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목포역에서 삼학도로 향하는 육로는 삼학로를 통해 동명사거리를 통과해서 가는 길이 있다. 하지만 제1 공격대장은 더 이상의 재물피해를 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국군과의 교전 때문에 시가지는 난장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싸울 장소 자체가 없다. 인근의 넓은 공터라곤 목포 남초등학교 운동장 정도인데…. 쉘터 강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학교에서 싸운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놈의 비행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일리미네이터들과 비슷한 정도? 물론 날개를 달고 있는 놈인 만큼 공중전이 길게 지속하면 승산은 점점 낮아지겠지만, 적어도 놈을 삼학도로 유인할 수는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성지 탑스힐 아파트 고층 일부가 놈의 몸에 부딪혀 박살 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싼 대가였다.
"삼학도에 도착한 일리미네이터들은 유그드라실 데이터를 참고하여 지상으로 내려와 진형 갖추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상대합니다. 진형 갖춘 사람부터 랭크 상관없이 풀 캐스팅 후 지연주문 대기."
비행주문부터 방출주문 지연대기까지, 마력을 괴물처럼 잡아먹는 선택지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곤 자기부터 캐스팅을 시작했다. 공중에 있는 파리 때 같은 녀석들을 따라다니던 '키메라'는 지상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 덕분에 지상에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었던 다른 일리미네이터들 역시 풀 캐스팅에 들어갔다. 위험을 느낀 놈은 그 즉시 지상으로 강습해 내려왔다. 바로 그 순간, 공격대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지연주문 해방! 극딜 후 산개!"
자신의 주문까지 함께 챙기다 보니 지시가 극도로 짧아졌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기다리고 있던 모두 마력 먹는 하마를 그대로 내쏘았다.
쾅! 콰콰콰콰쾅!
TOT 포격을 씹어먹는 대폭발이 일어나며 놈의 거체가 연기 속으로 감춰졌다. 하지만 이번엔 찬휘 뿐 아니라 다른 B랭크 및 모든 공격대원이 확신했다. 이건 치명상이다.
공격대장은 일부러 자신과 B랭크 일리미네이터들을 먼저 삼학도에 도착, 진형을 갖추게 하고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연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B랭크 3인, C랭크 10인 이상의 풀 캐스팅이다. 삼학도의 해발이 낮아질 정도의 폭력의 향연. 이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무사할 리가 없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의 예측대로 집중공격을 맞은 키메라는 전차들에 두드려 맞았을 때 이상으로 신체가 박살 나서 울부짖고 있었다. 양 박쥐 날개는 완전히 사라졌고, 몸 이곳저곳에 뚫린 구멍은 웰던으로 구워져서 피조차 흘러내리지 않는다. 복부는 완전히 날아가 있었는데, 흘러내려야 마땅할 내장이 깡그리 사라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차례 주먹을 꾹 쥔 공격대장이 외쳤다.
"광역 초음파 공격 대비. 풀 캐스팅 했었던 인력은 1차 광역 버틴 다음 다시 풀 캐스팅 들어갑니다. 나머지는 20% 출력으로 치고 빠지면서 포인트맨을 맡아주세요!"
그의 지령과 함께 자신의 몸에 방어주문이 걸리는 것을 느낀 찬휘는 전율했다. 엄청난 판단 속도다. 과연 자신이 공격대장을 맡았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방어주문이 걸린 그 즉시 정말로 초음파 광역 공격이 쓸고 지나갔다.
선행 예지에 가까운 지령. 물론 유그드라실의 백업이 있다지만 이 정신없는 와중에 이것을 가능케 하다니. 게다가 이번엔 저번관 달리 풀 캐스팅 이후에도 B랭크들이 노출되지 않아 집중 견제도 받지 않았다. 찬휘는 놀라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이길 수 있어!'
확실하다. 어때? 이번엔 내가 해낸다. 넌 거기 43,000피트 상공 위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다가 돌아가라고. 서브!
*
"무난한 전개군."
유그드라실에서 1 공격대의 교전을 지켜본 레이나드는 그렇게 평했다. 디제스터의 방어력이나 재생력이 생각 이상이라 조금 길어지긴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퇴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B랭크가 온존된 게 크네요. 역시."
"지금까지 괜히 경급 퇴치에 B랭크가 두 명씩만 투입된 게 아니지. 그 정도면 퇴치할 수 있으니까 유지되던 거였어. 어렵긴 하지만."
하지만 이번엔 셋이다. 그중 하나가 박찬휘이긴 하지만, 화력 자체는 어차피 대동소이하다. 저번처럼 작정하고 트롤링을 하지 않는 한 플러스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공격대장 실력도 굉장한 것 같네요."
"아아. 태원이가 조금 하지. 작년 정도부터 나한테 야금야금 배워가더니만 이제 내 밥그릇까지 뺏겼네. 아주."
1 공격대장 정태원은 젊은 시절부터 레이나드와 친분이 있던 일리미네이터였다. 레이나드는 자신의 은퇴시기가 머지않았다고 느끼고는 그를 데리고 공격대장 교육을 했었는데, 이렇게 화면으로 지켜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말씀관 다르게 별로 섭섭해 보이진 않는데요?"
"으, 응? 그래? 하하하."
천후의 말에 웃음 지은 레이나드는 뻘쭘해져서 선글라스를 만지작댔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 그렇게 분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니 뿌듯하고 그렇다.
'운동선수들은 자기가 후배한테 지고도 기분이 좋으면 은퇴할 때라고 느낀다는데…. 나도 그런 건가?'
자기도 모르게 씁쓸하게 웃은 레이나드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옮겼다. 몇 번이나 광역공격을 버텨내고 이제 마무리만 남은 시점이었다. 일리미네이터들의 피해는 제로. 재산피해도 이 정도면 정말 적은 편이다. 이대로 퇴치를 해내다면 B랭크 3인과 공격대장의 주가는 끝도 없이 올라가리라.
"이거 이대로 끝나면 자네가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그래도 빨리 퇴치하는 게 좋죠."
아직 천후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미미했다. 한 번 보인 성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정점과 싸움이 붙었으니, 다음에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마이어 엔체스터가 그렇게 녹록한 상대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1 공격대의 트라이가 실패하길 바랄 순 없다.
경급 이상 레이드의 실패는 그 자체만으로 일리미네이터 전체에 대한 신용 저하로 직결된다. 어쩔 수 없이 예비인력이 투입되고,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병기가 투입되는 식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늘어날수록 일리미네이터 전체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역시 그들의 실패를 바랄 수는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어차피 제가 필요한 때는 올 겁니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별수 없죠."
"흠…. 그건 그렇군."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레이나드는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는 풀 캐스팅의 오오라를 지켜보았다. 저게 꽂히면 아무리 놈이라고 해도 퇴치되리라.
'급하게 끌려왔더니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군.'
뭐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레이나드는 마음을 편하게 놓았다.
콰콰콰쾅!
화면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폭발을 예견한 유그드라실 측에서는 관람자의 청각보호를 위해서 순간적으로 볼륨을 줄이는 센스를 발휘했다.
"끝났군."
이걸 버텼을 리가 없다. 확신한 레이나드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천으로 닦았다. 그리고.
푹.
"뭣?!"
홀에서 비명에 가까운 되물음이 튀어나왔다. 유그드라실 AI '미미르'는 그 되물음에 응하듯.
<연이어 2인 추가 중상 발생. 그중 한 명은 제1 공격대장입니다. 공격대 전멸 위기로 판단. 제2 공격대 출동 대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달그락. 자기도 모르게 선글라스를 떨어뜨린 레이나드는 아연실색해서 화면을 올려보았다. 위성에서 보내는 화면만으로는 전부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1 공격대의 오퍼레이터가 보내는 영상들이 연이어 홀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풀 캐스팅 주문으로 생겨난 연기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일리미네이터를 습격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천후의 인상이 굳었다.
"…영체 정보만 있어도 움직일 수 있는 놈이군요."
육편으로 조각조각 난 놈의 몸 중 그나마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한 손이 거미처럼 변형되어 땅바닥을 기더니, 폭심지를 바라보고 있던 일리미네이터의 심장을 뚫었다.
연이어서 다른 일리미네이터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패닉에 빠져든 동안, 폭심지 중앙에선 육편들이 모여들어서 재생을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키메라가 완전히 재생을 마친다면, 아니 완전하지 않더라도 거동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된다면 공격대는 단숨에 붕괴하리라. 더욱 최악인 것은 공격대장이 부상당했다는 점이었다.
사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패닉을 수습할 수 없으리라. 순간 머릿속으로 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미미르! B랭크 일리미네이터와 연결해주세요!"
공격대장이 쓰러진 지금 현장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건 그들이었다.
"시도합니다. 불가. 영천후 님. B랭크 일리미네이터들은 당신의 통신연결을 출격 시점부터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럼 강제로라도 연결해요!!"
“부정. 저는 사람이 자의로 내린 판단을 거스를 권한이 없습니다.”
"…!"
침음성을 토해낸 천후는 눈을 크게 뜨고서 화면을 올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의 판단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천후는 부디 상상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바로 그때였다.
화면 구석에서 백색의 오오라가 치솟아 오른다 싶더니, 하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이제 막 몸체가 달라붙기 시작한 키메라에게 백색의 에너지가 쏟아져 내렸다. 해당 지역의 지형을 바꿔버릴 듯한 위력에 홀에 있던 이들은 그것이 B랭크에 의한 공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안 돼!"
"이런 미친!"
레이나드와 천후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결국 최악의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다.
'B랭크 일리미네이터의 위치가 노출됐다.'
공격대원들이 컨트롤 되지 않는 시점에서 그것은 전멸을 의미했다. 이를 악문 천후는 제2 공격대장, 레이나드에게 외쳤다.
"공격대장님!"
"네. 알고 있습니다. 제2 공격대는 지금 당장 지상으로 강하합니다!“
레이나드가 급한 기색으로 외치자, 2 공격대에 속해있던 여성 B랭크 일리미네이터가 급히 뛰쳐나왔다.
“잠깐! 아직 1 공격대가 전멸한 건 아니에요! 아직 수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지금 이대로 1 공격대의 패퇴가 인정되어버리면, 그리고 2 공격대가 퇴치에 성공한다면 현재 한국 일리미네이터 업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파워 밸런스가 붕괴해버린다. 그것은 곧 로마이어와 영천후의 본격적인 양립을 가리키는 것이며…. 자신이 선택에 기로에 서야한 다는 말이 된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자신의 의사와 관련 없이 작두를 타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서 참상이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1 공격대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천후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그는 레이나드 앞에서 순식간에 그녀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혀서 그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정신 차려요! 저기 있는 25명은 이 나라 일리미네이터의 1/5입니다!”
“!”
“당신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1초라도 빨리 내려가서 저들을 구원해야 해요. 전멸 상황인 건 그냥 봐도 명백하지 않습니까!”
말은 최대한 온건하게 하고 있었지만, 눈은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워져 있는 그 모습에 압도당한 그녀는 덜덜 떨면서 그에게서 두 걸음 물러났다. 지금 그의 앞에선 그 어떤 반대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알았어요….”
결국 그녀가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승낙하자, 레이나드는 더 말대꾸할 사람이 나오기 전에 외쳤다.
“강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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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