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94화 (94/324)

94화

일반적으론.

디제스터의 퇴치 영상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크게 보자면 두 가지다.

첫째론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 퇴치 업체가 굳이 바퀴벌레가 죽는 상세한 과정을 근접 실사로 찍어서 홍보영상으로 삼지 않는 것처럼, 디제스터 퇴치 업체도 실제 영상을 홈페이지 등에 굳이 올리지 않는다.

서브 퀘스트만 해도 2, 3m 넘는 괴물들이 대부분인데 그게 단박에 폭발하면서 뇌수와 내장이 터져서 흩어져나가는 걸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이 습격당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둘째론 일리미네이터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다.

일리미네이터는 연예인이나 공인이 아니다. 마법사로서 커밍아웃했다지만 언론에 자신이 완전히 노출되는 것은 반기지 않는다.

사람 모습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뻥뻥 갈겨대는 걸 보는 일반 시민들은 그들에게서도 디제스터를 볼 때만큼이나 공포나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이 때문에 특히 유명한 일리미네이터는 사생활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피해를 줄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유그드라실 데이터베이스의 일반인 비공개 조치였다.

이 때문에 일반인에게 풀리는 영상은 오퍼레이터나 유그드라실 촬영 영상이 아닌 언론 카메라가 멀리서 찍은 영상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실제 현장 영상을 원하는 경우엔 제공해줬다. 정보의 공개란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실제로 제공했을 땐 언론 쪽에서도 알아서 편집해서 내보낼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그 날.

마이튜브에 한 건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트란제비야에서 촬영, 엔체스터 콜로니와 빌라이저에서 협찬한 그 영상은.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뒤집었다.

*

"자네 그 영상 봤나?"

"음. 굉장하던데."

"이거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거 같아…."

"쉿. 로마이어가 지나가면 말하게."

"……."

또 다른 키메라를 퇴치한 직후. 로마이어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리무진에 탑승했다. 평소라면 그 자리에 남아 뭐라고 코멘트를 남기는 게 그의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소리가 넘쳐났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참가한 레이드의 공대원들조차 수군거리고 있었다.

"제길…! 이까짓게 뭐라고!"

로마이어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내동댕이쳤다. 시중에 풀린 지 얼마 안 돼 할부원금만 100만 원이 넘는 그것은 감성적인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후우. 후우…."

한참을 거칠게 숨을 내쉬던 그는 리무진 앞좌석에 붙어있는 TV를 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로자미아…!"

*

어제저녁. 10인 레이드를 성공했단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로마이어는 불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존보다 C랭크에게 돌아가는 돈이 많군."

딜을 한 결과 결국 120억을 지불하기로 한 상태.

250억을 25명이 B랭크 5, C랭크 5로 나눠 먹었을 때보다 120억을 5:5로 나누고, C랭크 8명이 60억을 나눠 먹는 게 돈이 더 된다. 예치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지금은 뭐 말할 필요도 없다.

25인 레이드를 예상하고 있었던 로마이어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 차이가 너무 크다. 쉽게 무마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R.D.C에도 혜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누구나 인지하다시피 불공평을 전제에 깔고서 나오는 혜택이었다. 그것에 온전히 만족할 자는 없다. 로마이어 역시 반발할 것을 알면서도 저지른 짓이다.

예치금 제도는 단순히 로마이어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인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너희는 따라야 한다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보여주기에 가장 간단한, 체감이 가장 확실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현재가 아니라 멸급 사태 해결 이후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나 할까?

그것은 실제로 결국엔 먹혔고, 부당하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천후도 버티지 못해 굴복하고 타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생각했는데….

"이걸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불쾌하다. 반항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꽤나 강해서 아프다. 그러나…. 로마이어는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이 정도의 시위는 권위로 찍어 누를 수 있다. 등에 업은 힘이 그 정도는 된다. 그리고 10인 레이드라면 그 10인에 들기가 얼마나 힘들지 C랭크들도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로테이션을 돌린다 해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

일은 로마이어가 뿌리고 있었다. 빈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점에서 틀어막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 자신의 몸이 고생해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이 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다음날.

상황은 또 한 번 일변했다.

그 장본인을 로마이어는 기상과 동시에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

그 시작은 마이튜브에 올라온 한 건의 동영상이었다. 일반에 극히 드물게 공개되는 디제스터 퇴치 영상.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영상이 아니었다.

완전한 라이브 영상이 아니라, 디제스터가 파괴한 건물이나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은 화면에 최대한 보이지 않게끔 교묘하게 편집되어있는 영상이었다.

카메라가 디제스터의 전신과 그 정면에 선 키 큰 남자. 그리고 엉덩이 곡선이 아름다운 바이크 슈트 차림의 여성을 비췄다.

그 직후, 화면이 마치 영화촬영용 레일을 타고 움직이듯 카메라 워킹을 시작하며 그 셋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극적으로 비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면이 딱 멈춘다 싶더니.

남자와 여성의 몸이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디제스터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신체가 떨어져 나간다. 보통 사람이 보기엔 딱 이랬다. 하지만 갑자기 화면 구석에 리와인드라는 글자가 뜨더니, 이번엔 슬로우 모션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비췄다.

두 남녀의 몸이 네발짐승처럼 낮춰지더니, 섬광처럼 쏘아져 나간다. 슬로우 모션인데도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내달린 둘은 디제스터의 몸을 타고 올라가며, 초격을 피해내고서 공격을 시작한다.

주먹이 박히고, 검이 살을 가른다. 그 순간 잔인해서 눈을 피하고 싶어져야 정상이지만, 철저하게 편집된 그 영상은 CG로 사람이 불쾌하게 여길만한 절단부나, 폭발 후 비산하는 살점 같은 것들을 죄다 없애놨다.

두 사람이 괴물의 몸을 발로 밟아가며, 허공을 박차며, 때로는 둘이 허공에 만나 서로의 발을 맞대 방향을 바꾸며 베어나가는 그 모습은 이제 한 영화의 전투씬을 보는 느낌을 주었다.

그동안 현란하게 카메라가 주변을 돌며, 그들의 움직임을 배경화면까지 포함해서 빠르게 쫓는다. 디제스터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하지만 잔인한 장면은 최대한 억눌러서.

덕분에 이 화면은 '잔인한 장면'이 아니라 '잔인한 장면을 연출한 볼거리'가,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이 되어서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저편에서 섬광이 일며 8명의 풀 캐스팅이 날아와 꽂혔다. 그 위력이라면 키메라의 몸통에 구멍이 뚫려 내장이 흐트러져야 할 테지만, 피격 자리엔 시뻘건 자국만 남고 대신 쓰러지는 장면만 진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건…!"

키메라의 특성. 영체 정보에 인한 신체 복구 때문에 키메라는 트라이 시간을 아무리 단축해도 10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영상은 그런 '지루한' 장면은 과감히 생략하고서 2분 30초로 끊어버렸다.

영상은 그런 긴 전투장면 대신에 영상의 주인공 역할의 남자, 영천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여자들의 허리를 감아 안은 채 씁쓸하게 눈을 감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지금까지 R.D.C의 교전 직후 생긴 수많은 건물 피해를 찍은 화면이 3초 만에 20개 가까이 빠르게 나타나더니,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누가 그를 대신하고 있는가?’

그 문구를 마지막으로, 화면이 검어지더니 제작, 제공 회사가 뜨고, 마지막 이 장면이 실사를 '아주 약간의 편집'만 했음을 밝히는 문구가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깐 떴다가 사라졌다.

이 영상은 업로드 초기,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조회 수가 올라가 오늘의 영상 자리를 차지하더니, 그 뒤론 자연적으로 전 세계에서 알아서 봐주며 억대 조회 수를 찍었다. 인터넷에선 광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 공영방송 3사뿐 아니라 CNN, 알자지라 등의 외신 등에서도 해당 영상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경급 디제스터 10인 레이드 성공!>

<해당 영상의 주인공은 누구?>

영상은 당장에 이슈화되었고, 유그드라실 데이터베이스에 실제로 해당 교전 영상이 존재하며, 저것이 피격부위 등의 잔인성을 가린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실사라는 것이 알려진 뒤론 모든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뉴스에선 연신 해당 영상을 언급하더니, 그 방향성은 점점 왜 그가 R.D.C에서 활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것으로 변하기 시작. 이윽고 R.D.C의 운영에 대한 논란. 그리고 로마이어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의도하고 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개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이 동영상의 파급력은 그냥 놔뒀어도 컸겠지만, 이 정도까지 난리를 일으킬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조회 수 올라가는 속도가 이상하다. 방송들이 이 영상을 포착, 보도한 속도가 이상하다. 보도하면서 제시되는 화두의 방향성이 이상하다.

이런 부분들을 조합해보면 답은 하나였다. 영천후나, 영천후를 돕는 세력이 손을 썼다. 그리고 로마이어가 아는 한, 전 세계의 언론을 직접 만지기라도 한듯한 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천후의 지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네가…. 결국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온종일 해당 영상에 이어 로마이어의 예치금 문제. 로마이어의 평소 행실 및 성매매 의혹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서 나오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해서 특집방송을 편성해서 방영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트란제비야가 이번 10인 레이드를 하면서 했던 분배 등을 언급하며 최대한 좋고 예쁘게 포장하고 있었다. 또한 '로마이어에 의한 피해자' 포지션으로 영천후를 배치해, 그 와중에도 로마이어를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R.D.C의 소속도 아닌 영천후에게도 예치금을 적용해서 120억밖에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실망하더라도 사람은 필요하며, 사람은 한번 안주한 상황에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가 대한민국의 일리미네이터 절대다수를 규합했다는 진실, 멸급 디제스터를 최초로 예고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이 두 가지가 있는 한 이전처럼 공고할 순 없어도 여전히 정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진정 크리티컬한 보도가 터졌다.

<멸급 디제스터. 지금까지 A랭크 없이 퇴치된 적 없어.>

<로마이어 체제에서 멸급 디제스터 퇴치 가능성 지극히 낮아.>

지금까지 로마이어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정부가 로마이어의 지위가 흔들리는 틈을 타서 정보를 푼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멸급 디제스터 출현을 예고하는 것보다 훨씬 포착하기 쉬운 부분이었다. 해당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던 이들이 너무 많았다. 정작 디제스터나 일리미네이터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이들이 그의 지지층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직접 의혹을 제기했다.

이것에 대한 답을 요구받게 되어버렸다. 필사적으로 숨겨온 것이었거늘…!

"이…. 빌어먹을 동생 년…!"

손이 닿는 자라면 죽여버렸으리라. 하지만 로마이어는 그녀는, 그녀만은 건드릴 수 없었다. 눈앞에 있으면 뺨을 칠지언정 그녀를 치울 수는 없다. 왜냐면 그녀는….

"으아아아아아!“

방안의 모든 사물을 박살 내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골랐다. 수습해야 한다. 아직 수습할 수 있다. 다만 저쪽이 공작해올 것이 문젠데, 로자미아가 뒤에서 버티는 이상 한계가 있다.

로마이어는 머리를 굴리면서 엄지손톱을 씹었다. 그때였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로마이어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양주병 하나를 염동력으로 띄워 그쪽으로 내쏘았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여자를 안을 기분도 아니다.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죽여버릴 것 같아 전부 치웠다. 그런데 들어오다니. 살의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가 날린 양주병은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방안으로 들어온 것은 최근 수족으로 받아들인 B랭크 성준였다.

"나야."

"…미안하군."

아무리 상황이 막장이 되더라도 막 대하면 안 되는 녀석이다. 로마이어는 속이 끓는 와중에도 간신히 삭히며 물었다.

"왜 들어왔지? 너도 들어오지 말랬잖아."

"어겨야 할 만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침착하게 답한 남자는 스마트 폰 화면을 보였다. 바다가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낀 밤 바다. 그 속에….

희끄무레한 실루엣이 보였다.

"나타났다."

그것이 무엇인진 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로마이어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날카워졌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수습할 방법이 생겼군."

혼자 낄낄거리며 웃는 그 모습을 보며, 사진을 보인 남자는 주춤주춤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하지만 로마이어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녀석을 쓸 때가 됐군…."

쓰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두 눈에서 광기가 번뜩였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처음 예정보다 여기까지 오는데 좀 오래 걸렸네요.

내용 오류가 좀 있어서 급하게 몇군데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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