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23인의 풀 캐스팅 방출마법에 적중당한 경급 디제스터, '키메라'의 몸은 박살이 나버렸다. 몸통 한 중앙을 관통당한 이상 아무리 디제스터라고 해도 재생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하지만 키메라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육신이 무너지자 즉각 영체 정보에서 육체 데이터를 끌어와 따로 재생시키기 시작하면서, 부서진 육신은 공격용 무기로 사용한다. 그것이 키메라의 가장 핵심적인 특수능력이었다.
그러나…그렇다고 이것이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체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제한시간이 존재한다. 재생하려는 본체에 공격을 계속 쏟아부으면 결국 죽는다. 놈이 계속 떨어져 나간 신체로 일리미네이터들을 공격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그리고 영체 정보를 직접 공격해 손상을 입혀도 퇴치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특수한 특성이지만….
영체라는 것도 결국 현실의 물리적인 현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특히 번개나 초고열의 플라즈마 등에 경미하게나마 손상을 입는다.
즉. 이것도 계속 본체에 온갖 속성 공격을 때려 붓다 보면 해결된다는 이야기!
"제2파. 발사!"
큐우우우웅! 다시 한 번 23인의 풀 캐스팅 방출 마법이 시전된다. 형형색색이 섞여 모여, 타오르는 백열이 된 그것이 재생에 들어가있는 놈의 몸에 꽂히자, 폭음. 정말 음파만으로도 서 있는 사람의 고막이 찢어지는 폭력의 음색이 퍼져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신체에 박힌 그 공격은 처음 착탄점을 무슨 싱크홀처럼 좁고 깊게 파고들어 가더니, 이윽고 하늘로 빛 기둥을 만들어냈다.
공격대장 레이나드의 통제로 폭발 범위를 최소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구덩이는 거의 지각층을 뚫어버리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게 파였다.
"적 파편 공격 시작!"
공격대원 중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 공격대를 전멸시킨 그 공격. 모든 이들이 긴장했다. 하지만 레이나드는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B랭크 즉시시전 광역공격으로 방어. 뚫고 들어오는 나머지 파편은 트란제비야가 맡습니다. C랭크 전원 풀 캐스팅 시작!"
"!"
레이나드의 명령에 후진의 일리미네이터들은 아연실색했다. 1 공격대도 파편공격을 즉시시전으로 대비했지만 결국 전부 대응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단 3명에게 맡기겠다고? 아무리 저 둘의 안정성이 뛰어나더라도…!
"하라면 해! 내 지휘를 믿어라!"
버럭! 그들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레이나드는 지금까지 일부러 해오던 존댓말을 내려놓고는 노성을 내질렀다. 그 말에 일리미네이터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래. 지금은 이미 트라이 중인 거다. 이 상황에서 공격대장의 명령은 절대다.
설령 죽는다 할지라도!
초, 아니 콤마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명령에 의심을 품으면 전멸해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의 몸에서 다시금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그동안 앞으로 나서있던 천후와 강호가 돌아오자, 그 즉시 공격대 전원을 감싸는 은은한 막 같은 것이 나타났다.
두두두두두두! 진형이 완성된 그 순간, 키메라의 몸들이 탄환이 되어 공격대원들을 습격해왔다. 총알만큼 빠르진 않지만, 포탄만큼은 커다란 그것들이 막에 부딪히자 수많은 파문이 막에 생겨났다.
치지지직! 막에 닿는 디제스터의 변형돼 육신은 그때마다 타오르며 그 움직임을 멈췄다. 재생력, 이 경우에 데이터에 의한 육체 수복은 철저하게 본체에만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법을 유지하는 B랭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큰 건 막지 못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 일부를 사람 몸 크기보다 거대한 육체들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무색과 적색의 윤무가 그려졌다.
스팟! 콰콰콰쾅! 키메라의 몸 주변을 돌며 보였던 그 움직임이 파편에 적용되자, 수를 셀 수 없을 것 같았던 그것들이 전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원을 그리며 파고들어 오는 녀석들을 요격하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에 의해서 바람이 일어날 지경이다. 바닥의 흙이 치솟아 오르며 소규모의 용권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6초가 지났다.
"제3파! 발사!"
번쩍! 백열의 광선이 다시 한 번 본체에 때려 박혔다. B랭크 한 명분이 빠져나간 만큼 위력엔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이미 세포단위에서부터 재생을 시작하던 육신이었다. 구덩이 안에 있던 디제스터의 육신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B랭크 광역마법 해제! 제4파 준비!"
하지만 아직 영체 정보의 복구 유효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재생해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세포와 근육조직이 짠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격을 멈출 수 없다.
레이나드는 파편공격이 잦아든 것을 느끼고는 둘을 제외한 풀 캐스팅을 지시했다. 이제 완전히 둘에 대한 믿음을 굳힌 공격대원들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지령과 동시에 캐스팅에 들어갔다. 이제 지속적인 공격만 퍼부으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게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키에에에에에!"
제1파를 맞고서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던 키메라의 머리가 다시 나타났다. 놈은 본체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목 아래로 더 재생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파편들과는 다르게 하늘을 날면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키메라의 머리는 이전 그렘린 페이스의 것. 그것은 곧 음파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1 공격대는 키메라의 음파 광역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철저한 대비로 큰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지만, 별다른 방어주문이 걸리지 않은 지금은 다르다.
"!!!"
놈을 발견한 공격대원들은 기겁했지만, 레이나드는 다른 지령을 내리지 않고 풀 캐스팅을 유지했다. 공대장부터 이러고 있으니 도저히 몸을 뺄 수가 없다. 그동안 키메라의 머리는 쩍하고 아가리를 벌렸다.
"강호 선배!"
그때를 맞춰 영천후가 이강호를 호명했다. 번쩍. 그와 동시에 붉은 전광이 공격대원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며 진형의 전방으로 나섰다.
"후우…."
곡도를 든 붉은색 바이크 슈트의 여자는 작게 심호흡을 하다가 놈을 노려보았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의미를 가지기 힘든 움직임. 키메라의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캬아아아아아!"
고막을 찢을 듯한 하이톤이 일대에 퍼져나갔다. 그것에 실린 초자연적인 힘에 자기들이 찢겨나가리라 생각한 일리미네이터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캬아아아악! 캬아아! 캬아아아아아!"
분명 귀가 아플 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데도…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음파는 덮쳐오지 않았다. 그것에 디제스터와 일리미네이터 양쪽이 당황했다.
그나마 좀 더 판단을 일찍 내린 것은 키메라 쪽이었다.
"끼에에에에엑!"
주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놈은 다른 육체파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포탄 삼아서 본진에 돌격해왔다. 지금까지 날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조각이다. 맞기만 한다면 일리미네이터들을 볼링장 핀 쓰러뜨리듯 뿔뿔이 흩어놓을 수 있으리라.
맞기만 한다면 말이지.
"후."
후열을 지키고 있던 수호신이 나선다. 마지막 수단이랍시고 몸통박치기를 시전하겠다는 놈을 보면서 그의 입가엔 미소가 실렸다.
머리만 남았다고 해도 키메라의 크기에 맞춰 커다래진 덕분에 3m에 가까운 크기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놈이 날아오는 방향 바로 앞에 당당히 마주 서서 오른발로 대지를 찍었다.
쿵.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어깨를 통해 주먹으로 힘이 전달된다. 몸을 감싼 아지랑이가 그 힘의 움직임을 따라서 용의 형상을 그리며 그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놈이 날아오는 속도에 맞춰서 준비한 스크류 블로우.
노버프 상태로 내지른다 해도 사람의 생명은 가볍게 앗아갈 수 있는 그것을 천후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놈을 향해 내질렀다.
“까불지…마!”
퍼걱! 지이이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던 놈의 머리에 주먹이 꽂히는 순간, 천후의 몸이 뒤로 몇 미터나 밀렸다. 땅바닥에 긴 자국이 생기며 그의 발의 뒤쪽에 흙이 튀어 올라 쌓여 그것이 무릎높이까지 차올라왔다.
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
놈은 천후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놈의 커다란 얼굴 전체에 미세한 경련이 일더니, 눈에 서려 있던 야수 특유의 눈빛이 사라졌다.
펑. 퍼퍼퍼펑. 퍼퍼퍼퍼벅. 쿠지직. 그와 동시에 놈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안쪽으로 좀먹어 들어갔다. 짧은 시간 동안 동일한 광경이 몇 번이나 반복되더니, 마지막에는 한 줌 핏물로 화하여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초음파를 사라지게 한 이강호도 괴물이지만, 날아오는 놈의 머리를 정면으로 받아서 완전히 없애버린 영천후도 괴물 그 자체다. 저게 지금 같은 마법사란 족속 안에 포함되긴 하나 싶을 정도로 저들은 극한으로 단련되어있었다.
“자. 그럼 어서 마무리를!”
그런 둘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일리미네이터들은 그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압도적인 힘의 폭력에 정신이 잠시 빼앗겼지만, 놈의 본체는 아직 재생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놈의 육신 파편은 이제 전부 소멸했다. 본체 재생만 막으면 끝이다!
“제4파 발사!”
레이나드의 외침과 함께, 다시 한 번 삼학도에 빛 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
쿠오오오오오….
찬휘는 머리카락을 뽑아버릴 듯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릿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지직지직하고 노이즈를 울려대며 고통을 전해왔다. 찬휘는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혼자선 어떻게 된 건지 파악조차 하기 힘들다. 그때. 다행히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눈을 떴어요!”
“다행이군. 회복마법이 강력한 술사가 있길 망정이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찬휘는 자신이 디제스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직후 반격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조용히 손을 움직여 기억에 남는 관통장소를 만져보니, 놀랍게도 새살이 돋아나 막혀있었다.
목숨은 건진 것 같다. 찬휘는 잠시 그 사실에 안도했지만, 곧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입은 부상은…회복 마법이 주특기인 마법사라도 순식간에 완치시킬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즉, 적어도 교전이 완전히 끝나고 자신에게 붙어서 회복마법을 퍼부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건데.
1 공격대가 자신이 리타이어한 이후에도 어떻게든 전열을 가다듬은 걸까? 아니면….
“어떻게…돼가는 거지?”
확인해야 한다. 단지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행히 자신을 치료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일리미네이터는 그에게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화색을 띠며 설명해주었다.
“아. 2 공격대가 내려와서 키메라를 사실상 퇴치했어요. 하지만 영체 정보에 의한 재생 유지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지금은 지속적으로 공격대 전원이 본체를 공격하는 중이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 번 광풍이 불어왔다. 힘들게 고개를 들어서 보니 저편에서 엄청난 두께의 빛 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2 공격대뿐 아니라 힘이 남아있는 1 공격대원까지 합류한 공격이다 보니 그 위력은 경천동지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찬휘의 눈이 잠시 흐려졌다.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2 공격대에선 영천후가 활약했겠군?”
“아, 네! 대단했어요! 그런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사람 덕분에 2 공격대는 안정적으로 딜만 하더라고요. 저도 2 공격대였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으로 들린 말에 찬휘는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나? 나를 비웃고, 형을 비웃은 그놈이 결국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됐다고? 내가 수모를 당한 그 날. 내가 올릴 수 있었던 공을 채간 놈이?
“하…. 하하하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찬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서 당장 자빠져 누우라고 마구 통증을 쏘아 보낸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이겨낸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 섰다.
“벌써 일어나시면 안 돼요!”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전 공격대원들이 공격하고 있다며? 나도 돕지.”
여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그는 썩어도 B랭크 일리미네이터. 그의 화력이 더해진다면 더욱 강력한 공격이 가능하리라 생각한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찬휘는 그녀를 향해 푸근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다.
내 옆에 붙어있었던 게 이런 멍청한 여자라서.
“지금 내 눈이 잘 보이질 않는데…. 영천후는 어디 있지?”
“아, 네. 저쪽에.”
조곤조곤 내는 목소리에 여자는 의심조차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과연. 먼 거리지만 확실히 신장차이를 느낄 수 있는 실루엣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찬휘의 입가에 조금 전과는 다른 미소가 걸렸다.
광기.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저 자식은 우리를 위협할 놈이었어.
로마이어 형의 방식은 강력하지만…놈을 완전히 굴복시키진 못하지.
하지만 나는 달라, 영천후.
네가 잘난 건 아주 잘 알겠다. 인정도 하마. 너는 굉장해. 대단했어. 솔직히 놀랐다.
그렇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난 내 앞길 막을 것 같은 놈을 그냥 두는 성미가 아니라서 말이지…. 그래서 말했잖아. 적당히 깝치라고.
그러니까….
“죽어라.”
일리미네이터들은 이미 타이밍도 재지 않고 방출마법을 마구 폭사하고 있었다. 재생 가능 시간도 이제 거의 끝나갔기 때문에 이래도 아무 상관 없었다.
그 덕분에…. 하늘 위의 구름이 원형으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여도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다. 일리미네이터 모두는 그것이 다른 이가 방출마법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디제스터에게 가해질 공격이다. 크게 신경 쓸 리가 없다.
모두가. 심지어 그의 곁에 있던 이강호 조차 그렇게 생각했던 그때.
콰아아앙!
백색의 섬광이 영천후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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