녀 개인적으로도 따로 확인하지만 이렇게 추려 올라오는 정보들은 확인해둘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근래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소식은 단연 하나였다.

“허…. 셀레나가 트란제비야를 그에게 넘겼군.”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다. 살짝 입을 벌린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다리를 접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직 회사 양도 및 사업자 등록 변경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시간문제. 친란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헛웃음을 감췄다.

“오기인가…. 아니면….”

친란은 얼마 전 셀레나에게 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역린이 무엇인지도 이끌어내면서까지. 꽤나 큰 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그의 컨트롤을 포기해버리다니?

친란. 그리고 로자미아 엔체스터는 자기 스스로가 욕심쟁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심쟁이의 시각으로 보건데…셀레나도 만만치 않게 욕심쟁이다.

저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주는…심하게 말하자면 뜯어먹기 좋은 남자를 쥐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것을 용인하고 있었는데 왜 굳이 그것을 뒤집지?

메인 퀘스트 전문 회사로 발돋움 하는 건 애초에 자신이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으니 당연했지만, 아예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풀어 줄은 몰랐다. 그래서야 리스크가 너무 높아질 텐데? 막말해서 그가 정말 싸우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친란이 예상했던 그림은 셀레나가 사장 위치를 유지하고 천후가 파급 디제스터만 전문적으로 잡는 그림이었다. 셀레나도 어느 정도 로우 리스크 성향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테니 절대 사망위험이 높은 경급 이상에는 붙이지 않는다. 물론 그의 의견이 아주 강할 때는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전에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자신이 컨트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한 단순 반발. 가능성이 없진 않다. 남자와 여자로서의 관계를 맺어버린 이상 충동적일 수 있겠지. 큰돈의 소유권이 오가는데 그럴 수 있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보증을 부탁하거나, 부탁한다고 서주는 인간들은 이성적이던가? 월 스트리트를 떠도는 망령들은? 돈이 사람의 이성을 유지시켜주는 절대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래부터 그러려고 생각했거나.”

셀레나의 기본 방침 상 영천후는 너무 상극이다. 그렇다면…어느 시점에서 그를 그냥 프리랜서로 풀어주고 끝낼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태는 이것을 넘어섰다. 친란은 여기에 변수를 대입해보았다. 자신에 대한 반발도 그 변수의 하나로 취급해본다. 그런 식으로 의심의 흐름 기법을 진행해가면.

“그만큼 단단히 반했단 건데.”

자신보다 유능한 경영자를 발견해서 회사의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생각하기는 미안하지만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그는 유능하지만, 경영자로선 영 아니지. 회사를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지만.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그에 대한 컨트롤, 그가 벌어오는 돈, 로우 리스크 성향 모두를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버렸다는 건데….

‘이건 이거대로 대단하긴 하군.’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그에게 빠져들게 한 걸까? 결정적인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여러 가지를 떠올리던 와중 문득 한 가지 단어를 입에 담았다.

“…정력?”

“제발…. 란님. 민망한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건 삼가주십시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앗삼이 부끄러워하자, 친란도 피식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 나도 아직 어리군, 어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친란은 고소했다. 몇 안 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를 이렇게까지 빠트린 사람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는 그의 가능성에 눈이 갔지만, 이번에 일어난 일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궁금해졌다.

‘뭐인지…나도 한번 겪어보고 싶은 걸….’

입술을 혀로 적셔본다.

한편, 그러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앗삼은 조심스레 말해왔다.

“란님. 그보다는 다른 업종에도 신경을 써주시지요. 디제스터 퇴치업은 시장 규모가 작지 않습니까? 란님이 시간을 그렇게 투자하실 필요는….”

인간만을 노리는 초자연적인 괴물을 잡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도는 돈의 규모는 그 위험성에 비해 굉장히 작다. 대한민국에선 높게 잡아도 통틀어 한해 4000억원 수준이니 정말 작다고 할 수 있겠다.

앗삼의 눈에는 그런 작은 시장을 굳이 그녀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후후. 어리석구나.”

“네?”

“네 말대로 디제스터 퇴치업의 시장 규모는 작지. 하지만 앗삼…. 안보 비용이란 건 말이다. 정말 중요한 때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것이야….”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그에게 돌아섰다. 그 순간 앗삼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분명…. 이제 20대 극초반의 여성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키도, 체구도 작은 여자.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이 감각은 뭔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스산한 느낌은.

마주서자니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 눈에서 시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그동안 그의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부채를 접어 그녀의 턱밑에 탁 하고 붙였다.

“디제스터가 가지는 랜덤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살해 경향을 생각하자면, 애초부터 잘못된 시장가치다. 이 정도로는 턱없는 수준이란 말이다. 근대까지 멸시받고 박해 받아왔던 마법사들이 사회와 합의를 본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격이 매겨져 있을 뿐이야.”

“…….”

“애초에 지금 당장 이 자리에 디제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는 거다. 경급일 수도 있겠지. 그럼 아무리 어떤 대단한 방도가 있다 해도 인명피해가 난다.”

“하지만…실제로 지금의 시장 가치는 그렇게 매겨져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가치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 부분은 란님이 말씀해주신 것 아닙니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란은 천천히 부채를 천천히 올려…그의 입가로 가져갔다.

“파급. 그리고 경급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뿐이다. 하지만…그 이상의 녀석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

앗삼의 눈이 커졌다. 눈동자에 공포가 스쳐지나갔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는 웃는다.

“그때부턴…돈의 영역이 아닌 게다. 그리고…지금 이 남자는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그 영역에 걸쳐있는 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하다.”

로자미아 엔체스터는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제야 앗삼은 몸을 떨면서 그녀가 보고 있던 태블릿 쪽으로 눈을 두었다.

그녀는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고 냉정한 눈으로 그것을 가져와 화면을 넘겼다.

트란제비야의 활동 경향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그녀는 한 가지를 유추한다.

“…오라비가 움직이겠군.”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다. 로자미아는 아랫입술을 조심스레 깨물었다.

쓸데없는 짓만은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친란으로선 그렇게 생각해도, 로자미아 엔체스터의 예측에선 그럴 리 없다고 이미 판단을 내렸다.

“친족만 아니었던들….”

선택지가 갈린다. 그 중에서 그를 지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폐기하며, 그녀는 그 다음 이슈를 확인했다.

"!"

고운 눈썹이 뛰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도 여유를 보이던 그녀의 안색이 굳었다.

로자미아 엔체스터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앗삼을 진지한 눈으로 올려보며 자기 입가의 부채를 치웠다.

“비상시에는 언제든지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준비 하라고 모든 부서와 계열사에 일러라.”

“네? 무슨?”

“아직은 감에 불과하다. 감이지만….”

현 시점에서 이것을 느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어쩌면 자신 혼자만의 망상,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을 꾹 감았다 뜬 그녀는 빠른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빠져나오며―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업가는 늘 최악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지.”

그 날. 엔체스터 동아시아 지부에선 엔체스터 가의 말예, 로자미아 엔체스터의 이름으로 엔체스터 전체 이사 회의가 열렸다.

*

트란제비야는 메인 퀘스트 전문 기업으로 전향한 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누구나 기피하던 영역을 알아서 해치워주는 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일리미네이터 업계는 전반적으로 그들의 등장을 반겼다.

일리미네이터 일이란 기본적으로 목숨 값으로 돈을 버는 일이다.

일. 인 것이다. 일은 작업이어야 한다. 최대한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끝낼 수 있고 그러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 가장 최고의 일이다.

즉, 딱히 셀레나가 아니더라도 로우 리스크 지향인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아니 일리미네이터들의 절대다수, 90%인 C,D랭크에겐 서브 퀘스트만 전념하는 것이 딱히 로우 리스크 지향인 것도 아니다. 적절한 수준이지.

오히려 네 명이 붙어도 전멸할 수 있는 놈을 년에 몇 번은 반드시 상대하러 끌려가라는 것이야 말로 극한의 하이 리스크 그 자체였다. 메인 퀘스트가 아무리 돈이 된다 한들, 일 한번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엿 같은 일이다.

게다가 디제스터와 싸우는 건 안전장비도 없지 않은가? 마법을 제외하곤 말이다.

넷이 모여도 한명이 죽을 고생을 해야 잡는 녀석들을 따로 맡아주는 녀석들이 나타났다는데 당연히 환영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트란제비야가 국내의 모든 파급 디제스터를 모두 처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다른 일리미네이터들에게 일이 돌아가는 빈도수는 현격하게 낮춰준 셈이니까.

뿐만 아니라 트란제비야는 아예 서브 퀘스트에선 손을 때버렸다. 그들의 밥그릇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에 영천후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일리미네이터들의 태도는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덕분에 트란제비야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메인 퀘스트 퇴치 수로 단연 1순위를 찍었다. 군이나 유그드라실 쪽에서도 점점 정말 위험한 일은 트란제비야가 맡아준다는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나머지 10%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인 퀘스트를 듀오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B랭크 일리미네이터들이.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날이 너무 덥네요. 후.

내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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