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아웃레이지>
결국 1차 드래곤 트라이는 실패했다. 대한민국 최정예 일리미네이터 중 13명이 해당 트라이에서 사망했고, 살아남은 47명 중 태반이 중상을 입었다.
계속해서 트라이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유그드라실로 올라와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로마이어는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은 50% 이상의 육체 손실을 입은 덕분인지. 덕모도 해안가에서 용오름 사이에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재생이 끝날지, 다 끝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1 공격대가 치료를 받는 그 사이에도 경급, 파급의 공격은 계속되어 2 공격대의 전투 피로는 빠르게 누적되었다.
드래곤이 실제로 나타난 지금. 키메라는 몇 시간에 한 번씩 계속 나타나고 있었으며, 결국 1 공격대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치료가 끝나자마자 현장에 로테이션으로 투입되어야 했다.
일반인들. 로마이어를 지지하던 국민들은 상황이 여기까지 와서야 현실에 눈을 떴다. 경기도 일대의 모든 시민들이 피신하는 꼴을 보고 나서야. 그리고 드래곤 브레스로 인해 강화도와 파주 산업단지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것이 목 앞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중국의 어디에 불이 났다. 북한의 초토화가 되었다. 그런 말은 아무리 들어도 그냥 남의 나라에 무슨 일이 났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국의 영토 내에서 피해가 일어나자 그제야 제대로 된 경각심이 피어났다. 막연하게 드래곤은 키메라보다 조금 강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던 이들 모두가 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TV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지지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를, 로마이어가 뿌려댄 발언들이 공수표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항구도시, 특히 부산으로 몰려들었지만 지금와선 대부분 차단되어있었다. 아주 극소수의 고위층, 혹은 외국인 정도만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자 국민 여론이 들끓으며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정부는 로마이어의 이름을 앞세웠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국민의 총의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드래곤을 퇴치해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노예지만, 5천만이 모이면 그것은 어명.
정부는 급하게 움직여 드래곤 트라이 전에 접촉해왔던 대사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들은 대답은….
어명을 수행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하는 것들이었다.
트라이 전과 후의 A랭크 지원 비용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져 있었다. 대한민국에 더는 드래곤에게 대항할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외국들은 구원자의 탈을 쓴 날강도로 변하여 대가를 요구해왔다.
하나하나가 국가로선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드래곤이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촉박한 상황임에도 양보할 수 없는 것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대한민국 전체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그동안. 로마이어와 영천후는 완전히 침묵했다.
*
드래곤 트라이로부터 3일 후.
"오늘만 6건 짼가…. 정말 큰 일이군. 드래곤 레이드 이전에 전투 피로로 다들 쓰러지겠어."
잠적한 로마이어와 영천후 대신 임시로 전국 일리미네이터들의 총공격대장을 맡게 된 레이나드는 눈 밑의 다크서클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이 잠들어 있는 현재. 하루 평균 5건의 키메라가 등장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드래곤 트라이에서 B랭크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려 대항하고 있었지만, 이미 인천 서부지역의 재산 피해는 금전으로 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트라이를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당신이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차성준 씨. 로마이어나 좀 데려오세요."
로마이어 잠적 이후, R.D.C 임시대행은 차성준이 맡고 있었다. 그는 로마이어보단 훨씬 융통성이 있어서 분배문제 등을 부드럽게 처리해나갔지만, 이미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화가치가 쓰레기가 되었는걸. 200억이고 300억이고 있어서 뭐하나?
"영천후 씨라도 있으면 리트라이를 해볼 텐데…."
성준이 아쉬운 소리를 내자, 레이나드가 선글라스 너머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기색에 성준은 움찔하며 어깨를 좁혔다.
"…안 바라는 게 좋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죠?"
"……."
성준은 입을 열지 못했다. 영천후의 식솔들. 서포터와 오퍼레이터들이 한국군의 습격을 당했다. 그것도 로마이어에게 사병으로 빌려주었던 이들에게.
결국엔 토론회에서 페인트로 꺼냈던 그 발언조차 일부 실현해서 보병 연대 하나를 받아냈던 그가 공격한 것이다.
세뇌당했던 연대장을 확보하고서 들어낸 증언과 정황 증거들을 보면 누가 범인인지야 명백했다.
더 큰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겠단 생각인지, 트란제비야 측에선 이 사실을 유그드라실과 일리미네이터들에게만 알려왔고,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로마이어도 딱히 자신이 주범인 걸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 무슨 생각이랍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연락이 끊긴 상태인지라."
"하…."
쯧쯧하고 혀를 찬 레이나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영천후의 연속 트라이를 막을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저런 짓을 하다니. 작작 미쳐야지.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는지, 영천후는 아예 그 뒤로 아무런 행동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되면 다음 리트라이도 로마이어 포함 60인으로 구성하게 될 텐데….
"직접 상대해본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A랭크 없이 리트라이하면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성준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지금까지 있었던 멸급 레이드 영상을 안 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일정 인수 이상의 풀 캐스팅이 아니면 비늘 한 장 뚫을 수 없는 괴물. 안 그래도 총 화력이 부족한 A랭크 제외 공격대로는 버거운 상대였다.
다시 그걸 상대해야 한다고? 죽어도 사양하고 싶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성준의 안색을 살핀 레이나드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유그드라실은 아직 대한민국을 지원해주고 있었기에 그는 유그드라실 내부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이미 3번의 레이드를 뛰고 온 상황이라 휴식하며 지휘를 하는 것이다.
이걸 휴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선 이것도 감지덕지다.
'없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지.'
정말 막바지가 되면 정부도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외국의 A랭크를 빌려올 것이다. 그때 어떻게든 레이드를 성공하고 외국으로 나가버리자. 재산 일부를 달러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한 레이나드는 조용히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자둬야 한다. 그러나 그의 수면시간은 보장받지 못했다. 그가 좀 잠이 들까 싶었던 때에 미미르의 보고가 들려온 것이다.
<태안반도 일대 키메라 출현.>
"…돌아버리겠군."
힘겹게 눈을 뜬 레이나드는 머리를 굴렸다. 이미 공격대 하나가 다른 곳에서 트라이 중인데 또 하나 나타나다니. 더 돌릴 인력이 부족했다. 로테이션이 더 빡빡하게 돌아갔다간 미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걸 그냥 놔둘 수도 없는 거라, 레이나드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가장 오래 쉰 일리미네이터들을 추려보려 했다. 이번 공격대는 직접 현장 지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레이나드 씨. 개인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아…. 미안하지만 연략 받을 시간 없어요. 나중에 다시 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영천후 씨의 통신은 차단하겠습니다.>
"뭐? 잠깐! 천후라고?! 차단하지 마! 차단하지 말라고!"
기겁하며 외친 레이나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곧 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드 씨. 다음 키메라는 언제쯤 나타날 것 같나요?>
"마침 연락 잘했어! 지금 태안 쪽에 키메라가 나타났는데…!"
그가 있다면 열 명만 있어도 키메라를 잡을 수 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드래곤 레이드도 시도해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천후는 그의 예상과는 다른 말을 해왔다.
<그렇군요. 그럼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천후야?"
평소와는 다르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은 레이나드는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다.
"어쩔…. 어쩔 생각인 거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묻고 만다. 이 극한 상황. 평상시의 그였다면 일단 사람들을 규합해서 드래곤 트라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나드는 순간적으로, 그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딜을 하려고 해요. 프레젠테이션을 좀 할게요.>
"……."
레이나드의 얼굴에서 선글라스가 살짝 흘러내렸다. 그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떨렸다.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들은 자신이 싫을 정도였다.
"천후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어차피 이제 네가 나서기만 해도 모두가 널 따를 거야. 그러니까…!"
레이나드는 다급하게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놀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것이 전혀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 하나가 있어, 그래도 묻는다.
그 의도를 읽은 걸까?
<드래곤 트라이는 할 겁니다. 그땐 공격대장을 맡아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후의 통신이 끊겼다.
"천후야…."
레이나드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고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행히…. 확인하고자 하는 건 했다. 마지막으로 던져준 그 마지막 말이, 그의 마음속에 아직 선량함이 남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파악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레이나드는 가슴이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언제.
어떻게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진짜 정점이 노했군…."
이 대가는 얼마나 클지.
레이나드로선 상상이 가지 않았다.
*
타타타타타타타.
키 큰 남자의 주변으로 그 수를 셀 수조차 없는 무인 헬기들이 날아다녔다. 그것들은 점점 남자로부터 거리를 벌려 하늘을 수놓았다. 그 사이로, 검은색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다가와 사람 머리에 사자의 몸. 박쥐의 날개를 단 괴물의 모습이 되어갔다.
25m의 거체를 가진 그것은 남자를 발견하더니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그 앞에 섰다. 이 부근에 느껴지는 인간의 기척이라고는 이것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죽이겠다는 것이 디제스터의 본능이었다.
"크르르르르…."
놈이 입을 벌리자 사람 입에는 있을 수 없는, 짐승의 송곳니가 드러나 그 사이로 침을 흘려댔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이었다면 도망갔으리라.
하지만 그 앞에 선 남자는 표정 없이. 비스듬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한정 봉인 해제."
드…. 드드드드….
바닥에서부터, 흑색 영기가 올라와 그의 몸을 불꽃으로 바꿔나갔다. 그때마다 지축이 떨리고, 바닥이 갈라져 돌들이 올라와 하늘로 떠오른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이윽고 완전히 검은색 불꽃으로 화한 그것은 가만히 키메라와 마주했다.
"크…크르…!"
그것을 바라본 키메라가 눈을 크게 뜨고 두 걸음 물러났다. 조우한 이상 싸움을 피하지 않는 디제스터의 습성상. 이것에게서 도망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짐승의 눈에는 깃들었다.
공포가.
"크르르르르…. 카아아아아아아!"
몸을 움츠리고 있던 키메라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 음파가 퍼져나가며 건물이 공진으로 무너져내렸다. 아스팔트가 깨져나가고, 유리창이 부스러졌다.
"……."
그러나 그 앞에 선 불길은 그저 잠시 흔들거릴 뿐. 그 이상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다….
팟.
불꽃이 디제스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키메라는 놀라서 잠시 행동이 굳었다.
그리고 그것이, 놈이 행할 수 있었던 마지막 행동이었다.
쿠콰아아아아앙!
하늘로 떠올랐던 암색 전격이 땅으로 내리꽂히며, 수십 미터 깊이의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그 일격에 키메라의 몸체가 전부 소멸하고, 흩어진 육신은 타올라 아무런 패턴도 소화해내지 못했다.
"영체 복구…. 영체 자체를 타격하면 되지."
꾹. 주먹을 쥔 흑색의 불꽃이 놈의 신체가 있던 곳을 내찌르자, 불타오르면서도 꾸역꾸역 복구하려고 했던 육체가 재생을 멈췄다. 어둠은 그제야 구덩이에서 뛰쳐나왔다.
"역시 할 수 있었군."
차게 말한 불꽃은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트라이 시작부터 완전소멸 까지 걸린 시간은 단 20초.
"……."
이 광경을 유그드라실에서 지켜보던 레이나드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
<국내 유일 A랭크 일리미네이터, 영천후! 1인 키메라 레이드 성공!>
<모든 패턴 완벽하게 차단해!>
<드래곤 트라이에 희망이 있는가!>
해당 영상은 아주 약간만 가공되어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와 동시에, 국민 여론이 폭발했다. 수뇌부가 임시로 자리를 잡은 정부세종청사 앞에는 수십, 수백만 시위대가 모여서 시위를 벌였다.
더는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통령은 결국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영천후의 자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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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좀 선선해질만 하니 다시 더워진단 소리가 들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