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08화 (108/324)

108화

천후의 요구 이후. 현상금이 걸림과 함께 공권력이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군, 경을 가리지 않고 로마이어와 찬휘를 찾았다. 민간인들 역시 엄청난 현상금에 혹해서 마구 제보해왔다.

그 덕분에 박찬휘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은 로마이어의 의뢰를 완수해준 대가로 받은 돈으로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와 있다가, 군경이 자신을 포위하자 발광하듯 마법을 뿌려댔다.

하지만 그때. 그들 사이에서 걸어 나온 한 명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막혔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

이강호.

"히익…!"

양손에 검을 쥔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찬휘는 어떻게든 도망쳐보려고 했지만, 강화마법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은 불가능했다.

촤악! 은색 섬광이 번뜩이며, 단박에 찬휘의 아킬레스건이 베였다. 놈은 그대로 땅바닥을 기었다.

“자, 잠깐!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살려줘! 난 이미 머리만 해도 병신이 되었단 말야!”

“…….”

그의 애원에도 강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발을 베어냈다. 한 번에 하나씩. 다 자란 멧돼지의 뒷다리도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그녀의 참격은 사람의 뼈 같은 것은 우습게 잘라냈다.

“끄아아아아아악! 제발! 제발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제발! 잘못했어요! 미안합니다! 살려주세요!”

“너 같은 놈에게 아이들이…!”

놈은 에바를 다치게 한 직접적인 흉수. 강호는 놈이 시야에 들어온 그 시점부터 이미 이성이 휘발되어 놈을 베어 죽일 셈이었지만, 비굴한 놈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졌다.

“…처리는 맡기마.”

입술을 꼭 문 강호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후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잡힌 박찬휘를 잡고서 심문한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놈과 로마이어의 연결은 끊겨있어 로마이어의 거처는 알아낼 수 없었다. 습격자가 찬휘라는 게 완벽하게 확정된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로마이어는 찬휘와 달리, 군, 경, 민의 총력을 다한 수색에도 도저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외국으로 뜬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천후의 생각도 그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바로 그때.

그의 자택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

"잘도 드래곤 코앞에 숨을 생각을 했더군. 차성준 씨가 없었다면 못 잡을 뻔했어."

그날. 그가 찾아왔단 말에 대문 밖까지 뛰쳐나가 그를 죽여 버릴 뻔했던 영천후였지만.

그의 입에서 로마이어의 거처, 그가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것, 그 일시와 장소 등이 튀어나오자 딱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컥…. 커허…!"

또륵또륵. 로마이어는 성준을 바라보며 완전히 드러난 안구를 굴려댔다. 이미 어떤 제스쳐, 어떤 의사표현을 해도 사람이 알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지만, 성준은 알아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왜 배신했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그 눈빛에 성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러다 한차례 천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답해도 되겠느냐는 물음.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의 입이 열렸다.

"말했잖아, 로마이어. 너는 너무 지나쳤다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 성준은 발걸음을 뒤로하여, 일리미네이터 사이에 몸을 숨겼다. 마치 자신이 그들, 약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널 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지. 돈도 돈이지만, 일단…. 너와 함께, A랭크 없이 드래곤 레이드를 뛰는 것은 무섭다. 솔직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

작게, 떨림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로마이어의 동공이 커졌다.

"무섭다는 말이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래. 디제스터와 싸우는 것은 최대한 일, 작업이었으면 하는 게 우리 입장이야. 하지만 작업일 수 없는 레이드…. 그럴 땐 최대한 안전을 챙기고 싶다. 이미 열셋이나 죽었어. 솔직히 네 알량한, 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를 생각 때문에 사선을 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이게 첫 번째 이유다."

로마이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천후는 그의 뒷머리를 움켜쥐어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끔 했다. 덕분에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명백하게 두려움에 질려있는 일리미네이터들의 모습이.

일리미네이터. 전투 마법사. 방출계 마법을 주특기로 하는, 디제스터와 싸우는 전문 직종. 하지만…. 그들이 무슨 무적의 용사는 아니다. 감정이 제거된, 신이 만들어낸 전투 머신이 아닌 것이다.

두려운 건 두렵다. 일리미네이터 일은 돈을 괜찮게 버니까, 쓰지 않으면 손발이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사람을 지킨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도박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박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디제스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마법 아닌 무언가가 있다면 그들은 천금을 내고서라도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의 도박에, 그것도 목숨을 건 도박에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은 당연히 사양이다.

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넌 이건 어떻게든 무마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었지. 사실 맞아. 드래곤 전조단계부터 지금까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런 혼란기에 네가 힘을 쥐고 흔들면 무슨 폭거를 저지르든 따를 수밖에 없지. 솔직히 나도 그 꿀 좀 빨아먹으려고 했고. 그러니 이건 아주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 하지만 넌 다른 잘못도 저질렀어. 영천후의 서포터와 오퍼레이터. 가족들을 건드렸지."

잠시 말을 끊었던 성준이 다시 앞으로 나와 태원 옆에 섰다. 그의 표정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마법사의 문제는 마법사 사이에서 해결을 봤어야지, 로마이어. 왜 가족을 건드리지? 이러면 너에게 조금만 거슬려도 식솔들까지 전부 위험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겠나? 아주 예전부터, 소문으로는 들었었다. 네가 너에게 거슬리는 사람들은 치워왔다는 걸.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너무 심했어."

일리미네이터들 대부분 20, 30대. 이제 막 결혼을 해서 어린 자식이 있거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단계의 사람들이 많다. 그 상황에서 영천후의 가족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을 이입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하지. 그나마 로마이어가 경계하는 국내 유일의 A랭크의 가족이 공격을 받았다면, 그 아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가 힘을 유지하는 동안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이놈을 정점을 두고서 체제가 재편되면 어떤 방식이 될지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넌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 공포로. 그것도 틀린 판단은 아니야. 그리고 너도 조금씩 당근을 풀었을 테니까, 어떻게든 유지됐겠지. 하지만 넌 결정적인 잘못을 했다."

그 말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부두에 모여있던 모든 일리미네이터의 몸에서 은은한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마력이 통제를 잃어 외부에 유형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것은 성준도 마찬가지. 눈매를 날카롭게 하는 것과 동시에 옷가지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로마이어. 너는 사람, 인간들이 마법사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미스다."

*

디제스터가 출현하기 전. 마법사란 존재는…. 핍박과 박해의 대상이었다. 소리를 지르면 물건이 떠오르고, 손에서 불이 나가고, 남의 생각을 읽어내는 존재들.

그들이 세간에 노출되었을 때, 인간들은 그들을 같은 인간이 아니라 이질적인 무언가로 받아들였다.

유럽에선 중, 근세를 관통하며 마녀사냥을 벌였고, 그 사이에 가짜, 진짜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마법사들이 죽어 나갔다. 아니 비단 유럽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던 집중되는 기간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 뿐 마찬가지였다.

'아. 손에서 불이 나가네. 그럼 이 녀석들을 이용하자!' ‘이 녀석들은 돈이 된다!’ 같은 생각보다, '이 괴물 새끼들 당장 쳐 죽이자! '가 더, 훨씬 많았다. 그들이 없어도 인류의 문명은 유지되고, 권력 역시 지켜지니까.

아니 오히려 그런 괴물, 인간으로 인정해주면 초인이나 영웅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놈들이 권력자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민초들 역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들의 존재는 모든 노력을 부정하고 비웃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마법사가 발휘하는 기적은 한 번은 은혜롭지만, 여러 번이 되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꺾는 것으로 변한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으로.

사이비종교 지도자나, 거짓 선지자로서 장수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 결국 마법사들은 최대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과 동화되어, 그렇게 평생을 살다 죽었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손 하나를 일부러 묶고서 평생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신을 스스로 속박하는 그 괴로움을, 마법사들은 서로 간에 공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인류 역사상 가장 지옥 같았던 그 싸움의 종전 이후.

첫 번째 변화가 생겼다.

유그드라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지금껏 있다고 미루어 짐작은 해왔지만, 정식적으론 인정되지 않던 마법사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하고, 그들의 보호를 천명했다. SA랭크 마법사가 그들을 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유그드라실은 강력한 기관이기는 했지만, 세상의 모든 마법사를 전부 품어주긴 힘들었고, 마법사의 존재를 완전히 인지한 국가들은 이번엔 박해 대신 활용으로 눈을 돌렸다.

활용. 초인 병사. 아니 그들은 인간조차 아니니 머리통을 따고서 칩을 박거나, 혹은 약물로 절여서 초인 인형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도 냉전 시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초능력이 있다면 만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무료 자판기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국가의. 공공기관의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냐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유그드라실은 그런 인식에서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해나갔다.

그러다 두 번째 변화.

대참사 이후.

디제스터가 나타났다.

인간이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힘든 괴물. 멸급쯤 되면 인간의 재래식 병기가 거의 먹히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는 인류의 천적.

그들에 의해 인간은 고통받았다. 초창기 3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빗나간 포탄이 그대로 민가를 습격했고, 경급 이상 디제스터가, 그것도 하늘을 나는 디제스터가 나타나는 날엔….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선 헬기나 전투기들이 격추라도 당하면 그 아래의 도시는 불바다로 변했다.

그런 지옥도에서.

초창기의 일리미네이터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생전 처음 써보는 마법으로 디제스터에게 대항한 존재들.

그래.

초창기의 일리미네이터는 일이나 직업이 아니라, 일종의 히어로 활동에 가까웠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선의 하나로 괴물을 싸운 용감한 시민. 용감한 마법사. 그것이 초기의 일리미네이터였다.

그들은 국가가 자신을 잡아들일 것까지 염두에 두고 정말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처럼 얼굴에 복면을, 몸에는 코스튬을 두르고 괴물과 맞섰다.

그중 일부는 그들이 염려했던 것처럼 국가로 끌려가, 다시는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그들. 선량하고 용감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바쳤던 그들의 등장에 인해 전 세계 인간들의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나갔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두려운 존재들이지만 인간의 친구. 동반자들이라고.

그 인식 아래 유그드라실의 힘이 좀 더 커지고, 기업이 생기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모든 마법사를 대표하는 얼굴마담.

그것이 일리미네이터인 것이다.

*

"그런데…. 군인들에게 정신지배를 걸어? 그래서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해?"

성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눈이 그 어떤 때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우린 돈을 위해서 일리미네이터를 하고 있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린 마법사 전체를 대변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정점에 선 네가 마법으로 사람을 지배하려 들다니.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기 위해서 마법사가, 우리가 피를 쏟아가며 쌓아올려 온 모든 것을 네가 무너뜨리려 한 거다. 대체 그 사실을 영천후 씨가 대중에 밝혔으면 어떻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지? 다른 건 전부 참더라도 이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로마이어 그리고 영천후가 안보를 담보로 나라를 좌지우지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딜의 일환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딜. 입장 차를 이용한 거래.

그러나 직접 마법을 사용해 인간 자체를 지배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이것은 여기 있는 110명의 일리미네이터 뿐 아니라.

그들을 계기로 세상에 섞여들고자 하는 전 세계 모든 마법사들의 총의.

그 말을 이어받아.

그중에서도 박해받는 자. 영천후가 말했다.

"그러니 로마이어 엔체스터. 너는 이제부터 영원히 수면 위로 올라오지 말고, 여기서 매장당해라."

우드드득! 즉시시전 강화마법의 힘을 빌려 그의 갈비뼈 하나를 생으로 뽑아내 버린 천후는 로마이어를 들어서 컨테이너에 댄 후, 갈비뼈로 그 몸을 꿰뚫어 못 박아 버렸다.

찬휘 역시 그 옆에 똑같이 처리한 천후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놈들 덕에 우리 아이들은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됐지. 그런 네놈을 쉽게 죽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마라. 너도 이렇게. 평생 고통받으면서 살아라."

살 수 있는 평생이 그리 길진 않겠지만.

뒷말을 자른 천후는 그대로, 일리미네이터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우워어어어어! 어어어어!"

뼈에 관통당해 못 박힌 남자의 낮은 외침만이, 사람 하나 없는 부둣가에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일어나서 한편 더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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