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땅. 따다다다다당!
"꺄아아아악!"
"무, 무서워!"
자동차 천장을 무언가가 두드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이미 보조석과 후면의 창문들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방탄유리에 방탄 필름을 덧대어놓은 3중구조의 창문임에도 이미 당장에라도 깨져나갈 것처럼 금이 가 있었다.
"희주! 상가 옥상!"
"네."
비명처럼 지른 목소리에 희주의 손이 움직인다. 그때마다 그의 손에 들린 칼끝이 허공에서 녹은 것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 차 안에서는 이미 쇠 냄새…. 피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희주야! 괜찮아?"
셀레나는 그녀의 검, 월하홍취에 묻는 피를 보고서 물었다. 이것은 사람들. 그녀들을 공격하던 군인들을 찔러 나온 피다. 희주가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 그들이 치명상을 입을만한 부위는 피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의 피 임에는 분명했다.
그것에 의해 희주가 받고 있을 정신적 충격을 우려해 물었지만, 희주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얽매일 여유가 없습니다."
셀레나는 요 몇 달간 그녀를 지켜봐 왔다. 천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이 셀레나였다. 때문에 셀레나는 그녀가 천후에게 있어 맹목적이라는 면을 제외하면, 표면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감수성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그것을 보전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셀레나는 지금 당장에 집중했다.
사람을 상처입힌 것에 대한 위로는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포인트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유그드라실에서 떨군 큐브 엘리베이터는 이미 지상에 도착해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유령도시가 된 시내. 인근의 사거리 중앙에서 탑승할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희주 일행은 그곳으로 곧장 향할 수가 없었다. 공격이 너무 거세다. 정면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대해선 예봉을 모두 꺾고 있는데도 그렇다. 결국 그들의 유도에 따라 길을 돌아돌아 가게 되어버렸다.
"차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확신 못 해. 하지만 이 정도로만 계속되는 거라면 어떻게든!"
그동안 날아온 유탄만 몇 발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장갑화해둔 차량이라고 해도 버틸 수 있는 공격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셀레나가 걸어둔 방어마법의 힘이 더해져서 아직 차량과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쾅! 콰쾅!
이 순간에도 다시 유탄이 날아와 차량을 덮쳤다. 그때마다 셀레나의 입이 빠르게 움직이며, 6초에 한 번씩 방어마법을 재갱신해나갔다. 하지만 이 반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리라. 너무 잦은 공격에 그녀의 마력은 빠르게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희주도 마찬가지. 현재는 '공도' 하나만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여력이 남아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다할 것이 눈에 보였다.
셀레나가 구원을 요청했으니 주인님이 곧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어날 상황은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서, 희주는 다시 사고의 방향을 돌려보았다.
'이상해.'
소총탄이. 유탄이 날아온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날아오고 있지 않았다. 이미 작정하고 도로나 건물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화기를 쏴 재끼고 있는 시점에서 더 강력한 화력이 투입되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헬기나 장갑차도 투입되지 않고. 도로에 바리케이트가 쳐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뒤집어보면 상대가 처한 상황이 보였다.
'…저항?'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판단은 바른 판단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선 확률이 존재하는 생각을 무시해선 안 된다.
아무리 밴에 장갑을 덧대놨다고 한들, 도로를 틀어막기만 하면 막을 수 있는 게 차량이다. 차폐물을 두고, 그 뒤에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면 이미 진작에 끝장났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건, 무언가 이상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확인해 볼 가치는 있다. 이후를 위해.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셀레나. 탐색마법을 풀 캐스팅으로. 범위 내 가장 높은 계급의 군인과…. 이 이질적인 오라를 통제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주세요."
"……."
셀레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어마법을 유지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뭔가를 떠올린 게 분명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의 영창이 다른 것으로 변했다.
그것을 확인한 희주가 핸들에 달린 단추 하나를 누르고는, 월하홍취를 바로 들고 읊조렸다.
<지금부터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장소까지 자동운전을 시작합니다.>
"공도."
푸웃. 그 순간, 희주의 몸이 운전석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차는 말짱하게 속도를 유지한다.
"뭐, 뭐야?"
"선생님 없어졌어!"
뒷좌석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셀레나 역시 캐스팅 중이라 말은 못했지만,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그때. 날아오는 총알소리에 섞여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르르르르륵!
검편 움직이는 소리. 놀라 창밖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흑색 머리칼로 파도를 만들어내며 건물 위로 쏘아져 올라가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그 인영의 주인, 홍희주의 신형이 월하홍취가 그려내는 부정형의 검편의 길을 따라 허공에서 줄타기하듯 움직였다. 서커스 곡예 뺨치는 움직임을 내며, 줄타기를 할 수 없을 땐 건물을 직접 발로 차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하!"
당황한 병사들이 총탄을 쏘아내려 하지만, 몸을 돌려 발사하기도 전에 제압당한다. 어느새 공격대상은 차량에서 그녀로 바뀌어서 총격이 가해졌다.
그즈음. 유지되고 있는 감각 링크를 통해 요구했던 두 사람의 위치가 전해져왔다. 둘은 같은 건물에 있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다.
"공도."
희주는 검편을 날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균열을 향해 몸을 던졌다.
*
한편. 차량을 향해 공격명령을 내렸던 붕대의 남자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봐. 왜 로켓이고 박격포고 아무것도 안 쏘는 거야?"
얄팍한 방어마법의 힘으로 한계 이상의 피해를 보고서도 도주하고 있단 소리에 그는 성질이 났다.
"으…. 아…. 페이스리스……."
"아냐…. 저건 차…! 차다…!"
붕대의 남자는 최초의 소대장뿐 아니라, 직접 명령을 내릴 연대장과 대대장들을 정신지배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 광범위한 지역의 모든 병력을 전부 지배할 수는 없었기에 명령권자를 지배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저항하고 있었다. 상관의 명령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군대의 규율이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제정신이 아니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디제스터랬다가 중간에 갑자기 말을 바꿔서, '해당 도주차량은 국가를 전복시킬 인물이니 박격포를 쏴서라도 제압해야 한다'고 한들…. 그럼 그냥 멈춰 세워서 끌어내면 되지, 무슨 박격포? 미쳤어? 사람들이 피난 가서 다 빠졌다지만 시가지에서?
게다가 차에 탄 사람들은 아무리 잘 봐줘도 전부 그냥 멀쩡한 민간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뒷좌석엔 미성년자까지 탑승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남자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차의 이동 경로를 따라 직접 움직이며 현장 병력들을 직접 세뇌하고 있었지만, 반응이 이랬다.
"난…. 난 쏠 수 없어. 박격포라니!"
"…이런 빌어먹을?"
아무리 정신계열 마법을 쏟아부어도, 차량이 버틸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소총이나 유탄 공격은 해도 박격포나 로켓 등을 통한 공격은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헬기나 기갑 차량 탑승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지배에 걸린 연대장의 목덜미를 잡고서 명령을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최초 뒷좌석을 저격한 중사는 정신지배에 걸린 상태에서도 현실의 환영을 같이 보았는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이들을 쏘다니.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저격수를 한 것이 아닌데…!"
군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직업정신.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는 인지력과 인간성.
이것들이 얽혀 평범한 20대 청년들에 불과한 일반 병사들조차 초자연적인 힘인 마법을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칫…. 역시 주특기가 아니니 힘들군."
그것은 붕대의 남자가 가진 그 자신의 한계이기도 했다. 차량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방공포 진지로 올라온 그는 혀를 찼다.
"별 수 없지. 내가 쏘는 수밖에."
지금 저 차량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사람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위장되어야 하니까. 대전차 로켓을 탈취해 온 그는 세뇌당한 병사가 말했던 유효사거리인지를 떠올리고는 그럴싸한 위치로 향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차르르르륵.
쇳소리와 함께 30층짜리 복합빌딩 옥상으로 인영 하나가 튀어 올라왔다.
"아니?"
깜짝 놀란 남자가 당황하는 사이, 인영은 순식간에 다가와 그의 옆에 힘없이 서 있던 연대장을 채갔다.
'이건 위험하다!'
깜짝 놀란 남자는 그대로 손을 뻗어 영창도 없이 즉시 시전 주문을 쏘아댔다. 그의 몸 주변에 흰 빛덩어리들이 떠오르더니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인영은 차분하게 손에 들고 있는 검을 휘둘러 대며 읊조렸다.
"흑표. 공진."
검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남자에게 쇄도해간다. 검편이 뱀이 똬리를 틀듯이 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걸 본 남자는 황급히 몸을 기울여 그것을 피해냈지만, 그 검편들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진동이 일어났다.
콰콰콰콰쾅!
그 순간. 인영에게 쏘아졌던 광구들이 폭발하면서 검편들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건물 옥상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큭! 이게!"
어느새 그곳에서 몸을 빼냈던 남자는 인영을 찾았지만, 그것은 이미 옥상에서 사라져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남자는 인영의 생김새를 떠올렸다. 워낙 순식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눈에 각인될 정도의 미모였다.
"그놈의 여자군."
본 기억이 있다. 웃음 지은 그는 허공을 날아, 저 멀리 질주하고 있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이 잠깐의 교전 동안 정신지배가 조금 풀린 것인지, 차량에 대한 공격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어쩔 수가 없군."
중얼거린 남자가 손을 뻗었다.
*
"하아! 하아! 하아!"
"희주야!"
교전을 마치고 돌아온 희주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녀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훨씬 창백해져 있었다. 월하홍취의 힘을 너무 많이 썼다. 특히 검편만 옮기는 용도의 공도를 순간이동 대용으로 쓴 대가가 너무 컸다. 마지막엔 대령과 함께 전이한 덕분에, 그녀는 지금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괜찮습니다. 포인트는?"
"거의 다 왔어!"
희주가 밖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공격이 많이 약해져서 차량은 큐브 엘리베이터에 거의 접근해있었다. 희주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대를 잡았다.
"마법사가 개입했다는 것을 확인. 정신지배를 당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도 확보. 이걸로 이번 사건의 배후를 단정 지을 수 있을 겁니다."
"……."
단정 짓다니. 로마이어 짓이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셀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그의 수완으로 볼 때, 심증만으론 밀어붙이지 못하리라. 사실 지금 이것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희주는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고 말하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포인트에 거의 다 도달했다. 저 앞에 사거리가 보였다. 불가시 모드인 큐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분명 저곳에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셀레나의 얼굴이 모처럼 밝아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앙!
"큿!"
"꺄아아아악!"
갑자기 사거리 중앙에 빛 기둥이 내리꽂혔다. 수동으로 운전을 전환했던 희주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거리가 상당한대도 여기까지 열기가 전해져왔다. 빛 기둥이 사라진 그곳에는 크레이터만이 남아있었다.
"큐브가…!"
유그드라실의 큐브 엘리베이터는 불가시라는 점이 장점이었지, 내구성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충분히 강하지만… 그렇다고 포격에 버틸 정도로 강력한 것은 아니다.
'풀 캐스팅. 그것도 B랭크.'
위력을 본 희주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드래곤, 키메라 트라이가 한창이 지금 국내에 놀고 있는 B랭크 따위는 없었다. 아니, 하나 있다고 한다면….
희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셀레나! 방어마법을! 빨리! 공도! 흑표! 공진!"
외침과 동시에 희주 자신 역시 월하홍취의 검편을 차량 밖으로 내보내 차량 위쪽을 완전히 감싸 진동의 벽을 쳤다.
왈칵하고.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튀어나왔지만, 그녀는 태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이 빌어먹을 팬저 어쩌구 하는 로켓은 대체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다. 군대를 갔다 와봤어야 말이지.
뭐 어차피 큐브 엘리베이터도 풀 캐스팅으로 날려버렸겠다, 이미 늦었다.
한 발 쏘나 두 발 쏘나 똑같지.
"어디 네 여자들도 너처럼 되살아나나 볼까?"
섬광이 터졌다.
"큭…. 하악…!"
"으으으…."
달칵. 월하홍취를 손에서 떨군 희주는 상황을 파악했다. 차량을 급하게 돌려서, 직격은 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전복되고, 셀레나의 방어마법과 월하홍취로 친 방어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장갑화되어있는 운전석 문이 종잇장처럼 찢어져 있는 것을 본 희주는 차 밖으로 기어 나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했다. 다음 공격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 차. 무리다. 움직일 수 없다.
그럼 도보로라도….
우선 셀레나. 다행이다. 정말…다행이야.
그럼 이제 아이들을-
"아…."
그녀의 움직임이 멎었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그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안전띠를 꼭 잠그고 있었다.
차가 포격으로 뒤집히자, 보조석에도 설치해놓은 에어백이 터졌는데, 한껏 부풀어있던 그것이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피.
코피.
그리고 입에서…. 귀에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아아…."
뇌리에서 명령한다.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은 모두 버려서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그러나 희주는.
백옥이나 더는 무정이 아닌 여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주저앉았다.
숨은 붙어있다. 숨은 붙어있지만….
에바의 몸이 아스팔트 파편에 관통당해.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아…아아아아…! 에바…!"
눈처럼 곱던 백발이 붉게 젖어있었다. 이마 인지. 아니면 그 아래인지. 흘러나온 피가 얼굴의 반을 가렸다.
문득. 셀레나의 손이 어깨를 짚는 것을 느꼈다. 감각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의지하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에 대고.
절실하게 외쳤다.
"주인님. 아이들이……! 에바가!"
천둥소리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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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조금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