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07화 (107/324)

107화

로마이어 엔체스터는 영천후의 가족을 공격함으로써 드래곤 연속 트라이를 막음과 동시에, 자기 뜻을 거스르면 언제든지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그걸 위해서 박찬휘에게도 죽이지는 말라고 지시를 해뒀었다.

다음에는 죽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져야 하니까. 그렇게 천후가 자택에 틀어박혔던 사흘 동안 로마이어는 회복을 마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그 이후가 달랐다.

드래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 영천후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국내 여론을 장악해서, 드래곤 트라이 직전까지 자신이 누리던 위치를 순식간에 강탈했다.

이틀 사이에 로마이어의 목에는 삼천만 달러. 한화로 300억원 상당의, 아니 드래곤 사태가 터진 지금은 한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다.

이미 그를 지지해주던 세력은 신기루처럼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로마이어는 웃었다.

영천후의 행동은 확실히 빠르다. 솔직히 약간 당황했다. 자신이 움직였던 때 당했던 그대로 당하는 기분이랄까?

"그렇지만 너무 거칠었지."

인천 부둣가. 여름 밤바다를 맞으며 모습을 드러낸 로마이어는 웃었다. 눈앞에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래곤 트라이 공격대장 정태원을 비롯해 공격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인원들. 그리고 B랭크들도 꽤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수가 총 41명로마이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를 믿고 이렇게 모여주어서 고맙소."

"……."

어둠 사이로 보이는 눈빛들이 사납다. 로마이어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웃음은 지우지 않았다.

이들은 로마이어의 실력이나 장담을 믿고 모여든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란 것을 당당히 밝히면서 국내를 쥐고 흔드는 영천후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껴, 어쩔 수 없는 대체재로 찾아온 것이었다.

영천후가 하는 짓은 로마이어와 사실 다를 건 하나도 없지만…. 어투가 다르다. 뉘앙스가 다르다. '나는 정부와 거래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가감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드래곤에 의해 상황이 급박하니 국민들이 그런 행동에도 지지를 보내주고 있었지만, 그 후에는 어떨까? 그리고 당장 커밍아웃한 마법사, 일리미네이터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뻔한 일이다. 그와는 함께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최대한 사근사근. 인간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을 추켜 올려주면서. 그러면서도 빼먹을 건 빼먹는 것. 이것이 마법사들의 처세. 그리고 유그드라실의 기본적인 스텐스. 그것을 지켜온 로마이어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지지가 남아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이거다. 만족스러움에 몸이 다 떨렸다.

이제 드래곤에게 다시 한 번 도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기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집어, 자신의 목에 돈을 건 놈조차 침몰시킬 수 있겠지.

그리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점에 선다.

환히 미소 지은 로마이어는 옆에선 성준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는 외쳤다.

"자! 지금 여기 모인 40명의 인원으로 드래곤 트라이를 할 겁니다. 그리고 제 쪽 다른 사람이 따로 준비한 20명이 보조팀을 맡을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붕대의 남자, 박찬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와 중국에서 돈을 주고 고용한 20명의 C랭크 일리미네이터들이 있다면 할 만하다!

로마이어는 두 팔을 펼치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자! 그럼 여러분! 오늘을 드래곤의 마지막 날로 삼읍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부둣가를 울렸다. 이곳이 연설회장이었다면 누군가 박수라도 치기 시작했을 정도의 웅변.

그 울림 뒤로.

"혀, 형…. 도망쳐요!"

머리에 둘둘 붕대를 감고 있는 박찬휘의 몸이 허공에 몇십cm나 뜨더니, 그 직후 로마이어의 앞에 퍽 하고 떨어졌다. 땅바닥에 얼굴을 박은 찬휘는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무슨?!"

흠칫하고 놀란 로마이어는 찬휘가 날아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인물이 보였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다른 사람들보다 큰 체구의 남자가 보였다.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로마이어는 눈을 감고도 그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영천후.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 트라이 인원들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모인 인원들이었다. 이 난장판에도 세 단계 이상의 절차를 거쳐서,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예치금과 사재를 털어 보상을 약속하며 끌어모은 인원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바가 있었다면 성준 선에서 전부 커트했으리라.

성준 선에서….

"미안하군, 로마이어. 네 게임은 이미 끝났어."

낮은 목소리가 로마이어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남자, 차성준은 어느새 앞으로 걸어가 1 공격대장이었던 정태원의 앞에 가서 서있었다.

그제야 로마이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외쳤다.

"차성준! 팔았구나! 돈에 넘어가서 나를 팔았어!"

삼천만 달러. 누구라도 혹할 금액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밀고할 수 있을만한 금액이 아닌가? 사람을 너무 믿었다.

하지만 그때. 성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돈 때문에 판 게 아니야, 로마이어. 그저."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곧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넌 너무 지나쳤다."

영문 모를 소리라 생각했지만, 로마이어는 그 이상 그의 말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눈앞에. 야수가 다가와 있었으니까.

*

야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단숨에 사람 사이에서 튀어나와 어둠에 섞여들어 덮쳐왔다.

"큭! 나는 황금의 전능자…!"

이미 코앞이다. 대응해야 한다. 판단과 동시에 캐스팅이 진행됐다. 과연 대한민국 일리미네이터의 정점에 섰던 자. 물러나면서도 캐스팅을, 컴뱃 캐스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황금색 오오라를 피워냈다.

하지만.

그게. 어쨌는데?

그게…어쨌는데?

그딴 게 뭐 어쨌단 거야!

어둠에 섞여 짐승의 팔이 뻗어왔다. 그것은 정확하게 로마이어의 관자놀이에 틀어박혔다. 단 한 순간에 의식이 날아가 버린 그는 뒤쪽으로 물수제비 하는 것처럼 콘크리트 바닥 위를 튕겨져 다녔다.

짐승은 그대로 아래쪽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찬휘를 집어 들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로마이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기분이"

퍼걱! 그 뒤통수를 잡아, 로마이어의 가슴팍에 찍었다. 그 순간 으적 하고, 갈비뼈들이 박살 나며 폐를 찔렀다. 로마이어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와 천후의 얼굴에 묻었다.

"좋으냐?"

퍼걱! 하지만 어쨌다고? 이깟 피가 어쨌다고!

"기분이"

콱! 콱! 콱! 두개골이 더 망가지면 복구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박찬휘의 대가리로, 빌어먹을 놈팽이 새끼의 머리통에 찍어버린다. 단박에 콧잔등과 이빨이 부러진다.

"좋아?"

빠각! 찬휘의 머리에서 격돌음과는 다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천후는 아예 그의 척추를 걷어찼다. 뿌드드드가가가가각! 찬휘의 등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휘면서 새된 비명이 튀어나왔다.

"기분이 좋더냐고! 묻잖아!!!!!”

걸리적대는 팔을 무릎으로 찍어 수수깡처럼 부러뜨리고 반 시체를 치워버린 천후는 이번엔 로마이어의 머리칼을 잡아 콘크리트 바닥에 찍었다.

칵! 칵! 빠각!

단박에 이마가 깨지고, 목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딴 게! 이딴 게 재미있냐? 응? 재미있었냐고!"

"커헉!"

"좋냐? 좋아? 이렇게 존나 상대도 안 되는 힘에 쥐어 터지게 하는 게 너희가 말하는 경고냐?"

로마이어의 고개를 들어올려 안면에 니킥을 박은 천후는 그의 전신을 두드려댔다. 굽혀져 내지른 어퍼는 솔라 플렉스 블로우, 명치로 들어가고, 고정해두지 않은 야구 배트 뭉텅이도 부러트리는 로우킥은 단박에 사람의 두 다리를 분질러 병신으로 만들었다.

"니 새끼들 때문에! 아직 학교도 제대로 못 간 아이들이! 큰 소리만 나면 울어!"

로마이어가 어떻게 저항해보고자 즉시시전 주문을 발휘해보지만, 그와 동시에 일시적으로 아지랑이를 두른 천후의 몸에 닿자 산들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놈을 노려본 천후는 다시 주문을 끄고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입속에서 굴러다니던 이빨들과, 그나마 남아있던 이빨들이 죄다 튀어나와 턱을 따라 굴러 옷으로 들어갔다.

"차를 타려고 하면 무서워서 그 앞에서 30분은 심호흡을 해야 간신히 타! 이게 네가 바라던 거냐? 응?"

쾅! 그대로 땅으로 로마이어를 집어던진 천후는 놈의 온몸을 밟아대며 소리쳤다.

"차라리! 차라리 저번처럼 내 뒤통수를 치지 그랬어! 왜? 왜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그러면 내가 그냥 가만있을 줄 알았어? 또 이럴까 봐 입 닥치고 몸 숨기고 살 줄 알았냐고, 이 씨발 새끼야!!"

일렁…. 그의 몸에서 열기가 솟아올랐다. 그것이 마법에 의한 것임을 안 로마이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데 무슨 짓을 하려고?

"이대로 끝낼 거란 생각은 하지도 마라."

쿠직! 그것을 알려주겠다는 듯, 천후는 그의 발끝을 즈려 밟았다. 그러자 그 순간, 마치 로드롤러에 압착되듯 그의 몸이 짜부라지기 시작했다.

"크…어!"

이 꼴이 된 와중에도 통각이 남아 고통이 몰려왔지만, 이미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몸이 된 그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까직. 뿌드드득…. 뼈와 근육이 완전히 으깨져 눌어붙는 소리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몸통 말고는 완전히 짓눌린 몸이 되었다. 쇼크가 일어나 죽지 않은 것은 중간에 천후가 뒈지지 말라고 쇼크와 출혈 방지를 위한 하급 강화주문을 걸어두었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인간이라고 불러줄 수 없는 몸이 된 그의 남아있는 금발 머리칼을 틀어쥔 천후는 그 속을 들여다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금발이 아니네? 원랜 검은 머리군?"

"으…. 으으으으…!"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건드렸던 걸까? 피 거품을 물며 내는 소리를 들은 천후는 냉엄한 얼굴로 그의 목을 쥐고는, 로마이어의 머리칼을 두피째 뜯어내 버렸다.

"으어어아아아아아!"

발버둥조차 칠 수 없는 꼴이 된 로마이어는 크지도 않은, 신음만을 내지르며 절규했다. 사람이 사람 하나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는데도, 저 앞에 서 있는 마법사, 일리미네이터들은 싸늘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영천후는 그렇다 치고, 저들이 저렇게 잔인했던가?

아니 애초에 차성준은 왜 자신을 버렸단 말인가? 3천만 달러? 자신이 확고한 정점에 오른다면, 그것은 푼돈으로 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천후에게 들린 채, 머리와 몸통만이 형상만 간신히 유지한 몸으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을 잘못 선별한 건지, 아니면 성준 혼자의 배신인 건지 판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눈꺼풀이 다 날아가 한쪽 안구가 고스란히 다 드러난 로마이어의 눈에서 그의 의사를 읽어낸 차성준이 낮게 말했다.

"일단. 로마이어.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그리고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

이미 성대가 뭉개져 물음마저 할 수 없다. 성준은 그것을 배려해 말을 이었다.

"일단 잘못 알고 있는 것. 로마이어. 이곳에 모인 건 41명이 아니야."

그 말과 동시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부두에 불이 켜졌다. 그 순간. 로마이어의 눈이 커졌다.

정면에 있던 것은 40명. 하지만 불이 들어온 순간부터…. 컨테이너와 창고들 사이에서, 한명 한명씩 사람이 나타나, 그 수를 더해갔다.

50, 60, 70…. 그렇게 점점 늘어가다가 이윽고.

"이곳에 모인 것은 110여 명. 우리나라 일리미네이터 전원이다."

정면뿐 아니라, 좌우 측면에까지 늘어선 110여 명의 남녀들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마이어는 그 순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일깨워주듯….

퍼억!

땅바닥을 기고 있던 박찬휘의 몸을 공처럼 걷어차 가까이 가져온 천후는 발로 놈을 밟고, 로마이어를 치켜들며 외쳤다.

"선택하시죠. 이 쓰레기와 저 중에서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답변이 돌아왔다.

110여 명의 손가락은 모두 영천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로마이어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확답이 들려왔다.

"그래. 로마이어. 애초부터 너를 지지한 일리미네이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를 매장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총의인 거야."

============================ 작품 후기 ============================

갈 놈은 가야지.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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