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모든 육체파편을 제거하고 본체포격이 계속되어서, 사실상 트라이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천후는 가만히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1 공격대는 레이드에 실패했다. 전멸을 우려해 2 공격대가 투입된 시점에서 그것은 확정이었다. 괜히 그 타이밍에 B랭크가 저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키메라의 모든 패턴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천후 역시 레이나드처럼 1 공격대가 없었다면 2 공격대도 파편공격에 큰 피해를 보았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자신과 강호가 있는 만큼, 그리고 트롤러가 없었던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고 트라이를 성공했을 테지만, 적어도 1 공격대처럼 사망자나 심각한 부상자 몇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문젠 분배인데….'
결국 두 공격대가 전부 투입되어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1 공격대가 삼학도로 놈을 유인했고, 패턴 파악에도 도움을 준 만큼 그 공로 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요구하는 비율도 높으리라.
이것만 해도 골치 아픈데, 이번 1 공격대의 경우 전멸 페이스로 들어간 빌미를 B랭크가 제공했다. 보통 경급 디제스터의 보수 분배는 B랭크가 5, 나머지가 5를 가져가 인수대로 나누는 편인데, 과연 이번에도 저대로 분배될 수 있을까? B랭크들이 저대로 분배되지 않도록 놔둘까?
어쩌면 그 과정에서 꽤 큰 트러블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퇴치의 실제적인 최대 공로자인 영천후 역시 얽힐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어쩌면 내가 분배 비율을 정해주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
사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1 공격대의 B랭크들의 발언권이 약해져 있는 시점이니 더더욱.
돈 문제는 민감한 법이다. 여기서 잘못 움직이면 단박에 신용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이 앞을 보고 있는 천후라 할지라도 치명상이 된다. 그렇기에 그는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해보고 있었다.
사건이 터진 건 바로 그때였다.
“천후야!”
하늘 문이 열리며 백색섬광이 터졌다. 처음엔 그것이 디제스터를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강호는 그것이 천후에게 폭사 되고 나서야 다급히 그의 이름을 외쳤다.
“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삼학도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일리미네이터는 일이 터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빨리, 이강호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푸슈웃…. 양 허리춤에서 그녀가 검을 뽑아내자마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백뢰는 그 힘을 잃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일리미네이터가 화력을 쏟아 붓고 있던 방출계 마법에 의한 빛 기둥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후!”
다급하게 그에게 다가온 강호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녀가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이미 인간‘이었다’리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탄화된 인간의 사체였다. 도저히 살아있을 수 없는 모습. 그녀의 눈이 뒤집어졌다.
“어느 놈이…!”
핏기 도는 그녀의 눈동자를 본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강호. 진리구현자. 세계최강의 검사. 강호는 물론 이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명성은 다른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최강의 메이지 슬레이어.
그녀가 검을 뽑는 순간. 그녀가 마법을 버리고 검에 집중하는 순간 그녀 앞에 선 모든 마법사는 그냥 인간이 된다. 그저 인간이 된 마법사는 총화기를 휴대하고 있지 않았던 한 그녀에게 당해낼 수 없다.
단 1초도 상대할 수 없다. 근접거리를 내주고서 그녀를 상대한다고?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데? 세계 최강의 검사를 상대로? 미친 짓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살계를 열었다. 단언컨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그녀 하나를 이길 수 없다. 아니, 단 한 명도 이 섬에서 도망조차 치지 못하리라. 그들 사이에는 그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그녀의 신형이 움직였다. 버프조차 걸려있지 않았지만, 그 속도는 야수를 연상할 정도로 빠르다. 1 공격대의 살아남은 B랭크, 광현은 그녀가 누구를 타겟으로 삼았는지 단숨에 이해하고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이미 목에 검이 닿아있었다.
“누구야?”
“자, 잠깐…. 진정하지. 진정하자구!”
“난 누구냐고 물었다.”
싸늘한 목소리. 목의 피부를 검극이 누르는 느낌이 난다. 찌릿…. 스산한, 그리고 따끔한 느낌에 피가 나기 시작했음을 알아챈 그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진심이다. 이 여자…. 범인이 자진해서 나오지 않으면 이 자리에 있는 용의자들, B랭크를 전부 죽여 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아릿한 쇠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그것이 과연 자신의 목에서 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검에 남은 피 냄새인지…. 광현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시간을 끌면…죽는다.
확실하게.
‘이건…. 예상 밖이잖아, 로마이어.’
어지간한 일은 그에게 협조할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바로 앞에 칼이 와 닿은 상태에서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의 편을 드는 건 도저히 무리다. 당장 목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무슨.
광현의 눈동자가 천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방출마법을 발사하고서 다시 주저앉아버린 찬휘를 향해서.
스칵. 얕게 목의 외피만이 베이며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와 어깨와 상체를 적셨다.
“아악!”
“…후배 관리는 똑바로 해라.”
서늘하게 내뱉은 강호는 그 즉시 몸을 돌려 찬휘에게 향했다.
그녀의 판단에 이것은 명백하게 영천후를 조준한 공격이었다. 절대 조준실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면 뒤에 로마이어가 있는 그는 분명 멀쩡히 세상을 돌아다니겠지.
그건 참을 수 없다.
‘적어도 넋은 달래주마.’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도, 나를 의지하는 아이들에게도 너는 훌륭한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안주하고 싶단 생각도 들 정도였지. 하지만 이렇게 되는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강호는 눈에 살기를 담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 이 행동을 막는 자는 모두 베어 죽이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몸에서 넘쳐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깐! 강호 씨! 진정해! 진정하고 검을 집어넣어!”
“…레이나드 씨. 지금은 아무리 당신이라도 봐 드릴 생각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앞을 막아선 건 가장 뜻밖의 인물이었다. 2 공격대장. 천후와 가장 친했던 일리미네이터, 레이나드였다. 그의 등장에 강호는 아주 잠깐 발걸음을 멈췄지만…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검을 든 채로.
“비키지 않으면 베겠습니다.”
그녀와의 거리는 10m 안. 그녀의 제공권을 생각해보자면 몇 걸음 지나지도 않아 목이 날아가리라. 레이나드는 안색이 새파래져서 외쳤다.
“젠장! 강호 씨! 시간이 없어! 조건을 잘 모른단 말이야! 이러다 천후가 정말로 죽어!”
“…….”
멈칫. 레이나드의 말에 강호는 멈춰 서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이건 무슨 소린가? 사람이 숯덩어리가 됐다. 저건 아무리 날고기는 대마법사가 오더라도 살릴 수 없다. SA랭크의 마법사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들은 지구에 다섯밖에 없고,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가 살아날 수 있다고 하는 건가?
“진심입니까?”
“진심이야! 제발! 빨리!”
그 다급함에서 진심을 느낀 강호는 진위를 의심하면서도 검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아리아가 들려왔다.
<아. 정명한 별의 적자 시여.>
<고귀한 땅이 낳은 위대한 이여.>
<어찌 상처받으셨나이까?>
밤의 어둠 속에서, 더더욱 어두운 세 여인의 실루엣이 그를 감싸며 노래한다. 그의 곁에 주저앉아, 그 위에 올라타, 그의 몸을 핥으며 절규한다. 등을 돌려 그것을 본 강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건 대체….”
“나도 잘 모르네. 어떤 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더군. 하지만 자네가 검을 뽑았을 때 나타나지 않는 걸 보아 저것도 마법인 모양인데….”
“…….”
마법? 저게 정말 마법일까? 이강호는 의심을 품었다. 영천후의 능력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저것은 역시 들어가 있지 않았다. 천후 자신도 자세히 모르는 능력.
본인이 의식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기엔…. 부활주문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 S랭크 회복마법사조차 3분 이내에 죽은 사람이나 간신히 살릴까 말까 한 수준인 것이 부활마법이다.
강호는 세 여자의 실루엣이 마지막엔 완전히 그를 감싸 그의 몸을 백뢰를 맞기 직전으로 되돌리는 것을 보았다. 저 정도면 단순히 부활이 어쩌구가 아니다. 재생조차 아니고 ‘수복’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
‘저건 마치…….’
그녀의 눈에 약간의 불안이 서렸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흘러가던 그녀의 생각은 계속되지 못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천후의 입가가 뭔가를 읊조린다 싶더니, 그의 몸에서 흑색 영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
그의 고함과 동시에 천지가 진동했다. 주변에 서 있던 일리미네이터들은 그 즉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좀 더 거리를 벌리고 있던 이들조차 고막이 손상되어 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미 인간 육체의 내구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영역에 이른 그 외침에 강호조차도 어지러움을 느꼈다. 땅바닥이 두부나 물풍선이 된 것처럼 물컹뭉컹하게 느껴졌다. 시야가 일그러진다.
“윽…!”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강호는 힘겹게 천후를 바라보았다. 암색의 불꽃 된 천후는 눈에서 같은 색의 흉성을 떠올리며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선은 한곳에 멈췄다.
박찬휘.
“아…!”
“안 돼! 막아!”
순간 강호는 직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다.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린 레이나드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있어서 그를 막을 것인가? 이강호와 마찬가지로, A랭크의 강화마법을 몸에 두른 그를 막을 존재는 여기에는 없었다.
단 한 명 있다고 한다면 이강호였지만.
“…….”
그녀는 별로 말리고 싶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를 겪은 것이다. 아니 실제로 한번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본인이 복수를 결심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걸 막아야 하지? 오히려 그 실행을 방해하는 놈을 대신 베어주고 싶을 정도다.
그동안 흑암이 움직였다.
“으…. 으으….”
흑색 전격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박찬휘 앞에 도착한 어둠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찬휘의 몸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으켜 세워졌다. 이미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자각한 그의 눈에는 공포가 서렸다.
그를 제자리에 세워놓은 암흑은 천천히 자세를 취하더니, 오른발로 바닥을 찍었다. 쿠웅. 단박에 삼학도 지면 전체가 일렁인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발을 디딘 힘을 무릎으로, 어깨로 쳐올렸다.
강호는 그것이 조금 전 키메라의 머리를 박살 냈던 공격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저 상태에서 저게 휘둘러진다면 박찬휘는 시체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겠지. 아니, 아예 그의 뒤쪽의 해수면이 갈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래도 싸다고 느꼈다.
하지만….
“…….”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자신과는 다르다.
막 다뤄도 되는 자신과는 다르다.
그는 좀 더 위를 노려야 할 존재. 이런 곳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사람을 죽이고…신망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박찬휘는 분명 악행을 했다. 솔직히 죽어도 싸다. 하지만 죽어도 싼 놈을 진짜로 죽여 버리게 되면…. 죽인 쪽도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면 한다.’
내가. 너에게 느꼈던 것처럼.
스르릉.
검명음이 울렸다. 그 순간, 흑암이 사라지고 영천후가 돌아왔다.
주먹으로 전사되던 세계라도 때려 부술 것 같던 기운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순수한 운동에너지. 순수한 사람의 주먹만이 남았다.
단련된 그의 주먹은…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만하다. 저걸 맞고 찬휘가 죽는다면? 강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팔자지.’
빠각!!! 뿌드드득!
박찬휘의 머리통이 뒤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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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더워 죽을거 같아요 요즘.
아. 오타수정은 보는대로 조금씩 다시 하고 있습니다. 맞춤법 문법 검사기를 돌리고 올리는 건데도 남는 놈들이라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